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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2016 • 0
시편 34:1-10(심우진 목사)
시편 34:1-10(심우진 목사)
34: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34: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34: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2/16/2016 • 8 minutes, 22 seconds
시편 33:1-22 (심우진 목사)
시편 33:1-22 (심우진 목사)
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33: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33:5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 다
33: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33:19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33:20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33: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12/15/2016 • 9 minutes, 9 seconds
시편 32:1-11 (서석훈 목사)
시편 32:1-11 (서석훈 목사)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32: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2: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32: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12/14/2016 • 12 minutes, 22 seconds
시편31:9-24 (조재욱 목사)
시편31:9-24 (조재욱 목사)
31: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31: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31:1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
31:18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이 말 못하는 자 되게 하소서
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12/13/2016 • 14 minutes, 10 seconds
시편 30 : 1-12(서석훈 목사)
시편 30 : 1-12(서석훈 목사)
잠깐의 노염, 평생의 은총(30:1~5)
1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5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슬픔을 기쁨으로(30:6~12)
6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8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12/10/2016 • 20 minutes, 25 seconds
시편 29 : 1-11(정연권 목사)
시편 29 : 1-11(정연권 목사)
영광의 왕이신 여호와(29:1~2, 10~11)
1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소리(29:3~9)
3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영광의 왕이신 여호와(29:10~11)
10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11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12/10/2016 • 20 minutes, 45 seconds
시편 28 : 1-9(심우진 목사)
시편 28 : 1-9(심우진 목사)
솔직한 드러냄(28:1~5)
1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하나님의 도움(28:6~9)
6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7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12/9/2016 • 11 minutes, 59 seconds
시편 27 : 1-14(심우진 목사)
시편 27 : 1-14(심우진 목사)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니(27:1~6)
1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3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27:7~14)
7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12/8/2016 • 16 minutes, 21 seconds
시편 26 : 1-12(조근상 목사)
시편 26 : 1-12(조근상 목사)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26:1~5)
2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3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4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5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의 속량과 은혜(26:6~12)
8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9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10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11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12/6/2016 • 15 minutes, 24 seconds
시편 25 : 1-22(조무제 목사)
시편 25 : 1-22(조무제 목사)
주의 길을 가르치소서(25:1~14)
1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4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25:15~22)
15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16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18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12/5/2016 • 17 minutes, 29 seconds
시편 23 : 1-6(김재홍 목사)
시편 23 : 1-6(김재홍 목사)
목자이신 여호와(23:1~4)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 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나님의 인정과 대접(23:5~6)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12/3/2016 • 31 minutes, 30 seconds
시편 22 : 19-31(정선기 목사)
시편 22 : 19-31(정선기 목사)
고통 가운데서 경험하는 구원(22:19~26)
23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공동체의 경배(22:27~31)
27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12/3/2016 • 12 minutes, 11 seconds
시편 22 : 1-18(심우진 목사)
시편 22 : 1-18(심우진 목사)
역사 속의 하나님을 기억함
1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6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개인 삶 속의 하나님을 기억함
10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6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8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2/1/2016 • 12 minutes, 57 seconds
요엘 3 : 14-21(심우진 목사)
요엘 3 : 14-21(심우진 목사)
심판 날의 여러 징조
16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17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백성의 피 흘림을 갚아 주리라
19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20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21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 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11/30/2016 • 15 minutes, 9 seconds
요엘 3 : 1-13(서석훈 목사)
요엘 3 : 1-13(서석훈 목사)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보복(3:1~8)
2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3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심판의 골짜기로 나아오라(3:9~13)
9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널리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 하고 병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13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11/29/2016 • 15 minutes, 23 seconds
요엘 2 : 18-32 (이성혜 목사)
요엘 2 : 18-32 (이성혜 목사)
마음을 돌이키시는 하나님(2:18~27)
27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만민에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영(2:28~32)
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11/29/2016 • 25 minutes, 46 seconds
요엘 2 : 1-11(서석훈 목사)
요엘 2 : 1-11(서석훈 목사)
임박한 여호와의 날(2:1~3)
1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3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
엄중한 심판(2:4~11)
4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7그들이 용사같이 달리며 무사같이 성을 기어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
11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11/26/2016 • 24 minutes, 22 seconds
요엘 1 : 13-20 (조근상 목사)
요엘 1 : 13-20 (조근상 목사)
금식하며 부르짖으라
13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 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 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14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주님을 향한 갈망
15슬프다 그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19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11/25/2016 • 17 minutes, 45 seconds
요엘 1 : 1-12 (조재욱 목사)
요엘 1 : 1-12 (조재욱 목사)
귀를 닫은 백성에게 임한 재앙
2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4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탐욕 뒤에 찾아온 피눈물
6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7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12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11/24/2016 • 16 minutes, 37 seconds
시편 20 : 1-9(정선기 목사)
시편 20 : 1-9(정선기 목사)
위기 때 왕을 위한 기도(20:1~5)
1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5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기도 응답을 확신함(20:6~9)
7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11/22/2016 • 11 minutes, 35 seconds
시편 19 : 1-14(조재욱 목사)
시편 19 : 1-14(조재욱 목사)
온 누리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19:1~6)
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4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말씀의 능력(19:7~14)
7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14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11/21/2016 • 11 minutes, 7 seconds
시편 18 : 20-30 (김재홍 목사)
시편 18 : 20-30 (김재홍 목사)
깨끗한 삶의 비결(18:20~24)
20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21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2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4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하나님 성품을 소유하는 비결(18:25~30)
27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28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30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11/19/2016 • 31 minutes, 12 seconds
시편 17 : 1-15(정선기 목사)
시편 17 : 1-15(정선기 목사)
하나님을 향한 의의 호소(17:1~5)
3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4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5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구원과 주님을 바라는 기도(17:6~15)
14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
15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11/17/2016 • 9 minutes, 42 seconds
시편 16 : 1-11(심우진 목사)
시편 16 : 1-11(심우진 목사)
피난처와 복 되신 하나님(16:1~4)
1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안정감(16:5~11)
5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11/16/2016 • 16 minutes, 27 seconds
시편 15 : 1-5(김재홍 목 사)
시편 15 : 1-5(김재홍 목사)
예배자의 자격에 대한 질문(15:1)
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15:2~5)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11/15/2016 • 18 minutes, 21 seconds
시편 14 : 1-7(조무제 목사)
시편 14 : 1-7(조무제 목사)
어리석은 인생
1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의인의 세대에 계시는 하나님
5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11/14/2016 • 19 minutes, 30 seconds
시편 11 : 1-7(김재홍 목사)
시편 11 : 1-7(김재홍 목사)
고난 중에 하나님께 피하라(11:1~4)
1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신뢰하라(11:5~7)
5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11/11/2016 • 14 minutes, 3 seconds
시편 10 : 1-18(심우진 목사)
시편 10 : 1-18(심우진 목사)
악인의 흥왕과 하나님의 침묵(10:1~11)
1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2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3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감찰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10:12~18)
17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11/10/2016 • 13 minutes, 50 seconds
시편 8 : 1-9 (정연권 목사)
시편 8 : 1-9 (정연권 목사)
땅과 하늘의 중심, 여호와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하나님 백성의 임무와 사명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 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땅과 하늘의 중심, 여호와
9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11/8/2016 • 18 minutes, 16 seconds
시편 7 : 1-17(정선기 목사)
시편 7 : 1-17(정선기 목사)
나를 위하여 깨소서
6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9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10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11/7/2016 • 15 minutes, 59 seconds
시편 5 : 1-12(조근상 목사)
시편 5 : 1-12(조근상 목사)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심
1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7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 배하리이다
여호와께 드리는 탄원
8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11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11/5/2016 • 27 minutes, 19 seconds
시편 4 : 1-8(정연권 목사)
시편 4 : 1-8(정연권 목사)
경건한 자의 기도에 응답하심
1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3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불신의 풍랑 속에서 평안한 자
6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11/4/2016 • 13 minutes, 46 seconds
시편 3 : 1-8 (심우진 목사)
시편 3 : 1-8 (심우진 목사)
고난 속에서 드러나는 신앙
1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
5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11/3/2016 • 11 minutes, 50 seconds
시편 2 : 1-12(심우진 목사)
시편 2 : 1-12(심우진 목사)
불신을 심판하시는 왕
1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유일한 피난처가 되시는 왕
10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11/2/2016 • 13 minutes, 10 seconds
시편 1 : 1-6 (조근상 목사)
시편 1 : 1-6 (조근상 목사)
의인의 행복한 인생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의 무익한 인생
4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 리로다
6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11/1/2016 • 16 minutes, 11 seconds
호세아 11 : 12-12:14(서석훈 목사)
호세아 11 : 12-12:14(서석훈 목사)
돌아와서 하나님을 바라라
3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6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이스라엘의 실상
8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9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10/29/2016 • 5 minutes, 29 seconds
호세아 10 : 1-15(조근상 목사)
호세아 10 : 1-15(조근상 목사)
두 마음을 품은 이스라엘(10:1~8)
2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3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4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
묵은땅을 기경하라(10:9~15)
12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0/27/2016 • 22 minutes, 2 seconds
호세아 9 : 10-17(김재홍 목사)
호세아 9 : 10-17(김재홍 목사)
이스라엘의 영광이 날아감(9:10~14)
10옛적 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도다
여러 나라에 떠돌게 됨(9:15~17)
15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10/26/2016 • 16 minutes, 22 seconds
호세아 9 : 1-9 (서석훈목사)
호세아 9 : 1-9 (서석훈목사)
이스라엘의 음행
1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3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4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그들의 떡은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형벌과 보응의 날이 도래함
7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10/25/2016 • 17 minutes, 8 seconds
호세아 8 : 1-14(정선기 목사)
호세아 8 : 1-14(정선기 목사)
송아지 우상의 허무함(8:1~7)
1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2그들이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3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버렸으니 원수가 그를 따를 것이라
형식주의 신앙의 가증함(8:8~14)
11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2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10/24/2016 • 12 minutes
호세아 6;1-11 힘써 여호와를 알자 (정연권 목사)
호세아 6;1-11 힘써 여호와를 알자 (정연권 목사)
오라, 여호와께로 돌아가자(6:1~3)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과 유다(6:4~11)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10/22/2016 • 29 minutes, 26 seconds
호세아 5 : 1-15(김재홍 목사)
호세아 5 : 1-15(김재홍 목사)
이스라엘의 죄와 교만(5:1~7)
1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2패역자가 살육 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3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하나님의 심판과 기다리심(5:8~15)
14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 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 낼 자가 없으리라
15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10/21/2016 • 15 minutes, 17 seconds
호세아 4 : 11-19 (정연권 목사)
호세아 4 : 11-19 (정연권 목사)
이스라엘의 탐욕과 우상 숭배(4:11~14)
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12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의 타락과 멸망(4:15~19)
15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16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
17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18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10/20/2016 • 16 minutes, 14 seconds
말씀을 아는 것이 힘이다, 호세아 4:1-10 (조근상 목사)
말씀을 아는 것이 힘이다, 호세아 4:1-10 (조근상 목사)
이스라엘 자손과의 논쟁(4:1~5)
1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5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백성과 제사장에 대한 심판(4:6~10)
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10/19/2016 • 16 minutes, 37 seconds
호세아 2 : 14-23(조재욱 목사)
호세아 2 : 14-23(조재욱 목사)
아골 골 짜기가 소망의 문으로(2:14~18)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2:19~23)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10/17/2016 • 11 minutes, 11 seconds
호세아1:1-2:1(김재홍 목사)
호세아1:1-2:1(김재홍 목사)
호세아의 아내와 자식들
(호 1: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
(호 1: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호 1: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10/15/2016 • 27 minutes, 43 seconds
로마서 16 : 17-27(조근상 목사)
로마서 16 : 17-27(조근상 목사)
참과 거짓을 분별함
17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문안과 찬양
25나의 복음과 예 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10/14/2016 • 17 minutes, 25 seconds
로마서 15 : 22-33(김재홍 목사)
로마서 15 : 22-33(김재홍 목사)
바울의 선교 계획(15:22~29)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바울의 기도 요청(15:30~33)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10/12/2016 • 12 minutes, 38 seconds
로마서 15 : 14-21 (조근상 목사)
로마서 15 : 14-21 (조근상 목사)
이방인을 위한 바울의 직분(15:14~16)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의 선교 사역 원칙(15:17~21)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10/11/2016 • 13 minutes, 59 seconds
로마서 15 : 1-13(이성혜 목사)
로마서 15 : 1-13(이성혜 목사)
공 동체를 세우는 믿음(15:1~7)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열방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15:8~13)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0/10/2016 • 19 minutes, 17 seconds
갈등을 풀어가는 믿음의 공동체, 로마서 14:1~13 (조재욱 목사)
10/8/2016 • 19 minutes, 52 seconds
로마서 13 : 1-7(서석훈 목사)
로마서 13 : 1-7(서석훈 목사)
권세와 성도(13:1~3)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국가의 역할과 성도의 태도(13:4~7)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10/6/2016 • 11 minutes, 41 seconds
로마서 12 : 1-8(정선기 목사)
로마서 12 : 1-8(정선기 목사)
거룩한 산 제물과 영적 예배(12:1~2)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새로워진 공동체와 은사(12:3~8)
4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10/4/2016 • 13 minutes, 19 seconds
로마서 10 : 14-21(조재욱 목사)
로마서 10 : 14-21(조재욱 목사)
복음 전도의 의미(10:14~15)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듣고도 불순종한 유대인(10:16~21)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9/30/2016 • 11 minutes, 49 seconds
로마서 9 : 25-33(심우진 목사)
로마서 9 : 25-33(심우진 목사)
사도 바울은 두가지 카테고리로 구원과 심판을 설명했습니다.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유대인도 진노의 그릇에 해당하는 사람도 있고 이방인들도 긍휼의 그릇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구원의 기준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는 누구라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음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인한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는 자는 멸망할 것이고 하나님의 긍휼을 믿음으로 구하는 자는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이방인도 부르신 하나님(9:25~29)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십자가 앞에 넘어진 이스라엘(9:30~33)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9/28/2016 • 9 minutes, 18 seconds
로마서 9 : 14-24(김재홍 목사)
로마서 9 : 14-24(김재홍 목사)
인생을 살다가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성취를 보면서 정말 가끔은 하나님은 과연 공평하신가 질문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아햐 할것은 우리 인생들 하나하나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써 자유와 분명한 목적의 의지를 가지시고 다양하게 창조하신 작품들이라는 것입니다.
헨리나우엔은 하바드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우들을 섬기다 만난 전신이 마비된 아담이 철저하게 하나님께 의지하는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나를 보고 아담이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결국 우리 각자각자에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특성과 능력은 다 다릅니다 하지만 목적은 하나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하시는것이 바로 그 목적 이신것입니다.
선택받을 자격 없는 자들(9:14~18)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완전한 구원의 근거(9:19~24)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9/27/2016 • 13 minutes, 34 seconds
로마서 9 : 1-13(쟌 박목사)
로마서 9 : 1-13(쟌 박목사)
오늘의 본문은 과연 율법으로 대표되는 유대인들은 그렇다면 하나님으로 버림 받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맺으신 언약은 무효가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대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그 예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은 구약의 이야기를 하며 그 때에도 혈육을 따라 이스라엘의 자녀가 된것이 아니라 오직 약속을 따라 이스라엘의 씨가 되었음을 지적 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바울 사도의 유대민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임을 생각해 보며 과연 나는 나의 지체를 위해 이렇게 뜨겁게 사랑한 적이 있는가 반성해 봅니다.
과거에 안주한 유대인(9:1~5)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2 (1절에 포함됨)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택하심과 부르심의 근거(9:6~13)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9/26/2016 • 12 minutes, 32 seconds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로마서 8장 26절-28절 (조근상 목사)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로마서 8장 26절-28절 (조근상 목사)
9/24/2016 • 27 minutes, 52 seconds
로마서 8 : 18-25(조재욱 목사)
로마서 8 : 18-25(조재욱 목사)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소망에 대해서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고난과 하나님의 자녀로써 주님의 재림때 얻을 영광에 대한 소망을 비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때에 받을 성도의 영광은 먽저 썩지 않을 신령한 몸과 주님과 누릴 영원한 삶 그리고 하늘나라 시민으로 다스리는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런 영광과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가 보지 못하게 막는것은 현실의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자세는 광야를 지나듯이 살아야 합니다 아둥바둥 산의 정상을 나 혼자 올라가겠다고 덤비는 세상사람들과 다르게 말입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언제나 은혜를 구하며 인생의 어려움을 하나님을 구하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구원(8:18~22)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가 고대하는 구원(8:23~25)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9/23/2016 • 14 minutes, 54 seconds
로마서 8 : 9-17(심우진 목사)
로마서 8 : 9-17(심우진 목사)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8:9~11)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하나님의 자녀답게(8:12~17)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9/22/2016 • 14 minutes, 25 seconds
로마서 8 : 1-8 (심우진 목사)
로마서 8 : 1-8 (심우진 목사)
아버지의 거위를 실수로 죽인것을 본 하녀가 주인의 어린 아들을 자기맘대로 부려먹다가 아들이 아버지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받자 더이상 아들에게 힘을 쓸 수 없었다는 동화는 죄의 노예로 살다 주님께 용서를 받고는 더 이상 죄의 권세에 묶여 살지 않는 크리스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야기 하는 정죄함이 없다는 뜻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와졌다는것을 의미 합니다. 더이상 죄인이 재판관 앞에 나아가듯 하나님앞에 나아갈 필요가 없고 아버지께로 나아가듯 갈수있는 새로운 관계로 들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죄함이 없는 이유(8:1~4)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의 말로(8:5~8)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21/2016 • 12 minutes, 34 seconds
로마서 7 : 14-25(정연권 목사)
로마서 7 : 14-25(정연권 목사)
나의 한계를 만날 때 나의 끝을 알게 될때 믿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을 세가지로 보면 첫째는 우리 모두는 행함에 실천에 있어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선하ㅏㄴ 능력에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늘 내가 이정도 인간이었던가 절망하게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것에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일을 해결할수도 없고 내가 정되하던 사람들과 똑같은 실수를 나도 저지르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끝이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것은 큰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끝은 나를 내려놓고 우리 주님과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육신에 속했기에(7:14~20)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사망의 몸에서 건지시는 분(7:21~25)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9/20/2016 • 14 minutes, 53 seconds
로마서 7 : 7-13(조무제 목사)
로마서 7 : 7-13(조무제 목사)
오늘의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율법과 아울러서 계명이라는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게명은 법의 대원칙에 해당하는 것이고 율법은 계명의 실행령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계명의 근본 정신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 그런데 질문은 율법을 지키면서 우리가 이 사랑을 완성할 수 잇는가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거룩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 죄를 없앨 수 없습니다. 빨래를 빨래 방망이로 심히 두드려야 땍 드러나듯이 율법이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빨래방방이로는 빼가 빠지지 않고 비누가 필요하듯 죄도 그러한것입니다.
율법의 기능(7:7~11)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율법의 의도(7:12~13)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9/19/2016 • 14 minutes, 58 seconds
로마서 6 : 12-23 (서석훈 목사)
9/17/2016 • 26 minutes, 39 seconds
로마서 6 : 1-11(조근상 목사)
로마서 6 : 1-11(조근상 목사)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이 연합을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세가지 조건을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첫째는 죄와의 단절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죄와 거리를 둡니다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둘째 구원받은 백성은 죄에 대해 죽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살아있는 죄성의 흔적이 우리를 괴롭히지만 그 때마다 주님께로 나아가 이 죄를 박멿해야 합니다. 세째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또 무덤에서 부활하실때 같이 죽고 같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6:1~7)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는 자(6:8~11)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9/16/2016 • 15 minutes, 1 second
로마서 5 : 12-21(심우진 목사)
로마서 5 : 12-21(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는 죄의 영향력아래서 살던지 아니면 예수님의 영향력 밑에 살던지 둘 중에 하나일 뿐일는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죄는 성경에 기록되기를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류에 들어오게 되고 그 이후에 전염병처럼 퍼져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악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강력한 죄그이 권세와 역사도 우리 주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권세에는 미치지 못하며 보혈의 권세는 사망의 권세도 이겨 승리하신 권세중의 권세임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연약한 만큼 우리에게 부어진 은혜가 크시며 그 은혜 가운데ㅔ서 모든것을 감당할 만큼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아담(5:12~16)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함(5:17~21)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9/15/2016 • 11 minutes, 8 seconds
로마서 5 : 1-11(심우진 목사)
로마서 5 : 1-11(심우진 목사)
하나님을 따르는 인생은 모든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인생입니다. 본문 3절과 4절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인생에 대한 묘사입니다. 세상의 평안은 잠깐있다 사라지는 새벽의 고요함 같은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평안은 어떠한 상황에도 우리를 붇을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6절과 8절로 보시면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연약하였을때 우리가 죄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함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어이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람(5:1~4)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 마음에 부어진 사랑(5:5~11)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9/14/2016 • 7 minutes, 50 seconds
로마서 4 : 18-25(김재홍 목사)
로마서 4 : 18-25(김재홍 목사)
오늘의 본문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믿음은 인격과 인격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만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의미에서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과 행하신 역사를 깨닫는것은 매우 중요 합니다. 죽은자 같던 아브라함에게서 새생명을 일궈내신 하나님은 죽은자 가운데서 우리주님을 살리셨고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소망의 근거가 되십니다. 우리 주님을 믿는것은 그의 부활과 살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의심(4:18~22)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아브라함과 우리(4:23~25)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9/13/2016 • 11 minutes, 55 seconds
로마서 4 : 9-17(이성혜 목사)
로마서 4 : 9-17(이성혜 목사)
몇년전에 생수의 강에서 엔지니어 풀신 집사님이 모든 기계는 제작자의 메뉴얼대로 작동을 하고 있지 않으면 오작동이라는 간증을 하신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도 하나님의 메뉴얼 믿음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면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바울 사도가 설파하시는 믿음의 법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의 법에 따라 그가 할례받기 이미 십수년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그것이 의롭다하심의 핵심입니다, 바로 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우리도 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둔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속에 거하는 형제와 자매가 된것입니다.
아직도 세상법에 매여 오작동을 하고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만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속에 거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주의 믿음의 범을 따르며 이 범을 설파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4:9~12)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 시냐 무할례 시냐 할례 시가 아니요 무할례 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 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세상의 상속자(4:13~17)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9/12/2016 • 14 minutes, 31 seconds
로마서 3 : 21-31(정연권 목사)
로마서 3 : 21-31(정연권 목사)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3:21~26)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율법을 굳게 세우는 복음(3:27~31)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9/10/2016 • 26 minutes, 3 seconds
로마서 3 : 9-20(서석훈 목사)
로마서 3 : 9-20(서석훈 목사)
사도 바울은 7곳의 성경을 인용하여 오늘의 본문에서 인간의 타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비춰주시는 거울입니다. 말씀에 우리를 비춰볼 때 과연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어떠한지 다 드러나게 되는것입니다.
또 바울 사도는 죄의 보편성과 편재성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죄의 보편성이라는것은 누구나 죄를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시편기자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있음을 즉 죄의 보편성을 이야기 하시고 13,14,15,18 절에서는 입과 입술과 발과 눈위에 있는 죄를 말씀하시며 죄가 어디에나 있는 죄의 편재성을 말씀하십니다.
결국 사도 바울께서 말씀 하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자 곧 우리의 주인되시고 구세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 아래 있는 인류(3:9~18)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율법의 목적(3:19~20)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9/9/2016 • 7 minutes, 15 seconds
로마서 3 : 1-8(심우진 목사)
로마서 3 : 1-8(심우진 목사)
지난 시간에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외적인 근거 할례와 율법으로 인해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것을 사도바울이 비판하시는것을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대한 믿음의 고백으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생긴 논쟁이 그렇다면 구원이 할례와 율법과 상관없이 이뤄진다면 율법과 할례는 유익이 없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 유익이 범사에 많다는 것입니다. 구원과는 상관 없을지라도 우리의 믿음생활과 우리의 삶을 지키고 풍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대대로 믿는가정에 태어난 자녀가 살면서 여러모로 신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다른 논쟁은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불의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한것이 결국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했다면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불의를 자신을 위해 이용하신것이니 처벌하시면 안돼는것이 아닌가 하는것이었습니다. 거기에대해 바울은 우리의 범죄로 하나님의 영광을 조금도 더 할 수 없고 원래 하나님은 영공스런 분이심을 재차 강조하며 하나님의 영과을 알만한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음에도 믿지 않는자들에게 임할 심판은 너무나 정당한 것임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3:1~4)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에 대한 변호(3:5~8)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9/8/2016 • 9 minutes, 28 seconds
로마서 2 : 17-29(심우진 목사)
로마서 2 : 17-29(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를 말씀 하십니다. 이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이고 하나님께 율법과 할례를 받았음을 자랑하지만 이 자랑이 실천이 따르지 않는 껍데기만 남은 형식이라고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지식은 있으나 온갖죄를 지으면서 남을 정죄하는 심지어는 이방인의 신전에서 도둑질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께서는 표면적할례가 진정한 유대인이 되는것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율법을 받았으면 지켜야 하고 삶의 변화가 있는 내면의 할례가 있어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하십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내면의 변화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일어난 사람들이고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인것입니다.
잘못된 자부심(2:17~24)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이면적 유대인과 마음의 할례(2:25~29)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9/7/2016 • 13 minutes, 14 seconds
로마서 2 : 1-8(조재욱 목사)
로마서 2 : 1-8(조재욱 목사)
먼저 오늘의 본문은 남을 판단하는 자들 유대인 크리스챤들에게 대한 권고로 시작 합니다. 남을 판단하는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망각하고 저지르는 죄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엘리트주의로 남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는 이 태도는 자신의 신앙적인 경험과 지식이 예수님을 닮게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저지르는 도구가 될수 도 있는 무서운 죄입니다.
이스라엘 믽족은 이 엘리트주의 인 선민의식으로 결국 예쑤님의 사역을 박해하고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했다는 사실 잊어버리면 안 되겠습니다. 이 모든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엄정하신 판단이 우리의 모든 행위에 따라 있을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이 무서운 심판에 속한 자들입니다.
오직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고 죄의 사슬에서 놓여 날 수 가 있습니다.그렇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것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그 외에 다른길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그 진리만 붇들면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에게(2:1~5)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행한 대로 보응하심(2:6~8)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5/2016 • 13 minutes, 27 seconds
복음의 능력, 로마서 1:16-25 (김재홍 목사)
복음의 능력, 로마서 1 : 18-25(김재홍 목사)
진노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1:18~23)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죄악의 뿌리, 마음(1:24~25)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9/3/2016 • 28 minutes, 11 seconds
로마서 1 : 8-17(정연권 목사)
로마서 1 : 8-17(정연권 목사)
오늘의 본문에서는 크리스챤의 만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첫째 크리스챤의 만남은 기도로 분비되어져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성도들을 만나는것을 기도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럴때 어떤 만남이라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때문이며 그 만남안의 하나님의 뜻을 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는 크리스챤의 만남은 분명한 목적을 가진 만남이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의 11절과 12절에서 자신이 왜 로마교회를 방문하려 하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으로 꿈과 기쁨과 비젼과 생명과 능력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크리스챤의 만남은 복음의 목적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리스챤의 만남은 복음에 빚진자의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로마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면 로마인들이 복음을 받기전까지 나는 로마사람들에게 갚을 복음의 빚이 있는 빚진 자 입니다. 로마인들은 나에게 받을 복음의 채권이 있는 채권자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챤에게 모든 만남은 이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만남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우리 주님과의 매일의 만남을 크리스챤의 만남으로 준비하고 있습니까?
바울의 감사와 기도(1:8~12)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의 소원(1:13~15)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능력(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9/2/2016 • 15 minutes, 59 seconds
로마서 1 : 1-7(심우진 목사)
로마서 1 : 1-7(심우진 목사)
로마서는 믿음의 선진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책입니다. 어거스틴, 마틴 루터, 조나단 에드워드, 존 웨슬리 등등. 로마서는 네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로 의의 문제 둘째로 선민 이스라엘의 문제 세째로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의 실천의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베라는 인물의 추천. 로마서는 스페인선교를 로마교회의 도움으로 하려는 마음으로 한번도 본적없는 로마교인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로 쓰여졌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 보냄을 받은 사도, 그리고 택함을 받은 자로 설명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정체성이 어디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의 핵심을 정리해 주십니다. 먼저 에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해오신 바로 그 분 이시다라는 것과 예수님은 이 땅에 실재하셨던 인간 바로 다윗의 자손이심과 또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참 하나님으로써 성령의 영을 힘입어 부활의 능력을 지닌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읽는 우리들도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자 들이라는것입니다.
PS: 녹음이 실수로 중간부터 시작 됩니다. 죄송합니다.
하나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1:1~4)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모두를 위한 복음(1:5~7)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9/1/2016 • 7 minutes, 22 seconds
여호수아 24 : 25-33(심우진 목사)
여호수아 24 : 25-33(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믿음의 맹세를 다시 세웁니다. 일생을 통한 여호수아의 사역은 결국 이스라엘의 믿음을 세우는 것으로 정리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이 편해지면 믿음도 느슨해지는 많은 경우들을 지금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것처럼 이스라엘도 가나안 땅에서의 정착이 완성되어 가면서 우려할 만한 믿음의 문제들이 나타나는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백성들을 다시 불러 모읍니다 그들로 하여금 신앙의 맹세를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생활의 변화가 생겼을 때 가족의 변화가 생겼을 때 결단으로 믿음의 삶을 다잡아 가야 하는 것처럼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 민족도 새로운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큰 돌을 여호와의 성소곁에 있는 큰 상수리나무옆에 세우고 선포합니다. 이 돌이 증거가 되어 모두의 맹세를 들었다고. 우리도 믿음의 결단과 맹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믿느자들을 넘어뜨리려고 돌아다니기 때문이고 우리의 믿음은 쉽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세겜 언약의 기념 돌(24:25~28)
25 그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28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의 죽음(24:29~33)
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30 그들이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이었더라
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33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으매 그들이 그를 그의 아들 비느하스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받은 산에 장사하였더라
8/31/2016 • 12 minutes, 48 seconds
여호수아 24 : 1-13 (조무제 목사)
여호수아 24 : 1-13 (조무제 목사)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행하신 구원의 역사의 요약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ㅔ서 행사신 역상의 동사를 모두 하나님자신께서 행하셨음을 알 수 있도록 1인칭 동사를 사용해 역사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셨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지난 40년간의 연합교회의 역사도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헌신하신 많은 분들과 지난 20년간 고정인수 담임 목사님을 들어 쓰셔서 척박한 이민 교회의 역사에 연합교회의 부흥이라는 기적을 일으키신분은 이스라엘을 이끄셨던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역사속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세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상숭배를 하던 데라의 가족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듯이 말입니다. 또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부르시고 책임 지시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르심에 책임을 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좋은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까지의 구원 역사(24:1~7)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5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들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노라
6 내가 너희의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바다에 이르게 한즉 애굽 사람들이 병거와 마병을 거느리고 너희의 조상들을 홍해까지 쫓아오므로
7 너희의 조상들이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내가 너희와 애굽 사람들 사이에 흑암을 두고 바다를 이끌어 그들을 덮었나니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을 너희의 눈이 보았으며 또 너희가 많은 날을 광야에서 거주하였느니라
가나안 정복의 구원 역사(24:8~13)
8 내가 또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쪽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매 그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였고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멸절시켰으며
9 또한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과 싸우더니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10 내가 발람을 위해 듣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오히려 너희를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져 내었으며
11 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주민들 곧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넘겨주었으며
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8/29/2016 • 14 minutes, 3 seconds
여호수아 22 : 21-34(정연권 목사)
여호수아 22 : 21-34(정연권 목사)
어제부터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배치가 끝난후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가 자기들이 미리 배분받은 요단강 동편땅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들이 큰 제단을 세우고 이를 알게된 나머지 열지파가 제사장 비느하스를 대표로 사절단을 보내 사태를 조사하는것을 보고 있습니다. 제단을 세운 이유로 이들은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며 오히려 자신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데에서 배격당할까봐 자신들도 하나님믿는 백성임을 증거하는 지표로 제단을 세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로 이들 사이의 혹시 있을뻔한 분쟁은 끝이 납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판단은 외적인것을 보고 하는 것이고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이고 또 판단을 할 때 공동체안에서 내가 누려야 할 기쁨이 사라지기 때문이고 또 판단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새 단을 세운 목적(22:21~29)
2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22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23 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24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25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26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27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8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이 지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29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제단 외에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 하리라
평화를 되찾음(22:30~34)
30 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한 회중의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
31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 내었느니라 하고
32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지도자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 길르앗 땅에서 가나안 땅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와 그들에게 보고하매
33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거주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34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으니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
8/26/2016 • 11 minutes, 59 seconds
여호수아 22 : 10-20(심우진 목사)
여호수아 22 : 10-20(심우진 목사)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강을 건너 동쪽에 가자 거대한 제단을 세웁니다. 이들이 우상을 숭배하기위해 제단을 세웠다고 생각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브올에서 악한 선지자 발람의 모략으로 모압여인들의 꾀임에 빠져 우상숭배에 빠져 범죄했을 때 레위인으로 직접 음란의 죄를 범하는 이스라엘 남자와 모압여인을 창으로 찔러 처단했던 아주 엄격한 비느하스를 대표로 각지파에서 한명씩 열명의 지도자를 뽑아 사절로 보내게 됩니다.
이 때 이 대표들은 상대를 비난함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그르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고 오히려 땅이 마음에 안들면 요단강 서쪽의 자신들의 땅을 나눠줄테니 우상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말라며 공동체의식을 발휘한 희생의 자세와 또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 줌으로 오해를 해결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갑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문제가 크면 클수록 경청과 희생과 또 공동체의식의 자세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이 문제들의 해결을 경험하게 하실것입니다.
요단 언덕의 새 제단(22:10~12)
10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11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12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요단 서편 지파들의 비난(22:13~20)
13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14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지도자씩 열 지도자들을 그와 함께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그들의 조상들의 가문의 수령으로서 이스라엘 중에서 천부장들이라
15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러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아가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16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17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18 오늘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고 하느냐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19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20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느니라 하니라
8/25/2016 • 11 minutes, 18 seconds
여호수아 22 : 1-9(심우진 목사)
여호수아 22 : 1-9(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은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정복전쟁을 마치고 자신들의 가족이 있는 요단강 동쪽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진군하기전에 모세의 허락을 얻어 요단강 동쪽의 땅을 얻었고 그 땅에 정착하는 대신 가족들을 뒤로하고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정복전쟁에 참여해 칠년의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낸것입니다. 이들의 헌신은 우리 크리스챤들이 연약한 지체들을 돕는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싸움을 ㅆ워도 같이 싸우고 짐을 지더라도 나눠 지는 모습에서 크리스챤의 모습을 보는것은 당엲ㄴ 것일 것입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도와온 이 지파들을 보내며 여호수아가 당부한것은 먼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라는 것이고 또 전쟁에서 얻은 많은 재화를 서로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간의 갈등과 반목이 물질로 인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의 임무(22:1~6)
1 그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2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에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여
3 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4 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5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6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요단 동편 지파들의 귀환(22:7~9)
7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모세가 바산에서 기업을 주었고 그 남은 반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요단 이쪽 서쪽에서 그들의 형제들과 함께 기업을 준지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들의 장막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8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과 금과 구리와 쇠와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의 원수들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지니라 하매
9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받은 땅 곧 그들의 소유지 길르앗으로 가니라
8/24/2016 • 10 minutes, 43 seconds
여호수아 21 : 27-45(조재욱 목사)
여호수아 21 : 27-45(조재욱 목사)
오늘의 본문은 계속해서 레위지파의 땅 분배에 대한 말씀입니다. 레위족속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씀을 가르치고 또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 모든 지파들의 땅안에 흩어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들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선한 영향을 주기 위해 언제나 성결을 유지하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 언제나 성전을 가가이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 이런 모습은 이스라엘 민족전체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땅의 분배가 완성되게 됩니다. 물론 아직도 가나안 거민들은 여러곳에 흩어져 전존세력으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 후였습니다. 마치 우리 성도들이 구원에 들어간 후에도 사단과의 영적전쟁을 계속해야 하는 형국과 흡사 할 것입니다.
게르손 자손의 성읍 목록(21:27~33)
27 레위 가족의 게르손 자손에게는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살인자의 도피성 바산 골란과 그 목초지를 주었고 또 브에스드라와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두 성읍이요
28 잇사갈 지파 중에서는 기시온과 그 목초지와 다브랏과 그 목초지와
29 야르뭇과 그 목초지와 엔 간님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네 성읍이요
30 아셀 지파 중에서는 미살과 그 목초지와 압돈과 그 목초지와
31 헬갓과 그 목초지와 르홉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네 성읍이요
32 납달리 지파 중에서는 살인자의 도피성 갈릴리 게데스와 그 목초지를 주었고 또 함못 돌과 그 목초지와 가르단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세 성읍이라
33 게르손 사람이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은 모두 열세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
므라리 자손의 성읍 목록(21:34~40)
34 그 남은 레위 사람 므라리 자손의 가족들에게 준 것은 스불론 지파 중에서 욕느암과 그 목초지와 가르다와 그 목초지와
35 딤나와 그 목초지와 나할랄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36 르우벤 지파 중에서 준 것은 베셀과 그 목초지와 야하스와 그 목초지와
37 그데못과 그 목초지와 므바앗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38 갓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길르앗 라못과 그 목초지이요 또 마하나임과 그 목초지와
39 헤스본과 그 목초지와 야셀과 그 목초지이니 모두 네 성읍이라
40 이는 레위 가족의 남은 자 곧 므라리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성읍이니 그들이 제비 뽑아 얻은 성읍이 열두 성읍이었더라
레위 지파의 성읍 분배 완료(21:41~45)
41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성읍은 모두 마흔여덟 성읍이요 또 그 목초지들이라
42 이 각 성읍의 주위에 목초지가 있었고 모든 성읍이 다 그러하였더라
4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44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음이니라
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8/23/2016 • 12 minutes, 11 seconds
여호수아 21 : 8-26(정선기 목사)
여호수아 21 : 8-26(정선기 목사)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땅 분배. 레위족속의 경우는 하나님이 이들의 분깃이므로 특별한 지역을 분배받지 않고 단지 자신들의 음식을 생산할 목초지와 거할 성읍을 분배 받습니다. 48개의 성읍을 분배받은 레위 지파는 가나안 온땅에 흩어져 거하게 됩니다. 민수기 35장의 모세의 명령을따른 레위지파에대한 성읍의 분배는 일면 레위가 강간당한 여동생의 복수를 위해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 이유로 아버지인 야곱에게 받은 저주를 떠올리게 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창49:5~7)
그러나 레위는 온 땅에 퍼져 하나님의 제사와 백성의 교육을 가르치기 위한 소명을 위해 흩어진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전화위복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이끄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핫(아론) 자손의 성읍 목록(21:8~19)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제비 뽑아 레위 사람에게 준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이 이러하니라
9 유다 자손의 지파와 시므온 자손의 지파 중에서는 이 아래에 기명한 성읍들을 주었는데
10 레위 자손 중 그핫 가족들에 속한 아론 자손이 첫째로 제비 뽑혔으므로
11 아낙의 아버지 아르바의 성읍 유다 산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그 주위의 목초지를 그들에게 주었고
12 그 성읍의 밭과 그 촌락들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어 소유가 되게 하였더라
13 제사장 아론의 자손에게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헤브론과 그 목초지이요 또 립나와 그 목초지와
14 얏딜과 그 목초지와 에스드모아와 그 목초지와
15 홀론과 그 목초지와 드빌과 그 목초지와
16 아인과 그 목초지와 윳다와 그 목초지와 벧 세메스와 그 목초지이니 이 두 지파에서 아홉 성읍을 냈고
17 또 베냐민 지파 중에서는 기브온과 그 목초지와 게바와 그 목초지와
18 아나돗과 그 목초지와 알몬과 그 목초지 곧 네 성읍을 냈으니
19 제사장 아론 자손의 성읍은 모두 열세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
나머지 그핫 자손의 성읍 목록(21:20~26)
20 레위 사람인 그핫 자손 중에 남은 자들의 가족들 곧 그핫 자손에게는 제비 뽑아 에브라임 지파 중에서 그 성읍들을 주었으니
21 곧 살인자의 도피성 에브라임 산지 세겜과 그 목초지이요 또 게셀과 그 목초지와
22 깁사임과 그 목초지와 벧호론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23 또 단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엘드게와 그 목초지와 깁브돈과 그 목초지와
24
아얄론과 그 목초지와 가드 림몬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25
또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준 것은 다아낙과 그 목초지와 가드 림몬과 그 목초지이니 두 성읍이라
26
그핫 자손의 남은 가족들을 위한 성읍들은 모두 열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
8/22/2016 • 10 minutes, 52 seconds
거룩한 월요일 (출애굽기 3장5절)
8/20/2016 • 35 minutes, 20 seconds
여호수아 19 : 1-23(심우진 목사)
여호수아 19 : 1-23(심우진 목사)
시므온 지파의 기업(19:1~9)
1 둘째로 시므온 곧 시므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들의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라
2 그들이 받은 기업은 브엘세바 곧 세바와 몰라다와
3 하살 수알과 발라와 에셈과
4 엘돌랏과 브둘과 호르마와
5 시글락과 벧 말가봇과 하살수사와
6 벧 르바옷과 사루헨이니 열세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며
7 또 아인과 림몬과 에델과 아산이니 네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며
8 또 네겝의 라마 곧 바알랏 브엘까지 이 성읍들을 둘러 있는 모든 마을들이니 이는 시므온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라
9 시므온 자손의 이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으니 이는 유다 자손의 분깃이 자기들에게 너무 많으므로 시므온 자손이 자기의 기업을 그들의 기업 중에서 받음이었더라
스불론 지파의 기업(19:10~16)
10 셋째로 스불론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사릿까지이며
11 서쪽으로 올라가서 마랄라에 이르러 답베셋을 만나 욕느암 앞 시내를 만나고
12 사릿에서부터 동쪽으로 돌아 해 뜨는 쪽을 향하여 기슬롯 다볼의 경계에 이르고 다브랏으로 나가서 야비아로 올라가고
13 또 거기서부터 동쪽으로 가드 헤벨을 지나 엣 가신에 이르고 네아까지 연결된 림몬으로 나아가서
14 북쪽으로 돌아 한나돈에 이르고 입다엘 골짜기에 이르러 끝이 되며
15 또 갓닷과 나할랄과 시므론과 이달라와 베들레헴이니 모두 열두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16 스불론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잇사갈 지파의 기업(19:17~23)
17 넷째로 잇사갈 곧 잇사갈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18 그들의 지역은 이스르엘과 그술롯과 수넴과
19 하바라임과 시온과 아나하랏과
20 랍빗과 기시온과 에베스와
21 레멧과 엔 간님과 엔핫다와 벧 바세스이며
22 그 경계는 다볼과 사하수마와 벧 세메스에 이르고 그 끝은 요단이니 모두 열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23 잇사갈 자손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8/18/2016 • 11 minutes, 14 seconds
여호수아 18 : 11-28(심우진 목사)
여호수아 18 : 11-28(심우진 목사)
베냐민 지파의 위치(18:11~20)
11 베냐민 자손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제비 뽑은 땅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
12 그들의 북방 경계는 요단에서부터 여리고 북쪽으로 올라가서 서쪽 산지를 넘어서 또 올라가서 벧아웬 황무지에 이르며
13 또 그 경계가 거기서부터 루스로 나아가서 루스 남쪽에 이르나니 루스는 곧 벧엘이며 또 그 경계가 아다롯 앗달로 내려가서 아래 벧호론 남쪽 산 곁으로 지나고
14 벧호론 앞 남쪽 산에서부터 서쪽으로 돌아 남쪽으로 향하여 유다 자손의 성읍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에 이르러 끝이 되나니 이는 서쪽 경계며
15 남쪽 경계는 기럇 여아림 끝에서부터 서쪽으로 나아가 넵도아 물 근원에 이르고
16 르바임 골짜기 북쪽 힌놈의 아들 골짜기 앞에 있는 산 끝으로 내려가고 또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서 여부스 남쪽에 이르러 엔 로겔로 내려가고
17 또 북쪽으로 접어들어 엔 세메스로 나아가서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글릴롯으로 나아가서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까지 내려가고
18 북으로 아라바 맞은편을 지나 아라바로 내려가고
19 또 북으로 벧 호글라 곁을 지나서 요단 남쪽 끝에 있는 염해의 북쪽 해만이 그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는 남쪽 경계며
20 동쪽 경계는 요단이니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의 사방 경계였더라
베냐민 지파의 성읍들(18:21~28)
21 베냐민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성읍들은 여리고와 벧 호글라와 에멕 그시스와
22 벧 아라바와 스마라임과 벧엘과
23 아윔과 바라와 오브라와
24 그발 암모니와 오브니와 게바이니 열두 성읍과 또 그 마을들이며
25 기브온과 라마와 브에롯과
26 미스베와 그비라와 모사와
27 레겜과 이르브엘과 다랄라와
28 셀라와 엘렙과 여부스 곧 예루살렘과 기부앗과 기럇이니 열네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라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었더라
8/17/2016 • 11 minutes, 41 seconds
여호수아 18 : 1-10 (조근상 목사)
여호수아 18 : 1-10 (조근상 목사)
실로의 회막(18:1)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일곱 지파를 위한 조치(18:2~7)
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아직도 일곱 지파라
3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4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5 그들이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되 유다는 남쪽 자기 지역에 있고 요셉의 족속은 북쪽에 있는 그들의 지역에 있으니
6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그려서 이곳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면 내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으리라
7 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저편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받았나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이니라 하더라
일곱 지파의 순종과 땅 분배(18:8~10)
8 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여호수아가 그 땅을 그리러 가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것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를 뽑으리라 하니
9 그 사람들이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성읍들을 따라서 일곱 부분으로 책에 그려서 실로 진영에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나아오니
10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
8/16/2016 • 15 minutes, 39 seconds
여호수아 17 : 14-18(이성혜 목사)
여호수아 17 : 14-18(이성혜 목사)
요셉 자손의 불평과 요구(17:14~15)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여호수아의 비전 제시(17:16~18)
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8/15/2016 • 15 minutes, 40 seconds
원칙과 배려 (김재홍 목사)
8/15/2016 • 33 minutes, 5 seconds
여호수아 15 : 20-63(조제욱 목사)
여호수아 15 : 20-63(조제욱 목사)
어제에 이어 오늘은 유다지파가 배분받은 따에 대해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122개의 성읍을 분배받은 유다지파의 땅은 축복과 동시에 책임을 의미 합니다. 왜냐하면 이중 많은 성읍들은 아직도 정복 해야 할 성읍 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방인들 소유의 땅을 약속으로 주셨을 때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하는 도전을 받습니다. 갈렙은 이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싸웠고 승리 했습니다. 약속과는 너무 다른 어려운 현실앞에서 신음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자들의 믿음을 어려움 가운데서 단련하시고 지키십니다. 바로 어려움 속에서 믿음을 붇들 때 다윗이 노래했던대로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날개 그늘 믿에서 보호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 지파의 기업(15:20~62)
20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21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쪽 끝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22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23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24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25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26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
27 하살갓다와 헤스몬과 벧 벨렛과
28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30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32 르바옷과 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스물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33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34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35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36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이니 열네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37 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
38 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
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40 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41 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이니 열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42 립나와 에델과 아산과
43 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
44 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니 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45 에그론과 그 촌락들과 그 마을들과
46 에그론에서부터 바다까지 아스돗 곁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47 아스돗과 그 촌락들과 그 마을들과 가사와 그 촌락들과 그 마을들이니 애굽 시내와 대해의 경계에까지 이르렀으며
48 산지는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
49 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
50 아납과 에스드모와 아님과
51 고센과 홀론과 길로이니 열한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52 아랍과 두마와 에산과
53 야님과 벧 답부아와 아베가와
54 훔다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이니 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55 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
56 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57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니 열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58 할훌과 벧술과 그돌과
59 마아랏과 벧 아놋과 엘드곤이니 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60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과 랍바이니 두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61 광야에는 벧 아라바와 밋딘과 스가가와
62 닙산과 소금 성읍과 엔 게디니 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함(15:63)
63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8/12/2016 • 15 minutes, 4 seconds
여호수아 15 : 13-19(심우진)
여호수아 15 : 13-19(심우진)
어제 우리는 유다지파의 땅분배에 대해 살펴 봤습니다. 유다지파의 땅분배는 이미 얻은 땅만이 아닌 정복해야 할 땅들까지도 대상으로 이루어진것입니다. 특히 갈렙은 아낙 자손이 사는 헤브론 땅을 정복하러 고령의 몸인데도 나서게 됩니다. 믿음의 삶도 평탄한 길만을 걸어가는것이 아닙니다그것은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고 도전하는 일의 연속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갈렙의 헤브론 점령의 과정에서 차세대 리더가 준비되고 있던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렙이 정복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도빌을 점령하는 사람에게 딸을 준다고 했을때 나서서 드빌을 점령함으로 차세대 지도자로 드러나게 되는 사람이 옷니엘인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여정을 가는것은 나와 우리만을 위한일이 아니라 우리의 차세대를 세우는 일인것입니다. 갈렘을 보고 옷니엘이 용맹한 믿음의 전사로 자랐듯이 우리의 차세대도 우리의 믿음을 보고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붙잡을때에 우리의 후손도 믿음을 붙들고 세상을 승리하는 옷니엘과 같은 차세대의 리더가 될 것입니다.
헤브론을 정복한 갈렙(15:13~14)
1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더라
14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드빌을 정복한 옷니엘(15:15~19)
15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주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6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7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함으로 갈렙이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8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9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8/11/2016 • 9 minutes, 38 seconds
여호수아 15 : 1-12(심우진 목사)
여호수아 15 : 1-12(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은 유다지파의 땅의 분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땅의 분배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라는점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록하고 있는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언약의 성취는 두갖지 성격으로 살펴 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는 땅의 권한을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권한은 이미 정복한 땅 뿐 아니라 앞으로 정복할 땅의 권한에 대해서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것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인생에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땅을 관리해야할 책임도 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고 있을때에만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허락 됩니다. 주신 권한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면 거두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은 약속을 두려운 마음으로 온전하게 지키고 잘 관리하며 아직 정복되지 않은 약속의 땅을 정복해가며 계속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땅을 받은 유다 지파(15:1)
1 또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 뽑은 땅의 남쪽으로는 에돔 경계에 이르고 또 남쪽 끝은 신 광야까지라
유다 지파 땅의 경계(15:2~12)
2 또 그들의 남쪽 경계는 염해의 끝 곧 남향한 해만에서부터
3 아그랍빔 비탈 남쪽으로 지나 신에 이르고 가데스 바네아 남쪽으로 올라가서 헤스론을 지나며 아달로 올라가서 돌이켜 갈가에 이르고
4 거기서 아스몬에 이르러 애굽 시내로 나아가 바다에 이르러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것이 너희 남쪽 경계가 되리라
5 그 동쪽 경계는 염해이니 요단 끝까지요 그 북쪽 경계는 요단 끝에 있는 해만에서부터
6 벧 호글라로 올라가서 벧 아라바 북쪽을 지나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에 이르고
7 또 아골 골짜기에서부터 드빌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서 그 강 남쪽에 있는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길갈을 향하고 나아가 엔 세메스 물들을 지나 엔로겔에 이르며
8 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쪽 어깨에 이르며 또 힌놈의 골짜기 앞 서쪽에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곳은 르바임 골짜기 북쪽 끝이며
9 또 이 산꼭대기에서부터 넵도아 샘물까지 이르러 에브론 산 성읍들로 나아가고 또 바알라 곧 기럇 여아림으로 접어들며
10 또 바알라에서부터 서쪽으로 돌이켜 세일 산에 이르러 여아림 산 곧 그살론 곁 북쪽에 이르고 또 벧 세메스로 내려가서 딤나를 지나고
11 또 에그론 비탈 북쪽으로 나아가 식그론으로 접어들어 바알라 산을 지나고 얍느엘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며
12 서쪽 경계는 대해와 그 해안이니 유다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8/10/2016 • 10 minutes, 41 seconds
여호수아 14 : 1-15(김재홍 목사)
여호수아 14 : 1-15(김재홍 목사)
오늘의 본문은 갈렙이라는 한 인물에 집붕하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의 대표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믿음의 보고를 한 갈렙의 나이 이 때 사십세. 이제 45년이 흘러 그의 나이 85세 때에 거인들인 아낙 자손들이 사는 헤브론 땅을 분배받아 정복하게 해 달라고 요청 합니다. 갈렙은 아직도 자신이 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건하다며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땅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신다면 반드시 이뤄 진다며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외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성별도 연령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 못합니다. 인생의 후반부에도 갈렙과 같은 삶을 사시는 모두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요단 서편 땅 분배(14:1~5)
1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3 이는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에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요셉의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다만 거주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만 주었으니
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갈렙의 용기와 희생정신(14:6~15)
6 그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 그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8/9/2016 • 15 minutes, 49 seconds
여호수아 13 : 15-33(조무제 목사)
여호수아 13 : 15-33(조무제 목사)
종말의 때에 우리모두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볼 수 있는 인간의 유형들 중 세가지를 오늘의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모리아 미디안 족속같은 부류입니다. 노아의 후손인 아모리인들과 아브라함의 후처소생의 후예인 미디안인들은 원래는 하나님을 알던 사람들이었지만 인간적인 가치를 숭상하고 풍요속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필연적 결고인 음란과 풍요의 숭배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옵니다. 또 발람의 길을 걷는 부류를 볼 수 있습니다. 발락왕의 사주를 받아 이스라엘민족이 이방족속과의 음란한 관계에 들어가도록 유인한 발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던 선지자 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았고 소통하는 영적 민감성도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만 대언하던 선지자로의 의식도 있었지만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는데 실패한 선지자였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단강 동쪽의 풍요한 땅을 차지한 이들의 시작은 욕심이었을지 모르지만 약속을 따라 자기 형제와 자매들과 끝까지 전투를 치른 이들은 행동과 헌신으로 공동체를 위해 싸운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르우벤 지파의 기업(13:15~23)
15 모세가 르우벤 자손의 지파에게 그들의 가족을 따라서 기업을 주었으니
16 그들의 지역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과 메드바 곁에 있는 온 평지와
17 헤스본과 그 평지에 있는 모든 성읍 곧 디본과 바못 바알과 벧 바알 므온과
18 야하스와 그데못과 메바앗과
19 기랴다임과 십마와 골짜기의 언덕에 있는 세렛 사할과
20 벳브올과 비스가 산기슭과 벧여시못과
21 평지 모든 성읍과 헤스본에서 다스리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의 온 나라라 모세가 시혼을 그 땅에 거주하는 시혼의 군주들 곧 미디안의 귀족 에위와 레겜과 술과 훌과 레바와 함께 죽였으며
22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
23 르우벤 자손의 서쪽 경계는 요단과 그 강가라 이상은 르우벤 자손의 기업으로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들과 주변 마을들이니라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13:24~31)
24 모세가 갓 지파 곧 갓 자손에게도 그들의 가족을 따라서 기업을 주었으니
25 그들의 지역은 야셀과 길르앗 모든 성읍과 암몬 자손의 땅 절반 곧 랍바 앞의 아로엘까지와
26 헤스본에서 라맛 미스베와 브도님까지와 마하나임에서 드빌 지역까지와
27 골짜기에 있는 벧 하람과 벧니므라와 숙곳과 사본 곧 헤스본 왕 시혼의 나라의 남은 땅 요단과 그 강가에서부터 요단 동쪽 긴네렛 바다의 끝까지라
28 이는 갓 자손의 기업으로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성읍들과 주변 마을들이니라
29 모세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을 주었으되 므낫세 자손의 반 지파에게 그들의 가족대로 주었으니
30 그 지역은 마하나임에서부터 온 바산 곧 바산 왕 옥의 온 나라와 바산에 있는 야일의 모든 고을 육십 성읍과
31 길르앗 절반과 바산 왕 옥의 나라 성읍 아스다롯과 에드레이라 이는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에게 돌린 것이니 곧 마길 자손의 절반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으니라
레위 지파의 기업(13:32~33)
32 요단 동쪽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분배한 기업이 이러하여도
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8/8/2016 • 19 minutes, 21 seconds
은혜는 기억하면 믿음이 됩니다 (서석훈 목사)
요단 동편 땅 정복(12:1~6)
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쪽 온 아라바를 차지하고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2 시혼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이라 그가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경계 얍복 강까지이며
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이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쪽으로 비스가 산기슭까지이며
4 옥은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주하던 바산의 왕이라
5 그가 다스리던 땅은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경계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경계에 접한 곳이라
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요단 서편 땅 정복(12:7~24)
7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쪽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 쳐서 멸한 그 땅의 왕들은 이러하니라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구분에 따라 소유로 주었으니
8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네겝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라)
9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10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11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12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13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14 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15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16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17 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18 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랏사론 왕이요
19 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20 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21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22 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23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24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모두 서른한 왕이었더라
8/6/2016 • 27 minutes, 47 seconds
여호수아 11 : 16-23(조근상 목사)
여호수아 11 : 16-23(조근상 목사)
오늘의 본문은 가나안땅에서 기브온 족속을 제외한 모든 족속을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으로 점령하였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이들에게 기브온족속과 같은 회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먼저 가난안족속의 마음이 마치 이집트왕 바로와 같이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의 훈련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이런 가나안 거민들과 맞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 있는 아낙 자손들을 처리하지 못한것은 두고두고 심지어는 현재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원인이 됩니다. 이 외에 기록 되지 않은 이스라엘이 승리하지 않은 전쟁들까지 생각한다면 이스라엘이 어디에서 실패하고 있는지가 보일것입니다. 우리는 악에 관해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해결하고 제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모든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함으로 우리안에 아낙자손과도 같은 죄악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점령한 땅(11:16~20)
16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네겝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 산지와 평지를 점령하였으니
17 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 산에서부터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라 그들의 왕들을 모두 잡아 쳐 죽였으며
18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들과 싸운 지가 오랫동안이라
19 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이스라엘 자손이 싸워서 다 점령하였으니
20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더라
아낙 자손의 멸절(11:21~23)
21 그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
22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8/5/2016 • 13 minutes, 22 seconds
여호수아 11 : 1-15(심우진 목사)
여호수아 11 : 1-15(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은 가나안 북쪽의 왕들의 연합군과 이스라엘의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솔왕 야빈이 리더가 되어 조직한 북측 연합군은 모래알처럼 수가 많고 또 이스라엘은 갖고 있지 못했던 그시대의 최첨단 병기인 말이 끄는 병거로 공격을 하는 최강의 군대였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적을 앞에두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역시 두려워 하지 말라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친히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명하신일은 이들의 말과 병거를 힘줄을 끊고 불사르라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이 아닌 병거의 힘을 더 신뢰하게 되거나 하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보다 두려워 할 때 그 문제가 정말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수의 약점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고 그를 인해 승리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메롬 물 가 전투(11:1~9)
1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2 및 북쪽 산지와 긴네롯 남쪽 아라바와 평지와 서쪽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3 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산지의 여부스 족속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족속에게 사람을 보내매
4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5 이 왕들이 모두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 가에 함께 진 쳤더라
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하시니라
7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 가로 가서 갑자기 습격할 때에
8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에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추격하고 동쪽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추격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 죽이고
9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로 살랐더라
가나안 북부를 정복함(11:10~15)
10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 죽이고
11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하솔을 불로 살랐고
12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붙잡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바쳤으니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13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세운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14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15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8/4/2016 • 8 minutes, 52 seconds
여호수아 10 : 29-43(심우진 목사)
여호수아 10 : 29-43(심우진 목사)
여리고성을 진멸했듯이 가나안의 성들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성읍들을 진멸해 갑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복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가 있습니다. 가나안의 성적타락, 우상숭배와 인신제사는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화들은 이스라엘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는데 입다의 자기 딸을 바치는 인신제사는 가나안의 영향이 들어온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하십니다. 아직 은혜로 우리를 대하실 때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가는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영적 싸움을 싸울 때는 끝까지 싸우면서 해결해 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나안 남부를 정복함(10:29~39)
29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막게다에서 립나로 나아가서 립나와 싸우매
30 여호와께서 또 그 성읍과 그 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칼날로 그 성읍과 그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31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립나에서 라기스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우더니
32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신지라 이튿날에 그 성읍을 점령하고 칼날로 그것과 그 안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였으니 립나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3 그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의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34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워
35 그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그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당일에 진멸하여 바쳤으니 라기스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6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싸워
37 그 성읍을 점령하고 그것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들과 그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8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돌아와서 드빌에 이르러 싸워
39 그 성읍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을 점령하고 칼날로 그 성읍을 쳐서 그 안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드빌과 그 왕에게 행한 것이 헤브론에 행한 것과 같았으며 립나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가나안 남부 정복 전쟁을 마침(10:40~43)
40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바쳤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41 여호수아가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치매
4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
43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8/3/2016 • 12 minutes, 31 seconds
여호수아 10 : 15-28(정연권 목사)
여호수아 10 : 15-28(정연권 목사)
오늘의 본문의 배경은 치열한 전쟁을 끝내고 긱ㄹ갈로 야호숭와 이스라엘 민족이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것 같은 이 때 소식이 들려오기를 아모리족속의 다섯왕이 동굴에 숨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브온 민족이 피를 나눈 사이도 아니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수도 있고 치열한 전쟁끝에 죽읆ㄴ큼 피곤한 몸을 끌고 다시 전쟁터로 가는것이 쉬운일은 아니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하신대로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이 이런것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습은 언제나 이렇게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모리 족속을 진멸함(10:15~21)
15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16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17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18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19 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고
20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륙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21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아모리 족속 다섯 왕을 처형함(10:22~28)
22 그때에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들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23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24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2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26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 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27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28 그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8/2/2016 • 14 minutes, 7 seconds
여호수아 10 : 1-14(유병훈 전도사)
여호수아 10 : 1-14(유병훈 전도사)
가나안 남부 연합군과의 전투(10:1~7)
1 그때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빼앗아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3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이르되
4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
5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6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하소서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7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하나님이 주신 압도적 승리(10:8~14)
8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9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니
10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살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11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13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4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8/1/2016 • 20 minutes, 7 seconds
여호수아 9 : 1-15(정연권 목사)
여호수아 9 : 1-15(정연권 목사)
맞서 싸우려는 사람들(9:1~2)
1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화친을 맺으려는 사람들(9:3~15)
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5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6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7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 하나
8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9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심히 먼 나라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소문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10 또 그가 요단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들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11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주민이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들이니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라 하였나이다
12 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아직도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가지고 왔으나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가 났으며
13 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것이었으나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매우 길었으므로 낡아졌나이다 한지라
14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15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7/30/2016 • 24 minutes, 19 seconds
여호수아 8 : 24-35(김재홍 목사)
여호수아 8 : 24-35(김재홍 목사)
병에서 치유와 회복을 겪으신 분들을 보면 공통된 특징이 나오는것이 이분들은 먼저 의사를 신뢰하고 훌륭한 의사를 만난것을 행복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분들도 훌륭한 환자시라는 것입니다. 약도 잘먹고 의사 지시에 순종 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때라야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또 문제도 해결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이성의 패배후 아간의 죄를 정결케 한 후 아이성을 완전히 점령하고 율범을 낭독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다짐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철저한 진멸(8:24~29)
24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광야로 추격하던 모든 아이 주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25 그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이라
26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27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28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29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 질 때에 명령하여 그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축복과 저주의 율법 낭독(8:30~35)
30 그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7/29/2016 • 13 minutes, 43 seconds
여호수아 8 : 1-9(김재홍 목사)
여호수아 8 : 1-9(김재홍 목사)
우리는 가장 좋은것으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고 진정한 행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진심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것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를 공격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성안의 모든것 산것과 물건 모두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아간의 죄는 이스라엘을 위험에 빠트리고 자신의 생명을 잃게하는 큰 실수가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 아간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을까요? 점검해 보게 됩니다.
아이 성 재공격(8:1~2)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매복 작전(8:3~9)
3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여 매복하되 그 성읍에서 너무 멀리하지 말고 다 스스로 준비하라
5 나와 나를 따르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그리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6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추격하며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거든
7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너희 손에 주시리라
8 너희가 그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였느니라 하고
9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매복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에서 잤더라
7/27/2016 • 11 minutes, 43 seconds
여호수아 7 : 19-26(조근상 목사)
여호수아 7 : 19-26(조근상 목사)
여호수아서에서는 총 33번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중에 2개의 전쟁이 지금까지 본보기와 같이 기록되었는데 하나는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한다의 본보기가 되는 6장의 여리고성의 전투가 있고 패배의 경우의 전형이 되는 7장의 아이성 전투의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전쟁의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아간이 왜 죽을 수 밖에 없는가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아간의 회개는 진정한 획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간은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자신을 지목하시기 전까지 5번이나 끝까지 자신의 범죄를 고백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여리고성의 모든것들이 온전히 바쳐진 물건들이라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에도 자신이 손을댄 물건들을 노략한 물건이라고 부르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모든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건강과 운명 모든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그것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간의 탐심(7:19~21)
19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가 행한 일을 내게 알게 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하니
20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이러이러하게 행하였나이다
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아간의 처벌(7:22~26)
22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들을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추어져 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23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가지고 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쏟아 놓으니라
2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25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26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7/26/2016 • 17 minutes, 50 seconds
여호수아 7 : 10-18(이성혜 목사)
여호수아 7 : 10-18(이성혜 목사)
살아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 날 때가 있습니다. 아간의 죄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던 일이었고 아이성의 이스라엘의 패배는 가나안 거민들의 간담을 녹였던 이스라엘 민족의 간담이 오히려 녹는 그런 엄청난 사건 이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은 제일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닐 하나님께 모든 주권을 내어 드림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간을 제거 함으로 거룩하게 다시 구별된 이스라엘 백성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패배의 근본 원인(7:10~13)
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3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
범죄자의 색출 과정(7:14~18)
14 너희는 아침에 너희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 뽑히는 그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그 가족은 그 남자들이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15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
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17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18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7/25/2016 • 21 minutes, 51 seconds
여호수아 6 : 15-27(김재홍 목사)
여호수아 6 : 15-27(김재홍 목사)
여호수아는 신실한 리더였습니다. 그에게는 속임이 없고 진심으로 하나님과 백성을 대했으며 신뢰할 수 있는 성실한 리더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신실할 수 있었던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되는것의 함정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람을 자기에게 집중하도록 만드는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의 정복을 앞두고 자신을 높일 생각이 아니라 단 두가지에 사람들이 집중하도록 가르칩니다. 그 두가지는 하나는 성안의 모든것을 하나님께 바침으로 하나님께 신실하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라합과 그의 가족을 살려줌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신실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 두가지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힘을 허락하시는 이유임을 알았던 위대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단번에 무너진 여리고 성(6:15~21)
15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날뿐이었더라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17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18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21 그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구원받은 라합 가족(6:22~27)
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23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24 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26 여호수아가 그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2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7/23/2016 • 24 minutes, 56 seconds
여호수아 5 : 10-15(조재욱 목사)
여호수아 5 : 10-15(조재욱 목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허락하신 크신 은혜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것은 오직 감사의 눈이 열렸을 때 뿐입니다. 우리는 십가의 은혜를 깨달으므로 은혜에 대한 감사를 배웁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유월절의 은혜로 드러 납니다. 그러나 이런 은헤의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백성이 잘 먹고 잘 사는데에만 촛점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광야엣서 늘 공급해 주시던 만나의 공급이 끊어집니다. 가나안 땅을 개간해서 그 땅의 소출을 먹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는 뜻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국 우리를 사명으로 이끄십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그 사명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을 개간하고 그 땅의 소출을 먹으며 그 땅을 정복할 사명이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명은 감사ㅏ와 순종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와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나 그 앞에서 신발을 벋은것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려 놓는 절대 순종의 표현이었습니다. 자신의계획이 아닌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정복하시도록 자신을 복종시킨 것이었습니다.
이 아침 연합의 모든 성도들께서 감사와 순종으로 복을 받으시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 시대의 개막(5:10~12)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5:13~15)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7/21/2016 • 13 minutes, 34 seconds
여호수아 5 : 1-9(고신영 목사)
여호수아 5 : 1-9(고신영 목사)
오늘의 본문에는 이스라엘에 관한 세가지 관점이 나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세상의 관점입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두렵게 하는 존재 하나님께서 동행하는 민족이었습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여호수아를 따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오던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강성함에 자신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관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시는 관점은 비록 이스라엘이 지금 강해 보이지만 상처가 있다는 것입니다. 40년간 광야에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다는 큰 상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이스라엘 백성이 무할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상처에서 회복되는 방법은 바로 할례를 받는것입니다. 적들을 눈앞에 두고 할례를 받는다는것은 하나님앞에서 약해지는것을 뜻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를 통하는 것 자신이 약해지는것 입니다. 할례는 정확하게 이의 표상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약해짐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심판의 상처를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ㅗ 확증받게 받았음을 들으시고 주님앞에서는 언제나 약한자로써 하나님의 강함의 은혜를 입으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두려워하는 가나안 사람들(5:1)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영적 전투의 본질(5:2~9)
2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7/20/2016 • 13 minutes, 43 seconds
여호수아 4 : 1-14(정선기 목사)
여호수아 4 : 1-14(정선기 목사)
오늘의 본문 1절에서9절까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라 명령하신 하나님에 관한 내용입니다. 요단강은 메마를 때가 있고 범람할 때가 있는 강입니다. 그래거 강안에 세운 돌 무더기를 강이 메마를 때가 되면 누구나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돌탑을 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배우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은혜의 사건들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결국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의 돌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한절이라도 주님을 닮아 하나님을 전하는 하루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두 개의 기념 돌탑(4:1~9)
1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 밤 너희가 유숙할 그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견고해진 여호수아의 리더십(4:10~14)
10 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말하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 서 있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11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13 무장한 사만 명가량이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14 그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같이 하였더라
7/18/2016 • 12 minutes, 33 seconds
여호수아 7장 1, 3, 6, 8-9, 12절,"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김병삼 목사)
여호수아 7장 1, 3, 6, 8-9, 12절,"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김병삼 목사)
7: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7: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8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7:9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7: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7/17/2016 • 47 minutes, 7 seconds
여호수아 5장:4-5, 8-12, 15절, "하나님의 임재가 인생을 바꾼다" (김병삼목사)
여호수아 5장:4-5, 8-12, 15절, "하나님의 임재가 인생을 바꾼다" (김병삼목사)
5: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5: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5: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5: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5: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5: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호수아 4장 4-7, 17-18, 20-22절 "기념비를 세워라" (김병삼 목사)
4: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4: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4: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4: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4:17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4:18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서 전과 같이 언덕에 넘쳤더라
4: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4: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4: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7/17/2016 • 1 hour, 47 seconds
여호수아 3:3-5, 14, 17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 (김병삼 목사님)
여호수아 3:3-5, 14, 17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 (김병삼 목사님)
3: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3: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3: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7/16/2016 • 41 minutes, 51 seconds
여호수아 1:7-9 "그 길은 순종의 길이었다"(김병삼 목사)
여호수아 1:7-9 "그 길은 순종의 길이었다"(김병삼 목사)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7/16/2016 • 1 hour, 3 minutes, 49 seconds
여호수아 2 : 1-14(심우진 목사)
여호수아 2 : 1-14(심우진 목사)
가나안 침공을 앞두고 여호수아는 첩자를 보내 여리고성의 내부상태를 살핍니다. 객관적인 현실파악을 할때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고 크리스챤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생 라합을 통해 정탐꾼들을 살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 하셨던 하나님의 도우심처럼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도우심을 하나님은 도우심을 베푸시고 예비 하십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온전하여지는 것이 성도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것은 라합의 고백에서처럼 여리고성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들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편에 섰던 사람은 라합한명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관계와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편에 설 줄 아는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여리고 정탐꾼과 라합(2:1~7)
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라합의 믿음과 용기(2:8~14)
8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 내라
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7/14/2016 • 16 minutes, 28 seconds
요한삼서 1 : 1-15(유병훈 전도사)
요한삼서 1 : 1-15(유병훈 전도사)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1:1~8)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선한 것을 본받으라(1:9~15)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이 새벽에 기도의 자리를 지키러 나오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이 연합의 성전에 가득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다보면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그런 오해를 받을 때 막상 변명할 기회도 반박할 방법도 변변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만큼 억울한 때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의 진심을 몰라주고 사실과 진실은 가리워 집니다.
왜 제가 오해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가 하면 바로 요한 삼서가 그런 오해를 요 근래들어 많이 받은 서신서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삼서는 ‘장로인 나는’ 이라고 시작합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사도가 아니라 장로라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이 서신의 저자는 사도 요한으로 이미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들어오면서 이 서신의 저자에 대한 의심을 하는 학자들이 있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확실한 외적인 증거 즉 저자의 이름이 어떤 식으로든 표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자의 정확성을 의심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서신이 사도요한에 의해 씌어졌다고 믿는 학자 들은 내적인 증거에 집중합니다. 이 서신들이 사도요한이 요한 복음에서 설파하신 내용들을 얼마나 일관되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한의 복음서에서 다루는 주제들을 서신들에서도 다루고 있는가? 요한의 복음서에서 중요하다고 한것을 서신서에서도 중요하다고 하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 내용들을 살피는 기준이 되는 복음과 서신서의 공통 주제들을 살피면 빛과 어두움의 대비, 하나님안에서 누리는 생명과 하나님을 떠나 겪는 죽음, 하나님안의 사랑과 이와 반대되는 죄된 미움 혹은 증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와 세상의 거짓과의 구분이 있습니다.
이 내용을 잣대삼아 서신서들과 요한복음을 비교하면 결론적으로는 똑같은 주제들을 너무나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요한복음과 요한 일이삼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으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흥미로운것은 마태와 누가복음에서 나오는 나무는 열매로 알아본다는 말씀이 학문적인 성찰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을 통하여 요한 복음과 요한의 서신들로 열매를 맺고 가지인 요한과 본체이신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음을 증거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무를 보지 않고 열매만 보아도 이게 감나무에서 나온 열맨지 포도나무에서 나온 열매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을 통해 주장하신 성령의 열매인 서신서들을 보고 사도 요한이 보이는것과 우리 주님과 하나님이 보이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열매는 가린다고 가려지거나 보기 싫다고 안 볼수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열매는 살아있는 생명의 열매입니다 살아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임을 기어이 증거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만약 나의 인생자체가 의심받고 오해받는 중에 있는 분이 계시다면, 또 만약 우리의 교회가 의심받고 오해 받는 경우가 혹시라도 있다면 그럴수록 더욱 더 하나님께 붙어있어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하나님께서 맺게 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나를 우리를 우리 교회를 그리고 하나님을 증거 하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붙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요한의 복음과 서신서들을 오늘도 생생히 증거 하시듯이 나와 우리와 교회를 하나님의 열매로 자녀로 증거하시는 변호인이 되어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정말로 사랑한 가이오에게 쓴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얼마나 사도 요한이 이 가이오를 사랑했는지 이 짦은 서신에서 다섯번이나 사랑하는 자 라고 가이오를 호칭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적인 편지를 쓸때 공식적인 직분을 사용해서 쓰는것이 어색한 일이듯이 요한 사도도 자신의 사도로의 직분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정인수 목사님께서 살아계실 때 저한테 전화를 주시면 ‘유전도사 나야’ 라고 하셨지 ‘유전도사, 아틀란타 연합 장로교회 담임목사 정인수야’ 라고 하지 않으셨던것과 같은 이야기 입니다.
사도요한이 자신을 지칭한 장로라는 표현은 원어로 ‘프레스부테로스’ 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프레스부테로스’ 이 말씀은 장로를 지칭하는 동시에 또 나이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이 자기를 지칭해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사용한 이 말씀은 ‘장로인 나는’ 보다는 ‘나이든 내가 편지를 쓰니’ 라고 보던지 ‘늙은 내가 편지를 쓰니’ 로 이해할 때 그 뜻이 더 분명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신의 자녀와 같은 가이오에게 아버지가 편지를 쓰듯 어머니가 편지를 쓰듯 사도 요한이 글을 써내려 간 것입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늙은 사도 요한이 자기 친 자식같은 가이오가 꼭 알아야 할 것, 꼭 행해야 할 것, 정말로 중요한것을 적은 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이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된 자들을 전송하고 영접하라는것이 요한의 부탁이자 명령이기는 한데 이 나그네 된 자들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를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지 않는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이 나그네들은 사도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교회에서 장로의 직분을 받은 자들도 아닙니다. 직분상으로는 도무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사도요한은 이들이 주의 이름을 위해서 이방인들에게 사역하던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교회가 전혀 모르던 사람들 원어로는 케노스라고 적는 낯선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 사이에서 교회가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내가 만난적도 없던, 전혀 알지 못하는 순회 선교사들을 이야기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께서는그들을 영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선교사니까 힘드니까 불쌍하니까 도와주라고 사도 요한께서 말씀 하시고 계시는것일까요? 아니면 교회는, 성도는 선교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도와주어야 하는 걸까요?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사도 요한은 자기 친 자식과도 같은 가이오에게 자신의 사도라는 직분도 내려놓고 평생 진리를 경험한 그러나 이제는 나이든 노인으로써 진리를 이야기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이 나그네된 자들은 주님의 이름을 직접 자기몸으로 전함으로써, 그리고 가이오와 가이오의 교회는 이들을 영접함으로써, 오늘의 본문 팔절에서 이야기 하시듯 하나님안에서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영접하다라는 말씀은 원어로 후포람바노라는 단어입니다 받아서 올린다는 뜻의 이 단어는 귀하게 받아서 하나님께 올려드린다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영접한다는 뜻은 나는 사실 알지도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십자가를 지고 있을 때, 진리를 위해 일하는 십자가를 지고 있을 때 그 십자가를 보고 이들을 귀하게 받아 하나님게 영광을 돌려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복음을 전하는 자나 영접하는 자나 영접 받는 자나 모두 다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같은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께 합당한 동역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안에서 연합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는것입니다.
이 영접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이 으뜸되길 좋아해 심지어는 사도 요한이 보낸 형제들을 비방하고 내쫓는 교회의 연합을 깨는 본문에 나오는 디오드레베같은 사람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인것 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낸 형제를 내 쫓을 수 있을 정도로 교회 안에서 큰 힘을 행사할 수 있었던 디오드레베는 어찌보면 신실한 하나님의 성도들보다도 더 하나님을 잘 모시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형제를 돕는일과 같은 육의 일을 너무나 무시하던 성도의 삶에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영지주의자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교회안에서 자기를 드러낼수 있을 만큼이나 힘은 있으되 사랑이 없었던 디오드레베는 정말로 비참한 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이렇게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무지하고 또 그렇게 무지한 삶을 사는것이 죄인줄도 몰랐던 이런 사람들을 악한자라고 말씀으로 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무법한자들 악을 행하는 자들이 성도의 삶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영접하는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성도된 자들은 나의 이웃이 나의 형제가 지고 가는 십자가가 무엇인지 유심히 살펴 그 십자가의 무게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고있는 그 십자가가 하나님의 진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십자가라면 자신들도 기쁘게 그 십자가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줄을 아는 영접하는 자, 사랑의 진리를 아는 자. 연합의 능력을 지닌 자,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주님의 이름앞에 합당하게 돌릴 줄 아는 자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복음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복음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한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복음을 위해 목숨을 희생한 분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복음을 위해 가족의 목숨을 희생한 분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복음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친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복음을 위해 자신의 어려움과 상처를 동여매고 같은 상처를 입은 영혼들을 치유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고 그 이름을 지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진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분들이 지고 가시는 십자가를 알아봅니다.
또 그 십자가를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영접 하시는 것입니다. 서로를 귀하게 받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사도 요한이 특별히 요한 삼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진리입니다.
가이오가 사도요한을 영접했듯이 사도요한이 가이오를 귀하게 영접했듯이 이들이 나그네 전도자들을 귀하게 영접했듯이 우리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안에서 또 우리 밖에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을 서로 귀하게 영접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서로 영접하는것만큼 우리 주님을 받아들이는 일이 또 있겠습니까?
우리가 서로의 십자가를 알아보고 서로 영접하기에 힘쓸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연합의 능력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과 권능이 언제나 같이 하실 것을 믿고
또 그런 서로를 영접하는것이 우리와 교회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세상에대해 증거하는 성령의 열매가 되심을 깨달아 그대로 행하는
그 크신 영광이 오늘 새벽의 성전에 나오신 모든 분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7/11/2016 • 17 minutes, 7 seconds
요한일서 5 : 13-21(조근상 목사)
요한일서 5 : 13-21(조근상 목사)
사도요한의 별명은 천둥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만큼 속에 화가 쌓여 있었고 폭발하는 분노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문체와 서신서들의 문체의 변화보다도 훨씬 큰 속사람의 변화가 요한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런 사도요한이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두가지 중요한점이 있습니다.
첫째: 영생의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어 얻는 영생을 확신함으로 자유함을 얻고 인생의 궁극적인 죽음의 문제에서 놓여나라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세가지 입니다. Yes, No, Wait! 하나님은 기도에 즉각 응답하시기도 하시지만 거절하시기도 하시며 하나님의 때와 나의 때가 다를 때는 기다리시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이를 알아 하나님의 응답이 나의 뜻과 ㅏ다를 때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어 세상을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들으시는 하나님(5:13~17)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우리가 아는 것(5:18~21)
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7/9/2016 • 29 minutes, 25 seconds
요한일서 5 : 1-12(고신영 목사)
요한일서 5 : 1-12(고신영 목사)
요한일서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교회안에서의 사랑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믿게되면 나타나는 변화가 사랑하게 되는것입니다. 사도요한의 독특한 사랑의 방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것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하나님의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제한적인 사랑의 방법을 초월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하나님보다 먼저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힌의 대부분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시는데 쓰신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5:1~5)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하나님의 증거(5:6~12)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7/8/2016 • 13 minutes, 29 seconds
요한일서 4 : 11-21(심우진 목사)
요한일서 4 : 11-21(심우진 목사)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통해 사랑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중요함을 계속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사랑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것이고 만약 자신이 사랑이 부족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은 첫째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둘째 주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사랑입니다 세째 사랑의 삶은 담대함을 가져다 줍니다.
서로 사랑과 신앙 고백(4:11~16)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 사랑, 형제 사랑(4:17~21)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7/7/2016 • 12 minutes, 45 seconds
요한일서 4 : 1-10(심우진 목사)
요한일서 4 : 1-10(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영적인 분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 하십니다. 요한사도께서 이 편지를 쓰실때는 교회안에 거짓 선지들과 이단들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첫째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것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앙을 우리의 삶속에 뿌리박은 살아있는것이 아닌 관념적인 차원으로 왜곡했습니다. 둘째,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것마다 거짓 영인것입니다. 예수님을 위대한 스승정도로 생각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만 맏지는 않는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삶이 분별의 기준이 됩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의 신앙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영을 분별하라(4:1~6)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서로 사랑하자(4:7~10)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7/6/2016 • 15 minutes, 20 seconds
요한일서 3 : 13-24(서석훈 목사)
요한일서 3 : 13-24(서석훈 목사)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삶의 강령들입니다. 이 강령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어찌보면 예수님보다도 더 강한 강조를 하고 있는듯 보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시대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던 영지주의 이단들과의 분란가운데 교회가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럴것입니다. 이유야 어떻튼 독생자를 죽이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할 이유는 분명해 집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것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하길 바라시는 가장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3:13~18)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3:19~24)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7/5/2016 • 12 minutes, 57 seconds
요한1서 2 : 1-11 (조재욱 목사)
요한1서 2 : 1-11 (조재욱 목사)
요한일서는 AD 85-96년경 이단인 영지주의의 거짓된 가르침을 성도들에게 주의시키기 위해 요한 사도가 쓰신 편지입니다. 영지주의는 어떤 신비한 각성을 통한 영적인 지식을 강조하고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며 영은 선하고 육은 가치가 없다 또 죄에 대해 육신의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던 그래서 죄에 찌든 삶은 살던지 극단적인 금욕을 하던지 상관 없다던 이단입니다. 하지만 사도요한의 서신은 예수그리스도의 우리를 대속하심과 아직도 중보하심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제물 되심과 그로인한 구원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참된 앎(2:1~6)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사랑의 빛 가운데 거하는 삶(2:7~11)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7/2/2016 • 16 minutes, 53 seconds
요한1서 1 : 1-10(서석훈 목사)
요한1서 1 : 1-10(서석훈 목사)
요한 일서는 기원후 85년과 96년 사이에 씌여졌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때는 교회가 세워진지 60년이 흐른후이고 모든 사도들은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순교한 이후입니다. 이 때 교회안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이단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 영지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성유신을 부정할 정도로 영적인것을 강조하고 육적인 모든 것들 심지어는 죄에 대해서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는 이단이었습니다. 오늘의 서신에서 사도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며 이 안에는 어둠이 있을 수 가 없음을 강조하시며 빛의 사람과 어둠의 사람의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회개하고 빛이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은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인것입니다.
영원한 사귐으로의 초대(1:1~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어둠이 없는 삶(1:5~10)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7/1/2016 • 13 minutes, 9 seconds
오바댜 1 : 15-21(정연권 목사)
오바댜 1 : 15-21(정연권 목사)
오늘의 말씀은 만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국에 대한 심판이 가까와 왔음을 경고 하십니다. 그 기준은 결국 자기가 행한대로 심판이 있으리라라는 것입니다. 남 윧ㄱ 망할때 기뻐하고 오히려 가까스로 도망한 사람들을 잡아 바빌론에 넘겨주고 유다를 약탈한 에돔은 그러므로 그들이 행한 행악대로 심판 받을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심판의 와중에도 시온 성산에 거하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것이니 이 자들은 바로 믿음이 있는자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자들인 것입니다.
행한 대로 보응받음(1:15~16)
15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
시온 산에 올라갈 자(1:17~21)
17 오직 시온 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야곱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18 야곱 족속은 불이 될 것이며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될 것이요 에서 족속은 지푸라기가 될 것이라 그들이 그들 위에 붙어서 그들을 불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19 그들이 네겝과 에서의 산과 평지와 블레셋을 얻을 것이요 또 그들이 에브라임의 들과 사마리아의 들을 얻을 것이며 베냐민은 길르앗을 얻을 것이며
20 사로잡혔던 이스라엘의 많은 자손은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이 땅을 사르밧까지 얻을 것이며 예루살렘에서 사로잡혔던 자들 곧 스바랏에 있는 자들은 네겝의 성읍들을 얻을 것이니라
21 구원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6/30/2016 • 15 minutes, 20 seconds
오바댜 1 : 1-14 (조근상 목사)
오바댜 1 : 1-14 (조근상 목사)
오바댜는 소 선지서중 가장 짧은 책입니다. 오바댜라는 이름은 12번이나 구약 성경에 나오는 흔한이름입니다 그래서 젖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멸망한 BC586년과 에돔이 이집트에게 망한 BC533년 사이에 에돔의 멸망을 예언하는 묵시로 지어졌을것으로 생각 합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이었던 에서의 후예들입니다. 야곱에게 속아 장자권을 팔았다는 이유로 둘 사이는 골이 생기고 원수처럼 지내게 됬습니다. 심지어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기뻐하며 예루살렘을 저줗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에돔에게 하나님은 크게 두가지 이유로 멸망을 선포하십니다. 먼저 높은곳에 살면서 외부의 침략을 쉽게 막아내며 전쟁에 능숙해진 그들이 아무것도 두려워지지 않을 정도로 교만해 졌다는 것이고 둘째 그들의 포악함 특히 형제인 이스라엘에 대한 포악함을 인해서 입니다.
마음의 교만 때문에(1:1~9)
1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나라들 가운데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와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2 보라 내가 너를 나라들 가운데에 매우 작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3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 혹시 도둑이 네게 이르렀으며 강도가 밤중에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만족할 만큼 훔치면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혹시 포도를 따는 자가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그것을 얼마쯤 남기지 아니하였겠느냐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
6 에서가 어찌 그리 수탈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빼앗겼는고
7 너와 약조한 모든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여 이기며 네 먹을 것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에 함정을 파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
9 드만아 네 용사들이 놀랄 것이라 이로 말미암아 에서의 산에 있는 사람은 다 죽임을 당하여 멸절되리라
형제에게 행한 포학 때문에(1:10~14)
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11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 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14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니라
6/29/2016 • 16 minutes, 5 seconds
느헤미야 13 : 15-22 (조무제 목사)
느헤미야 13 : 15-22 (조무제 목사)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페르시아로 다시 돌아갈 때 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배성의 신앙의 열심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말씀을 듣고 행하는데 우선 순위를 두었고 이를 위해 성전뜰에서 늘 말씀을 낭독하고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이스라엘의 신앙이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ㅓ 다시왔을 때는 많이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자기 일을 하고 또 레위인들의 임금이 지불되지 않고 이렇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을 느헤미야는 첫째, 안식일을 다시 지키게 하고 두째, 용기를 가지고 리더들을 훈육 했으며 세째 믿음의 행동들을 시행했습니다.
안식일의 상거래(13:15~18)
15 그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 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17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단호한 조치(13:19~22)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20 장사꾼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21 내가 그들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 후부터는 안식일에 그들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6/27/2016 • 17 minutes, 26 seconds
느헤미야 12 : 31-47(정연권 목사)
느헤미야 12 : 31-47(정연권 목사)
사람은 눅구나 공동체에 속해서 살아가고 모든 공동체는 다 중요하지만 교회만큼 소중한 공동체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 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회에는 정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째: 서로다른 성도들이 힘을 합해 하나되어 행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네째: 이 곳에는 끊임없는 헌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공동체(12:31~43)
31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을 성벽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 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둘로 나누어 성벽 위로 대오를 지어 가게 하였는데 한 무리는 오른쪽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니
32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자는 호세야와 유다 지도자의 절반이요
33 또 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과
34 유다와 베냐민과 스마야와 예레미야이며
35 또 제사장들의 자손 몇 사람이 나팔을 잡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스마야의 손자 맛다냐의 증손 미가야의 현손 삭굴의 오 대손 아삽의 육 대손 스가랴와
36 그의 형제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37 샘문으로 전진하여 성벽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다윗 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다윗의 궁 윗길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38 감사 찬송 하는 다른 무리는 왼쪽으로 행진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과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벽 위로 가서 화덕 망대 윗길로 성벽 넓은 곳에 이르고
39 에브라임 문 위로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멈추매
40 이에 감사 찬송 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고 또 나와 민장의 절반도 함께하였고
41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42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43 이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맡은 바에 충실한 사역자들(12:44~47)
44 그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45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을 따라 행하였으니
46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지도자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47 스룹바벨 때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6/25/2016 • 27 minutes, 49 seconds
느헤미야 12 : 1-30(김재홍 목사)
느헤미야 12 : 1-30(김재홍 목사)
이번부 본문의 느헤미야는 성벽을 완성한 후 이주민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예배공동체로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찾아 세우고 또 자원하는 사람들을 다시 재건된 예루살렘으로 이주시키고 이런 과정이 어느정도 마무리 된 후에 이 모든것을 하나님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나타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이름을 나열하는것은 먼저 스룹바벨의 때부터 예루살렘을 재건하는데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말하는것이고 또 이 사람들이 자신을 정결하게 함으로 예루살렘을 재건해 갔음을 이야기하고 있는것입니다. 성벽부터 성문까지 정결하게 하는것은 하나님앞에 재건한 예루살렘의 모든것을 성결함으로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귀환한 제사장과 레위인들(12:1~26)
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제사장들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2 아마랴와 말룩과 핫두스와
3 스가냐와 르훔과 므레못과
4 잇도와 긴느도이와 아비야와
5 미야민과 마아댜와 빌가와
6 스마야와 요야립과 여다야와
7 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니 이상은 예수아 때에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이었느니라
8 레위 사람들은 예수아와 빈누이와 갓미엘과 세레뱌와 유다와 맛다냐니 이 맛다냐는 그의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9 또 그들의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그들의 맞은편에 있으며
10 예수아는 요야김을 낳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을 낳고 엘리아십은 요야다를 낳고
11 요야다는 요나단을 낳고 요나단은 얏두아를 낳았느니라
12 요야김 때에 제사장, 족장 된 자는 스라야 족속에는 므라야요 예레미야 족속에는 하나냐요
13 에스라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아마랴 족속에는 여호하난이요
14 말루기 족속에는 요나단이요 스바냐 족속에는 요셉이요
15 하림 족속에는 아드나요 므라욧 족속에는 헬개요
16 잇도 족속에는 스가랴요 긴느돈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17 아비야 족속에는 시그리요 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에는 빌대요
18 빌가 족속에는 삼무아요 스마야 족속에는 여호나단이요
19 요야립 족속에는 맛드내요 여다야 족속에는 웃시요
20 살래 족속에는 갈래요 아목 족속에는 에벨이요
21 힐기야 족속에는 하사뱌요 여다야 족속에는 느다넬이었느니라
22 엘리아십과 요야다와 요하난과 얏두아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이 모두 책에 기록되었고 바사 왕 다리오 때에 제사장도 책에 기록되었고
23 레위 자손의 족장들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하난 때까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으며
24 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25 맛다냐와 박부갸와 오바댜와 므술람과 달몬과 악굽은 다 문지기로서 순서대로 문 안의 곳간을 파수하였나니
26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요사닥의 손자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 때에 있었느니라
성벽 봉헌식(12:27~30)
27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28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서 모여들고
29 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웻 들에서 모여들었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마을들을 이루었음이라
3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6/24/2016 • 14 minutes, 28 seconds
느헤미야 11 : 15-36 (심우진 목사)
느헤미야 11 : 15-36 (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은 어제에 이어서 이스라엘에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그 중에 트히 레위인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느헤미야는 기회를 쫓아 자신의 방향이 바뀌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똑똑한 세상사람들에데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느헤미야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담당하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의 풍파 가운데서도 자신이 나가야할 방향을 분명한 신앙속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의 풍파속에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ㅏ 인생을 지킬 수 있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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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거주한 레위인들(11:15~24)
15 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이니 그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16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그들은 하나님의 전 바깥일을 맡았고
17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18 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은 모두 이백팔십사 명이었느니라
19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이니 모두 백칠십이 명이며
20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살았고
21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니 시하와 기스바가 그들의 책임자가 되었느니라
22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 자손 중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뱌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23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기 때문이며
24 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곧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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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동네에 거주하는 백성(11:25~36)
25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 동네들과 디본과 그 주변 동네들과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
26 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27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28 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29 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에 거주하며
30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마을들과 라기스와 그 들판과 아세가와 그 주변 동네들에 살았으니 그들은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31 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32 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33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34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35 로드와 오노와 장인들의 골짜기에 거주하였으며
36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6/23/2016 • 12 minutes, 28 seconds
느헤미야 11 : 1-14 (심우진 목사)
느헤미야 11 : 1-14 (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에는 성벽이 완공된 예루살렘 성읍에 들어갈 사람들을 제비를 뽑아 선출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사는일은 영광입니다. 그러나 이제 갓 성벽을 지은 아무것도 없는 예루살렘에서 살아가는것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예루살렘을 다시 본격적으로 다시 살린것은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도 이곳에서 살기를 자처한 몇몇의 선구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지도자와 자원하는 자들(11:1~9)
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3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였느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하니
4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이니 그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 대손이며
5 또 마아세야니 그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 대손이요 스가랴의 육 대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 대손이라
6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은 모두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였느니라
7 베냐민 자손은 살루이니 그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엣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 대손이요 이디엘의 육 대손이요 여사야의 칠 대손이며
8 그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모두 구백이십팔 명이라
9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
제사장 가문들(11:10~14)
10 제사장 중에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이며
11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이니 그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 대손이며
12 또 전에서 일하는 그들의 형제니 모두 팔백이십이 명이요 또 아다야이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블라야의 손자요 암시의 증손이요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훌의 오 대손이요 말기야의 육 대손이며
13 또 그 형제의 족장 된 자이니 모두 이백사십이 명이요 또 아맛새이니 그는 아사렐의 아들이요 아흐새의 손자요 므실레못의 증손이요 임멜의 현손이며
14 또 그들의 형제의 큰 용사들이니 모두 백이십팔 명이라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느니라
6/22/2016 • 13 minutes, 9 seconds
느헤미야 10 : 32-39 (조재욱 목사)
느헤미야 10 : 32-39 (조재욱 목사)
오늘의 본문은 성벽을 완성한 백성들이 하나님앞에 새롭게 서약을 하는 내용들입니다. 특별히 본문은 성전세에 대한 서약과 첫소산에 대한 서약 그리고 십일조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서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전세는 남민신세가된 이스라엘의 열약한 경제상황 때문에 원래 율법이 정한것의 삼분의 일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갈망은 어느때보다도 커서 어려움속에도 이러한 헌신을 스스로 하나님께 맹세하고 있는것입니다. 또한 모든 가정의 장자와 첫소생을 하나님께 바치는 맹세를 하는것을 볼 때 비록 열약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이 서약들을 통해 다짐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위한 물질 헌신(10:32~34)
32 우리가 또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의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
33 곧 진설병과 항상 드리는 소제와 항상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을 위하는 속죄제와 우리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34 또 우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들이 제비 뽑아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시기에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바쳐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사르게 하였고
첫 열매와 십일조(10:35~39)
35 해마다 우리 토지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36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37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의 여러 방에 두고 또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산물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38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한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곳간의 여러 방에 두되
39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6/21/2016 • 15 minutes, 6 seconds
느헤미야 9:32~38 (김재홍 목사)
느헤미야 9:32~38 (김재홍 목사)
오늘의 본문은 총체적으로 무너졌던 이스라엘의 율법과 백성들의 심령이 하나님앞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맹세가운데 다시 살아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것은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으며 어려움을 극복해나온 느헤미야라는 리더를 통해 가능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는 힘과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이 충실한 삶을 선택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 언약이 충실한 삶이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삶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종의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악행을 그치는 회개의 삶입니다.
(느 9:32)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느 9:33)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느 9:34)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느 9:35) 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느 9:36)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느 9:37)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느 9:38)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
6/18/2016 • 30 minutes, 16 seconds
느헤미야 9 : 9-22 (조근상 목사)
느헤미야 9 : 9-22 (조근상 목사)
느헤미야 8장부터는 이스라엘의 영저 대각성에 관한 내용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1차 대각성은 율법을 듣고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이었고 2차는 초막절을 지키는것 3차는 금식과 회개의 기도 운동이었습니다. 이 내용들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난님의 모습은 두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째는 이런 부르짖음을 들어 자신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우상숭배의 가증한 죄도 이들의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기도를 받아 용서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9:9~12)
9 주께서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고난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홍해에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10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이는 그들이 우리의 조상들에게 교만하게 행함을 아셨음이라 주께서 오늘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11 또 주께서 우리 조상들 앞에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사 그들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같이 통과하게 하시고 쫓아오는 자들을 돌을 큰물에 던짐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
12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이 행할 길을 그들에게 비추셨사오며
이스라엘의 반역(9:13~22)
13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시고
14 거룩한 안식일을 그들에게 알리시며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15 그들의 굶주림 때문에 그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들의 목마름 때문에 그들에게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또 주께서 옛적에 손을 들어 맹세하시고 주겠다고 하신 땅을 들어가서 차지하라 말씀하셨사오나
16 그들과 우리 조상들이 교만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17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18 또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이르기를 이는 곧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한 신이라 하여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였사오나
19 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20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
21 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22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그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그들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6/17/2016 • 15 minutes, 26 seconds
느헤미야 8 : 13-18 (심우진 목사)
느헤미야 8 : 13-18 (심우진 목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하십니다. 초막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의 믿음을 돌아보고 믿음의 결단을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초막절을 지키면서 말씀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다시금 깨닫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믿기 시작할 때보다 순종을 시작할때 감동이 더 큽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얻을수 있는 위로와 기쁨 그 동행의 기쁨이 정말 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동행이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밝히 알고자(8:13~15)
13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14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초막절의 회복(8:16~18)
16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17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6/15/2016 • 10 minutes, 23 seconds
느헤미야 8 : 1-12 (정연권 목사)
느헤미야 8 : 1-12 (정연권 목사)
오늘의 본문에서 나타나는 성숙한 교회의 모습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숙한 교회는 간절히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서로 돕고 격려하는 동역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성숙한 교회의 세번째 모습은 회개가 있어 삶의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책 낭독(8:1~6)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4 그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말씀의 능력(8:7~12)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준 말을 밝히 앎이라
6/14/2016 • 14 minutes, 22 seconds
느헤미야 7 : 61-73 (조재욱 목사)
느헤미야 7 : 61-73 (조재욱 목사)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세속적인, 자신의 권력을 키우고 자기 중심의 사람들을 중용하는 세속적인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모든일에 먼저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리더십 이었습니다. 또 그는 사람들을 세울때도 신앙을 기준으로 세웠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보다 기도하는 사람을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느헤미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을 세웠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폐허에서 시작해야 하는 자신의 일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마치 조선을 몇몇 선교사의 믿음이 들어가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듯이 말입니다. 이런 신앙이 있으면 가정도 살아나고 나라도 살아 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런 느헤미아의 자세를 보고 배워 따라가야겠습니다.
엄격한 신분 확인(7:61~65)
61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로부터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종족이나 계보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62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가 육백사십이 명이요
63 제사장 중에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불린 자라
64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찾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65 총독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자발적 헌신(7:66~73)
66 온 회중의 합계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7 그 외에 노비가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그들에게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사십오 명이 있었고
68 말이 칠백삼십육 마리요 노새가 이백사십오 마리요
69 낙타가 사백삼십오 마리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 마리였느니라
70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총독은 금 천 드라크마와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71 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72 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느니라
73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느니라
6/13/2016 • 11 minutes, 58 seconds
느헤미야 6 : 1-14 (정연권 목사)
느헤미야 6 : 1-14 (정연권 목사)
오늘의 본문에는 느헤미야가 리더로써 대면하게 되는 세가지 어려움이 나옵니다 1.선택의 어려움 2. 나의 진심을 읫ㅁ하고 곡해하는 사람들 3.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고 완수해 가는 사명의 어려움들이 그것입니다. 여기에 대처하는 느헤미야는 먼저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사명을 기준으로 선택을 했습니다. 두째는 모함을 받았을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고 점검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기의 지도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월권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적자들의 음모와 모함(6:1~9)
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3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4 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
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8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9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거짓 예언자(6:10~14)
10 이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12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13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6/10/2016 • 18 minutes, 55 seconds
느헤미야 5 : 14-19 (심우진 목사)
느헤미야 5 : 14-19 (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에서는 과연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볼 수 있는 사건들이 나옵니다. 리더는 비전의 사람이기도 하고 업무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리더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희생을 할 주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아는 총독으로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총독의 녹을 심이년간이나 받지않고 강도높은 부역에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희생을 감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그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정말로 백성을 생각하고 그들의 사정에 공감ㅎ라고 있었기 때문이며 세째로 이모든 헌신을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더의 희생은 부흥을 가져오는 마중울과 같은것입니다. 우리 모두 리더로써 어는 분야의 마중물이 되실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므로(5:14~16)
14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15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그들에게서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16 도리어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백성을 위해서(5:17~19)
17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백오십 명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18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6/9/2016 • 15 minutes, 38 seconds
느헤미야 5 : 1-13(심우진 목사)
느헤미야 5 : 1-13(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은 성벽재건중에 마주하게 된 이스라엘 공동체안의 내부문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빈익빈 부익부와 가진자가 없는자를 핍박하는 죄악이 현대에는 물론 느헤미야 시절 이스라엘 공동체에도 나타나고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하소연을 들은 느헤미야는 깊은 생각끝에 귀족들과 민장들을 모아 그들을 꾸짖으며 이 죄악을 해결할 방도를 찾아갑니다. 이들은 먼저 빼앗은 토지와 재산을 돌려주고 그 들로부터 받은 이자까지도 돌려주라는 명령을 합니다. 이는 토지의 거래를 금하고 이자를 금하는 율법을 어긴 자들에게 면책을 주기위한것이었으며 지체없이 수행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학고자 할 때, 그 깃발을 들 때 모든일이 순조롭게 될 수 는 없습니다. 우물을 팔때도 먼저 흙탕물이 쏟아져 나오고 한참후에 맑은 물이 나오는것처럼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내부 문제(5:1~7)
1 그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2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살아야 하겠다 하고
3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4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6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7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느헤미야의 해결책(5:8~13)
8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9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10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11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12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13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6/8/2016 • 17 minutes, 56 seconds
느헤미야 4 : 15-23 (김재홍 목사)
느헤미야 4 : 15-23 (김재홍 목사)
산발랏과 도비아와 아라비아인과 암몬인들의 위협은 느헤미아의 성벽재전에 대한 분명한 위협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느헤미아의 반응은 절반의 백성은 일하고 절반은 창과 방패를 들고 침략에 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일하는 절반의 백성들도 한손으론 일하고 한손으론 창을 들고 칼을 차고 일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에 때로는 위기에 처하는 비상사태를 지나가게 됩니다. 특히 현대와 같이 위기가 변수가 아니라 상수인 시대에는 위기에 대응하는 법을 아는것이 크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오늘의 본문 20절에서와 같이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는 말씀을 품고 하나님의 경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승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철저한 대비(4:15~20)
15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일하였는데
16 그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19 내가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공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떨어져 거리가 먼즉
20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밤낮을 이어 가는 헌신(4:21~23)
21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22 그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23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6/7/2016 • 12 minutes, 47 seconds
느헤미야 3 : 1-14 (서석훈 목사)
느헤미야 3 : 1-14 (서석훈 목사)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보면 벽면에 수많은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중 어떤 이름은 정말로 소중하고 의미 깊은 이름일 수 있을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도 수 많은 이름이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의미 없을 수 있는 이름들이지만 느헤미야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52일만의 성벽재건을 자신을 도와 이뤄낸 희생과 헌신의 이름 들이었습니다. 이런 헌신과 협력만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끌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연합의 오늘도 이런 중차대한 시기입니다. 모든 분들의 헌신과 협력이 주님안에서 요구되는 시기가 바로 오늘입니다.
참여자와 방관자(3:1~5)
1 그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2 그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4 그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5 그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연합의 위력(3:6~14)
6 옛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7 그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쪽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 및 미스바 사람들과 더불어 중수하였고
8 그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9 그다음은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10 그다음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11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화덕 망대를 중수하였고
12 그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고
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주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14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6/4/2016 • 26 minutes, 45 seconds
느헤미야 2 : 11-20 (조근상 목사)
느헤미야 2 : 11-20 (조근상 목사)
어떤일을 진행하는데 가장 중요한것은 무엇 입니까? 환경? 조건입니까? 많은 경우에 결국 누가 이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느헤미아는 일을 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아는 행동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었을 때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하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십여일 남짓한 성벽 공사기간을 위해 귀한 사흘간의 기도의 시간을 가져 하나님의 지혜로 완전한 계획을 세워 큰 공사를 빈틈없이 빠르게 완성 할 수 있었던 리더였습니다. 기도로 준비하는 사람, 능력의 사람입니다.
성벽 현장 답사(2:11~16)
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12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13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14 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15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16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대적의 비웃음과 모함(2:17~20)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6/3/2016 • 13 minutes
느헤미야 1 : 1-11 (심우진 목사)
느헤미야 1 : 1-11 (심우진 목사)
오늘부터 느헤미야를 살펴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으로 한 사람의 헌신된 리더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와 그런 헌신된 리더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느끼며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데 이 기도에 세가지 우리가 유의해 볼 특성이 있습니다. 먼저 절망 가운데에서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도로 나아 갑니다 둘째로는 자신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절망의 순간임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붇들고 기도 드리는 약속의 기도를 드리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1:1~3)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말씀을 붙드는 기도(1:4~11)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6/1/2016 • 15 minutes, 47 seconds
스가랴 14 : 12-21 (심우진 목사)
스가랴 14 : 12-21 (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은 스가랴 선지를 통해 전해진 예언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스사랴의 예언은 현실과 환상,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복잡한 이미지의 예언이기 때문에 정확한 해석은 매우 어려운 예언입니다. 그래서 이 예언을 한가지 고정된 괁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서 마지막 전쟁이 선과 악을 구졀하는 전쟁이 있을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은 악인들에게도 회개를 통한 회생의 기회를 주시는 사랑의 심판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14:12~15)
12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
13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크게 요란하게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14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때에 사방에 있는 이방 나라들의 보화 곧 금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15 또 말과 노새와 낙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가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
여호와께 성결(14:16~21)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20 그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5/31/2016 • 14 minutes, 29 seconds
스가랴 14 : 1-11 (조재욱 목사)
스가랴 14 : 1-11 (조재욱 목사)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14:1~8)
1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네 가운데에서 나누이리라
2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당하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3 그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같이 하시리라
4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하리라
6 그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7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14:9~11)
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10 온 땅이 아라바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이를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 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11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5/30/2016 • 10 minutes, 36 seconds
스가랴 12 : 1-14 (정연권 목사)
스가랴 12 : 1-14 (정연권 목사)
바벨론에서 70년을 살고 이스라엘로 돌아온 이스라엘민족은 파괴된 성전과 성벽과 도시를 보고 망연자실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주민들과 대항해 싸우는 원주민들과의 관계는 큰 괴로움이었습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회복을 선포하십니다. 이 회복의 약속은 우리를 향한 예언의 말씀이기도 하며 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첫째 예수님을 바라보는것으로 둘째 자신을 위해 눈물로 회개 하는것으로 세째는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서 애통해 하는것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보호받는 하나님 백성(12:1~9)
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2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이르리라
3 그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그것을 드는 모든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4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보고 모든 민족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
5 유다의 우두머리들이 마음속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지라
6 그날에 내가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에 화로 같게 하며 곡식 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들은 다시 그 본곳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
7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8 그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9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나라들을 그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라(12:10~14)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5/28/2016 • 30 minutes, 15 seconds
스가랴 11 : 1-17 (조근상 목사)
스가랴 11 : 1-17 (조근상 목사)
스가랴서는 1~8장까지는 스가랴 선지가 본 환상에 관한 글이고 9~14장까지는 메시야 곧 예수님에 관한 예언들입니다.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과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가 있는 책들입니다. 본문은 먼저 예수님만이 참된 목자시며 그 뿐께만 은혜를 구해야 함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냐?고 묻습니다. 오로지 은총이 있을때 즉 은혜가 임할때만 샬롬 평화와 평강이 연합가운데 임하십니다 그리고 은혜는 오직 주님께부터로만 구할 수 있습니다.
교만한 자들의 최후(11:1~3)
1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3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잡혀 죽을 양 떼와 못된 목자(11:4~17)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5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6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 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7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10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1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4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을지니라
16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1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5/27/2016 • 12 minutes, 1 second
스가랴 10 : 1-12 (심우진 목사)
스가랴 10 : 1-12 (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도하라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요청하시는 이유는 기도하면 어떤 소원이든 이뤄주시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와 상관없이도 오직 하나님의 뜻은 이뤄집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거룩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 기도를 통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뤄주시기를 원하식기 때문인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는 주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거룩의 통로입니다.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10:1~7)
1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2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3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4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와서
5 싸울 때에 용사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
6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7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으리라(10:8~12)
8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같이 번성하리라
9 내가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으려니와 그들이 먼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이 살아서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돌아올지라
10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돌아오게 하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11 내가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12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5/26/2016 • 11 minutes, 42 seconds
스가랴 9 : 1-17 (심우진 목사)
스가랴 9 : 1-17 (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은 어제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복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엊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에 순종하면 임하실 축복을 이야기 하셨는데 오늘은 주변의 나라를 두려워 날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주변의 마라등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니고 이 이방신을 섬기는 나라들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 될 것이라는 선언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선포가 바로 이 땅에 왕으로 오실 메시아에 의해서 이루어 질것임을 나귀를 타고 오실 주님을 예언 하심으로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리는 땅(9:1~8)
1 여호와의 말씀이 하드락 땅에 내리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봄이니라
2 그 접경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에도 임하리니 그들이 매우 지혜로움이니라
3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도다
4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 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5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주민이 없을 것이며
6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주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7 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잇 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같이 되리라
8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가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리라(9:9~17)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13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14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나타나서 그들의 화살을 번개같이 쏘아 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 남방
5/25/2016 • 10 minutes, 51 seconds
스가랴 8 : 1-23 (서석훈 목사)
스가랴 8 : 1-23 (서석훈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스가랴서의 대표적인 회복의 말씀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다가 건축이 중단된지 이십여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패배와 낙담이 자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절망 가운데도 회복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기적의 하나님이십니다. 만군의 하나님은 천군 천사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여호와 체바호트 יְהוָה צְבָאֹות 라는 단어의 번역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라(8:1~15)
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3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5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백성을 해가 뜨는 땅과 해가 지는 땅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8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진리와 공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있었던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날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10 이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원수로 말미암아 평안히 출입하지 못하였으니 내가 모든 사람을 풀어 서로 치게 하였느니라
1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옛날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12 곧 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13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1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
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8:16~23)
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20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21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5/24/2016 • 12 minutes, 53 seconds
스가랴 7 : 1-14 (이성혜 목사님)
스가랴 7 : 1-14 (이성혜 목사님)
벧엘사람들이 70년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 구원을 하나님 앞에서 드리던 금식을 이제는 이스라엘로 돌아와 성전의 재건도 거의 완성된 그 때도 계속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중심으로 오늘의 본문은 전개 됩니다. 이들의 질문은 대답이 예와 아니오로만 한정되는 닫힌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에게 대답하실 때 오히려 그 금식이 나를 위한 금식이었냐고 질문을 하십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하는 금식과 제사는 진실한 재판을 하는것이고 인애와 긍휼을 베푸는것이며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대답으로 바벨론 유수때 하나님께 바친 금식도 합당치 않은것이었음을 질타하십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우리는 진실한 제사를 드리고 계십니까?
그 금식이 나를 위해 한 것이냐(7:1~7)
1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2 그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3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4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7 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
그들이 불러도 듣지 아니하리라(7:8~14)
8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11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14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에 흩었느니라 그 후에 이 땅이 황폐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5/23/2016 • 12 minutes, 5 seconds
스가랴 5 : 1-11 (김재홍 목사)
스가랴 5 : 1-11 (김재홍 목사)
스가랴의 이름에는 여호와는 기억하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믿음이 있는 이름입니다. 그런 스가랴가 본 8개의 환상중 오늘의 환상은 "그 집을 나무와 돌과 아울러 사르리라"라는 말씀에서 보이듯 뿌리깊게 박혀있는 악을 하나님께서 근본부터 드러내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시는 환상입니다. 이 모든것은 고통과 연단의 정뿐아니라 9절에 나오는 바람(히브리어 '루왘' - 영을 뜻하며 성령을 말씀하시는 말)과 같은 성령의 힘을 인한다면 근원뿐 아니라 본질적인 완전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리인생의 본질적이고 완전한 변화를 기대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5:1~4)
1 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본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있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니이다
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4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것을 보냈나니 도둑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의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나무와 돌과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에바 속 여인(5:5~11)
5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6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이니라 하시고 또 이르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7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니 그때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8 그가 이르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귀 위에 던져 덮더라
9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오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10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니
11 그가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것을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것이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5/21/2016 • 27 minutes, 51 seconds
스가랴 4 : 1-14 (정연권 목사)
스가랴 4 : 1-14 (정연권 목사)
오늘의 본문은 스가랴 선지가 본 다섯번째 환상에 관한 내용입니다. 세부분인 본문은 1-3절: 환상의 묘사 4-10절: 순금 등대의 의미 11-14절: 두 감람나무에 대한 설명으로 나눠집니다. 6절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주신 말씀으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라는것은 세상 모든일이 우리의 생각과 뜻과 힘으로 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만 여호와의 뜻으로만 된다는것이며 모든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일(4:1~7)
1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3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4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두 감람나무(4:8~14)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11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13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14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5/20/2016 • 13 minutes, 45 seconds
스가랴 3 : 1-10 (심우진 목사)
스가랴 3 : 1-10 (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은 스가랴 선지의 네번째 환상으로 사탄이 여호수와 곧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앞에 참소하는것을 보는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꾸짖으시며 이스라엘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하시며 이스라엘 민족이 고통을 당하였음을 아시며 이를 안타까와 하심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면 살 수 있습니다. 이 후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와의 더러운 옷을 새 옷으로 바꿔 입히시고 정결한 관을 머리에 씌우십니다. 그리고 새 싹의 약속 곧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이 될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주시는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을 계속해서 참소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축복의 약속을 부어주심으로 끝을 내십니다.
더러운 옷과 아름다운 옷(3:1~5)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예표의 사람들(3:6~10)
6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5/19/2016 • 11 minutes, 20 seconds
스가랴 2 : 1-13 (심우진 목사)
스가랴 2 : 1-13 (심우진 목사)
오늘의 본문은 스가랴의 여덟번의 환장중 세번째로써 이스라엘의 화복에 관한 환상입니다. 오늘의 환상중에 스가랴는 측량줄을 잡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에스겔을 통해 보여주신 예루살렘의 성전 회복을 연상하게 합니다. 먼저 예루살렘에 사람과 가축이 많을것이라고 하는것은 황폐한 예루살렘의 회복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불로싼 성곽이 되신다는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예루살렘을 지키신다는 말씀이십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북방땅 즉 바벨론의 멸망을 말씀하시고 이것은 페르시아를 통해 역사가운데 이뤄집니다.
성곽 없는 성읍, 예루살렘(2:1~5)
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았기로
2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그가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 하고 말할 때에
3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고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4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북방 땅에서 도피하라(2:6~13)
6 오호라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피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내가 너희를 하늘 사방에 바람같이 흩어지게 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8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9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
10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11 그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
12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13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5/18/2016 • 11 minutes, 56 seconds
베드로후서 3 : 10-18(정선기 목사)
베드로후서 3 : 10-18(정선기 목사)
사도 베드로는 주님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라 오늘의 본문에서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날에는 만물이 다 풀어지고 모든 숨기워졌던 비밀한것이 만 천하에 드러나며 모든것이 심판 받을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세가지 권면을 주십니다. 첫째로 날마다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 날을 바라보라는 것이고 두째로 순결하고 평화로운 최상의 모습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거짓교사들 때문에 발을 헛 디뎌 실족할것을 경셰하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일어날 것이며 이미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이에 더욱더 사도 베드로의 권면에 따라 애쓰고 힘써 구원을 이루시는 모두가 죄시길 축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3:10~13)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3:14~18)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5/16/2016 • 11 minutes, 30 seconds
베드로 후서 3:1-9 (조근상 목사)
베드로 후서 3:1-9 (조근상 목사)
베드로 사도는 심한 박해와 핍박에 빠진 성도들에게 두 번째 편지를 씁니다. 초대교회는 이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와 또한 배교자와 도망자가 생기는 극한의 어려움에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주님을 배반했전 경험이 있는 베드로는 자신의 주님안의 회복을 간증하며 세가지를 말씀 하십니다. 첫째는 상처를 회복하고 처음 믿음으로 돌아가라는 것이고 두째는 이 모든것에 말씀으로 행해야 한다는것이며 세째는 세상이 악하나 이를 쥐고 주관하시는 분은 한나님이심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벧후 3: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벧후 3: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벧후 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벧후 3: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벧후 3: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벧후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5/14/2016 • 28 minutes, 22 seconds
베드로후서 2 : 1-11 (정연권 목사님)
베드로후서 2 : 1-11 (정연권 목사님)
우리 모두는 알던지 모르던지 각자의 위치에서 필연적으로 리더로 살아갑니다, 아버지로, 어머니로, 장로로, 집사로, 권사로.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어떤 리더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말씀 하십니다. 첫째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리더입니다. 두째로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는 리더입니다. 세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가르치는 리더입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리더로의 삶을 살며 거짓리더를 구별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춰야 하겠습니다.
거짓 선생들의 특징(2:1~3)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거짓 선생들에 대한 심판(2:4~11)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5/13/2016 • 13 minutes, 39 seconds
베드로후서 1 : 12-21 (심우진 목사님)
베드로후서 1 : 12-21 (심우진 목사님)
사도 베드로는 현재의 박해 가운데서 성도들이 믿음으로 현실을 이겨내기를 희망하면서 오늘의 본문을 쓴다고 하십니다. 먼저 이 서신을 통해 성도들에게 진리를, 말씀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려고 글을 쓴다고 하십니다. 두째로 16절에보시면 이 복음은 교묘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고 본인이 직접 체험하고 듣고 보고한 것 임과 복음은 생각이 아니라 증언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 개인의 작위적인 해석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들도 증거하는것과 교회의 권위있는 해석을 따라 해야 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변화산에서 만난 그리스도(1:12~18)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성경을 통해 만난 그리스도(1:19~21)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5/12/2016 • 10 minutes, 24 seconds
베드로후서 1 : 1-11 (심우진 목사님)
베드로후서 1 : 1-11 (심우진 목사님)
베그로후서는 사도 베드로의 유언과 같은책으로 인단 사설들에 대한 경고와 진정한 신앙의 자세에 대해 기술한 책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힘입어 얻게되는 믿음의 성장단계를 성도의 덕목으로 표현했습니다. 먼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고백이 시작입니다. 그 위에 모든것을 넉넉하게 하는 풍성함의 덕을, 그리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는 지식을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절제를, 어려움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꾸준히 따라가게 해 주는 인내를,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웃과의 관계 까지 확장되는 경건을, 형제를 사랑하는 우애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를 사랑하는 능력의 사랑을 더하라고 하십니다. 결국 믿음은 주님에 대한 고백에서 시작해서 만인을 사랑하는 사랑의 능력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성도(1:1~4)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믿음 위에 더할 덕목(1:5~11)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5/11/2016 • 13 minutes, 50 seconds
베드로전서 5 : 1-7 (조무제 목사님)
베드로전서 5 : 1-7 (조무제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제시하는 교회 리더십의 모습입니다. 첫째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목양과 겸손의 리더십이고 두번째는 남위에 군림하는것이 아닌 솔선수범하는 행동의 리더십 세째는 이 모든것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도의 리더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를 모두 하나님께 맡겨드림으로 마귀의 간교로 부터 비켜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리더가 되라는 것입니다.
장로들에 대한 권면(5:1~4)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젊은이들의 합당한 자세(5:5~7)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5/9/2016 • 16 minutes, 35 seconds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김윤곤 선교사님)
5/7/2016 • 47 minutes, 47 seconds
베드로전서 3 : 13-22(조근상 목사님)
베드로전서 3 : 13-22(조근상 목사님)
본문은 고난중에도 마지막까지 주의 은혜를 소망하는 사람이 복을 받을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악하므로 믿음의 삶을 살겠다 생각하면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는 고난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들어오면 고난을 해석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내 삶의 수수께끼가 해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왔구나, 하나님앞에 나올 수 있었구나. 그러므로 오히려 고난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나오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를 위해 받는 고난(3:13~17)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불의한 자 대신 죽으신 예수님(3:18~22)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5/6/2016 • 12 minutes, 28 seconds
베드로전서 3 : 1-12 (심우진 목사님)
베드로전서 3 : 1-12 (심우진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가정안에서 또 이웃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사는것이 크리스챤다운 일인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먼저 사도 베드로는 아내들이 불신자 남편에게도 순종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랑으로 복음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 남편은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연약한 그릇인 아내를 존중하고 사랑해야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우들간에 서로 불쌍히 여기고 그럼으로 현제와 자매를 통해 복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울리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심는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도리(3:1~7)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복을 이어 가는 공동체(3:8~12)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5/5/2016 • 11 minutes, 57 seconds
베드로전서 2 : 11-25(심우진 목사님)
베드로전서 2 : 11-25(심우진 목사님)
크리스챤이 세상에서 그것도 박해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가 오늘 본문의 주제입니다. 이는 첫째, 우리의 인생이 거류민과 나그네와 같이 세상에 거하나 속하지는 않은자라는 것입니다. 둘째, 육체적인 욕망의 늪에 빠지는 것을ㄹ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째, 이 세상의 선한 제도에는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을 늘 생각하며 고낭을 이기되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자유가 있으나 하나님의 종처럼(2:11~17)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그리스도가 보이신 인내의 본(2:18~25)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5/4/2016 • 12 minutes, 11 seconds
베드로전서 2 : 1-10(김재홍 목사님)
베드로전서 2 : 1-10(김재홍 목사님)
오늘의 본문에서는 고난을 이기기 위해 세가지 노력할 내용이 나옵니다. 첫째는 신령한 젖, 말씀과 깊은 묵상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 예수님의 기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세째는 고난의 시기에 자기에 대한 정체성과 인생의 목적을 다시 한 번 확실히 하라는 것입니다. 이럴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고난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을 믿습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2:1~3)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보배로운 산 돌(2:4~8)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2:9~10)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5/3/2016 • 16 minutes, 55 seconds
베드로전서 1 : 13-25(조재욱목사님)
베드로전서 1 : 13-25(조재욱목사님)
초대 교회의 역사는 로마제국의 압제와 핍박의 역사였습니다. 이 가운데 사도 베드로는 고통과 고난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핵심은 고난중에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붇들고 거룩에 매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고난이라도 괴롭고 극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이 고난이 살리시는 하나님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기회라면 어떠하시겠습니까?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13~16)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1:17~21)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1:22~25)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5/2/2016 • 12 minutes, 26 seconds
살전 1:1-11. 어떻게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할 것인가? (고 정인수 담임목사님)
살전 1:1-11. 어떻게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할 것인가? (고 정인수 담임목사님)
행복한 교회가 행복한 인생을 결정합니다. 행복한 교회의 성도는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은 고난가운데 고난을 인내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안의 찬의력으로 이 고난을 극복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는 믿음안에서 창의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며 그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 그런 사람들을 탄생시키는곳, 바로 교회입니다.
(살전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1: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살전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살전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살전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살전 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살전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4/30/2016 • 29 minutes, 45 seconds
요 13:1-2,31-38 새 계명을 실천하는 교회 (고 정인수 담임목사님)
요 13:1-2,31-38 새 계명을 실천하는 교회 (고 정인수 담임목사님)
예수님이 주신 새계명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계명.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주님의 새계명. 끝까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신 사랑, 사탄에게 넘어가 주님을 판 가롯유다도 사랑하신 사랑. 사랑은 감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계명에의 의지적인 순종.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진짜 사랑. 사랑하고 감사하라.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새 계명
(요 13: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요 13: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요 13: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이르시다
(요 13: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 13: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요 13: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4/29/2016 • 25 minutes, 27 seconds
요 21:1-14 일상의 삶에 성큼 다가오신 부활의 주님 (고 정인수 담임목사님)
요 21:1-14 일상의 삶에 성큼 다가오신 부활의 주님 (고 정인수 담임목사님)
부활후 주님께서 자신을 배반하고 실패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꾸짖지 않으시고 배고프지 와서 먹어라 초대하시는 주님. 우리에게 식사는 언제나 성체성사의 의미 주님은 부활하셔서 육신으로 식사를 같이 하심, 우리의 일상에 오시는 부활의 주님. 우리의 실패를 탓하지 않으시고 힘주시는 주님. 실패를 인생의 가장 창의적인 순간으로 바꾸시는 주님. 실패의 순간에 비전을 주심으로 인생을 살리시는 주님.
(요 2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요 21: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요 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요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요 2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요 21: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요 21: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요 21: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1)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요 21: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요 21: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요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 2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요 21: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요 21: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4/28/2016 • 28 minutes, 36 seconds
행 2:1-13. 불같은 성령 임하소서 (정인수 담임목사님)
행 2:1-13. 불같은 성령 임하소서 (정인수 담임목사님)
찬양: 주님의 성령 지금 이곳에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신구약의 예언의 성취. 이를 통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가 탄생. 현대인들은 쉽게 머리로 하나님을 믿어 보려 하지만 기독교는 철저한 체험의 종교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묶인자를 해방하는 해방의 역사, 초자연적 역사, 보이는 역사이며 새로운 언어의 역사입니다. 성력의 능력은 막혔던 장벽을 허물며 언어를 초월하며 복음이 전파되며 모든영역에서 부흥이 일어나게 합니다.
(행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행 2: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행 2: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행 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행 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행 2: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행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행 2: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행 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4/27/2016 • 29 minutes, 51 seconds
요 1:1-14(정인수 담임목사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 1:1-14(정인수 담임목사님)
제목: 말씀이 육신이 되어
찬송:내 영혼에 햇빛비추니
찬양: 주님 말씀 하시면
현대 인생의 암흑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비전을 모른다. 이 인생의 문제에 대답하는 성경과 같은 진리는 없다. 그 진리중의 진리가 말씀이 육신이 된 성육신의 사건이다. 인간 예수가 영원한 하나님인 그리스도이시다. 초대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들이 예수는 그리스도!를 외치며 순교했다. 성육신의 사건은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성막의 사건이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요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요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4/26/2016 • 23 minutes, 6 seconds
요한복음 5:24-29,요한일서5:10-13(정인수담임목사님)
요한복음 5:24-29,요한일서5:10-13(정인수담임목사님)
찬송: 96장
찬양: 약할 때 강함 되시네
확신이 사라진 불확신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역시 불확신의 영향을 받을 때가 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이 약한 세가지 이유는 1. 구원의 체험이 없기 때문이고 2.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기 때문이며 3. 느낌이나 감정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는 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고 2. 외적인 증거로써 성령의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4/25/2016 • 33 minutes, 21 seconds
요한복음 10:25-27(이창희, 이향자 선교사)
요한복음 10:25-27(이창희, 이향자 선교사)
찬송: 569
찬양: 약한 나로 강하게
니카라과 선교사로 섬기시는 이창희 이향자 선교사님의 고 정인수 목사님과의 사역 회고와 하나님께 받은 받은 질문 두가지, 내가 죽었느냐? 무엇을 듣고 배웠느냐? 에 대한 선교사님의 대답.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러무로 자기 직분과 사역을 소흘히 하지 않는다는 은혜의 말씀의 선포가 있었습니다.
(요 10: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요 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4/23/2016 • 39 minutes, 4 seconds
에스겔 43 : 13-27 (정연권 목사님)
4/22/2016 • 12 minutes, 10 seconds
에스겔 43 : 1-12 (조재욱 목사님)
4/21/2016 • 12 minutes, 33 seconds
에스겔 42 : 1-20 (정선기 목사님)
4/20/2016 • 8 minutes, 47 seconds
에스겔 41 : 1-26 (심우진 목사님)
4/19/2016 • 17 minutes, 50 seconds
에스겔 40:1-49(유병훈 전도사님)
4/18/2016 • 11 minutes, 33 seconds
에스겔 38 : 1-23(서석훈 목사님)
4/15/2016 • 11 minutes, 58 seconds
에스겔 37 : 15-28(서석훈 목사님)
4/14/2016 • 12 minutes, 38 seconds
에스겔 37 : 1-14 (김재홍 목사님)
4/13/2016 • 17 minutes, 44 seconds
에스겔 36 : 16-38 (심우 진 목사님)
4/12/2016 • 6 minutes, 34 seconds
에스겔 36:1-15 (조무제 목사님)
4/11/2016 • 24 minutes, 27 seconds
에스겔 34:17-31(정선기 목사님)
4/9/2016 • 27 minutes, 54 seconds
에스겔 34 : 1-16(정연권 목사님)
4/8/2016 • 15 minutes, 4 seconds
에스겔 33 : 21-33 (김재홍 목사님)
4/7/2016 • 13 minutes, 12 seconds
에스겔 33 : 1-20 (조재욱 목사님)
4/6/2016 • 15 minutes, 8 seconds
에스겔 32 : 17-32 (이성혜 목사님)
4/5/2016 • 13 minutes, 36 seconds
에스겔 32 : 1-16 (정선기 목사님)
4/4/2016 • 13 minutes, 50 seconds
말라기 1:2 (김영화 선교사님)
4/2/2016 • 46 minutes, 56 seconds
에스겔 29:1-16 (정인수 담임 목사님)
4/1/2016 • 15 minutes, 6 seconds
에스겔 28:1-26 (심우진 목사님)
3/31/2016 • 9 minutes, 43 seconds
에스겔 27:1-36 (정인수 담임 목사님)
3/30/2016 • 11 minutes, 41 seconds
에스겔 23:1-21 (정인수 담임 목사님)
3/29/2016 • 14 minutes, 30 seconds
히브리서 12: 1-13 (정인수 담임 목사님)
3/25/2016 • 31 minutes, 53 seconds
히브리서10:19-39
3/24/2016 • 29 minutes, 22 seconds
히브리서 9: 11-22 (정인수 담임 목사님)
3/23/2016 • 27 minutes, 49 seconds
히브리서 8: 1-13 (정인수 담임 목사님)
3/22/2016 • 24 minutes, 14 seconds
히브리서 7:18-28 (정인수 담임 목사님)
3/21/2016 • 26 minutes, 46 seconds
히브리서 6:13-20 (정인수 담임목사님)
3/19/2016 • 27 minutes, 34 seconds
히브리서 5:1-10, 4:14-16 (정인수 담임 목사님)
3/18/2016 • 26 minutes, 21 seconds
히브리서 4:1-13 (정인수 담임 목사님)
3/17/2016 • 26 minutes, 14 seconds
히브리서 3:1-14 (정인수 담임 목사님)
3/16/2016 • 27 minutes, 7 seconds
히브리서 2:1-4, 14-18(정인수 담임 목사님)
3/15/2016 • 27 minutes, 45 seconds
히브리서 1:1-9 (정인수 담임 목사님)
3/14/2016 • 29 minutes, 47 seconds
마태복음 24 : 36-51(정연권 목사님)
3/12/2016 • 27 minutes, 59 seconds
마태복음 24 : 29-35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24 : 29-35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대환란 이후에 오게될 주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도둑과 같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때에 이루어질것이라고 했는데 모두의 허를 찌르는 듯한 주님의 재림은 인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온갖 징조와 또한 기사로 번개가 치면 동에서 서까지 한번에 다 밝혀지듯이 온세상과 인간들에서 밝히 보여질것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환란후에 최초로 일너날 사건은 해와 달과 별에 있는 징조라고 하셨습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을것이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질것이라고 하십니다. 지구는 때때로 화산 폭발과 지진 그리고 쓰나미와 같은 재앙을 겪습니다. 요 몇년전에 아일랜드의 화산 폭발도 유럽 전체가 화산재로 기후의 변화를 겪고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또 일본을 덮쳤던 해일은 얼마나 큰 피해를 줬으며 그 장면을 화면으로만 봐도 살이 떨리도록 무섭던지요?
성경은 주님이 오시는 재림의 기간에 전 우주가 흔들릴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주님께서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으로 오시는것을 의심의 여지 없이 알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사람인지라 이런 말씀을 들으면 어떨 때는 이 말씀이 진짤까? 혹시 진짜 이런일들이 일어난다는것이라기 보다는 어떤 상징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LA에서 큰 지진을 한 번 겪어보니까 지금도 이렇게 지축을 하나님이 흔드시는데 주님의 재림에 때에는 얼나나 더하실까? 하면서 그런 의심의 생각이 싹 없어졌습니다. 그 지축이 흔들리는 지진가운데 하늘도 흔들리고 재림의 때에 나타날 그런 징조를 실감나게 맛을 봤습니다.
새벽 두세시쯤에 집이 이리저리 흔들리니까 지진이라는것을 단박에 알았습니다. 그런데 흔들리는것도 무서운 일인데 지축이 뒤틀리면서 내는 기괴한 소리를 듣는것은 정말 무서운 경헌이었습니다. 지각의 대변동을 겪으면서 땅이 토해내는 그 소리는 정말 기괴한 소리입니다. 그 때 오늘 본문에 적혀있는 해가 어두어지고 달이 빛을 잃고 이런 자연의 변화가 그냥 나타나는것을 체험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알았습니다. 야 주님이 오실때 성경에 적힌 일들이 그냥 일어나겠구나 지금도 이렇게 하시는데 그 때는 정말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우주가 뒤틀리는 대 변화와 합께 주님이 오시겠구나 깨달음이 왔습니다. 온 우주의 흔들림과 함께 우리 주님꼐서 재림하시겠다는것을 깨 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나타나는 자연계의 재남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와 왔음을 알려주는 사인이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징조는 하늘에서 나타날 징조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30절을 보시면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 징조는 하늘에 나타날 하나님의 현현의 징조입니다. 그리고 이 징조는 땅의 모든 백성의 통곡가운데 속히 임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을 모든 백성이 혹자는 두려운으로 혹자는 후회함으로 통곡을 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모든 인류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면서 다시 오실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재림이 가시적으로 보일것이고 모두가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번째 온 백성이 통곡함을 징조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이 세상이 주님을 언제나 핍박했고 또 심지어는 주님의 피를 흘리게 했음과 이에 동참한 모드 인류가 자신들이 핍박해 잡아 죽였던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오시는 것을 온 우주의 떨림가운데 두려움으로 보며 느끼며 후회와 공포의 눈물을 흘릴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노아의 홍수 때 내리는 폭우가운데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닫으신 그 방주의 문은 열리지가 않듯이 때를 놓친 자들이 방주밖에서 두려움에 떨며 이를 갈며 울부짖듯이 우리 주님의 재림의 때에 하나님을 밎지 않은 인생들이 가질 때늦은 후회와 회개와 공포와 원망이 그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눔눌을 흘리고 후회를 하고 이를 갈며 자신의 인생을 저주해 보고 하늘을 향해 발악을 해도 이미 너무 늦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회개의 때가 지나가 버리고 이제는 심판의 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감사할 일은 아직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시간이 있습니다. 지금 주님앞에 엎드려져 자복화며 통곡할 것인가? 주님 다시 오실때에 두려움에 떨며 이를 갈며 울부짖을 것인가?는 온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이미 하나님의 말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네번째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택하신 자들을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31절을 보시면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제 그 때가 되면 우리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역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주님의 뜻대로 일을 하는 영적인 존재인 천사를 보내서 주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것은 그 말세의 때까지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택함을 받은 자들은 남은 인류의 수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방에서 이 남은 자들을 당신의 사자들을 보내시어 모아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축이 흔들리는 변고의 절망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영혼은 한명도 내 버려두지 않으시고 구원해 내고 마신다는것이 오늘의 말씀중에 우리가 확인 할 수 있는 주님의 약속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때에도 주님을 향한 구원의 소망을 지킬 수 있으며 지켜야 하겠습니다.
또 32절을 보시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하고 말씀 하십니다. 자연의 이치는 그 때를 따라 순서를 맞춰 이루어 집니다. 무화과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나면 여름인것입니다. 그와 같이 주님의 재림의 때를 우리가 알 수 는 없지만 세상에 드러나는 징조를 통해 우리가 준비 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는 천재지변과 환란과 재난의 징조들을 영적으로 해석 하면 궁극적으로 다 재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시대의 징조를 분별한다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예비 할 수 잇을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비하라는 것이 우리 주님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이시고 경고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주님께서 주신 이 말씀이 너무 오래되서 또 너무나 많은 사건들을 이미 지났기 대문에 이 말씀들이 상상속의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35절에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시는 대로 주님의 말씀은 결단코 이루어 집니다. 어떠한 우주적인 변화가 있을 지라도 우리 주님의 말씀은 이루어지고야 만다는것을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슴의 실체를 우리는 깨달을 수 없지만 지근도 일어나는 수많은 재난과 재해 속에서 우리는 심판의 그 때의 편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를 흔들었던 쓰나미를 기억하십니까? 인간이 만든 가장 견고한 건축물이 견딜 수 있는 파괴력의 천배의 크기로 덮쳐오던 지진을 기억하십니까? 인간이 잘 남것 같지만 아직도 자연의 재해 앞에서는 속수 무책이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인류의 존재는 티끌보다도 볼 것이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입술을 여시어 단신의 재림과 종말을 얘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안에 완성되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바램과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을 이 말슴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슴의 성취를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릴 둘 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던지 깨어서 기도하며 우리의 남은 생애를 주님의 뜻 앞에 바칠줄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세상을 승리해야 합니다. 또 주님의 몸된 교회에 자신의 인생을 복속 시키는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사명인 영혼 구원을 위해 언제나 새롭고 은혜로운 하나님의 강력으로 세상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특별히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계속해서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복음주의 연합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그 모임을 힘써 전력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더욱더 기도 하시고 온전한 주님의 복음이 이를 통해 교회와 미국과 온 열방에 전해 지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영원한 복음은 주님의 초림과 고난과 십자가와 승첨과 재림과 신유인 것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안에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시대를 통찰하는 영적인 눈이 띄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변화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읽을 줄 알아 주님의 복음을 계속 해서 전하시는 모든 연합의 성도들 되시도록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11/2016 • 12 minutes, 23 seconds
마태복음 24 : 1-14 (정인수 담임목사님)
마태복음 24 : 1-14 (정인수 담임목사님)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불안과 혼돈의 연속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우리가 예측한다는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제는 과학자들도 미래의 예측을 하는데 이들의 예측은 아주 어둡습니다. 자원의 고갈과 이를 만회할 기술의 부재등이 이유입니다.
이런 시절에는 종말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일제시대에 가장 많이 읽히던 성경은 요한 계시록이었고 또 이런 틈을 타서 극단적인 신앙을 고취시키는 각종 이단들이 나온것이 사실입니다.
난리와 난리에 대한 소문은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고 또 지금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설프고 성급한 결론을 내려 실수하지 않으려면 이 종말에 대한 접근은 심도깊은 그리고 균형잡힌 접근을 요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고 광신적인 종말론에 빠지고 맙니다. 지금도 미국의 서부의 산골짜기에서는 종말론만을 거론하고, 다루며 자기들끼리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그런 교회 공동체들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말세의 교회와 성도가 세상을 향해 받은 주님의 명령에 대해는 생각하지 않는 잘못된 길을 가는것입니다.
그러나 또 종말론 자체를 부정 하거나 무시하면서 아예 관심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 섭리를 거스르는 세상에 대해 쏟아질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물론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정말로 귀한 종말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묻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들을 보면서 우리는 몇가지 사실들을 유추 할 수 가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끝 날은 일치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때가 세상의 끝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세상의 끝에는 공개적이고 가시적인 분명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종말에는 세가지 종류의 종말있습니다. 첫번째는 내 생명이 끊어짐으로 나타나는 개인적인 종말이 있고 두번째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이야기하는 이스라엘의 종말을 뜻하는 국가적인 단위의 종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주적이며 역사적인 만물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종말에는 혼돈이 있고 이 틈을 타서 미혹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4절과 5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자신들이 세상을 구원할 묘안을 가지고 있다고 세상을 미혹할 것이고 또 미혹해 왔습니다. 이들은 꼭 종교계에서만 출몰하지 않았습니다. 철학과 정치와 예술을 막론해 다양하게 출몰하고 있습니다. 칼 막스의 공산주의, 뉴 에이지운동, 북한의 주체사상, 통일교, 배금사상등 자신들을 따르면 구원의 길에 이른다고 이모저모로 다양한 미혹의 활동을 벌여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류들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두번째 마지막때에는 세상에 대 혼돈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난리와 지진과 전쟁같은것이 것잡을 수 없게 일어나면서 대 혼돈으로 세상을 밀어 낸다는 것입니다. 6절과 7절을 보면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그리고 이런 혼란 가운데 주님을 믿는 믿는자들이 세상 민족들에게 고난을 받게 될 것을 이야기합니다.
세번째는 12절을 보면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계시록 2:4절 –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 나와있듯이 불법이 난무한 세상에 사랑을 포기하는 사람과 교회들이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볼 것은 14절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말씀은 주님이 다시 오시게 되는 가장큰 이유가 천국복음이 온 세상 끝까지 전파된 그것이라는 것이고 뒤집어 이해를 하면 세상이 혼란하고 불법이 성하고 핍박이 넘쳐나도 세상 끝날까지 교회와 성도가 감당해야만 하는 사역이 바로 이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연합교회와 저와 모든 여러분이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천국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해야 하는 선교의 사역입니다.
다시 종말에 대해 좀 더 정의를 해보자면 영어로는 ‘Already but Not Yet.’ 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고 또 하지만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역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획하심 속에서 이 종말은 이미 이뤄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드러나는 것에는 시간이 걸리는 부분도 있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할 종말은 모두 주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내일이라도 오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주님은 도적과 같이 오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때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때 가 그 때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당장 오실 것 같은 마음에 집팔고 재산정리해서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Not Yet 아직 이르지 않은 하나님의 종말을 알고 경거망동을 자제해야 할 것이고 지금 예수님이 절대로 안 오실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하나님의 역사와 나 자신의 삶은 아무런 상관도 없듯이 사는 사람들은 Already 이미 이 곳에 임하신 주님의 재림과 종말을 깨달아 주님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밎는 자들은 두 두 끝의 사이에서 언제나 깨어 기도하고 영성의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을 언제나 치루고 있음을 알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끝까지 견디는 자는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상관없이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이 세상에서도 정의와 공의를 따라 하나님 나라를 실현해 가는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를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도 우리 연합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이러한 종말의 진정한 뜻을 깨달아 세상끝날까지 주님의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는 끔까지 참는자가 되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9/2016 • 12 minutes, 40 seconds
마태복음 23 : 29-39 (정인수 담임목사님)
마태복음 23 : 29-39 (정인수 담임목사님)
마태복음 23장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또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특별히 이 말씀들은 예수님 시절의 서기관들과 바리새 사람들만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목회자들과 리더들에 대한 질타입니다.
주님께서 23장 전체를 통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질타하신 첫째는 언행의 불일치였습니다. 말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표리부동한 사람이다 또 역시 위선자다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지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표리부동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는 말은 좋지만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해 말씀 하시고 계신것은 외식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행동이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구제할 때 기도할 때 금식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읫기하면서 해야 할 것입니다.
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질책 하시기를 너희들은 명예욕과 교만이 가득찼다는 것입니다. 잔치에 가면 윗자리에 앉기를 원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시장에서는 문안받기를 원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대한 질책임과 동시에 또 특별히 교계전반을 돌아보게 만드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네번째 주님의 질책의 말씀은 율법에 대한 근본정신을 잃어 버렸음을 질책하고 계십니다. 너희들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지만 의와 신과 인을 버렸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율법의 대표적인 정신은 의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하나님의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바로 이 근본 정신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의와 인과 신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완성 시키고자 우리 주님 예수님을 보내시어 십자가를 감당케 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당신이 베푸신 의와 신과 인을 따르도록 요구하고 계시다는것을 한시도 잊으면 안되겠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야단 치시기를 25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라고 하십니다. 너희들이 겉이 깨끗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너희의 속은 생각과 욕망과 원함이 더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속사람이 깨끗하지 못하고 악하다는 말씀을 하고 꼐신것입니다.
또 27절에서도 야단 치시길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중동지역의 무덤은 아주 아름답게 외관을 꾸미고 또 회칠을 해서 도드라지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것은 이것이 부정한 무덤임을 모두가 알게해서 피하라는 경고인것입니다.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썩은것들로 차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와 같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속이 더러운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도 주님께서는 29절과 30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말씀하시며 이 사람들이 실패한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비판 하셨습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 시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헌금의 큰 부분을 사용해 자신들의 조상이 죽인 선지자들의 무덤을 장식하고 아름답게 치장하는데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이 선지자들을 해친 조상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행위를 한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세상 역사상 가장 큰 선지자요 예언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는데 가장 앞장을 선 사악한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선함을 가장하기 위해 선지자들의 무덤을 치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 세례요한을 죽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밖게한 가장큰 원흉들임을 우리는 뼈져리게 느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렇게도 자신들과 자신의 조상들과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다르기위해 나름 애를 썼어도 결국 이 자들은 이들의 조상들과 같이 사악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없이 우리의 의로 구별되려 해 봐야 우리의 사악함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32절의 우리 주님의 말씀이 정말 무섭습니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이 말씀은 너희 바리새와 서기관들이 너희 조상이 하던 그 악행의 분량을 마저 채우라는 이야기 이십니다. 이 자들에게 대한 주님의 분노가 어느정도였는지 또 이에 비례하는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하나님보시기에 가증했던것인지 잘 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그러니 34절에 나오는 핍박이 주님의 제자들에게 또 우리에게도 임할것은 당연할것입니다. 이렇게 악한 세상이니 말입니다, 34절은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우리는 지금 미국에서 있기 때문에 정말로 피부에 느꼊지는 핍박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시리아에서 아프리카에서 중국에서 북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 대한 탄압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요전에도 중국에서 교회의 십자가를 철거하다가 마찰이 있던 대형교회의 목사님을 투옥시키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도가 25000명이나 다니는 큰 교회의 영향력있는 목사도 이렇게 핍박을 받는데 다른 목사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형제들이 이런 고난을 당하는데 우리가 때때로 겪는 하나님의 자녀로의 고난은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으 또 35절에서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라고 질책 하십니다.
의인의 피는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이 카인과 아벨의 예에서 잘 나옵니다. 아벨의 피가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 다 기억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심판의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순교자가 뿌린 피가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이라는것이 계시록에 잘 적혀 있습니다.
계시록 6장9,10절은 이렇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악인은 하나님께 참소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의인이라야 하나님의 피로 씻은 자녀들이라야 탐원이 가능합니다. 오늘 순교자들의 피가 아직도 하늘에서 탄원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들의 피가 지상의 악을 도멸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쉬지 않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로 이 땅의 악위에 도래하고야 맙니다.
그러나 사실은 영죽을 우리가 희망을 가짐은 오직 우리 주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우리 죄가 씻음받고 그 공로로 인해 천국의 문이 우리에게 열렸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인중의 의인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뿌리신 보혈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것이 부님의 은혜요 영광입니다. 이로 인해 오늘도 기뻐하시고 악을 경계하시고 하나님께 기도로 탄원하시는 연합의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8/2016 • 17 minutes, 7 seconds
20160306 주일설교 "기도로 고난을 이기신 주님 (정인수 담임 목사님)"
3/7/2016 • 37 minutes, 11 seconds
마태복음 23 : 23-28 (서석훈 목사님)
마태복음 23 : 23-28 (서석훈 목사님)
요근래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바로 페이스북이라는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라는 버튼의 누르는 숫자가 올라가는 것에 매료되어서 아주 자극적인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이 라이크수자를 높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극적이다 못해 위험한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누워있는 자신의 다리위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린다던지 혹은 기차 선로사이에 누워서 자신의 위로 지나가는 기차를 찍고 다 지나간후에 무사하다는 것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린다던지 하는 자신의 신체나 생명의 위협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소셜미디어의 본래의 목적은 사람들끼리의 소통이 목적이었습니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을 엮어 주고 그들의 생각과 소식을 나누게 하는 아주 건전한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셜미디어의 본질이 소통이라면 이것의 형식적인 부분중의 하나가 바로 이 좋아요 버튼 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형식이 본질보다 훨씬 더 중요해져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현상을 일종의 나르시즘-자기애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자아도취적인 면이 이 현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나르시즘이라는 단어가 어디서 유래를 했나하면 나르키소스라는 목동이 있었는데 이 청년이 연못에 비친 자기모습에 그만 반해버려 연못만 쳐다보다 자신의 모습을 만지려 연못에 들어갔다가 죽었다는 전설에서 유래가 된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흥미로운것은 이런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을 심리를 분석해 보면 놀라운것은 이런 경우 극단적인 자기표현을 보이는 사람의 대부분이 자읫기이 현저히 낮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에대해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 낮아서 오히려 그것을 보호하려는 보상심리의 발현으로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오는 바리새파인들을 이런 나르시즘의 관점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면에서 바리새파인들은 매우 분명하게 나르시시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나르시시즘도 역시 본래의 취지와 의미보다는 형식적인 면을 부각시켜서 자신의 본질적인 빈약함을 가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질과 의미대신 형식과 껍데기만 부풀리는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야단치는 부류의 인간들은 서기과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둘은 행태적으로는 아주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그들이 하는 역활에 있어서는 다른 역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기관은 먼저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연구대상은 모세오경입니다. 이 계명들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현대에 있어서는 성서학자들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 당시의 지식인 계층이었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이 율법이 뜻하는 그 의미를 분명하게하고 그 율법들을 사람들이 지킬 수 있도록 해석해 주는 현대의 신학자들의 역활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심지어는 쌀 몇톨까지도 십일조로 나눠 드리는 형식주의의 극단의 모습을 보이는데 겉으로 보기엔 이 사람들보다 더 경건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이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아주 호되게 본질을 망각했다고 정말 더 중요한 율법의 뜻인 정의와 긍휼을 잊어버렸다고 야단을 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를 삼킨다는 표현은 중동지역에서 포도주를 만들때 꼬이는 날파리는 음식안에 들어가면 부정하게 하는 곤충으로 율법이 정하고 있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에서 걸러내도록 율법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정한 것들 중에 가장큰 낙타는 삼켜버린다는 말씀입니다.
경건한척 하지만 재산이 될만한 낙타같은 것은 삼켜버린다는 의미도 될 수 있고 말씀드린대로 정의와 긍휼을 잃어버린 행위를 말씀하신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 분명한 뜻을 우리는 주님께서 드신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경우를 보면 더 분명해 집니다. 그들은 길가에 있는 죽어가는 사람이 곧 죽을것으로 생각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면 안된다는 율법의식하나때문에 사람을 내버려 두고 피해가는 모습말입니다. 율법이 정의와 긍휼을 위해 잇는것이라면 이들은 정말로 잘못된 행위를 하는것이니까요.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화려하지만 껍데기로 채워논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무짝에도 의미가 없는 껍데기로 자신을 치장해 사람들의 존경과 환심을 사려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정말로 지켜야할 계명의 본질을 두가지로 명쾌하게 정리를 해 주십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로 두째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수평적 관계로 정리를 해 주십니다. 이것이 율법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안에 우리의 인생의 의미가 다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본빌적인 의미가 아닌 껍데기를 붙들고 껍데기에 이끄리어 산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자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모르는 자들이었던것입니다. 마치 페이스 북에서 이웃과 소통하는것이 목적이 아니라 좋아요버튼 클릭수자 올라가는데만 관심이 있는 빈약한 자의식의 자기도취를 즐기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계명의 본질을 깨달아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안의 구원의 기쁨이 넘쳐 우리가 감당하는 모든것들에서 기쁨과 영광이 드러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으로 사는 모습에서 껍데기에 집착하는 가짜가 아닌 우리안의 생명의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감당하는 진정한 삶의 모습이 드러나야겠습니다. 또한 섬기는 일에서도 그 기쁨이 드러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3/7/2016 • 13 minutes, 49 seconds
마태복음 23 : 1-12 (김재홍 목사님)
3/5/2016 • 25 minutes, 28 seconds
마태복음 22 : 34-46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22 : 34-46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의 모함을 물리치신후에 이제는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나아 옵니다. 이미 마태복음 12장에서 주님의 사역을 마귀의 힘을 빌어 하는 것이라 모함을 했다 쓴소리를 들어서인지 이번에 이들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자기들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높은 질문으로 찾아 옵니다. 그것은 계명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시대 아주 영향력있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이들이 율법에 정통한데서 나왔습니다. 출신 지파에 관계없이 늘 율법을 연구하면서 특히 어느 율법이 더중요하고 어느것은 덜 중요한지를 따지는 것으로 이들안에서 파도 나뉘고 또 때로는 반목도 하는 그런 지식인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신명기 6장5절 말씀인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와 레위기 19장18절 말씀인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는 말씀을 정확히 들어 대답을 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아주 명확하게 구약의 성경구절을 근거로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바리새 인들도 크게 토를 달 수 가 없이 그저 듣기만 하게되는 권위가 있으신 진리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바리새인들의 대답과도 다르고 또 유대인들의 정통한 가르침과도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약에 있어서는 어느 구절도 하나님사랑과 이웃 사랑을 같이 놓고 가르친 구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이던 사두개 인이던 랍지들의 가르침에는 이웃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사랑의 계명을 지키기위해 이웃사랑은 안지켜도 된다는 핑계나 댔으면 댔을까, 이들에게 이웃사랑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모 사랑하기도 성전에 헌금을 낼 일이 있으면 고르반이라고 하면 안해도 된다고 가르치던 위선을 기억하시면 이해하시기가 쉬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셨습니다. 이 모든 율법과 계명을 종합하면 이 두가지 계명 곧 하나님 사랑하는것과 이웃을 사랑하는것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계명이 어떤것이 먼저고 나중되는것이 있는것이 아니라 둘의 중요성이 똑 같고 이 두 계명을 지키기 위해 나멉지 계명들도 있는것임을 분명히 해 주셨습니다. 또 이 두 계명은 동정의 양면과 같아서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난에서 떼서는 생각할 수 없는것이라는것, 바로 하나님 사랑을 오나성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웃 사랑을 해야하고 이웃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사랑을 해야만 하는 불가분의 현실을 역설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많은 계명중의 하나가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실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하신것은 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것에 대한 또다른 강조이신것입니다.
예수님은 형제중에 가장 작은자, 힘없는 자, 돈없는 자, 여자와 아이들을 하나님자신과 예수님 본인과 동일시해서 생각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에도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은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을 당신의 말씀과 사역가운데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것이 곧 하나님 사랑이신것을 늘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것은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는 하나님 사랑이기도 하다는것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가운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구별되는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시대에 오면 기도 열심히하고 말슴 열심히 보는 경건의 삶의 정의에 실천적인 의미가 더해 집니다. 야고보서 1장27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라고 하시는 것을 볼 수 가 있는것입니다.
야고보사도는 경건에 대해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경건을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는 늘 인지적 관념적 경건에 머물러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실천의 경지에 이른 경건을 늘 말씀 하십니다. 행함이 없는 경건과 믿음은 죽은것이라는 것입니다. 능력의 하나님의 계명은 행함으로 나타나야만 하는것임을 우리는 잊어버리면 않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성은 하나님께 사랑과 은혜를 받고 또 능력을 받아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받은 은혜를 나눠주는것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사랑의 영성이고 또 진정한 영성입니다. 그것이 신약에서 주장하는 관계의 영성이고 섬김의 영성이고 돌봄의 영성이며 바로 사랑의 영성인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웃을 사랑하는것으로 드러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이 없다면 그것은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올바르게 서 있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그리고 그 이웃사랑의 실천은 언제나 나의 삶속에서 어떤 경우라도 복음을 실천하고 전하는것으로 드러나야만 하겠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저 땅끝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실천이고 나눔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돌보고 섬기는 그러한 축복이 언제나 우리교회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교회에 투병하시는 분들중에도 시니어분들은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어제도 심방을 하면서 얼마안되는 구제금을 전달해 드렸더니 그렇게 눈물을 흘리시는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겪었습니다. 교회는 두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건의 기둥이라면 또 다른 하나는 이웃을 사랑하는 관계의 영성의 기둥입니다. 이 둘은 구별할 수 없는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심으로 이둘의 실천을 완성해 주십니다.
우리 아틀란타에 보면 가끔 기러기떼가 날라가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날아갈 때 v자로 날아가는데 그 이유가 이렇게 나를 때 앞에가는 기러기가 만들어 내는 상승기류로 이 뒤에가는 기러기가 힘을 받아 수월하게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 가던 기러기가 힘이 들면 뒤의 기러기와 자리를 바꿔서 힘을 비축하는식으로 한 마리의 낙오함도 없이 가기 위해서 V자형의 대열로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지혜를 우리 연합교회의 교인들은 모두 다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도와주고 낙오하는 사람이 없도록 챙겨주는 진정한 관계의 영성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모두가 만나셔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더욱 닮아가고 하나님께 크신 영광을 돌리시는 모두가 되시오록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4/2016 • 11 minutes, 27 seconds
마태복음 22 : 23-33 (김재홍 목사님)
마태복음 22 : 23-33 (김재홍 목사님)
오늘의 말씀을 보면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주님꼐 나아와 역시 주님을 옭아맬 질문을 하고 있는것을 보게됩니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모세 오경, 창세기, 출래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만을 믿던 유대인의 한 지파로이사야서나 다니엘서에서 말씀하시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들이 질문하던것은 신명기 25:5절 말씀을 근거로 형제가 죽었을때 다른 형제가 그 아내와 결혼을 하는것이 법인데 만약에 부활이 있다면 이 여인은 다른 형제들과 결혼을 한 것이니 간음을 저지른것이 아니냐고 에둘러 주님을 압박하면서 부활을 부정하고 동시에 부활의 믿음을 설파하시던 예수님을 모함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두개인들이 크게 두가지를 모르기 때문에 오해하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였다라고 말씀하실때 πλανάω-플라나오라는 단어를 원어에서는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말은 길을 잃고 헤메는 모습, 또 속아서 바른 정도를 벗어나게되는 모습을 말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이해할때 자신의 얄팍한 지식과 경험으로 창조주하나님을 잣대질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것입니다. 오늘 이 사두개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고 예수님꼐서는 이들이 갈바를 잃고 헤메고 있다고 속고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사야 55:8,9절 말씀을 보면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뛰어난것 같아도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모두의 생각보다도 넓으시고 깊으시고 높으십니다. 바로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인생에 보통 두셋의 자녀를 낳고 많아야 네다섯을 낳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들을 키우는데 얼마나 큰 힘이 들어가고 전력을 다 해야 잘 자랄수 있도록 이끌어 갈 수 있습니까? 또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생각과 아이들의 생각은 얼마나 다릅니까? 아이들의 미숙함을 넘어 부모들이 주의하고 경계하는 것은 얼마나 많으며 삶의 경험으로 자녀에게 조언할 일은 얼마나 많습니까?
고작 몇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는 우리도 이런데 온 인류의 조상때부터 지금까지 만인의 부모되시는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현재만 보더라도 칠십억의 인구의 부모이신것이 아닌가요? 이런 하나님께서 얼마나 넓고 깊고 높은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해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라고 하신것은 우리가 천사가 아님으로 천사가 어떤지 알수가 없듯이 우리가 그 생활을 알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짐작은 가능하겠지만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32절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하시면서 출애굽3:6절을 인용하셔서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먼저 부르시는 하나님이시고 부르시되 ㅅ간자를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며 모세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아직도 하나님안에서 살아있는것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죽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생명의 하나님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숨을 불어넣으시매 인간이 생령이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생명의 주관자이시신 하나님은 살아있는것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속성이 생명이시므로 우리의 모든 기도에 생명으로 응답하시는 줄을 믿게 되시기 축원합니다.
매주 목요일 권산님들과 집사님들과 같이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강하게 인도하심을 체험할 수 가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어는 집사님께서 아파서 병원에 가셨더니 폐에 물이 차 있다는 진단을 받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기도를 하고 위로를 하고 그랬는데 이 주후에 이 분이 어시더니 병원에서 말하기를 그 물혹이 사라졌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연세가 많으셔도 하나님께서는 생명으로 역사하십니다. 그것이 우리 아버지의 성품이시고 속성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소멸이 아니고 죽음이 아닌 생명이신것입니다. 모든 기도에 생명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생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도 아브라함도 야곱도 이삭도 지금 하나님안에서 살아있다고 말씀 하시지 않습니까?
또 사도 바울은 로마서 8:2-6에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시면서 이 말씀은 단순히 육신의 생명만을 두고하신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우치고 영적으로 새생명을 얻게 되는 영적인 새생명을 또 말씀하시는것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새생명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우리가 이 생명으로 말미암아 즐겁고 기쁘고 그리고 또한 이 것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새생명을 누리지 않는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은자가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영역가운데 경제, 건강, 관계의 문제에서도 생명으로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3/2016 • 10 minutes, 29 seconds
마태복음 22 : 15-22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22 : 15-22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의 악의적인 질문에 하나님의 지혜로 대답하시는 우리주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살펴 보아야 할 것은 이번에 나아온것이 바리새파 한 부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헤롯 당원들과 함께 나아 왔습니다. 세상의 악한 자들은 이익이 된다고 하면 언제든지 함께 편을 먹고 자신들의 신념과 믿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걸 볼 수 있는데 바로 오늘 이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그러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평소에는 원수로 지냈습니다. 유대교의 회복을 주장하며 종교정결운동을 펼치던 바리새인들과 에서의 후예인 에돔족속으로 로마제국의 힘을 입어 유대인의 왕이된 헤롯에게 선을 대어서 로마와 헤롯에게 잘 보여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어 살려고하는 헤롯당원들이 원수인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런 원수들이 우리 주님을 모함하고 음모를 꾸며 말의 꼬투리를 잡아 곤경에 빠트리려고 특히 로마제국과 적이 되게하려고 합심을 해서 나아오는것을 봅니다.
이게 악한자들의 행태요 또 마귀를 따르는 자들의 행태입니다. 이와같은것을 또 예수님을 죽이려고 헤롯과 빌라도가 연합한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기록하듯이 그들은 원래 서로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악을 위해서 연합하는데에는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악인의 습성입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살펴볼것은 성도는 칭찬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헤롯당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올 때 예수님을 올립니다 “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우리가 좋은 말을 싫어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좋은 말도 우리가 가려서 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남이 우리에게 지나친 칭찬을 하면 우리는 경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원래 “선줄로 생각하는 자가 조심하라” 를 따라야 하는것입니다.
사탄은 언제든지 우리의 선한 이웃처럼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말로인해 자만하지 말고 그 안에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르는 사탄의 계교를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14:8)”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기뻐하게 해드리는것외에 우리의 살 길이 없으며 이것만이 우리의 진정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이 사단의 공격이 아주 간교한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질문을 다시 보면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이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질문 같은데 아주 치밀하고 고안된 말로만든 덫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자로 몰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직 강력한 군사력과 그 군사력을 유지하기위한 점령지에서 걷는세금으로 세상을 통치하던 로마제국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는 말보다 더 큰 위협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반대로 세금을 내라고 하시면 이것은 유대인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로마의 세금도 과중했고 또 헤롯이 걷어들이는 세금도 무거웠던 이 시대 유대인들은 소득의 거의 절반을 세금을 내고 정말로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방인 황제인 시저에게 세금을 내야 된다고 말하는것은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크게 듣게 될 말이었고 매국노로 몰리게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올무에 걸릴 질문을 들고 이 악한자들이 예수님앞에 나아온것을 봅니다. 오늘 사탄의 성도에 대한 공격도 이렇습니다. 우리 머리로는 답이 없는 공격을 사탄은 가해 옵니다. 우리는 이 사탄의 술수를 알고 사탄의 공격을 우습게 여기면 안됩니다. 우리는 늘 기도로 주도 면밀한 사탄의 공격에 대비를 해야 하는것 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탄을 대적하도록 도우시는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질문이 악한것임을 단번에 아시고 하나님의 지혜로 이 질문에 대답을 하십니다. 오로지 성령 하나님의 지혜로만 우리도 주님과 같이 시험을 이겨 나갈 수 있음을 밑게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고 성령하나님안에서 깨어 있으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사면초가와 같은 빠져갈 길이 없는 시험에서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시고 나아가시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금으로 내는 돈을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이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의 초상이 새겨진 데나리온을 들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물으시기를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주신 답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제3의 대답을 주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물론 이 말씀은 이 동전이 가이사의 것이라 답하는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의 대답에 기인하셨지만 국가의 권력이 절대적인 이 세상의 현실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또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일종의 국가관을 우리에게 보여주신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심오하신 답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와 권세자의 권위를 성도들은 이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것이 아닌한 인정해 주고 이들이 부여하는 의무를 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또 이 정권을 세우신 하나님을 존중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현실을 부인하시지 않고 계시다는것을 우리는 주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예수님꼐서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요구하십니다. 세금은 국가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시민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 지켜야 할 의무들이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또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것 내 이웃을 나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것 그리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것 소득의 일부를 하나님앞에 제물로 바치는것. 또 우리의 생명을 허락하시고 유지시켜주심에 매일매일 감사함으로 주님앞에 나아가는것. 이 모든거을 예수님께서는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려움을 한나님의 지혜로 이겨 내셨습니다. 우리 역시 이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이미 악해 졌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악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또 그 수가 많습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없다면 어떻게ㅐ 살 수 가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도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는 지혜를 알려 주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는 삶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우리를 해하려는 악한세력으로부터 우리 주님께서 허락하신 거룩한 지혜로 세상을 승리 하시면서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3/2/2016 • 13 minutes, 2 seconds
마태복음 22 : 1-14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22 : 1-14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 주신 말슴은 예수님께서 천국을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것에 비유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니몎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천국,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설명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예화의 핵심 메세지는 초청과 거부에 있습니다. 이 잔치에 초청 받은 사람이 있고 또 그 초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3절로 6절을 보면;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 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오늘의 본문을 유의깊게 읽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먼저 왕이 자기 아들의 혼인의 예식을 앞두고 적은 수의 귀빈만 초청 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다는 것이고 또 이 초청을 이 예식에 앞서 아주 오래전에 이미 실행했다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초청장을 많은 사람들에게 발송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초청한 날이 가까와 오면서 다시 종들을 보내기 까지 해서 초청받은 사실과 혼인잔치가 있음을 다시 상기 시켜 준다는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배경을 알 때 오늘의 본문의 왕이 누구이고 왕자가 누구이고 또 종은 누구이며 초청잗은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이 예화의 진짜 의도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더욱 더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초청장을 보내신 왕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아들 왕자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초청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리고 이 혼인 잔치라는 것은 예수님이 주인공 되시는 잔치 그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는 구원의 잔치를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미리 초대 받은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높임을 받으시기 위해서 유대인들을 가장 먼저 택정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예화를 이스라엘민족을 대표하는 제사장들에게 들려주시고 있는 성전 정화의 사건 이후의 일임을 기억한다면 이 먼저 초청 받은 이스라엘 민족 즉 유대인들을 말씀하시는 것임을 확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은 또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초청하신 사실로 확증 됩니다.
그런데 혼인날이 되어서 미리 초청한 이 사람들을 오라고 하니까 핑계를 댑니다. 3절에서 5절을 다시 보시면 나와있듯이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있던 이 혼인의 날에 미리 초대받았던 자들이 더러는 자기 밭으로 일하러 가고 더러는 자기 사업하러 갔다고 되어있습니다. 기가막힌것은 이들중의 어떤이들은 이 종들을 핍박하고 능욕하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초대를 거부하는것으로도 모자라 그 동안 계속 보내어진 선지자들을 능욕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모습은 세례 요한의 죽음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로마의 황제의 권력과 유대의 백성들 그리고 자기가 섬기던 우상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헤롯과 또 인간의 뜻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뒤집어 백성들의 멍에를 만들던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 또 이들을 따르며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해 줄 그 욕심을 채워줄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확실히 자신의 욕심으로 자신의 잘못된 신앙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초대를 거부하던 먼저 초대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분명한 하나님의 구원의 초대앞에서 나는 바쁩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정작 자신의 생명을 살릴 초대를 배척하고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불쌍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누욕에서 부교역자 시절에 담임 목사님꼐서 얼마안되는 교인들을 토요일마다 일일이 전화심방을 하시는것을 늘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지금은 은퇴하신 담임 목사님께서 정말로 공을 들여 열심으로 초대하고 권유하던 젊은 집사님이 한 분 있었는데 이 분이 아무리 초대를 해도 교회에 올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이 사업이 조금만 더 자리를 잡으면 나가겠습니다. 이 일만 마무리 지으면 나가겠습니다. 하고 핑계를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담임 목사님이 광고를 하시는데 이 집사님이 그만 주일날 낙시를 가다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광고를 하시는걸 보고 깜짝 놀란적이 있습니다. 인생 오는 순서는 나이순 이지만 가는 순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젊은 집사님이 먼저 그 길을 가실때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가셨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분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평생 이 분이 거듭남의 간증을 입술로 증거하고 주님을 찬양하는것을 들어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두렵습니까… 또 이분의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안타깝고 괴롭습니까?
그래서 아직도 전도는 제일로 중요한 교회의 사역입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 그,냥 저대로 두면 안되는 많은 이웃들이 있지 않습니까?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역들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되고 구원의 기쁨을 그들도 누릴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는 그 무서운 결과는 7절에 나와있습니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세례요한을 잡아죽인 유대인들이 결국 우리 주님도 십자가에 매달고 그 죄값을 어떻게 치루게 되었는가는 역사가 증언하는 일입니다. 헤롯이 다시 거대하게 지었던 성전이 기원후 70년에 무너지고 유대인들과 공존해 보려던 로마가 전략을 바꾸어 예루살렘을 불태우고 짖 밟습니다. 이 날이후로 유대민족들은 나라를 잃고 이 동네 저동네 이 나라에서 저나라를 떠도는 낭인의 삶을 1948년 다시 이스라엘이 건국되기까지 거의 이천년을 나라없는 백성으로 살게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초대를 거부하고 박해한 자들의 말로는 이렇듯 파멸뿐임을 다시 새겨야 할 것입니다. 생명외에는 죽음뿐이듯 구원의 초대 밖에는 허무와 절망과 죽음뿐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일이 벌어지기 전에 모든 사람들을 구원의 잔치로 초대하고 인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미룰수 있는 사역이 아닌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가 보면 이런 능멸과 거절을 받은 후에 왕이 거리로 종들을 보내 누구나 초청에 응하는 사람들을 잔치에 오게 합니다. 이 사람들은 바로 이방인들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미리 구원의 초대를 받았던 유대인들이 이 구원의 사역에서 수천년간 떨어져 나가게 되고 이 자리를 우리 이방인들이 차지하게 되는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것은 나의 가족이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되는것이 아니고 내 가문에 신앙의 역사가 있었어도 자신의 고백이 없이는 소용이 없습니다. 바로 14절 말씀과 같이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은 것입니다.
또 오늘 예회중에 나오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내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두려운 이야기지만 교회안에는 예복을 입고 나아온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16장 10절에서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수치로 가득한 당신의 백성을 친히 옷을 입히시고 씻기시고 영광으로 두르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이 그러나 이 옷마저도 거부를 하고 다시 행음을 하며 타락을 하는 모습을 에스겔 선지를 통해 이야기 하고 계신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안의 교인은 다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께서 옷입혀주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 안에 하나님이 입혀주신 의의 옷을 벗어버리고 잔치에 나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경고는 이와 같은것입니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담임 목사로써 주일과 주중의 삶이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이것은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 받았다 하며 하나님이 입혀주신 의의 예복을 소흘히 할 수 는 없는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런 사람들에게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던 유대인들도 그 완악함으로 구원의 길 밖에서 이천년간의 수모와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물려 이방백성이었던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아버지의 생명의 길 밖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의 은혜를 지키고 우리주변의 이웃들을 구원의 역사가운데로 인도하는 전도의 사역을 감당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첫째 천국잔치에 초청을 하시는 분들이 되시는것과 두번째 우리 믿는 성도들도 주님의 부르심에 핑계대지 말고 입혀주신 의의 예복에 걸맞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1/2016 • 18 minutes, 29 seconds
마태복음 21 : 33-46 (조무제 목사님)
마태복음 21 : 33-46 (조무제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포도원의 악한 일꾼에 배한 비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는 하나님의 때와 열매맺는 삶에 대해서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기 원합니다.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잘 만들어 놓고 농부들에겟 세를 주고 외국에 갔습니다. 이에 때가 흘러 세를 받으러 종을 보내자 때리고 죽인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이에 참다 자신의 아들을 보냅니다 그러자 농부들은 이에 상속자다 죽이고 우리가 포도원을 차지하자 하여 아들을 죽인다는 예화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포도원 주인이 하나님입니다. 인내하시고 모든것을 제공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 농부들은 그 시대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 또 종교 지도자들이 되겠습니다. 포도원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이 비유속에서는 이스라엘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인의 아들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써 이해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 이야기의 배경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 합니다 왜 이런 대화가 시작 되었을까?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전에 성전에 가셔서 성전정화를 하신 후의 이야기로 마태는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를 입장에서는 예수님꼐서 소동을 일으키신 그 사건 후에 예수님꼐 따져 물으러 간것입니다. 도대체 당신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행하냐고 채근을 하는 상황인것입니다.
이런 제사장들의 질문에 대해 주님께서 세가지 비유로 답을 하셨는데 오느르이 비유가 바로 그 두번째 비유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의 비유를 통해 때에 대해서 말씀하시고도 계신것을 살펴 보길 원합니다.
오늘은 2월 29일입니다. 사년에 한 번 돌아오는 날입니다. 윤년이라고도 하는 오늘은 자연의 시간과 인간이 정한 시간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불가불 인간이 만들어놓은 날입니다. 그래서 생일이 사년에 한 번 돌아오시는 분들도 생기게되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때는 먼저 이런 인간이 정해놓은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말씀하시고 있는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34절은 열매를 거둘 때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때를 즈음해서 우리 주님이 오신것이라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추수철 수확의 계절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종들을 보내신후에 우리 주님이 오신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의미를 분명히 오늘의 예회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오늘의 말슴으로 깨달을 수 있는 또 한가지는 하나님꼐서 축복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어느 시범에 분명히 열매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이 악한 종들과 같이 행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기에 연관지어서 생각 할 수 있는 예화가 이미 나왔던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주님께서 시장하신차에 열매를 찾으셨지만 열매가 없어 저주받아 말라죽은 무화과 나무에 관한 예화, 기억 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 볼 것은 예수님꼐서 무화과를 찾으신 유월절즈음은 무화과 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무화과가 필 계절이 아닌데 무화과를 찾으신것이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거세게 몰아치던 폭풍도 주님을 알아보고 순종하였고 배를 삼킬듯 달려들던 파도도 그러했으며 보리떡 두개와 물고기 다섯마리는 자기들을 불려 오천명을 먹이기까지 순종한일을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열매맺는 계절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꼐서 정하신 열매맺는 때인 카이로스가 훨씬 중요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이 무화과 나무는 절대적인 카이로스의 현현이신 예수님앞에서 그 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그 기가막힌 기회를 놓치고 마지막 기회되신 예수님의 때를 놓쳐 말라죽게 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회로 우리에게 분명한 말세의 경고와 마지막 기회되시는 예수님의 은혜의 의미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자 그리고 오늘의 예화는 그 마지막 때를 몰라보는 인간의 군상의 악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되시는 우리 주님이 우리의 주인의 아들로 오셨을때 농부들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밥아 죽이게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대신 자신들이 하나님의 지으신 나라 이스라엘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차지 하려고 하던 그 나라는 이방인의 손에 떨어지고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구원의 복음은 이방인된 우리들에게 들려지게 됩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자가 먼저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때를 무시한 인간들에게 업한 심판이 이르고 마는것을 볼 수 가 있는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완악한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알 수가 없다는것도 잘 압니다 그래서 성경은 때를 얻던지 못 얻었던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힘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때를 얻던지 못 얻었던지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살아 내는 데 힘써야 겠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임박한 심판을 피하는 법이요, 복받는 길이요, 나중되었던 자로 먼저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선으로 살고 연약한 자에게 하나니므이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요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고아인 서울대 생을 이끌어준 이 주인 아주머니, 사실 가능성이라고는 쌀 알 만큼도 보이지 않는 이 아이에게 가르침을 ㅈ주고 돌보아준 이 아준머니가 저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길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인 때를 얻던지 못얻던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카이로스의 때를 대비하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동기들끼리 술을 마시다가 말이 나왔다.
"야, 근데 너는 군대 안 가냐?" "군대? 가야지."
나는 그리고 서둘러 잔을 들었다. "야, 잔 비었다 잔."
나는 군대를 안 간다.
못 간다고 쓸 수도 있는데, 그렇게 쓰기에는 군대를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가장이다. 엄마아빠는 둘 다 고아라고 했다. 보육원에서 같이 자라고 결혼했다고.
그리고 내가 열두 살 때, 두 분은 버스사고로 돌아가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었을까, 일곱 살짜리 동생과 두 살짜리 동생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새벽엔 배달을 하고, 다섯 평짜리 방에서 셋이 잤다.
학교에서는 장학금도 줬다. 수급자비도 정부에서 줬다.
분유, 기저귀, 대부분 그런 걸 사는데 썼다. 물론 그 때는 지금보다는 쌌다.
그래도 꼬박꼬박 저축도 했다. 한 달에 오만 원, 많은 돈은 아니었다.
사실 그것도 주인집 아줌마 명의였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아줌마가 나를 앉혀두고 말했다.
"너, 대학 갈 거니?"
"아, 일하려고요."
"아니야, 잘 들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 그래서 과외를 하렴."
어린 나이에 몸이 상하면 나중에 더 먹고 살기 힘들다고 했다.
몸도 커서 다섯 평에서 자기도 힘들 텐데, 돈 많이 벌어서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라고.
세상에 착한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이 아줌마 덕에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믿기 어렵게도 이 대학에 붙었다. 물론 기회균등 전형이었지만.
과외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 한 달만에 내 손에 60만원이라는 돈이 들어왔다.
학교에서는 생활비 장학금을 줬다. 정부에서도 아직 지원을 끊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아줌마한테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그리고 동생들과 며칠 전에 아줌마를 찾아갔다.
뭘 사갈까 고민하다가 고구마케이크랑 음료 세트를 양 손에 들고 갔다.
아줌마는 고생했다고 우리 등을 다독여주셨다.
큰동생은 이제 고삼이다. 작은동생은 이제 중학생이 된다.
그렇게 계산하더니 아줌마는 정말 빠르게 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괜히 눈물이 났다. 결국 우리 넷은 울었다.
이 자리를 빌어,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아줌마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저는 이제 졸업을 합니다 아줌마. 다 아줌마 덕분입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
2/29/2016 • 20 minutes, 46 seconds
건강한 감성의 사람으로 성숙해 지십시오
2/29/2016 • 28 minutes, 19 seconds
마태 21:12-22
2/28/2016 • 33 minutes, 51 seconds
마태복음 21 : 1-11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21 : 1-11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우리가 읽은 본문의 일절에 감람산 벳바게라는 지명이 나옵니다. 이 벳바게와 베다니는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러 가시면서 쉬시던 곳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꼐서 습관을 좇아 기도하러 가시던 곳이며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마지막으로 피땀을 흘리시는 기도를 이곳에서 하셨던 곳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시절 나귀는 아주 중요한 교통 수단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나귀를 주님께서 쓰시겠다 하니까 나귀주인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나귀를 달라고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귀를 내어주는데 오늘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2절을 보시면 ”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라고 하십니다. 나귀새끼를 보면 풀어 내게로 가져오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남의것을 그것도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하고 요긴한 것을 강탈하는 것이 아니냐? 의문을 가질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6절에 보시면 제자들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인생에 있어서 어떤 때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절도 보겠습니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예수님의 이 명령은 단순히 타고가실 나귀를 얻기 위한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준비하고 계셨던것은 예루살렘의 입성과 십자가에서의 고난을 예시하는 행진이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게 되면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하셨던 모든 사역의 정점인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것입니다. 이 모든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예비되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슥 9:9)”
예수님이 오시기 500년전에 이미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어떤모습으로 오실지가 예언되어 있었고 오늘의 본문의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의 이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4절은 이 예언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행진이 준비되었음을 알려주는것입니다.
하지만 또 이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앞으로 닥쳐올 고난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아시고 주관하지는 예지의 능력을 보이심으로 제자들에게 다시한번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 주고 계심을 볼 수 있음니다. 나귀주인에 관해 미리 아시고 나귀주인이 당신의 권위에 복종해 나귀를 내어 주실것을 아는것은 바로 하나님의 예지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지의 능력은 시 공간을 초월해 모든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모든것을 꿰뚫어 우리가 하나님앞에 감출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예수님을 세번 부인함도 가롯 유다의 악한 생각도 아시고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실 것도 다 예지 하셨습니다. 또 지금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예배와 찬송을 하는지도 다 아시고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는지 무엇이 필요하신지도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것을 맏길 수 있는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삼절에서 주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여기서 주라는 원어는 ὁ κύριος αὐτῶν – ‘호 쿠리오스 아우톤’ 이라는 말이 쓰이는데 이것은 그들의 주, 곧 여호와 하나님만을 나타낼 때 쓰는 단어로 주님을 지칭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귀는 하나님을 섬기기위해 필요한것이라는것을 나귀의 주인에게 말씀하시고 있는것입니다.
필요하다는 단어는 χρείαν – 크레이안이라는 단어로 쓰고 있습니다. 이 단어에는 필요하다, 부족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나귀가 필요하다. 지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부족한것이 이 나귀다라는 뜻이 있는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께 필요한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사용하시고자 하실때 보잘것 없는 나귀라도 하나님께 부족한것, 하나님께서 필요하신것으로 생각하시고 사용해 주심을 우리는 그저 감사히 여기고 기가막힌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 모든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소유를 쓰시겠다 하는 앞에서 이 나귀의 주인은 다름아닌 이 때를 위해 나귀를 준비해 온 관리인으로의 직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모든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그저 관리인에 불과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 나귀가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안 내어드릴 관리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기회를 놓칠 어리석은 관리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쓰시겠다는것은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하시는것은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신을 도와준것처럼 기억하시고 갚아 주시겠다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가막힌 기회가 어디 있습니까?
또 우리가 생각해 볼것은 이 나귀 한마리를 쓰시려는 계획이 최소 이미 수백년전부터 예언자를 통해서 또 이 나귀주인을 통해서 이뤄질것이 예비 되어 있다면 고작 나귀한마리에 하나님의 그 깊으신 계획이 있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우리모두를 향해 역시 하나님께서 귀한 계획을 갖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이땅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땅에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쓰실 때를 위해 지어지고 태어났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쓰시겠다 할 때 지체 없이 순종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 합니다.
2/26/2016 • 17 minutes, 28 seconds
마태복음 20 : 1-16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20 : 1-16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조금은 어려운 본문입니다. 상식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일꾼이 한 데나리온의 임금을 받는것이 어찌보면 우리에게는 공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을 쓰 마태는 전직이 세리 였습니다. 돈에 대해서 아주 민감한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 분명한 마태가 이 비유에 주목해서 기록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가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관과는 너무나 다른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을 때 주의해야할 핵심은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는 과정이 아니라 마지막에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한 데나리온을 받는 그 순간에 있습니다. 일을 능률있게 했는가도 관심이 아닙니다. 다만 포도원에가서 일하는것과 그 일이 끝나면 무조건 한 데나리온씩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일을 열심히 한사람 태도가 좋은 사람에게 보상이 더 가야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으십니다. 인간의 상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이야기 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배경은 팔레스타인의 포도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그 포도원의 주인으로 비유하여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포도는 9월에 따는데 이 따는시기가 길지않아 이 때는 모든 일손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를 놓치면 포도가 못 쓰게 되고 농사를 망쳐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이 품꾼을 구하러 다닌는 것은 수확의 계절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거리에 나아가 일이 없어 놀고 있는 사람들을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 다섯시, 여러번에 걸쳐 부르게 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이 주인이 모두에게 약속하기를 내가 한 데나리온씩을 임금으로 줄테니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는것입니다. 4절을 보시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에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포도원에 나악 일을 해야 하는 청지기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물질도 시간도 재능도 다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포도원에 가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포도원 주인이 급하게 일꾼들을 고용하면서 시간의 차이가 없이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씩을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8절과 9절을 보면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우리가 산술적으로 생각하면 오전부터 일한자와 마지막 한 시간만 일한 사람과는 차등을 두어 임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시간 일한사람과 하루종일 일한 사람이 같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공평치 않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생각이 다릅니다. 주인은 어찌하여 놀고 있느냐?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와서 일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이 주인은 우리가 허송해버린 시간 잊어버린 시간 나의 과거에 대해서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습니다. 주인에게는 다만 부르심을 받고 그 순간부터 해 질때까지 일하는 그 시간만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한가지 원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그 이전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그 순간 이후가 중요할 뿐입니다. 부르심에 순종한 그 순간 이전은 더 이상 묻지 않으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하나님과의 놀라운 관계가 있습니다. 지난 세월동안 허송했구나 그러나 이제는 와서 일하라 하시는 그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예 하고 제가 가겠습니다하고 대답하는것이 필요합니다. 지난 세월 허송한것을 변명할 필요도 없고 그저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오늘 주의할 점은 임금을 지불할 때에 맨 나중에 온 사람들을 먼저 주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들에게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과 같은 임금을 주는것이었습니다. 이 때 아침온 사람들이 불평과 불만을 터 뜨리는데 이것은 자기가 받을것을 못 받아서 터뜨리는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남이 받은것을 보며 불평과 원망을 터 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배가 아파서 하는 원망이었던 것입니다. 11,12절에 보면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듯 이 사람들은 지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일했는데 왜 나를 한시간 일한 저사람과 같은 임금을 주느냐?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주인은 애초부터 한 데나리온을 약속한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동일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한시간만 일한 일꾼 도 온 종일 일한 사람과 동일한 임금을 받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한 데나리온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고작 한 시간 일을 하고서 어떻게 하루의 임금을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게 된것은 전적으로 주인의 관대함과 그 은혜에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불만을 터뜨리는 자들에게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답변을 보면 알 수 있는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세계관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행한 일이나 시간, 우리의 업적등 공로에 촛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오늘의 비유의 핵심은 이 포도원의 주인에 있습니다. 이 주인의 주권적 의지가 오늘의 핵심입니다. 14절을 보면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나중에 온 이사람에게 이렇게 주늠것은 내 뜻이다 바로 자신의 주권적인 의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의지는 우리를 향한 은혜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 나는 이렇게 늦게 부르셨을까? 왜 그 때 부르지 않으시고 지금 부르시는 걸까? 그 때 부르셨으면 더 좋았을텐데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 하지만 주인이신 하나님이 보실때는 차이가 없습니다. 다 그제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저 언제 나를 불러 주셨든 최선을 다해 부르신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의 의지를 믿고 사역하면 되는 것입니다,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목사로 섬기건 평신도로 섬기건 차이가 없습니다. 귀한 일을 하건 허드렛일을 하건 그것은 내 생각일 뿐 하나님의 은혜의 의지는 우리를 모두 다 똑같은 아버지의 구원의 역사아래로 인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이상 높은 은혜가 없고 그 은혜이상 큰 은혜가 없으며 그 은혜이상 넓고 깊은 절대적인 은혜가 바로 이 한 데나리온의 은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은혜입니다. 이 이상의 은혜를 구하는 것은 헛 됩니다 이 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는 이 은혜에 감사할 뿐 그 외에 할 일이 옶는 오직 이 은혜로 기뻐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으로 사역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24/2016 • 14 minutes, 55 seconds
마태복음 19 : 23-30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19 : 23-30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어제 본문인 부자 청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어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내가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얻겟습니까?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이 청년의 심중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이 청년에게 유도적인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네가 이러이러한 율법을 다 아느냐? 그랬더니 청년은 내가 어렸을때부터 그 모든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고 약간은 건방진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대의 통념이 부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성한일을 통해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결과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렀다는것을 잘 알고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 부자가 된것을 모델로 삼은 믿음이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런 통념과는 정 반대의 말씀을 하시는데 네가 온전하려거든 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네가 가진 모든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하십니다. 온전하려거든이라는 도입의 뜻은 온전치 못하다를 전제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온전해 지려거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율법도 지켜야 하는데 이 청년에게는 그것이 안보인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면 영생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것이라는 예수님께서 영생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생을 구하는 질문에 이 이상 분명할 수 없는 확실한 대답을 주셨음에도 이 젊은 율법사 청년은 재산이 많은 연고로 근심하며 주님을 떠나가게 되고 그 이후로 성경에 다시 등장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심히 걱정하며 떠나는 이 청년의 뒷모습에 예수님께서 아주 놀라우신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이 오늘의 본문 23,24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그것도 낙타가 바늘귀를 들어가듯이 어렵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낙타가 어떻게 개미나 간신히 지나갈만한 바늘귀를 지난갑니까? 못지난 갑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깜짝 놀랍니다 이들은 부자는 선하다는 그 당시의 믿음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렇게 어렵다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를 가능케 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바꾸실 수 가 있기 때문입니다. 낙타도 바늘귀를 지나갈 수 있도록 하시는 전능의 하나님이시라는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를 가난한자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어려운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 말슴에서 주의할 것은 이 부자가 반드시 물질적인 부자를 뜻하는것은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는 마음이 교만한 자를 가리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마음이 한평 땅 가진것 없는 가난한 사람처럼 마음이 겸손하고 그 마음이 가난하다면 그 사람은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부자가 아닌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부자 청년은 일단 물질을 포기할 마음이 없고 또 더더욱 자신의 부유한 마음을 낮출 생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작아지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낙타만큼이난 큰 내마음이 낮아져서 바늘귀도 지나갈 만큼 작아지려면 정말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참여하려는 치열한 절제와 자기부인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절대로 이렇게 할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은혜입니다.
이러자 베드로가 또 늘 그렇듯이 끼어듭니다. 27절에 보시면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것도 버리고 주님을 따라왔다는것을 강조하면서 그 대가가 무엇이 되겠냐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물어보는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 알다시피 베드로는 그 마음에 주님이 왕이 되시면 자기도 한 자리 하려는 출세욕, 권력욕과 자신을 주님앞에서 증명하려는 허영과 교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의 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또 부활하시고 그러고도 제자들앞에 나타나실때 까지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짐으로 마음에 꽉찬 베드로가 뭘 얻겠습니까? 하는 질문에 예수님꼐서는 이렇게 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하리라” 이 말씀을 듣는 베드로를 포한한 제자들의 가슴이 얼마나 뛰었겠습니까? 하지만 이 말씀은 한참후에 베드로가 십자가에서 거꾸로 순교하면서 낮아질대로 낮아진 모습으로 주님앞에 섰을 때나 가능해 질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꼐서는 29절에 또 이렇게 첨언하십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역사는 죽으려면 살고 살려면 죽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구원은 나의 모든것을 포기할 때 진정한 구원이 이뤄질 줄 믿습니다.
자신의 기득궈을 쥐고 있다가 구원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자들에게 주시는 또 다른 경고의 메세지가 3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선배는 먼저 서고 그후에 후배가 나중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통념이 누구에게나 세계적으로 있습니다. 그러면 이 것을 구원의 역사에 적용해 보면 유대민족이 구원에 먼저 들어가고 이방민족은 나중에 들어가던지 못 들어가든지 하는것이 맞을것입니다.
유대 민족에게는 이방인에게 없던 율법선생과 제사장들이 셀수 없을 만큼 많았어도 그 마음에 교만이 가득하여 예수의 도를 부정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이방나라보다도 후에 들어오게되지 않았습니까? 또 거기에다가 예수님께서는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자기 의로 가득한 삶을 살다가 창녀와 세리보다도 나중에 구원에 들어가게 되는 수모를 당하게 됨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먼저되었다고 믿늠 율법 선샌과 교사와 제사장과 서기관들보다도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세리와 창녀들이 천국에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고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이 말슴은 저와 여러분들께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복음에 진전이 없고 주저 앉아 전도도 하지 않고 남을 정죄만 하고 있다면 우리가 먼저된자와 다를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먼저 되었어도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고 더욱더 전도하고 주님의 뜻앞에 나악야만 우리 주님의 세상구원의 복음에 참여해야만 우리가 나중되는 수모를 당하지 않고 또 주님의 영생의 축복을 온전히 받을 수 있을것을 믿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연합의 성도들께서도 결코 자고하지 않고 주님앞에 자신을 전도와 성교와 섬김으로 낯추시며 하나님의 축복의 상급을 놓치는 이 없이 모두 다 받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23/2016 • 16 minutes, 20 seconds
마태복음 19 : 13-22 (정연권 목사님)
마태복음 19 : 13-22 (정연권 목사님)
오늘의 본문에서는 두가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예수님앞에 나아온 어린아이들과 연관된 일화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앞에 나아온 부자 청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로부터 오늘 우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보길 원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기앞에 나아온 사람들을 만나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지위나 부의 소유여하를 막론하고 아니 오히려 없는사람 연약한 사람들을 먼저 만나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데리고 나아온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13,14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에서 보시면 예수님꼐서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아온 사람들이 주님께로 나아온 사람들을 제자들이 꾸짖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권위를 가지고 이런 행위를 제자들이 금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이것이 아주 않좋게 보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어린아이에게 시간을 쓰는것이 시간낭비고 쓸데없는 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런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제자들처럼 권위로 꾸짖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밝히심으로 그들의 행동을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국이 이런 사람의것이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정확하게 어린아이의 어떤점을 들어 말씀하셨는가는 여러가지 설명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보시는 기준은 우리의 기준과는 너무나 달랐고 또 두번째는 예수님꼐서는 연약한 어린아이들도 한명의 인격으로 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귀한 모습을 담은 사람으로 어린아이들을 대해 주셨다는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무엇을 우리에게 말해 주겠습니까? 비록 우리가 다 따라갈 수는 전혀 없겠지만 우리눈의 기준을 따르지 말고 예수님의 기준 그리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우리 이웃들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눈에 연약한 자 비루한 자 혹은 쓸데 없는 자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당신의 형상을 단은 귀한 그릇이요 자녀라는것 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나오는 두번째 일화는 주님 앞에 나아온 부자 청녕의 일화입니다. 또 그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18절과 19절을 보시면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계명을 지키라고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계명들을 보는 청년의 이해는 우리의 이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도 아직까지는 살인한적 없고 간음한 적 없습니다. 거짓말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양심에 크게 걸리며 살 만한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이 청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은 이 모든것을 어릴 때 부터 지키고 살았다고 항변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진짜로 보시고 싶었던것은 이런 문자적인 순종이 아니라 이 안에 감춰져있는 하나님의 진심을 이 청년이 역시 진심으로 속사람과 전심 전력을 다해 지키고 있는지 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청녕이 자신을 돌아볼수 있도록 5가지의 동사로 된 말씀을 주십니다. 21절 말씀을 축약하면 가서, 팔아, 주라, 와서, 따르라의 다섯가지 동사로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청년이 이 말씀을 따르려 보면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았는지가 금방 드러나는것입니다. 자신이 계명을 지켰다 하지만 그것은 문자적인 것이고 자신의 진심 자신이 정말로 의지하고 사랑하는것은 전혀 하나님의 뜻과는 다름이 이 다섯가지 동사로 비추어 드러나게 되는것입니다.
이 청년의 심중을 드러내신 우리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가 심지어는 나 자신까지도 속이고 있을 지라도 주님이 주시는 말씀앞에 서면 우리의 영혼이 잇는 그대로 비춰집니다. 그럴때 부끄럽고 찔림이 있을때 그 말씀을 거부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해 내려놓을 것들을 내려 놓고 주님의 뜻을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 정녕 하늘의 보화가 크게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우리를 열납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안으로 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2/22/2016 • 13 minutes, 9 seconds
마태복음 18 : 21-35 (심우진 목사님)
2/20/2016 • 22 minutes, 4 seconds
마태복음 18 : 12-20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18 : 12-20 (정인수 담임 목사님)
어제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작은자 소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시면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성경을 읽을때 하나님의 뜻이라고 나오는것은 아주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바꿔서 말하면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야 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장기 결석자 태신자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접근을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99마리의 양을 산에 두고가서 한마리를 구하러 가는것을 잘못 생각하면 신자들을 버려두고 가는것처럼 생각 할 수 있는데 이 말씀은 그런것이 아니고 길을 잃지 않는 양들을 말씀하시는것으로 생각하는것이 맞습니다. 목자를 따르고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는 성도의 이미지가 99마리의 양이고 한마리의 양은 그야말로 잃어버린 양 실족한 성도를 이야기 한다고 생각하시는것이 맞습니다.
본문이 말씀하시는대로 잃어버렸던 양을 찾는것은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런 사람들에 관심을 갖는것은 너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와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것은 교회에서 남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흔히 교회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경우에 용서를 해야만 한다고 용서를 공식화해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교회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아니면 범죄하는것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한 아주 중요한 가이드라인을 주시고 계십니다.
15절을 보면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라고 하시고 계십니다. 즉 무조건적인 죄의 용서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것이 아니라 공동체 즉 교회안에서의 범죄는 권고하여서 돌이킬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회개를 전제로 해야한다고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데도 듣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부당한 행위를 고집하고 교회에 해악을 끼치고 자신을 돌이키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취급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고 죄를 돌이키지 않는 경우는 법에 호소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교회라는 공동체에 회개하지 않고 완고하고 해악을 끼치는 죄인을 적당히 덮어서는 안된다는것입니다. 그것은 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제를 지적할 이유와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한 자들에게는 무한대로 문이 열려야 합니다. 절대적인 관용과 수용이 허락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회개한 자들에 대한 용서와 수용의 중요성은 18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말씀은 믿음의 공동체 곧 교회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교회와의 건강한 관계가 곧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에 수용되는것 교회와 바른 관계를 갖는것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공동체의 권위와 능력에 대해서 19절과 2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9: ”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언제나 성격에서 진실로라는 말씀은 중요한 말씀이라는 표시입니다. 합심하여 구하는 기도에 대한 기도를 이 말씀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합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가 되는 기도는 능력의 기도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 납니다.
이번 발족하게 되는 복음주의 연합에 은혜가 큽니다. 이 년전에 복음주의 연합의 비전을 가지게 되는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교단의 문제로 이 교단을 떠나자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것은 올바른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교단과의 관계와 또 그 안에 있는 한인 교회들 그리고 교단에서 제일 큰 연합교회의 관계를 교단에서 나온다고 그냥 정리할 수 있는것이 아니고 특히 우리 한인들에게 결국에는 좋은 영향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점에서 이년간 저와 같이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해 주신 새벽 기도의 성도들이 너무나 자랑 스럽습니다. 저 혼자 기도했으면 복음주의 연합의 비전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난감한 교단의 문제를 놓고 합심해서 저와 같이 기도해 주시던 우리 새벽의 성도들 때문에 복음주의연합이라는 비전을 받게 되었고 이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이 된것은 합심해서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들은 합심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두세사람이라도 합심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세상이 그런 사람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힘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미약한 할머니들, 여인들의 간절한 기도의 강력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놓고 합심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게 살 길입니다.
그럴때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임이라고 다 같은 모임이 아닙니다. 우리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하는 모임이 아니면 주님이 임재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의 임재가 없다면 그것은 헛 된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되신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모이느냐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하시는가가 중요한 것이고 우리가 고민해야할 유일한 문제 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연합의 모든 성도들께서 우리 주님의 이름아래 합심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강력으로 세상을 승리하시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19/2016 • 16 minutes, 15 seconds
마태복음 18 : 1-11(서석훈 목사님)
마태복음 18 : 1-11(서석훈 목사님)
오늘의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삼년이나 주님과 같이 다닌 제자들의 질문의 수준이 그닥 높지 않은것은 어찌보면 실망일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이런 염려가 잘 묻어나오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단 4절까지의 주님의 대답은 괜찮습니다. 이해하기에 어려움도 없고 그럴 수 있겠다는 공감을 끌어내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의 주님의 대답들이십니다. 천국에서 누가 제일 큰것입니까 하는 질문에 실족케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죽는것이 낫다는 너무나 심각한 대답을 해 주십니다.
이것은 천국에 대해 아직도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세상의 기준으로 천국을 이해하려는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염려와 실망으로 정말로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입니다.
먼저 사람들은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남들보다 더 낫고 더 크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사고방식입니다. 그 사고에서 제자들은 주님께 누가 천국에서 큰 자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는 천국의 기준은 세상과 다름을 말씀해 주셔야 했습니다. 4절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세상의 원칙을 따르는 사람들은 결국 세상이 움직이는대로 따라 갑니다. 한때 유행한 드라마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네가 아니라고 하지만 에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네 안의 괴물이 너를 삼텨 버릴것이다” 하는 대사 였습니다. 인생이 결국에는 욕망의 오예로 사로잡혀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욕망들을 누르기 위해 평생을 씨름하던 바울 사도꼐서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하신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욕망의 노예들이 되는 세상의 사람기준과 대척점에 잇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심지어는 삼절에서는 이런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고까지 적고 있지 않습니까?
주석들에서는 이 말씀이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을 말씀하시는것이라고들 해 놓았는데 그런듯 하긴 하지만 백프로 긍정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이들을 잘 관찰해 보니 몇가지 인사이트를 주는 특징이 있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어린아일들은 잘 믿습니다. 의심도 안하고 잘 믿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이것을 잘 따릅니다. 믿으면 믿는대로 합니다. 이것이 어린아이들의 특성입니다. 그리고 또 절대적으로 의존적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다는것은 말씀을 믿고 잘 따르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들을 가르키는것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요?
누가복음에는 99마리의 양과 한마리 잃어버린 양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한 목자는 99마리의 양을 내버려둔 채 로 한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섭니다.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한마리 때문에 99마리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에서는 언제나 99마리가 한마리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숫자로 생각하면 그렇지만 생명으로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한마리의 생명이라도 도저히 소흘히 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 생명인 것입니다. 바로 이 생명의 사고가 천국의 사고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7절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18: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이 말씀은 남을 상하게 하지말고 삶으로 이웃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배려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처럼 만약 크기와 숫자를 기준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살기 시작하면 삶에서 남을 위한 배려가 사라집니다. 상처주고 괴롭히고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 당연히 일어납니다.
그러나 생며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기 시작하면 돈보다, 규모보다, 지위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소중해 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웃안에 있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는 일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의를 차리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일은 이런 배려에서 시작하고 배려를 하게 되면 자신의 욕심을 누를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남보다 높아지는것보다 내가 돈을 더 버는 것 보다 내가 이름을 날리는 것보다 내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으로 그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 더 중요해 지는 배려의 마음 그리고 그 영혼을 사랑하고 그 생명을 소중히 여기게 되는 생명의 마음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마릇ㅁ을 들으시는 모든 연합의 성도들께서는 이 사랑과 생명의 마음을 심령에 품으시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18/2016 • 13 minutes, 24 seconds
마태복음 17 : 14-27(정인수 담임 목사님)
한번은 목회를 하는 목사님들에게 설문서를 돌렸습니다. 묻기를 ‘당신의 기도 생활을 방해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하는 설문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대다수의 목사님들이 말 하기를 교회의 많은 일들이 기도생활을 방해하는 원인이라고 적었습니다. 기도역시 교회의 사역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교회마다 회의와 프로그램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기도는 늘 사역의 뒷구석에 방치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분주한 목회자, 분주한 교인들이 잊어버리는것 그것이 바로 기도 생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것은 분주한 생활로 기도를 소흘히하게 되는것이 바로 사탄이 원하는 것이며 교회와 교인들을 공격하는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힘으로 살 것인가 하나님의 힘으로 살것인가의 문제가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 결정 됩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아말렉과 이스라엘이 싸울 떄 싸우는 것은 여호수아였지만 전쟁의 승패는 산 꼭대기에서 기도하는 모세에 달려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승리하고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승리 하는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많은 문제들 아니 모든 문제들은 기도로 다룰때만이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옥에 갖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그렇 때 옥 문이 열리고 사도 베드로가 자유롭게 되는것을 그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꼼짝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힐 때 어떻게 해결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기도로 해결 할 수 있음을 믿게 되시기를 축워합니다.
셀교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랄프 네이버박사가 주님이 세우기 원했던 교회를 세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기도에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고 둘 째는 교회의 모든 리더쉽들이 기도의 영향력을 배우고 실천하라 세 번째는 전 교회를 기도의 능력이 살아있는 기도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예수니몎서 제자들과 변화산을 내려오는데 귀신들려 거품을 물고 있는 아이와 어쩔줄 모르는 제자들과 아이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이를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꾸짖으시며 아이를 고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의 제목을 정해 보자면 아마도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위기도 정치적 문제도 아닙니다. 그것은 현대의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 버리고 산다는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은과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것 걷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잃어나 걸으라 했던 초대 교회에는 은과금은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살아 운동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들은 은과금만 많아지고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 즉 능력이 없는것은 아닌지요?
오늘 본문의 16절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아주 비극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자들이라는 말을 빼고 교회에 라고 말을 바꾸어도 작금의 세태에는 전혀 이상 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현대 교회에는 병을 고치는 능력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사라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실때 가장 먼저 주신것은 바로 약한것을 고치시는 능력이었습니다. 다른것을 가르쳐 주신것이 아니라 능력을 나눠주셨습니다. 교회는 영적 전쟁을 치루는 곳입니다. 교회는 귀신을 쫓아내고 세상의 권력을 정복하는 정사를 주님께서 허락하신 곳입니다. 그 권세가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능력을 사용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모든 능력은 우리를 자신이 이 세상모든 권세를 갖고 있는것처럼 속이고 겁주는 사탄의 계괴를 분쇄하는데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사용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교회에게 주신것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또 사용해야만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치유해야만 합니다.
19절을 한 번 보겠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왜 우리는 능력이 없습니까? 왜 우리는 안 됩니까? 우리는 왜 능력있는 기도꾼이 되지 못합니까? 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데 능력이 드러나지 않고 변화가 없습니까? 여기에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라고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지만 우리의 삶의 전체를 주님께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것입니다. 우리의 사업을 우리의 가정을 우리의 인생의 계획을 주님의 뜻에 맞추지 못하고 또 그럴 엄두도 내지 않기 때문에 능력이 없다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이에서 더 나가 사탄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정복하는능력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정복할 권세가 나와 교회에게 주어졌다는 그 사실은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말슴을 살펴보면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러한 류가 나갈 수 없다고 적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외에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도 없이는 나의 문제가 해결 되지 않습니다. 기도가 없이는 나의 주변의 변화가 없습니다.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됩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과 연결 됩니다. 내 인생을 내 가정을 내 사업을 내 자식을 하나님의 권능과 연결 시키는 능력 그것이 기도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연합의 성도들은 기도의 능력을 깨닫고 사용하시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시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17/2016 • 14 minutes, 24 seconds
마태복음 16 : 13-28(정선기 목사님)
마태복음 16 : 13-28 (정선기 목사님)
오늘의 본문에는 세가지의 의미있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 이름을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번째이름은 빌립보 가이사랴입니다. 로마황제에게 하사받은 이 땅을 헤롯의 아들 빌립이 수도로 정하면서 로마황제를 기린다는 의미의 가이사랴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과 함께 넣고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신전들을 세운곳입니다.
이 곳은 세상의 권력이 힘과 명예와 모든것의 기준이 곳이었습니다. 그 정점인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곳이었고 그것도 신중의 신으로 숭배하는 황제숭배의 유대땅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땅에서 황제가 하나님으로 숭배받는 통탄할 땅이었습니다. 그 이름 가이사랴 빌립보가 오늘 본문의 첫번째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어떤 사람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름은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로마 황제를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땅에서 예수님께서 세상이 당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물어보신 것은 굉장히 의미 심장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이런저런 대답을 합니다 결국 세상이 보기에 예수님은 선지자라는 대답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또 물어 보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랴 생각하느냐?
왜 여기서 주님께서 이 질문을 하시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첫째 이곳이 황제를 섬기는곳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제 곧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당신의 사역의 최종 목적인 주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사역을 감당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곧 닥쳐올 시험과 연단에서 왕으로 구세주로 우리 주님의 정체성을 모르고는 제자들이 시험과 고난을 견딜 재간이 없으므로 바로 이 곳에서 확인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대답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가 정확하게 주는 그리스도 곧 기름부으신자 왕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을 하는것입니다. 로마의 황제가 하나님의 아들로 숭상을 받는 바로 그 땅에서 베드로는 그것들은 거짓이고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세상의 권력을 숭배하는 심장에서 베드로의 입을 통해 선포하신 자신의 정체성입니다. 이 이름이 오늘의 본문에서 나오는 두 번쩨의 이름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우리 믿는자들의 신앙의 기본이 되는 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누군지 고백하는 이 고백을 한 베드로는 믿는자들을 대표하는 오늘의 본문의 두번째 이름입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은 자신의 지혜와 통찰로 한 고백이 아닙니다. 이런 진리를 깨닫는 고백은 오로지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한것임을 믿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시몬에게 예수님꼐서 새로 주신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바위를 뜻합니다. 그리고 준님께서는 이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교회를 위한 반석으로 이 이름을 쓰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에 보면 주님께서 베드로라는 이름을 통해 크신 약속을 우리에게 주시고 계신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귀의 권세를 깨고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마귀의 권세는 일견 큽니다, 오늘 말씀의 무대인 가이사랴 빌립보의 로마황제 신전만 봐도 그 위력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마귀의 권세를 깨고 교회가 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 18절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 교회를 주님께서 손수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우는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와 같은 신앙의 고백을 하는 세상의 왕이 나의 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시라 고백하는 자들의 고백위에 당신의 교회를 직접 세우시겠다고 고백을 하고 계시는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열쇠는 베드로 개인에개 주어진 열쇠가 아니라 베드로와 똑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자 선물인것입니다.
오늘의 마ㅣㄹ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도 바로 이와같은 신앙의 고백을 통해 천국의 열쇠를 신앙의 고백의 특권과 선물로 받으시는 모든 분이 되시기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15/2016 • 18 minutes, 4 seconds
마태6:29-34: 김명룡 총장님
마태6:29-34: 김명룡 총장님
(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2/13/2016 • 29 minutes, 57 seconds
마태복음 15 : 21-28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15 : 21-28 (정인수 담임 목사님)
어제 우리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비난하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말씀 속에서 살폈습니다. 그들은 해위로는 그럴듯하고 말로도 하나님을 ㄷ잘 섬겼고 또 사회적 신분으로도 지도자들이었지만 이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내면의 진정성이 없었음을 알 수 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계명에 담긴 아버지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이 보기에 좋은 자신들이 이해하기 좋은 사람들의 계명을 만들고 따르고 또 그 계명으로 하나님을 믿고싶어하는 사람들을 핍박까지 하는 모습을 잘 봤습니다.
오늘은 이와는 정반대의 이물이 나옵니다. 믿음에 대해서는 인생을 살면서 들어본 적도 없고 사회적으로 멸시 천대를 받던 이방 여인이 나와서 어제의 종교인들과는 정 반대의 진정한 믿음이 어떠한 것인가 보여줍니다. 이 두사건이 연달아 나오는 것은 분명한 대비를 통해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얼마나 종교인들의 믿음이 가식적이며 악위적인것인지 보여주려는 사도 마태의 집필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종종 제자들을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며 꾸짖으시던것을 우리는 기억 합니다. 자신의 삶을 바쳐 주님을 쫓아가던 제자들도 믿음으로 칭찬받지 못하는데 이 믿음으로 칭찬을 들은 두명의 이방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로마 백부장과 오늘의 본문의 가나안 여인입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하시며 크게 칭찬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사람이 아님 이 여인은 신앙의 배경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28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말은 극상의 칭찬이십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의 딸이 나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앞에 나아오는 이유들은 다 제각각입니다. 너뮤도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것 건강을 구하는것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제목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기도의 제목은 가장 간절하게 기도의 자리로 나오게 붙드는 기도의 제목은 어머니의 자식을 향항 기도일것입니다. 가장 간절한 마음인 자식을 향한 마음 그 간절한 기도로 예수님을 믿게 된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여인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이방인이고 천대받는 여인이었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맘에 신분의 차이가 어디있고 이방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자식을 생각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온 이 여인이 주님앞에 울부짖습니다.
15: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려서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때 이 어머니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오늘 이 여인에게 기적이 일어난 이유는 이 여인의 자신의 딸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어떤 멸시와 수모와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신의 자녀를 위해 나아가겠다는 그 어머니의 사랑이 이 기적의 뒤에 있다는 것입니다.
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그런데 이상한것은 이렇게 간절히 외치는 여인의 요구에 우리 주님께서는 아무 응답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너무나 쌀쌀맞게 이 불쌍한 여인에게 응대를 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제자들이 이 여인의 울부짖음에 괴로움을 토로하는 지경까지 주님꼐서는 이 여인을 홀대 하십니다. 여기에는 주님의 의도가 있으십니다. 여인을 향한 냉대에는 주님께서 보시고자하는 목적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심지어 위의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이여인을 개라고까지 칭하시며 이 여인에게 박정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이 주님의 이 말을 탁 받아서 27절에 대답합니다.
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개라고까지 무르시면서 극단적으로 몰아세우십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그 시대 유대인들이 갖고있던 유대인은 선민이고 이방인은 개와 같고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도 그렇다는 구원관과 똑 같은 것을 알면 유대인들과 똑같이 구시는 주님이 더 야속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 여인을 믿음으로 이끄시는 일종의 테스트 입니다. 과연 이 여인이 어떻게 반응하나 주님꼐서 지켜보고 계셨던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여러가지 시험을 맞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믿음의 반응을 하는가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유혹하는 시험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자 하시는 시험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주님의 믿음의 테스트에 통과를 합니다. 주님의 차가운 침묵속에서도 이 여인은 물러남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듣기가 괴로와 주님에게 해 결해 달라고 대신 간청할 지경까지 이 여인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기도의 응답이 없는 시험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우리는 쉽게 절망하곤 합니다. 이 기도의 응답이 왜 빨리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자라서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는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실족하고 심지어는 믿음이 연약해 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것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침묵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변치않고 신뢰하는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침묵인 의도적인 연단과 성숙의 기회가 될 때가 있음을 꺠달아야 합니다. 또 그럴때 일수록 우리는 끈질기게 주님을 구해야 합니다. 거절같은 준미의 침묵뒤에는 주님의 미소가 숨어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을 향해 주님의 은혜를 향한 도전을 끊지 않았던 이 여인의 믿음을 우리는 살펴볼 이유가 있습니다.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이 여인의 대답은 얼마나 재치있고 유머가 넘치는 대답인지요. 또 얼마나 큰 믿음을 품고 있는 태도입니까? 자기의 모든 자존심을 다 내려 놨습니다. 계속대는 냉대에도 이 여인은 예수님이 주인임을 계속해서 고백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고백하며 나아갑니다. 이방인에게도 부스러기같은 은혜가 임한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나아갑니다. 전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작은것일지라도 감사하겠다는 겸손의 마음으로 나아가고 주님을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이 와도 말씀을 굳게 붇드는 견고함이 있는줄을 믿습니다.
어떠한 말씀이라도 주님이 주시면 부스러기의 은혜라도 그 말씀을 받겠습니다 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나갑니다. 그런 부스러기까지도 소중히 여길 만큼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고 나갑니다. 부스러기라도 상관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고 나아가는 이 여인의 믿음앞에 주님은 부스러기의 은혜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살아계신 떡이신 우리 주님꼐서는 자신을 온전히 우리에게 주십니다 주님의 은혜가운데에는 부스러기가 없습니다. 이 여인이 받은 은혜도 완전한 전체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실망없는 믿음앞에 기적이 일어 납니다 그 딸이 즉시 나음을 입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이 이 여인의 믿음을 더욱 높이시고 또 높여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듣고 배우고 따라가게 하시는 믿음의 조상이 되는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이 이를 통해 드러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여인의 믿음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어떤 믿음의 시험 앞에서도 우리 주님의 합격을 받는 귀한 연합의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12/2016 • 14 minutes, 48 seconds
마태복음 15 : 1-20 (조근상 목사님)
마태복음 15 : 1-20 (조근상 목사님)
지금 우리가 읽고 묵상하는 마태복음은 28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장부터 11장까지는 예수님의 능력, 예쑤님을 왕으로 인정하는것이 주제로 나오고 여기에서 드러나는 모습들은 주로 예수님의 사역의 영광스런 모습을 다룹니다. 하지만 12장 부터는 말씀의 색깔이 바뀝니다. 본격적으로 원수 마귀가 사람들을 충동해서 예수님을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고남을 주기 시작하고 음모가 시작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15장에서는 이런 일련의 핍박의 사건 장로들의 정결법을 다루는 사건 중에 과연 무엇이 우리의 본질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십니다. 사람은 깔끔하게 살기를 원하고 규칙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룰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본질은 아닙니다 우리의 본질은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것이 우리의 진정한 본질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받는 교육은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서 어떤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우리를 제한하는 박스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를 제한하는 틀이 되는 것입니다.
15: 11,12: 그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열심히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서 매려옵니다. 그러고는 본질적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문제로 삼고나온것이 제자들이 손을 씾지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로 제자들을 힐난하고 예수님을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식과 규율은 무엇을 위해 존제하는가? 본질과 내용을 담기위해 존재합니다. 규칙을 위한 규칙 내용을 오히려 죽이는 형식은 우리가 정말 피해야 할 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과연 이것이 본질적인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왜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느냐며 따지고 나옵니다. 자기들이 지키던 형식을 왜 깨느냐?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고 물으십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이라는 명분으로 본질을 헛되게 하느냐? 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4절에서 6절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는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본질인데 너희는 고르반이라는 형식을 위해 부모공경의 하나님의 법을 깨느냐고 물으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생각이 근본부터 잘못되어 있음을 밝혀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내려오지마 목사가 있다고 합니다. 강대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할 때만 괜찮은 목사를 이야기 합니다. 삶의 모습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강대상에서 안 내려왔으면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나가지마 성도가 있답니다. 교회안에서는 그래도 잘 사는것 같은데 교회 밖으로 나가면 삶이 엉망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농담같은 말이 이해가 가는것이 이민 사회의 수 많은 사기사건을 보면 그 많은 사기꾼들 중에 직분을 안 가진 사람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직분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지 다들 교회를 나가고 교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인경우가 대부분이라는것입니다.
이런 삶은 본질과 형식이 뒤집힌 삶입니다. 그 삶에서 본질과 형식이 충돌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은 가짜인 삶입니다. 연기하는 삶인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20절까지의 말씀에서 우리의 마음의 문제를 다루 십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문제라고 지적하시는 것은 이런 본질적인것을 회복해야 한다는것과 우리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연합의 성도들 께서는 이런 본질과 형식의 충돌이 우리 삶속ㅇ네 있음을 깨달아 진정한 본질이신 하나님께로 회귀하시는 귀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11/2016 • 15 minutes, 19 seconds
마태복음 14 : 22-36(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14 : 22-36(정인수 담임 목사님)
기독교는 이적과 기사가 넘쳐납니다. 그런데 이들 이적과 기사가 세상에서 나타나는 다른 경이로운일들과 비교하면 아주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이적과 기사는 이 적과 기사가 중요한것이기 보다는 이를 통해 전달되는 메세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적은 볼거리에서 그쳐버리고 만다면 성경의 이적과 기사는 특히 신약성경의 이적과 기사는 우리 주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하나님되시는 주님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 이적과 기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경배하게 하는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13절로21절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사건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 후에 사람들은 우리 주님을 왕으로 세우기 원하게 됩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이 장면을 다둘때 세상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시도하는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는 이장면에서 다른것에 집중을 하는데 그건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후에 사람들로부터 떠나가서 산에올라가셔서 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적이 일어났고 세상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칭송하고 왕으로 모시기를 원합니다. 이럴떼 예수님께서는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마음을 쓰시지 않고 산에 올라가 다시 하나님의 뜻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큰 역사가 일어난 후 얼마나 많은 유혹과 시험이 찾아 옵니까?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새 성전을 지은 후에 분란에 휩싸이게 되는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것을 아시고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군중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오르시기 전에 미리 제자들을 당신이 사역하러 가실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에게 풍랑이라는 시험이 찾아 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물위로 걸으셔서 제자들에게 가시는 사건이 오늘 기록된 사건입니다.
흥미로운것은 이미 마태복음 8장에서 한번 풍랑에 제자들이 빠질뻔 한 사건에서 예수님께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고 제자들을 구해주신 사건이 나온다는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기록에서 예수님은 전혀 그런 액션을 취하지 않으시고 계십니다. 그저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시고 베드로와 대화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차이가 있다는것은 분명히 이 안에 주님께서 전하시고자 하시는 메세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여기에는 그 정도 풍랑으로는 너희들이 해를 입지 않는다는 주님의 확신이 있는것입니다. 이미 풍랑을 해결 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으니 너희도 알아야 한다는 마음도 있으십니다. 거기에 비춰보면 우리는 참 걱정을 많이하고 삽니다. 더더욱 이민자들은 더 그렇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사업에 실패하는것은 아닌가? 내가 정말 비참하게 되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삽니다.
우리에게 풍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파도가 덮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얘들아 그 정도로 너희가 죽지 않는다! 걱정 말아라!는 것입니다. 조그만 일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풍랑이 주님의 발 아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로 앞으로도 잘 지낼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베드로의 행위를 보게 되면 우리는 믿음의 본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사건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위를 걸어 풍랑 사이로 호수위를 걸어오시는 그리고 자신의 제자인 베드로도 물위를 걷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결코 인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자연을 컨트롤 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출발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성에 우리의 신앙이 기초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풍랑가운데 겁먹고 있는 제자들에게 가셔서 내니 걱정하지 날라고 하십니다. It is I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이것은 주님의 하나님 되심의 선포입니다. 바로 I am who I am 의 선포를 여기서 제자들에게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원어로는 ἐγώ εἰμι-에고 에이미 로 표현된 이 말은 바로 자신의 하나님되심의 선포인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되시며 또 세상 모든것을 다시리시는 하나님이 되신다는 정체성이 바로 여기에 잘 나타나 있는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믿음이 출발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베드로가 물위를 걷기전에는 풍랑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물위를 걸은후에는 풍랑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다 바람을 본것은 베드로였습니다, 바로 베드로가 스스로 불신앙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베드로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꼐서 배드로를 꾸짖습니다 “믿음이 작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다혈덕이고 충동적인 베드로의 기복이 큰 베드로의 믿음을 꾸짖습니다. 이미 모든 문제점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는데 스스로 다시 바람을 보고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는 문제있는 자세를 보인것입니다.
믿음의 승리를 얻은 후 꼐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스스로 문제를 보고 문제가 해결되기전의 태도로 올아가 버리는 어리석은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베드로의 문제는 이미 해결 되었습니다. 새로 뎦쳐오는 파도도 없고 오히려 주님을 따라 물위를 걷고 있던 그가 다시 문제로 들어갈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뒤돌아 보는 자세는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예전의 문제를 향해 다시 돌아 가면 안됩니다. 이제 예전의 나는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 처리 되었습니다. 그것을 믿고 나아갈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물위를 걸을 수 있고 풍랑도 사라지게 됨을 믿고 나아가시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10/2016 • 15 minutes, 5 seconds
마태복음 14 : 13-21(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14 : 13-21(정인수 담임 목사님)
예수님께서 지상의 공생애 사역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것은 사람을 키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양육하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따라 살고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훈련의 방법으로 주님의 모든 사역의 장소에 제자들을 동행시키셔서 예수님께서 사역하기는 모든것을 보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든 곳에 데리고 다니신것은 그 장소와 시점에 특별히 임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이 일어나는 그 모든 장소와 시점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때 그 안에서 깨달을 수 있는 주님의 깊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베스다 들판에 주님을 보러 나아온 수많은 무리들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마태 14: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는곳을 본문은 빈들이라고 말합니다 원어로는 ἔρημος-에레모스 광야라는 뜻 입니다. 어떤 번역은 광야를 고독한 곳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고립무원의 땅에서 느끼는 그 감정이 바로 고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 결핍이 많은 곳,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곳 그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빈들은 나의 가진 모든것이 바닥이 난곳입니다. 나의 영혼에 각성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나에게 깨져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빈들에서 우리를 부리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광야에서 하나님앞에 겸손해지고 그래서 지존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관야에 서있는 수많은 무리를 보고 마음에 불쌍히 여기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여기서 불쌍히 여기시다는 원어는 σπλαγχνίζομαι-스플랑크니조마이 라는 말로 창자가 끊어지는듯한 고통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꼐서 절망과 좌절로 그들의 관야에 서있는 백성들을 보시고 애간장이 끊어지는듯한 아픔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시며 주님의 긍휼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기적은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에서 시작 됩니다. 기적은 언제나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심으로 시작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기적을 일으키기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기적으로 역사하시는것을 보시기 원한다면, 우리안에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 또 나의 가정이 정말 치유되기를 원한다면 나의 고집과 생각을 내려놓고 나의 가족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이 우리 안의 작은 불씨가 되어 그것이 기적의 파동을 일으킬 줄로 믿습니다.
인도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는 서구의 가장 큰 병으로 자신을 원하고 사랑하고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몸의 병은 치유할 수 있지만 고독과 절망의 병은 오직 사랑으로만 치유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사랑의 도전을 하십니다.
에이미 카마이클-Amy Carmichael 이라는 기도의 작가는 사랑없이 줄 수 있지만 주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는 금언을 남겼습니다. 사라은 주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병문안을 많이 가지만 그 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아픈 성도들을 정말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작지만 진심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서 안수하고 기도하면 거기에 바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랑의 마음으로 모두에게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사랑의 마음으로 나악ㄹ 수 있겠습니까?
마태14: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말씀은 너희들이 책임지라는 말씀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제자들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에서 보면 빌립의 계산으로는 200 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것을 주라고 명하셨고 여기에 자신의 계산을 앞세웠던 빌립은 교회사에서 불신앙의 아이콘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도 이들과 같이 부족한 광야의 삶을 사는 백성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생며의 양식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고난받는자 어려운 자들에게 공금을 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 우리들은 사랑의 선교를 해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치유의 은총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로 마을에가 스스로 먹을것을 구하게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처럼 비 현실적인 해결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갈것 없다 너희가 먹을것을 주라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가진것을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우리가 가진것은 어린 소녕이 가진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덩이라고 항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이 놓치고 있었던것은 이들과 같이 하고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모든것을 지으시고 충만하게 이루신 주님앞에 부족이란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꼐서는 그 떡과 물고기를 받아 축복하시고 나누어 주십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작고 보잘것 없는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왜 내가 너희와 동행하는것을 알지 못하느냐! 다만 너희가 가진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우리의 작은것이라도 받아 쓰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것을 드리면 됩니다.
우리가 선교를 하지만 그 큰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 깔레문양하나 돕는다고 어떻게 아프리카가 구원이 되겠느냐? 니카라과의 작은 선교세터 하나를 세운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말씀과 같이 너희의 작은것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너희가 가지고 있는것을 내게 가지고 오면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내가 한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 드리면 됩니다. 주님! 제가 지금 오불밖에 없습니다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오불을 드리면 됩니다!
이번에 니카라과 선교를 갔을때 처음 시작은 유치원 교실 하나로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0000명의 인원이 모이는 집회를 하고 500명의 목회자가 모이는 집회를 할 수 있는 큰 선교의 기회로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보기에 너무 미약해도 주님앞에 진실되게 드리는 작은것에 늘 기적이 뒤따르는 줄로 믿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허락하신것들 털어서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 재물도 시간도 헌신도 기도도 다 주님 주신것들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줄 믿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럴때 하나님의 빈드르이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것입니다. 교회도 마찬 가집니다. 자근 교회들이 엄청난 선교의 사역을 시간이 흐른 후에 감당 합니다. 그들은 이 당의 궁핍함에 영혼의 핍절함에 책임을 갖고 이들을 불쌍히 여겨 자기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리는 순종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요한 복음은 이 보리떡과 물고기가 어린 소년의 점심이었다고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우리의 가진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에 감사할 때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드러납니다. 작은것을 드리지만 큰 기쁨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작은것이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선교하고 헌싱 할 때 우리의 것을 드릴때 하나님의 기적이 언제나 우리안에 넘치도록 일어날 줄을 믿으며 그러한 역사가 메세지를 듣는 모든 성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9/2016 • 15 minutes, 9 seconds
마태복음 14 : 1-12(이성혜 목사님)
마태복음 14 : 1-12(이성혜 목사님)
虎死留皮 人死留名-호사유피 인사유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 끝나는것 같고 다 사라지는 것 같지만 그가 살아서 보여준 행적들로 기억되는것이 분명히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헤롯왕은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연정을 품게되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헤로디아와 결혼을 했습니다.
상식으로 생각해 봐도 말이 안되고 또 율법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왕에게 이 일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을때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그 일이 옳지 못하다고 비판을 합니다.
그러자 헤롯은 오히려 세례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고 자신의 생일 잔치 날에 목을베어 세례요한을 죽여버리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예비하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치던 위대한 선지자의 삶을 불꽃같이 마감하게 됩니다.
헤롯은 헤로디아에게서 안목의 즐거움을 탐하고 또 주변사람의 평판을 탐하던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리석음은 그가 허튼 맹세를 하게하고 또 그 맹세에 매여 의로운 선지자를 살해하도록 이끌고 맙니다.
허영과 교만 체면으로 말미암아 불의를 선택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헤롯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듯고 내뱉은 말은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는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어리석게도 그가 예수님을 찾았다던지 말씀을 들으려 했다던지 하는 기록이 없습니다.
헤롯의 판단기준은 사람들의 이목이었습니다. 오로지 남의 이목과 환심을 얻는데만 관심이 있었던 자가 헤롯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예수그리스도의 소문을 듣고 생명으로 나아온 또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로 들어온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믿음의 사람들이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침공하기전에 나아온 정탐꾼을 목숨을 걸고 숨겨준 기생 라합이 있습니다. 이 여인이 자신이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 이유를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부르실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보고 마음이 녹았다고 말하고 있는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나아온 기생 라합은 비천한 신분이었음에도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종으로 팔려간 미약한 인생을 쓰셔서 애굽이 7년 가뭄에 대비하게 하시고 또 그를 통해 주변 민족들도 구원을 받게되는 사건을 요셉의 경우로 기록하시고 있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왕조사대에 이르도록 총리에 세워집니다. 그가 높은 영광에 있을때 모함으로 다님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에 던져지게 되었으나 말쩡히 걸어 나왔을 때 느부갓네살은 그들에게 외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이방인 왕의 입술에서 이들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일이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번 니카라과 선교에서도 띠삐따빠시의 시장이 집회에 와서 온전히 참여하다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이적이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식이 불신의 권력자를 바꾼 것입니다. 그를 통해 이 도시에 퍼지게 될 복음의 역사를 기대해 봅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 하나님의 역사의 소문을 듣고 아니면 역사하심을 보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들의 믿음의 반응이 성경에 기록된것입니다. 이들의 그러한 인생이 하나님앞에 기록되어 세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어떻습니까? 성경에 기록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까? 복음의 소문을 듣고도 반응하지 않은 인물 심지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그 이적 가운데 거했으면서도 또 게다가 이 일이 범상한 일이 아님을 느꼈음에도 자기 보기에 더 좋은 일을 쫓아간 어리석은 인생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소문으로 부르시지 않으십니다. 말씀을 주셨고 성령하나님의 내주함으로 그 분의 우리안에서의 역동함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동역자로 부르시는 성령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 하시겠습니까?
성경과 교회의 역사는 수 많은 믿음의 성인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 조차도 하나님은 기억 하시고 계십니다.
중요한것은 으로운 선지자 요한도 기억 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라 주위의 평판에 자신의 인생을 맡겼던 헤롯도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어떻게 기억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의 반응은 하나님앞에 세워질 만한 것입니까?
오늘 이 말씀을 받으시는 연합의 모든 성도들이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며 비전을 세워가시도록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8/2016 • 10 minutes, 26 seconds
마태복음 13 : 31-43(서석훈 목사님)
2/6/2016 • 28 minutes, 21 seconds
마태복음 13 : 18-30(정연권 목사님)
마태복음 13 : 18-30(정연권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부분은 씨 뿌리는자의 비유가 어제부터 계속 되고 또 한 부분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오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중심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씨가 떨어지는 곳에 따라 결과로 나타나는 모습이 다르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씨는 전혀 수확을 할 수 없고 어떤 씨는 엄청난 수확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이 떨어지는 곳의 모습을 네가지 밭의 모습으로 구별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이 네가지 밭의 모습은 지금 예수님 앞에 나아온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주님 앞에 나아왔지만 다같은 사람들이었지만 마음밭의 상태는 이렇게나 달랐던것입니다.
또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것은 하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집중하고 계셨던것은 먼저 씨뿌리는 자가 씨를 잘 뿌리는지 아닌지도 아니요 또 뿌리는 씨앗에 관함도 아니고 오롯이 씨가 떨어지는 그곳에 관심이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사람인가가 하나님의 관심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열매를 맺기 위해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씨가 떨어지는 곳 네가지로 구분해서 설명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 네가지를 살펴보면
먼저 중요한것은 떨어지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에 간직하는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19절)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라는 말씀으로 역설해 주시고 계십니다.
말씀이 뿌려 졌습니다 하지만 받아 들이는 나 자신이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에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말씀을 뿌리는 사람의 탓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말씀으로 믿고 심령 가운데 간직하지 않으면 악한것이 와서 그 말씀을 낚아채 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정말로 다양한 형태로 들려지고 있습니다. 말씀의 선포로 또 나의 이웃을 통해서 또 나의 경험과 양심의 울림을 통해서 그러니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가 늘 살펴 봐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말씀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들려지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돌 밭에 뿌려진 씨앗으로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말씀이 뿌려지자 기쁨으로 말씀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닥치는 불편함과 고난으로 말씀을 잃어버리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내 마음을 말씀이 비추기 시작하고 내 삶을 비추기 시작합니다. 내가 쓰는 말이 바뀌기 시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바뀝니다. 나의 친구들과도 거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술 친구 멀어집니다 담배도 끊어질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TV 프로도 바뀝니다.
그러고나면 주변에서 원성이 들려 오기도 합니다. 예수 너무 이상하게 믿지 마라, 하나님도 믿고 또 사회 생활도 잘 해야지 하며 회유도 합니다. 어려움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럴때 받았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중하게 내 심령 가운데 간직하고 있다면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해 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받았던 말씀의 교훈과 은혜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뿌리르 내리지 못해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돌밭같은 마음 밭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이 열매를 맺기위해서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확신한 후에는 말씀이 보여 주시는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2절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가시 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여기서 경고 하시는것은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지 못하는 이유가 염려와 욕심의 유혹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시민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보다 세상의 것에 더 관심이 있다면 세상의 것들과 눈을 맞추고 바라보고 산다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염려라는 말, 여기서 염려는 원어의 뜻으로 보면 마음이 나누어진것을 말합니다. 내 마음이 세상의 것을 향한것과 하나님의 뜻을 향하는 마음으로 나누어 진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염려를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염려로 인해 오늘의 본문은 말씀하시길 말씀이 막힌다고 말씀 하십니다. 내 안의 말씀이 나의 염려로 또 세상의 재물을 향한 유혹으로 숨이 막혀 죽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이뤄지는 일이 없듯이 욕심을 부린다고 이뤄지는 일도 없습니다 우리가 염려와 욕심에 묻혀 살면 살 수록 우리는 염려와 욕심에 매인 종이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이런 염려와 욕심의 덫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나를 매인것에서 해방시키시고 나의 한계를 돌파하며 진짜 나를 찾게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게 하시며 영광에 이르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좋은 밭에 떨어진 말씀이 열매를 맺는것입니다. 말씀을 받고 간직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고 그 말씀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하나님의 비전을 쫓아 갈 때 나의 인생가운데 새로운 역사를 행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게됨을 믿으시는 연합의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5/2016 • 17 minutes, 26 seconds
마태복음 13 : 1-17(김재홍 목사님)
마태복음 13 : 1-17(김재홍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비유로 주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비유는 직설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빗대어 하는 말을 말합니다. 또 이 비유는 우화속에도 종종 등장합니다. 흠부와 놀부의 경우 다리 부러진 제비를 불쌍히 여겨서 고쳐 줬더니 행운의 박을 가져다 주고 놀부가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서 놓아 줬더니 재앙의 박으로 돌려준다는 이야기는 선하게 살아라, 긍훌의 삶을 살아라는 교훈을 이야기 하는 비유입니다.
비유에는 직접적으로 어떻게 살아라 어떻게 해라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이야기 전체를 듣고나서 마음으로 나와 또 나의 삶과 견주어 메세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야기를 들을때 결국 정말로 메세지를 듣는다는것은 마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이야기의 의미를 들을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행동을 또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기때문에 마음에 호소하는 비유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복음을 마음으로 듣고 자신의 삶을 반추해서 바꾸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깊은 뜻이 잇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비유로 메세지를 들었을 때는 듣는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메세지를 잘 들을 수도 있고 전혀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해 주신 씨부리는 자의 비유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은 우리와 달리 먼저 씨를 뿌리고 밭을 가는 방법을 썼다고 하는데 씨가 밭에 떨어지지 않고 길에 떨어졌다 이야기 하실 때 마음속으로 씨앗이 아깝네 생각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도대체 주님이 말씀하시는 싸앗과 밭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지만 두 사람이 들은 메세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꼐서 귀있는 자는 들으라 하실때의 귀있는 자는 이런 비유를 듣고 자기를 이 비유에 비추어보아 이 말씀의 진정한 메세지가 무었인지 깨닫는 자들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비유를 들으며 내가 돌밭이 아닌가? 반문하고 마음에 찔림이 있는 사람들은 이 메세지를 온 마음으로 듣는 영적인 인지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11절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지유로 말씀하십니까? 묻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것은 비유를 듣고서도 자신을 돌아보고 이 지유안의 진정한 메세지를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메세지라고 해도 들릴수 없는것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갈급하여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붙잡으려 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메세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완악하다는 말은 자신에 대한 또 이웃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없고 그저 진짜로 물리적인 귀만 남아있는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설교를 들어도 소리로 듣지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보는 말씀을 붙드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은 오직 언제나 하나님앞에 서있는 자신을 깨닫는 하나님앞에서 살아가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자녀들만 가능한 일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15절에 주님꼐서 말씀하신 귀로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킨다는 회개의 순서가 의미가 있는것입니다. 말씀을 듣는것은 많은 사람이 다 같이 듣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회개가 나타나는 사람은 드뭅니다 바로 이 말씀을 마음으로 듣는 사람들 자신의 인생의 아픔으로 말씀을 받는 사람들 자시느이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다 통해 영적으로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돌이킨다는것은 영적인 일입니다. 영적인 일이라는 것은 나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와 나의 인생을 살아온 경험 그리고 나의 감각까지 동원된 일이라는것입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술을 마시는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고 내가 아내에게 가족에게 느기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폐부를 찌르는 사람은 술을 끊게 됩니다. 내가 말씀을 받고보니 신앙 생활을 평생하면서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위선적이며 또 하나님앞에 너무나 두렵고 죄스런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성경을 꾸준히 읽는 삶의 습관을 가질 수 없는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완악한 심령은 자신이 말씀에 비추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지 얼마나 가련한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이 삶이 바뀌어 하나님의 나라를 각양각색으로 선포하고 증거할 수 있는 영광의 삶이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이지 할 수 없는 영적으로 죽은거나 마찬가지인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16절 말슴에 나왔듯이 진짜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정말로 말씀이 보이고 말씀이 들리면 그 인생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잇으면 아픈데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말씀을 들어서 내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 삶인지가 느껴진다면 회개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겠습니까? 나를 바꿔 달라고 간구 하지 않겠씁니까? 울부짖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정말로 보고 듣는것이 시작입니다. 오믈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연합의 지체들이 진짜로 보고 진짜로 듣는 말씀의 은혜가ㅣ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2/4/2016 • 16 minutes, 40 seconds
마태복음 12 : 38-50(조근상 목사님)
마태복음 12 : 38-50(조근상 목사님)
오늘의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들의 예수님에대한 태도가 완전히 적대적으로 변한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 놈쟁을 시작으로 예수님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옵니다. 마태복음 12장부터는 예수님께대한 핍박을 잘 적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표적을 요구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꼐서 보여주신 표적이 많은데도 다시 표적을 요구 하고 있는것입니다. 사실 표적은 표적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표적은 쎄메이온이라고 원어에 표현하고 있는 단어의 목적은 믿음이 목적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것이 믿음입니다. 표적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고 믿음을 일으키는것이 목적입니다.
우리 삶가운데 기적과 표적이 들어납니다. 그러나 표적 자체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목적은 예수님을 구세주 하나님으로 믿게 되고 영광을 돌리게 되는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표적이야기를하면 생각나는 존재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가 표적을 요구하는 그 악한 속셈을 아시고 마귀의 요구를 단호하게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는것이 똑 같은 일입니다. 마귀처럼 예수님꼐 표적을 요구하며 주님을 떠 보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인물인지 마지막으로 확인하는것이고 또 꼬투리만 잡히면 요절을 내겠다고 나아온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선생님이여 하고 점잖게 예수님을 부르는 그 태도가 더 섬찟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무슨 표적을 보여줘도 하나님께서 주님을 통해 드러내실 십자가의 꼐획을 이해할 리가 없는 바리새인들의 완악함을 아시고 이렇게 응대 하십니다. 요나의 기적 밖에는 보여줄것이 없다. 십자가를 통해 죽음과 부활의 사역을 시작하실 계획 밖에는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각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주님을 믿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가장 큰 표적이고 이를 통해 주님을 믿게 되는것이 이 표적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자 병고치는 표적이 일어났다고 합시다 그러면 뭐하겠습니까? 만일 그 표적을 통해 주님을 믿게 되는 믿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람은 지금 낳았어도 결국 병들고 결국 죽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병이 낳은들 그가 세상을 가진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니므이 가장 중요한 사건은 십자가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초대하신 그 사건이 결국 우리의 믿음을 일으키고 믿음을 통해 구원받도록 하시는 크신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표적의 예가 될 만한 예화를 연이어 주님꼐서 말씀하십니다. 귀신을 쫓아낸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이 사람이 귀신을 쫓아냈지만 그 심령 가운데 주님이 계시지 않으니까, 이 사람이 귀신을 쫓는 이적이 있었어도 주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니까 결국 나간 마귀보다 더 지독한 마귀들이 들어와 주인노릇을 하게 되는 예화를 주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적과 표적과 기사의 목적은 귀신을 쫓아내거나 병을 고치거나 하는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 표적을 통해 주님을 믿게 되는것이 목적입니다. 주님이 내안에 왕으로 죄정하시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늘 언제나 주님이 내 안에서 왕으로 나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내 심령을 차지할 것은 단 하나입니다. 마귀가 나를 다스리는 왕노릇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의 왕이 되셔야 합니다 그것만이 이 인생을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의 삶으 비결인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살때도 학연과 지연과 혈연을 초월한 삶을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관계위에 세워진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자녀인 형제와 자매들의 사랑위에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교회안에 학연과 지연과 혈연의 관계들이 들어오면 그 교회가 망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얼나나 많이 봐 왔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것들이 아닌 영적인 관계위에 서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 나라가 임한 교회는 사랑이 넘쳐납니다, 교회안에서 어려운 사람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도와 줍니다. 혈연도 할 수 없는 일을 성도들이 서로서로 해 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임한 증거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완으로 다스린다는 증거인것입니다. 나누고 베풀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펴하고 그 안에 우리주님이 계십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연합의 교우들에게 우리주 예수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시고 영광돌리시는 귀중한 하루가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2/3/2016 • 17 minutes, 40 seconds
20160131 주일 설교
2/3/2016 • 23 minutes, 57 seconds
마태복음 12 : 22-37(심우진 목사님)
마태복음 12 : 22-37(심우진 목사님)
사람들이 우리 주님 앞에 눈멀고 말 못하는 귀신 들린 사람을 데려옵니다. 물론 우리 주님께서는 이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귀신을 쫓으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이 때 사람들이 우리 주님꼐 임한 영광이 큼을보고 외칩니다.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이것은 사람들이 드디어 예수님꼐서 하나님꼐서 예정하신 메시아가 아닌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꼐서 자신들의 왕이 되어주실 분이 아니신가, 예수님을 왕ㅇ늘로 세우면 어떨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본 바리새 파들의 생각입니다. 이들은 순간 예수님을 자신들의 이상, 자신들이 구축해놓은 권력을 위협하는 위험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사역이 과연 어떠한 뜻인지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이 충돌한다는것만 크게 느낀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은 듣지 못하고 예수님을 향한 나쁜 마음만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떤 사람에 대해 이렇게 악해지면 정말 냄새가 납니다. 그 사람이 못되면 고소해지고 또 잘하면 더 밉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다루고 나름 이스라엘을 개혁하겠다던 지도자 들이었음에도 이들의 마음이 시기와 질투에 휩싸이자 예수님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이를 깍아내리고자 무던히 애를 쓰게 됩니다. 말로 행동으로 사사건건 예수님을 막으려고 용을 씁니다.
이들이 오늘의 본문에서 들고나온 예수님을 향한 반대의 변은 바로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는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인간을 초월한 능력과 권세는 악마적인것이라는 그 시대에서는 생명을 위협하는 엄청난 모함을 하는것이었습니다. 율법을 다루는 자신들의 권위를 뒤에 업은 모함에 있어서는 가장 파괴력이 큰 모함의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 싶다는 살의가 번뜩거리는 말인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함에 대해 사람들을 동원해서 반대하시거나 또 기적으로 이들의 입을 막으시거나 하지 않고 이들의 주장에 조용히 그리고 단호하게 반박을 하십니다. 바리새인들로 깨닫길 바라시는 마음까지도 느껴지는 설득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는 황폐해 질 것을 모르느냐?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반문하시면서 그들의 주장이 그 논리의 근원부터 잘못된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지만 이 반박은 바리새인들을 공격하기 위한것 보다는 그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시기 위한 초석에 더 가깝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바리새인들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아라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의 힘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는냐? 그것이 뜻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중에 임하였다는것이다!라고 단호하게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도 깨달을 수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어떤 사건을 볼 때 그 사건과 동시에 그 이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는 일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니꼐 했듯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는 저항이 있을 수 있고 늘 언제나 순조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진행하는 내내 어렴움이 있고 힘든일이 끊이지 않았어도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아 이것이 하나님뜻이었구나 깨닫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교회의 사역 중에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꼭 해야하는 일이 있다는것입니다.
예수님꼐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어떻게보면 자상하실 정도로 예수님꼐서 행하시는 일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인지 말씀해 주시고 설득하시고 또 아울러 그들이 행하는일이 정말로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큰 실수와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성령을 말로써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는 능력의 사건은 오직 성령의 힘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 인들은 그것을 마귀의 힘이라 칭했으니 정면으로 성령하나님의 역사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얼나나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십니까? 말로써 하나님을 대적 할 수 있다는것입니다 그러나 그 죄에는 사함이 없으니 말을 조심해서 해라 말을 가려서 하라는 말씀이십니다. 너희가 아는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재잔하지 말고 일어나는 사건의 이면을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선한 삶을 살면서 악한 말을 하는 분을 보신적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악한 삶을 살면서 선한 말로 남을 세우고 이롭게 하는 사람을 보신적 있으십니까? 아마 없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말을 가볍게 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말은 나의 삶의 반영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 입술로 어떻게 더럽고 추한 말을 쉽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죄인된 우리는 더욱더 조심해서 나의 입술의 작은 말들을 살펴야 하는것입니다. 혹시나 나의 사사로운 실수의 말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그것이 나에게 득이 될 리는 만무하니까요.
결국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내가 용을 쓴다고 나의 삶이 바뀌겠습니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도움을 받고 주님꼐 영광을 돌리므로 나의 삶도 나의 말도 바뀌게 될 것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 모든 살므이 여정가운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2/2016 • 9 minutes, 58 seconds
마태복음 12 : 1-21(조재욱 목사님)
마태복음 12 : 1-21(조재욱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사이에 있었던 안식일에 관한 논쟁입니다. 이네 관련하여 두가지 사건이 나오는데 하나는 이삭을 베어먹은 제자들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손마른 자를 치유해 주시는 사건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시대에 살았던 나름 정치적 종교적으로 개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집단이었습니다. 예수님 시절에는 6000명 정도가 있었는데요 이 사람들은 율볍을 여구하고 해석하는데 평생을 자치며 살았던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들중에서도 더 깊이 율법을 연구하게 되면 서기돤이 되는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종교적인 위치에 오르는것은 물론 심지어는 재판까지도 관할 했기때문에 예수님 사역당시의 시대에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놓치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살피는 마음에서 주신것을 무시하고 형식적이고 인본적인 율법의 해석만을 고집 했습니다. 이들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뤄야할 신앙생활이 형식적인 종교생활로 전락하게 된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레위기 25장을 통해서도 잘 살펴벌 수 있습니다. 안식일과 희년에 관한 법인데요 쉽게 말하면 때가 차면 잃어버렸던 땅이 원래의 주인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제도를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계속해서 부자가 되는것을 막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계속해서 대를이어 가난하게 사는것을 방지하는 법입니다. 또 안식녕과 안식일을 두어서 땅도 쉬게하고 사람도 쉬게 하는 고된 삶에서의 안식과 회복을 얻게하는 법입니다.
이 법으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고통도 또 우리의 필요도 다 아시고 섬세하게 챙기시는 아버지의 마음이시고 어머니의 마음이시지 않습니까?
이 날을 제사당이 나팔을 불어 거룩하게 선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거룩하게 보시는지 또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또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것은 무엇인지 발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과 회복이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정신입니다 쉼과 회복!
그러나 이에 맞서는 바리새인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옭아매는 분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안식일에 이삭을 먹은 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정죄하는거이 얼마나 사실은 억지인것입니까?
예수님께서 12절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라고 물으시는것을 보면 얼마나 이들을 답답해 하시는지가 느껴집니다. 안식일에 구제와 선교의 일을 행하는것이 얼마나 당연합니까? 사람을 구하는것 생명을 구하는것 이러한것이 우리의 비전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주님앞에 손마른 자가 나옵니다. 손이 말라서라는 것은 피가돌지 않아 손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입니다.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손만 고치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구원받으러 주님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런 불쌍한 인갱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당연히 치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규례와 율례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께서는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주님앞에 불쌍한 인생임을 고백하고 구원의 큰 은혜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구원이 필요한 손마른 자같은 자들입니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오직 모든 구원은 예수그리스도에서 오는것임을 고백하시고 큰 은혜받으시는 오늘 하우가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2/1/2016 • 14 minutes, 38 seconds
토요새벽기도
1/30/2016 • 38 minutes, 13 seconds
마태복음 10 : 34-42(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10 : 34-42(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이 치러야할 희생과 대가를 많이 말씀 하십니다. 특히 10:34절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말씀하시면서 주님꼐서 이 당에 온 목적이 영적 전쟁인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과 불의와 의에 타협하러 오신것이 아니라 검같은 진리의 복음을 건포하러 오셨음을 분명히 하고 계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사람들과는 결코 화평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기독교가 평화의 종교가 아닌것을 오해 하시면 안됩니다. 이것은 범죄의 현장에 경찰이 들이 닥치거나 의사가 환부를 꾹꾸 눌러서 진룔를 하는것처럼 타락한 세상에 진리가 선포되면 나타나는 당연한 역반을 이 있음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더러운 환부를 감추고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핍박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말씀 곧 진리가 선포 되면 이를 듣는 사람은 두종류의 반응을 합니다. 배척하거나 아니면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됩니다. 우리는 이런 갈등을 피하면 안됩니다 불신자들로부터 또 진리를 오해하는 사람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것입니다.
또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갈때에 믿는자와 자기 가족들과도 갈등이 있을수 있습니다. 35-36절을 보면
"10:35-36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이 말씀은 불효하라는것이 아니라 혈연보다도 중요한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인것을 말씀하고 계신것입니다. 불신영혼이 가정에 있으면 전도해야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집안에서 쫓겨나기까지하는 간증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진정한 가정의 평안이 오게됨을 믿으셔야 합니다. 현대의 해체되는 가정들을 보면 가지가지 이유가 있고 글르인해 가정을 포기하게되는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 근본의 원인을 보면 결국 가정조차도 죄된 세상을 쫓아가고 그 가정의 근본을 둘 만한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처음의 갈등을 극복하고 예쑤그리스도를 믿음에 우리의 가정의 근본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진정한 가정의 평안을 가져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을 보시면 갑자기 경제의 부강이 이뤄 졌지만 이 ㅁ나라의 정신이 기초할 가치가 없으므로 얼마나 지금 나라가 부유해진 부작용을 겪고 있습니까? 부패가 온 나라에 가득하고 이 나라가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 너무나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믿는 자들의 삶에 필요한 자세는 38절 에 나오듯이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감수 해야하는 고난들이 있습니다. 지금 까지 살아온 삶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살게 되면서 겪는 분리의 고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십자가의 고통이 없이는 면류관의 영광도 없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님의 진리를 짜라가기로 결당하고 나아갈 때 주시는 비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젼을 따라 살아가려 할 때 우리를 주저 앉히려는 어려움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극복해내는 아픔을 겪을 때 만이 주님이 허락하신 비젼을 성취하며 사는 자유를 얻게 되는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가까이 가고자하는 진리추구의 열정과 또 자기개발이 없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젼을 감당하며 성취해 나가겠습니까?
일본에 한 폐병환자가 있었습니다. 병세가 너무나 위중해서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죽어가는 인생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복음을 붇들었습니다 그 후에 내가 오늘 죽더라도 남을 섬기다 죽는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이겠다 하는 깨달음대로 다른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본의 환자를 그 후로 50년을 더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현대의 성인이요 빈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사선을 넘어서의 저자인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젼의 삶은 하나님의 비젼으로 모든것을 바치려 할 때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리는 생명의 삶인것입니다. 그리고 살리는 그 생명의 힘은 오직 우리주 예스그리스도의 복음 그 안에만 있음을 깨달으시는 모든 연합의 교우들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29/2016 • 18 minutes, 12 seconds
마태복음 10 : 16-33(서석훈 목사님)
마태복음 10 : 16-33(서석훈 목사님)
영과 이리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당연히 이리가 이깁니다. 양은 다리도 짦고 눈도 안좋고 또 무기가 될 거라고는 뭉뚝한 뿔뿐입니다.
그런 이리가운데로 양을 몰아 넣듯이 우리를 보낸다고 오늘의 본문에서 주님께선는 말씀 하십니다. 도대체 무엇빼문에? 라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6절에 보시면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라고 하시는데 제 귀에는 이 말씀이 꼭 너희들이 알아서 처신하고 알아서 살아 남아라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니 이 말슴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가 없는것입니다.
17절과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즉 이상황은 복음을 전할때 닥텨올 상황을 말씀하고 계심이 드러납니다. 복음을 증거할 때 이리가 양떼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듯이 핍박과 박해가 시작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시절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현대에도 중동에서는 얼마나 많은 믿는 형제와 자매들에 대한 박해가 이어지고 있습니까? 현대의 소셜미디어에는 매일마다 순교의 소식이 전해집니다, 바로 지금도 세상의 누군가는 복음을 믿는다는 이우로 목숨을 잃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박해는 심지어는 가족으로부터도 오게 됩니다. 21절을 보시면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이러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아직도 저희 청년들 중에는 부모와 현제들의 지독한 핍박을 무릎쓰고 교회에 나와 가족구원을 부르짖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 청년들이 겪는 마음의 고통은 참으로 보기 딱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우리를 이리가운데로 넣으시냐는 것입니다. 안 보내시면 안되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조금 더 생각해 보게하는 말씀이 19절입니다.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이 말씀은 사랑하는 우리주님께서 우리에게 할 말을 주신다고 하는 이 말씀은 다시생각하면 그 순간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꼐 계신다는 말씀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어떤한 경우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20절은 또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무슨 말슴이십니까? 복음을 위해 고난 당하는 그 때 할 말 조차도 성령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말씀은 우리는 육신의 고통으로 이 사던을 이해 할 지라도 실상은 이 일은 실체는 영적인 전재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양은 이리에게 백번백패입니다. 그러나 이 양들이 목동과 같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게다가 이 목동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는 진짜 목동이라면 말할거도 없이 양들은 안전합니다.
22절을 보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날씀의 핵심입니다. 육신의 가치보다 연적인 가치가 트다는 것입니다. 연적인 생명 영생이 더 귀한 것이며 이 영생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 이리가 덤벼도 선한 목자 되시는 우리주님꼐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보이는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16절로 가서보면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말은 약삭빠르게 처신을 달해서 니목숨 네가 부지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 있어도 더 소중한 것, 진정한 가치가 있는것, 영생을 가져다 주는것, 즉 하나님 말씀 복음을 붙잡는 지혜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비록 이리앞에 있는 양떼의 처지를 겪을 지라도 더 중요한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영적 전쟁의 실체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놓고 치열한 전쟁이 있을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싸우시도록 할 때 우리의 승리는 보장된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이 보이는 이 모든것의 근본임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승리하실때에는 완전히 승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절대로 물러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워도 혹은 고난을 겪어도 목숨을 잃어도 물러나지 않을것은 이것이 영원한 승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과 영원히 동행 할 길인 영생의 길 복음의 길을 붙잡으시는 우리 무두가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1/28/2016 • 11 minutes, 6 seconds
마태복음 10 : 1-15(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10 : 1-15(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전도여행으로 차송하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전도자들의 자세를 전도자들이 전해야 할것과 또 전도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으로 나누어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1-4절 까지는 12제자의 파송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을 영어로 보면 열두 제자를 The twelve라고 정관사를 붙여서 설명합니다. 이미 특정한 열두명이 정해져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이 목적을 위해 부르신 따로 세우신 열두명의 제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이고 또 열두명의 제자를 부르신 이유가 바로 이 전도를 위함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모든면에서 훈련이 중요하지만 특히 교회사역에서의 훈련은 너무 중요합니다. 모든 교인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훈련이 없이는 남들을 이끌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할 주 모르는 사역을 어떻게 남에게 시킬 수 있겠으며 또 훈련이 없이 어떻게 다 같이 움직이는 협동의 사역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훈련을 시키신일을 보면 모든일의 모범을 먼저 보이시고 그 후에 사역을 맡기시는 일종의 Under JOb Training을 하고 계신걸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 사역 훈련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한가지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때 권능을 주셨다는것입니다. 사역의 현장에서 보면 아무리 잘 배운 지식과 이론도 권능이 없으면 무용지물인것을 봅니다. 그래서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말씀의 권능을 받으셔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권세와 능력이 있기때문입니다.
권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권능은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재, 즉 진정한 기도의 교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권능은 오직 하나님나라를 섬기는 일에만 한하여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역을 위한것이지 다른것을 위해 주어지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 선포 곧 복음을 위한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또 한가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주어지는 은사가 현대에는 없어진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악해지고 타락해 가는데 어떻게 이 세상에 맏설 무기를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세상이 악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 강력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Apostle은 보냄을 받은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제자들이 보냄을 받아 사도가 되는것입니다. 부르신을 받았을 때 사도가 된 것입니다.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때 사도가 되는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복음의 가치를 알아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이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사역은 직업이 아니라 부르신으로 인한 소명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먼저가라고 보내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변부터 먼저 복음을 전하라는 원칙의 말씀입니다. 복음을 먼저 나 자신에게 전하고 나의 가족에게 정하고 이웃과 세상에 전하는것이 오이코스 전도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능력이 임하실 때 예루살렘으로부터 복음이 먼저 전해짐을 볼 수 있습니다.
"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또다른 복음전도의 원칙 사역의 원칙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주어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능력은 은사는 소유는 주님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것입니다 그러니 베풀때도 거저 베출어야합니다. 성령의 은사의 능력이 나타날때 돈을 요구하는 자들은 거짓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것에 우리가 무슨 권리가 있겠습니까?
또 9절과 10절에서는 전도를 위해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다 하나님께서 채워 주실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맞퉈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이후는 하나님의 책임이 되십니다. 아버지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뛰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는 분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그 만남을 위해 기도하는것이 복음전도의 방법이고 또 훈련입니다.
그리고 12절과 13절에 보면 어디든 평안을 빌며 평안으로 축복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누구에게나 평안을 빌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함이 옳은 일인것입니다 그러나 평안을 받을 사람이 받을만할 사람이 아니라면 그 평안은 우리에게 돌아온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평안이 합당한 자들을 찯으시고 그것을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보내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연합의 성도들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의 평안을 세상에 전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7/2016 • 18 minutes, 1 second
마태복음 9 : 27-38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9 : 27-38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두가지 사건과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두 맹인을 치유하신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 주님의 전도사역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전도사역에 관하여 더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 주님의 사역을 요약하면 세가지 중요한 사역으로 볼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것을 삼중사역이라고 합니다. 35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이것을 보면 주님의 사역은 첫째로 가르치시는 것이요 둘째로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즉 전도하시고 혹은 선교하신느것이고 마지막은 치유하시는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 즉 교회가 감당해야하는 하나님의 미션은 바로 우리 주님의 사역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교회도 가르치고 선교혹은 전도하고 또 우리 주변의 연약한 자들을 돕고 세워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어떻게 주님은 전도를 감당 하셨나 살피고 또 우리는 어떻게 해야 정말로 전도를 할 수 있는것인지 묵상해 보겠습니다.
먼저 제일 중요한것은 예수님이 복음이 필요한 영혼을 보시듯 볼 수 있는 영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영안이 있지 않다면 불신의 영혼 복음이 필요한 영혼을 알아 볼 수 없을것입니다. 우리 주면에는 이민의 삶에 지쳐 낮아진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우군가 손을 내밀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분 들입니다. 또 우리 주변에 많은 유학생들 이들도 마찬가지로 낮은 마음의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 이런 연혼들 손대기만 하면 추수가 될 영혼들을 알아볼수 있다면 당연히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연약한 영혼들을 알아 보시고 그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알아보고 다가가는 그런 전도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우리 주님의 마음, 심장을 우리도 품어야 합니다. 우닐 주님께서는 연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이셨습니다, 그저 곤고한 영혼들에게 가서 교리나 읊어대는 얼치기 전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들의 연약함을 가슴아파해 주시는 그런 공감의 심장의 소유자 이셨습니다.
원어로 불쌍히여기다는 스프랑케니조마이입니다. 애간장이 끊어지는 아픔을 이야기 합니다. 연약한 자들을 보시고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언제나 끊어질 듯 아프셨다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 주님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남하고 연약했던 병자와 과부와 고아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런 분이셨기에 우리도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도 우리 주님의 심령을 닮은 전도자가 되어서 아픈 심령을 알아보고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위로의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는 먼저 주님의 탄식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연약한 세상의 심령들을 보시고 가슴 아파 하셨던 이유주의 하나는 복음이 필요한 사람은 지천에 널렸는데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너무 적어서 입니다.
이미 천국의 추수철이 되었는데 추수할 일꾼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수때는 온가족이 나가서 추수를 합니다 그래도 일꾼이 부족해서 군부대에서 일꾼을 데려오고 또 이웃 동네에서도 데려옵니다 그렇게 뛰어야 추수가 감당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님께서 보시는 세상은 추수철이 되서 들판은 희어졌는데 곡식을 거둘 추수꾼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쌍한 영혼들을 보시고 탄식하시는 우리 주님의 탄식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추수할 때 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말씀 하신것은 38절입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이 추수꾼은 사람의 힘으로 충당이 되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청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삮꾼이 아닌 주님의 심장을 지닌 진짜 추수꾼을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함포사격입니다. 전쟁에서 폭격과 함포사격으로 적의 진지를 쑥대밭으로 만들면 드제서야 보병이 상륙해서 전투를 합니다. 그와같이 우리가 기도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전도의 전투에서 승리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시고 기도하시고 또 기도하셔서 전도의 전투에서도 승리하시는 모든 연합의 교우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6/2016 • 16 minutes, 19 seconds
마태복음 9 : 14-26 (정연권 목사님)
마태복음 9 : 14-26 (정연권 목사님)
오늘의 말씀의 본문은 세가지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공격하는 요한의 제자들과의 금식 논쟁이고
둘째는 죽은딸을 살려달라는 관리의 간구와 이에응하시는 우리주님의 기적의 사건입니다.
세째는 이 떄 십이년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나아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나음을 얻게 되는 또다른 기적의 사건이 그것입니다.
첫번째 사건과 나머지 두가지 기적의 사건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우리에게 과연 믿음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득별히 많이 다뤄지지 않는 첫번째 사건을 집중해 보면서 과연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극복해야 할 신앙의 세가지 난제들 방해물들이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9장14절은 이렇습니다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이 말씀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는 질문으로 사실 싸움을 거는 말들이고 비난하는 말 들입니다.
비난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사실이 아닌데 터무니없이 헐뜯으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하고 있던것이 바로 이 비난입니다. 그들은 묻기를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일견 맏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정말로 금식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식을 어느때 하는것인가요? 그 시대 금식은 지금도 그렇지만 특별한 일로 지독한 슬픔의 표현이거나 간구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금식을 계절마다 절기마다 행하는 관습으로 바꾼것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진실한 감정의 표현이거나 철저한 믿음과 같구의 수단이어야 할 금식에 종교적인 관습의 굴레를 씌워 버린것입니다.
또 요한의 제자들의 경우는 금식을 해야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스승인 요한이 투옥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금식을 하며 간구하고 슬픔을 표현할 충분한 이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은 금식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자들이 금식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하는 억지 헐뜯음이라는 것입니다, 비난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비난의 마음은 하지만 현길에서는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저사람이 왜 나와 생각이 혹은 행동이 같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해 상대방을 헐뜯는 이 비난의 마음은 심지어는 부부사이에도 일어나고 관계를 해치는 아주 악한 마음입니다. 이것이 오늘 첫번째로 극복해야할 신앙의 난제입니다.
두번째는 남을 부정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의 기준을 잣대로 남을 재고 찬단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당한 판단이 아니라 너는 아니다 너는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말하고자 하는 핑계인것입니다. 나의 기준을 절대화 시켜서 남을 판단하는 교만한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을 살펴 봅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라고 말을 띄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준이 자기들입니다. 금식해야될 이유가 있는 자신들의 처지는 쏙 빼고 자신의 행동만을 근거, 기준으로 삼고 남을 판단 합니다.
이런일은 우리 삶에 너무나 많습니다. 게다가 이런 부정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도 향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 역사하심을 또 얼마나 자주 또 많이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우리 마음대로 이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니다하고 치부해 버립니까?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힘든일이 생겨도 그럼에도 나와 내 가족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것이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하나님은 이제 더이상 내인생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마음이 우리를 하나님과 가깝게 못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요한의 제자들의 모습은 위협하려는 마음, 강요하려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위치가 되면 남이 나의 말에 따라주기를 원하는 강요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라는 질문은 어찌하여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내 기준을 따르라는 협박이고 강요입니다.
오늘 살펴본 세가지의 마음들은 우리의 성장을 가로박고 또 관계를 파괴하는 악한 방해불들입니다. 이것들은 우리 주님의 가르치심과 정 반대의 것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낮아지고 섬기라고 하시는 섬긴의 사랑을 말씀 하셨지 이런것들을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들과 갗은 것들을 다스리게 하시고자 성령을 보내시고 우리안에 내주하게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것은 오직 성령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께서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런 악한 방해물들을 다 이겨 내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5/2016 • 7 minutes, 43 seconds
마태복음 8 : 1-13(김재홍 목사님)
마태복음 8 : 1-13(김재홍 목사님)
오늘은 기도를 어떻게 해야하나 또 중보기도는 어떻게 해야하나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어제까지 산상수훈을 하시고 이제 산에서 내려 오실때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오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한 나병 환자가 주님앞에 나아 옵니다.
만약 우리 연합교회 본당에 천명도 넘는 사람으로 꽉꽉차 잇는데 나병환자가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그 시선과 당혹감등 상상이 가실것입니다, 나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구요 게다가 이 시대의 나병 환자는 부정한자 사람들 근처에 오면 돌을 던져서 쫓을 자 입니다.
그러니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 어려움을 뚫고 주님 앞에 선 이 사람의 그 간절한 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한 사람이 주님 앞에 정말로 간절한 심정으로 서있는것입니다.
그 때 이 나병 환자는 뜻 박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그런데 그 간절함으로 주님앞에 나아와서는 이 사람은 자신의 뜻을 먼저 구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절대적인 주님의 뜻을 먼저 구했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주님의 주권을 인정했다는 이야기이고 그 권위가 어떠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주님앞에서 온전히 낮추는 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 부정한 나병환자에게 주님께서는 손을 대어 주십니다. 랍비가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꼐서는 겸비함으로 당신 앞으로 나아온 이 사람에게 손을 내어 만져 주시는것입니다. 그러자 놀라운것은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졌다는 것입니다.
즉시 하나님께서 반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시 라는 말씀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올바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기도응답은 이렇게 즉각적일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응답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어떵 자세로 하나님앞에 우리가 나아가는가 입니다.
심지어는 우리 주님도 감람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주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구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결국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부활의 영광을 보게 되셨다는 것, 죽음을 이기셨다는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결국에는 승리 합니다. 그것이 진리 입니다. 어떤 결과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집니다 그래서 로마서 8:28에서도 이렇게 적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주님께서 나의 어려움을 내어버려두는듯 할 때가 있어도 결국에는 다 아시고 우리를 주님의 뜻 가운데로 이끌어 가고 계심을 믿게 되시기 축원합니다. 어려움 가운데 붙들어야만 되는 절대로 우리가 깨달아야 만 되는 주님의 모습이 있다는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의 시간이 너무나 귀한 것이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지금 내가 깨닫길 원하시는 진리를 먼저 구하게 되셔야 하는것입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사실 로마의 백부장도 예수님과 교류하기에는 어려운 관계였습니다. 우리로 치면 일제시대때 헌병대 대장과 비슷한 사람이 민족 지도자이신 김구 선생님이나 안창호 선생님앞에 깨달음을 구하려 나아오는것과 비슷한 이야깁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이 백부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알고 있었다는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고백하는것은 자신도 남의 수하에 있는사람이라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명령이 무엇인지 알고 그 명령의 권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라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자기 종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권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 세상은 세계를 정복한 로마의 황제가 바로 신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그런 신?의 권위를 수호하는 자가 백부장이었음에도 이 백부장은 진정한 권위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권윅가 누구에게 있는 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철저하게 명령을 지키고 그 권위에 복종하는것 처럼 주님앞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자세로 또 예수님의 하나님으로의 권위를 철저히 인정하는 자세로 나아온 백부장에게 예수님께서는 응답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 백부장처럼 자신의 삶속의 경험을 통해 더 자세히 주님을 경험 할 수 있습니다. 백부방이 군인으로써 명령과 그의 권위를 통해 주님을 이해했다면 사업하시는 분들은 손님을 대하는 나의 자세, 또 손님의필요에 응하는 나의 자세를 통해 주님께 어떻게 응해야 하는지 살필수 있을것입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필요로 하시는가?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그 뜻을 이루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님의 몸된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사명과 직분을 받으신 분들이 영광되고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 분들껜 하나님께서 충성을 다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백부장은 남의 마음에 공감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하고 말한것을 보시면 백부장이 하인의 괴로움에 공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아픕니다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결 해 주세요 주님, 그를 보는 제 마음이 괴롭습니다. 이런 공감의 마음에 주님은 반응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아파하는 기도가 중보의 기도입니다.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또 동시에 도울 수 없는 미약한 나의 한계를 불쌍히 여기고 아버지께 은 혜를구하는것이야 말로 중보기도의 자세여야한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께 겸비와 공감의 기도의 능력이 임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1/2016 • 17 minutes, 14 seconds
마태복음 7 : 13-29 (정선기 목사님)
1/20/2016 • 10 minutes, 9 seconds
마태복음 7 : 1-12(정선기 목사님)
마태복음 7 : 1-12(정선기 목사님)
간디에게 하루는 한 여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부탁하기를 선생님 제 아들이 너무 설탕만 좋아하는데 먹지말라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설탕은 건강에도 나쁜 것이니 그만먹으라고 선갱님이 말씀하시면 혹시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설탕을 먹지 말라고 말씀해 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간디가 말하기를 열흘있다 오라고 하는것이었습니다.
열흘후 그 어머니가 아들과 같이 다시 간디에데 나아왔고 간디는 그 아이에게 설닽 먹지 마라 건강에 안좋다 그러자 아이는 알겠습니다 하고 너무 쉽게 문제가 해결이 됬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물어보기를 이렇게 쉬운일을 왜 열흘이나 기다리라고 하셨습니까? 물어 봤습니다. 그러자 간디가 말하기를 열흘전에는 저도 설탕을 맛있게 먹고 있었거든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간디는 평생 산상수훈을 묵상하며 추동했던 산상수훈의 추종자 였습니다. 이 일화는 오늘의 말씀중 3절에서 5절 까지의 말씀과 잘 맞는 예화라고 생각합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이 말씀은 남에게 흠이 있다면 분명히 나에게도 흠이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죄하기 보다는 나의 문제를 하나님앞에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 문제의 해결이 훵씬 급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형제의 조그만 흠이라도 보이면 참지를 못합니다. 입은 근질거리고 마음으로는 정죄를 쏟아붇습니다. 이러때는 사실 눈을 감아버리고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 그 입 다물라 명령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서면 남의 티끌보다 나의 들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럴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것입니다. 그럴때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나의 변화를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에 7절로 1절에 적혀있기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하십니다.
선한것으로 좋은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주신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물질같은 것들뿐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나의 인격 또 나의 속사람을 변화시켜 주시길 간구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과 같은 말씀을 다루고 있는 누가복음 11:13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이신 성령님이신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받으면 우리의 인생이 바뀝니다. 우리의 속사람도 바뀝니다. 인생의 목표도 바뀌고 나의 말과 행동과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본문인 마태 7:12절과 같은 황금률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남을 정죄하는 삶, 나쁜것만 보는 삶, 남한테서 나의 이익을 구하는 삶, 남을 이용만 하려는 삶, 남을 통해 내가 덕을 보려는 삶에서 남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삶, 복음을 전하는 삶, 하나님을 소개하는 삶으로 바뀔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것은 당연히 내 힘으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감동을 주실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오늘 그 성령을 구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이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께서 성령 하나님을 구하시어 성령으로 충만해져 변화된 인생을 살게 죄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1/19/2016 • 10 minutes, 25 seconds
마태복음 6 : 25-34(조무제 목사님)
마태복음 6 : 25-34(조무제 목사님)
오늘도 역시 산상수훈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산상 수훈은 우리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머무시면서 대중을 대상으로 하신 설교가 아니라 산위에서 제자들을 대상으로 하신 설교로 생각되어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평범한 유대인이나 아니면 예수님을 따라오기 시작한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가족과 자기 소유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온 제자들 곧 성숙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는 170절 가량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을 나눠보면 약 3개로 구분 할 수 있습니다.
1. 우리의 정체성을 말씀하시는 - 팔복의 구간
2. 세상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말씀하시는 - 빛과 소금의 구간
3.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 갈 것인가 말씀 하시는 구간.
오늘의 말씀은 세 번째 구간인 믿는자로써 세상을 사는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라 실제 그 때의 제자들의 심리가 그랬다는것으로 보시면 될 것입니다. 마치 우리 믿는자들도 때로는 그럿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중에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재물이 나쁘다로 받아들이시면 안 될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우리에게 물질이 필요함을 잘 아셨습니다. 단 이 말씀은 우리가 필요를 넘어서 물질을 하나님대신 우리의 삶의 목표로 살기 시작할 때를 경고 하시는 것입니다.
개그 콘서트라는 프로에서 소고기형님이라는 코너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코너는 이런 얘기를 다룹니다.
소고기 먹으면 힘 나겠지?
힘나면 뭐하지?
열심히 돈 벌겠지?
돈 벌면 뭐하지?
소고기 먹겠지?
소고기 먹으면 힘 나겠지?
힘나면 뭐하지?
열심히 돈 벌겠지?
돈 벌면 뭐하지?
소고기 먹겠지?
이런 끊임없는 순환을 개그로 승화시킨 일명 허무개그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생 참 허무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콜링을 따라 사는것이 아닌 먹고사는 문제에만 사로잡혀 사는 삶은 이렇게 허무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꼐서는 25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라고 말씀 하십니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에는 있다는 말씀입니다. 먹고사는것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신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 주님은 목숨, 곧 생명이라고 표현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신의 생명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짜 참 생명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콜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해야 할 복음의 사명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쏟아져들어오는 걱정가운데 파 묻히면 이 부르심을 잊고 살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써 사는 것이 아니라 소고기 형님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을 예수님꼐서는 경고하고 계십니다.
헬라어로는 염려가 나눠진 마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세상살이에 대한 불안과 하나님의 부르심속에서 갈등을 한다면 우리의 삶도 나눠질 것이고 분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너무나 어려운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부르심도 또 우리의 모든 삶도 다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씀데없는 걱정을 버리라는 말씀 입니다.
재물과 하나님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은 결국 하나님만 따라가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부르심도 나의 재물도 내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 소유이고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모든것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33절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것이 믿는자의 삶의 비밀입니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우리 삶에는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그일이 해결되면 나머지는 따라서 해결 됩니다. 염려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슴을 믿으십시오, 결구 하나님께서 모든것을 주관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나의 비천한 계획보다 높으싣고 넒으시며 선하십니다.
오늘의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ㅁ
1/18/2016 • 20 minutes, 23 seconds
황경애 사모님, Joy Choi 간증
1/16/2016 • 51 minutes, 43 seconds
마태복음 5 : 38-48(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5 : 38-48(정인수 담임 목사님)
미국에 사시는 분들중에 마음이 황폐하고 딱딱하게 굳어진 분들을 봅니다. 대부분의 경우 관계의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마음에 미움이 가득할 때 마음은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해 단단해 집니다.
사람은 사랑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 마음에 감동이 오고 마음이 따뜻하게 녹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장기를 이식해 주고 환우들을 따뜻하게 돌봐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얼마나 감동이 오고 좋습니까?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사랑이야말로 행복이고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시지 않습니까?
미움은 멸망과 불행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역사가 그런 미움의 역사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미워 합니다. 왜 미워 합니까? 시기와 질투로 미워 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야곱을 미워 하는것도 다 시기와 질투때문입니다.
창27: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그래서 에서는 결국 저주를 받고 맙니다. 미움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도 다윗을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미워하고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역시 사울도 도리어 그의 자손들과 그 자신이 저주에 빠져 버리는것을 우리는 잘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를 죽이려 한 형들을 용서한 요셉은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는곳바다 다루는 것마다 병회를 가져오고 축복을 가져 온것을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미움은 필연적으로 멸망을 초래합니다. 먼저 미움은 내가 미움의 또 내가 미워 하는 사람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늘 뮈워하는 사람 생각에 잠못 이루게 되고 미워하는 사람생각에 치를 떱니다. 미움은 이처럼 엄청난 정서적 손실을 가져오고 결국 나의 에너지와 건강 마저도 좀먹어 가게 됩니다.
저도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저를 힘들게 하던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그 분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분과 다투고 말았습니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러고 나니까 전혀 이상이 없던 튼튼했던 저의 위에 궤양이 오고 말았습니다.
그 때 깨달은 것이 이 미움이 육신을 상하게 하고 병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절대로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미워하다가는 내가 죽는데 말입니다? 어떤한 악을 당하더라도 선으로 악을 이겨야겠다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미움에 빠젺을 때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마태 5:44,45)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핍박하는 자들을 기도하고 그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입니다. 이사랑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미워하면 또 영생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요한일서 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에 머믈러 정욕에 불타는 복수의 종이 되기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천국 영생이 임하겠습니까?
미움의 삶에서 사랑의 삶으로 옮겨가는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인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 할 때 그 엄청남 용서의 은혜를 체험 할 때 우리는 비로서 미움과 저주의 굴레를 끊고 사랑의 역사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미움과 저주에서 끊어지게하는 사랑은 그러므로 가장 큰 능력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 께서는 용서와 사랑의 능력을 충만하게 받으시길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5/2016 • 14 minutes, 29 seconds
마태복음 5:27-37 (조근상 목사님)
마태복음 5:27-37 (조근상 목사님)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오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든자와 약한자를 치유하시는 3중의 사역을 하십니다.
이 때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는 사역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오자 사람들을 피하셔서 산으로 올라가 가르치시는 사역을 하시고 이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산상수훈이 됩니다.
산상수훈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8가지 구체적인 삶의 원리를 다루게 됩니다. 그리고 또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우리가 율법의 의를 이룰수 있는가에 대하녀 구체적으로 6가지 율법을 가지고 다루게 되십니다.
그 여섯가지율법은
먼저 살인하지 말라
두째로 간음하지 말라
세째로 이혼하지 말라
네째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
다섯째로 보복하지 말라
여섯째로 원수갚는 일에 관한 율법에 관하여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어 주시고 오늘의 본문은 그 중에 간음하지말라, 이혼하지 말라, 거짓 맹세하지 말라에 관한것들입니다.
마태 5:27,28)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십계명중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은 마음이야 어떠하든지 행위로 실천만 안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마음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성의 문제로 마음에 죄지은 사람도 아무런 문제없이 성전에 나아와 제사도 드리고 이것은 하나님앞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죄를 지은 자들에게는 무자비하고 잔혹할 정도의 처벌을 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발앞에 끌려왔던 간음한 여인을 보게되면 얼마나 사람들이 이 여인을 가혹하게 다루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이 여인 한명을 돌을 들고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낮아진 심령과 마음속의 회개를 보시고 오히려 구원하여 주시지 않습니까? 오히려 물으시길 어희중에 죄없는자가 돌로 치라? 라고 묻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 야단을 들은 자들은 오히려 바리새인들입니다 화있을진저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아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축소시켜 단순한 행위의 문제로 치환해 버린 바리새파인들의 죄를 너무나 중히 보셨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겉 모습보다 행위의 문제보다 오직 심령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 치유받은 심령으로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한 손을 잘라내도 다름 한 손으로 도박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육신을 아무리 쳐봐야 심령이 해결이 안되면 절대로 이 문제들로부터 헤어나올수가 없다는것 그리고 이 심령의 문제는 오로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만 해결이 된다는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혼에 관한 말씀을 주십니다.
5:31,3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현대인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당부분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이혼에 관한 말씀을 하신것은 예수님 당시에 연약한 자들인 여성을 너무나 쉽게 이혼하는 것에서 보호 하고자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혼증서에 관한 규례를 주었지만 그 규례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그 규례를 악용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5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결혼의 중요성인것입니다. 이런 중요성을 안다면 예수님 당시 시대처럼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쉽게 이혼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정말 피치못할 사정으로 이혼 했다면 또 그 삶을 주님 앞에 드리는데 주저함이 없을것입니다.
그것이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지키는것이기 때문일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맹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맹세는 무엇을 걸고 하는것만을 말씀하시는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하는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한 말을 비키지 않으면 누가 욕을 먹습니까? 성도가 말과 다른 삶을 살면 누가 책을 잡히게 됩니까? 본인은 물론이고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맹세에 관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 삼계명에 직결되는 말씀인것입니다.
오믈 살며본 모든 율법을 지키는데 있는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자신들의 올바르지 못한 마음이었습니다. 내 자신을 위해 울법의 정신을 행위의 문제로 바꿔 버리고 그 가운데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합리화하는 그런 죄를 예수님꼐서는 신랄하게 비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메세지를 받으시는 모든 분들이 심령의 문제를 말씀과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하시고 하나님앞에 자유로운 삶 사시는 모든분이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4/2016 • 15 minutes, 22 seconds
마태복음 5 : 17-26(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은 담임 목사님 주청사 설교 청취 운행과 취재관계로 새벽 설교본문 목취 요약은 없습니다. 이에 양해 바랍니다. 늘 예수안에서 은혜 충만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5 : 17-26(정인수 담임 목사님)
1/13/2016 • 16 minutes, 50 seconds
마태복음 5 : 1-16(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5 : 1-16(정인수 담임 목사님)
우리가 이제 보게될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산상수훈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가르치신 귀한 가르침이라 산상보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어도 우리의 죄성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산상의 가르침으로 우리 구원 받은 사람들이 지향해야할 삶의 목표를 이 가르침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의 경지는 너무나 높고 깊어서 산상수훈은 우리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비 기독교인들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준것으로 유명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이 산상수훈에서 많은 영간을 얻고 늘 애독하던것으로 유명합니다.
먼저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라고 말씀은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을 열지 않으시면 가르침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입을 여시는 순간에는 그 가르침을 들어야하는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님이 입을 여십니다.
그 가르침의 첫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이 있는자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참된 복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시편 일편은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 사모하는 것만큼의 축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저주는 말씀이 없는것입니다. 말씀이 임하지 않는것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도무지 없는것이 바로 저주인것입니다.
아모스 8장11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배가 고픈 주림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있다는것이고 그것이 정말로 괴로와 할 기갈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울때 녹용을 먹였다고 잘 크는것이 아니라 말씀이 그 아이에게 전해질 때라야 잘 크게 되는 것이고 말씀을 먹어야 우리의 육체와 정신에 복이 깃들게 되는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없는 건강은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 건강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필요한 축복이 있는줄 믿게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던 평범했던 어찌보면 보잘것 없던 링컨의 삶이 위대해 진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삶을 위대하게 바꾸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슴에 복이 있나니 할때 쓰는 단어는 마카리오스 μακάριος 라는 단어 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만물이 질투하는 위치를 가리키며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5절은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인간의 진정한 복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진정한 복이시고 하나님의 심령이 임하는자가 바로 행복한 자인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누릴 첫번째 복을 산상수훈에서는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절대적인 복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복도 복이고 건강의 복도 복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영원한 복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의 복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이 복이 임하는것일까요? 그 답을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첫 관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영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하나님이외의 것으로는 도저히 채워질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길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가난이라는 단어는 πτωχός 프토코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완전한 파산의 상태를 지칭합니다. 굶주림으로 몸이 오그라 붇어 구부러질 정도의 가난을 말하는데 구걸을 할 정도로 완전히 낮아진 심령을 수반하는 가난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심령처럼 대 기근중에 마지막 자신에게 남은 기름을 엘리야에게 바치고 자신의 생명과 모든것을 하나님앞에 맡기는 그러한 심령이 바로 가난한 심령인 것입니다. 절박한 심령입니다, 하나님앞에 구걸이라도 마다 않는 심령인것입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이 절대로 필요한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자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인것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채울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나를 채우실 수 있다는 인정함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심령의 가난함이 이 이 메세지를 듣는 모든분들께 임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2/2016 • 16 minutes, 28 seconds
마태복음 4 : 12-25(이성혜 목사님)
마태복음 4 : 12-25(이성혜 목사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스물론과 납달리 지경의 가버나움에서 사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짜와 왔는니라 외치시며 천국복음의사역을 시작 하시게 됩니다.
나사렛을 떠나신것을 몇번이나 오늘의 본문은 강조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공간상의 이동이상의 것을 지금 본문이 말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단순히 사는곳, 거주지를 옮겼다는 뜻 이상의 말인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시는 공생애를 살게 되심을 말씀하시고 있는것입니다. 육신의 고향인 나사렛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예수님꼐서 살게 되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보셨습니다. 고기를 잡는 평범한 사람들 즉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어쩌면 그보다도 못한 사람들을 보고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로 불러 주셨습니다.
천하의 랍비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때 스승을 찾아가 수업료를 내야만 학생으로 받아주는 세상의 랍비들과 달리 제자들을 직접 찾아가시고 이름을 불러주시고 가르치시고 또 가르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셨을때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했을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엇을 기대하고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 하셨을때 그들의 배와 가족을 뒤로하고 따라 갔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영적인 직관으로 강력한 능력을 느껴 따라 갔는지 아니면 단순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들을 부르신 콜링은 확실하게 적혀 있습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것이 부르신 이유입니다. 바로 이 부르심으로 온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계획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제자는 그러므로 사람을 낚는 어부일때 비로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꼐서 사역을 시작하시도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것도 들었고 기적을 베푸시는것, 또 병자들을 고치시는것을 다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성경은 제자라고 적지 않고 무리라고 적고 있습니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능 전하는 자라야 제자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님이 전하신 것 곧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의 삼중의 복음 첫째는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것이요, 둘째는 병을 고치는 것이요, 세째는 약한것을 고치시는것의 삼중복음 곧 그리스도의 3대 사역을 행하고 전하는것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예수님의 시대와 다름 시대를 삽니다. 먹는것도 보는것도 듣는것도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아니면 예수를 따라다니던 무리의 한명인가 물어 봐야 합니다.
무리는 예수님을 추앙하고 따라다니고 또 심지어는 왕으로 세우려다 실망하고 배반하고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그 복음을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세상이 품는 자들이 아니라 세상이 버린자들 소외된자들 연약한 자들을 부여안고 천국의 복음을 전해 그들의 인생을 어둠에서 해방시키는 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의 복음을 전할때 우리가 제자라는것을 다시 생각해 보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이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께 축원합니다.
1/11/2016 • 13 minutes, 18 seconds
시편19:7-14(심우진 목사님)
1/9/2016 • 25 minutes, 56 seconds
마태복음 3 : 1-10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3 : 1-10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소망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죄와 그로인한 타락으로 인해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그런 세상에 하나님께서 소망으로 다시 오시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을 완성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주님을 선포하시고 있고 주님을 예비하는 자로 세례 요한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사야와 같이 예수님을 준비하던 사역자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야말로 홀연히 유대광야에 나타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됩니다. 그리고 그가 외치는 메세지는 일관되게 회개하라 하나였습니다.
그의 메세지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대의 왕들이 행차하면 그가 올 길을 먼저 다듬고 기다리듯 우리 주님이 오실 길을 다듬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것은 우리의 존재를 좌우하는 우리의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오만하고 더러운 우리의 마음으로는 왕되신 주님을 절대 맞을 수 없습니다.
유대민족도 그들의 죄와 타락으로 세례 요한 이전 사백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영적인 암흑기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유일하게 사백년만에 들린 메세지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였습니다.
회개는 육신의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회개는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나의 존재의 진리는 사실 마음의 문제입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준비 되어야 주님을 맞을수 있습니다. 회개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필수의 과정입니다.
회개는 3가지 단계로 드러나고 발전하게 됩니다.
첫째는 나의 죄를 지식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나의 구체적인 죄와 또 나의 존재자체의 죄성을 깨닫게 되는것을 의미합니다. 행위와 생각으로 지은 나의 죄를 깨달으며 또 이를 넘어 나의 존재자체에 있는 죄성을 인지하기 시작하는것이 회개의 일단계입니다.
이 때 우리는 아 내가 죄인이구나 내가 적어도 남보다 이런 점에서 낫다고 생각을 해 온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고 하셨고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죄인 됨을 깨닫는것은 신앙이 깊어지면 질수록 더 강력해 지는 것입니다. 고 한경직 목산님은 그야날로 청아한 삶을 거룩의 삶을 살아오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그 믿음의 거인이 말년에 한 고백은 나는 죄덩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성화의 과정에서 죄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자신의 존재를 깊이 상령안에서 성찰한 분들만이 할 수 있는 내면의 진실의 고백입니다.
두번째 단계는 죄를 애통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단계입니다. 내가 나의 죄인임을 깨닫고 나의 죄인됨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가 하나님의 성령안에서 깨닫게 되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보시는 심령이 나의 울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에 들어간 많은 신자분들은 울 이유도 없는데 종종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두번째 단계인 죄를 애통하는것 입니다.
세번째 단계는 죄를 나의 삶으로 대적하는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지적합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의 세번째 단계입니다. 죄와는 반대로 행하게 되고 나의 죄성을 대적하게 되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능력과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탐욕의 삶에서 나눔의 삶으로 무기력한 죄의 포로에서 행동으로 죄와 싸우는 병졸로 나의 삶이 바뀌게 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2008년 미국의 경제위기는 이 탐욕에 근거한 시스템이 아무리 대단해 조여도 얼마나 빈약한 것인가 너무나 잘 보여주는 예 였습니다. 지금은 중국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저 위정자들의 모습에서 중국이 어떤 미래를 겪을까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영적인 문제의 해결은 회개로 부터 시작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모든 문제의 해결의 시작입니다.
회개를 하면 첫째, 나의 죄를 용서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죄의 용서는 오직 내가 회개할 때만이 나에게 체감되어지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은 연원히 임재하시지만 그 하나님과 나를 이어주는것은 오직 회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두번째는 천국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것입니다. 회개 할 때 더럽고 추하던 나의 심령에 복음이 뿌려지고 그 복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며 우리안에 천국의 소망과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것입니다.
세번째는 진정한 회개는 성령의 충만함을 가져오는것입니다. 모든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이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언제나 선포 하셨던것은 회개의 메세지였습니다 회개할 때만 성령의 역사가 있다느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성령의 충만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를 언제나 하고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가끔 하는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우리 영의 호흡이라면 그 기도에는 늘 회개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ACTS 가 기도의 순서이고 해야할 기도의 종류라고 하지 않습니까?
A: Adoration-하나님을 높이고
C: Confession- 나와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며
T: Thanks Giving- 하나님께 감사하고
S: Supplecation- 하나님께 간구 하는것, 하나님께 무릎으로 나아가는것.
이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없이는 기도도 없고 기도는 회개의 연장이어야 합니다. 회개 없이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도 없고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자, 회개하는 자입니다 그런 회개의 자리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납니다.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과 충만이 넘쳐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회개의 장소이어야만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받으시는 모든 분들께 회개의 능력이 충만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8/2016 • 15 minutes, 3 seconds
마태복음 2 : 13-23(심우진 목사님)
마태복음 2 : 13-23(심우진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헤롯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게된후 자신의 왕권의 안전이 위험을 느낀다고 판단해 베들레헴과 그 지경안의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살육하는것이 주 내용입니다.
이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헤롯은 유대인을 대적하던 에돔족속이었던것이었습니다. 야곱의 형 에서가 붉은 피부로 인해 에돔이라는 이름을 얻어 이 족속의 조상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헤록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할 때 어찌 느꼈을지는 짐작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에돔족속 헤롯이 미쳐 폭주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당신의 계획 안에서 온전히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계획은 예수님이 연약할 지라도 우리 주님의 육신의 부모가 미약할 지라도 온전하게 보호가 되시는것입니다.
헤롯이 자신의 속임수에 동방박사들이 속지않고 자신에게 원하던 소식을 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미쳐날뛴것은 분명한 사탄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런일은 이 때에만 있었던일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사탄마귀의 책동질은 일어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 속에는 여적전쟁의 형태로 드러나는것입니다.
이 영적전쟁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법에 따른 올바른 생각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사탄의 꼭두각시로 부려먹으려는 사단의 수작과의 싸움입니다.
우리에게 이 때 필요한것은 나를 괴롭히는 현실뒤에 누가 있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건의 뒤에 사단이 있는지 이 더러운 영의 계략인것인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적을 알아야 제대로 싸울 수 있습니다. 단순한 해프닝인지 아니면 정말로 영적 군장을 꾸려 제대로 싸워야할 영적인 대적이 있는지 우리는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단과 홀로 싸우는 듯 느껴져도 결국 이 모든것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극도로 교활한 존재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 이지만 이 것들조차 하나님의 섭리의 지배를 받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결국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 집니다. 우리가 싸우는 싸움은 그 승리가 보장된 싸움인 것입니다.
자 요셉이 마리아를 만난후 지금 까지의 그의 삶에는 어려운 고비들이 늘 있었습니다. 세상의 시선과 먼저 싸워야 했고 지금은 세상의 왕이 싸움을 걸어오는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과 싸워야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지켜 내셨습니다. 털 끝하나 다치지 않도록 이끌어 주셨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환란중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심과 아버지의 신실함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의 털 끝하나 다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기억할 것은 하나님 본인이셨던 아기 예수도 세상에서 고난의 길을 지나도록 하나님의 계획이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안전하게 지키셨어도 애수님께서 안전한 곳으로만 지나지 않게하시고 목숨이 위태로운 위험의 현장을 직접 관통해 가시게 했다는것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셨다면 우리도 똑 같은 어려움을 감당할 때가 분명히 우리 인생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머무셨던 갈릴리는 유대지방의 정말 촌이었습니다. 아무런 볼만한것이 없는 시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이야말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 갖춰져 있던 곳이었습니다. 어려움이 아니라 세상의 구석에서 잊혀진듯이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도 어쩌면 하나님의 복음전파계획의 중심에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의 지혜보다 낫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인간의 계획보다 더 깊고 신비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전혀 차질이 없이 이끌고 나가시며 실현해 주십니다. 이 꼐획을 믿으심으로 어려움과 또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사역할 지라도 살아갈 지라도 하나님께는 중심이 되는 쉬한 자녀의 삶을 사는것임을 믿으시고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붇드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7/2016 • 9 minutes, 44 seconds
마태 2:1-12(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 2:1-12(정인수 담임 목사님)
새벽기도를 나올때마다 하늘을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틀란타는 별이 많이 보이는 편이라 하늘에 있는 새벽별을 보면 경외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별은 인간의 역사를 지켜보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아프리카 케냐에 선교를 가서 마사이부족의 마을의 선교사님 댁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는 표현이 딱 맞을정도로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것을 보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뜨거운 감동을 느낀 기억이 납니다.
그곳에서 별들은 지으신 분의 뜻을 따라 하늘에서 합창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 모든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뜨겁게 온 심령으로 찬양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한 별을 쓰셔서 성탄과 소망의 증거로 사용하십니다. 동방의 별은 바로 성탄절의 상징이자 소망을 이야기 합니다. 별은 소망이고 기쁨과 소망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소망 곧 비전은 기쁨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비전을 가지고 사는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비전이 없으면 일찍 늙습니다. 비전이 있으면 나이에 상관이 없이 소망과 기쁨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서는 방향을 말씀하실때 각기 다른 상징으로 사용하시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쪽은 환란을 나타내는 방향이고 남쪽은 은혜의 방향이며 동쪽은 소망과 비전을 나타내는 방향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나타내는 동쪽하늘의 별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신 크신 소망과 비전을 나타내는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불안속에 살아갑니다. 과학이 무섭게 발달했어도 현대의 철학과 문화는 허무와 절망을 이야기 합니다. 이 과학의 발달은 이미 인간의 윤리의식과 균형감각으로 감당이 안되는 수준으로 발전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이 기술을 가지고 어디로 갈지 종국에 이 기술이 인류를 해칠 수 도 있는 위험이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허무와 절망으로 표현되고 있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극도로 발달한 문영과 기술이 우리에게 주는것은 소망도 비전도 아닌 오히려 실존적인 불안입니다, 역설적으로 허무와 절망의 골이 기술의 발전으로 깊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슴 드리지만 오빅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런 허무와 절망으로부터 우리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 크신 소망은 오직 옛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그 큰 소망의 성탄으로의 발현을 광명한 새벽별로 표현 합니다. 계시록 22장 16절은 적기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오늘의 말씀에서 이 동장의 별은 인도하는 별로 나오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온것은 자신들의 생각으로 온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태어 났다면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태어 났을것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판단으로 예루살렘에 와 헤롯을 만나게 되는 것 입니다.
그제서야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박사들이 별을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별을 따라가 이른곳이 바로 베들레헴의 마굿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천한 그곳에서 이들은 온 인류의 소망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것입니다. 결국 우리도 우리의 새벽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살 수 있습니다. 다른길은 다 죽음과 자기 파괴의 파멸의 길입니다. 우리 주님은 허망한 말로 추상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으십니다. 구체적인 방향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 보여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참신하고 발전적인 계획과 생각을 가능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벽의 기도를 통해 큐티를 통해 하나님께 나의 인생의 방향을 지도 받아야 합니다. 새벽기도 나오십시오 나오셔서 인생의 방향을 받아 가세요, 그런 영감의 지도가 없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가겠습니까?
또한 동방의 별은 심판의 별입니다. 이 별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소망의 병 비전의 빛이었지만 헤롯에게는 이 별은 공포의 별이요 심판의 별이었습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속여 예수님을 죽이려 했지만 동방박사들은 여기에 속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수작이 먹히지 않자 불안해진 헤롯은 폭주를 하기 시작합니다. 극도의 공포감에 자기의 백성들을 학살하고 아기들까지 죽이는 광인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인생의 끝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파멸입니다 죽음 입니다.
그러나 새벽별 되신 우리 주님을 쫓아가는 인생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곳에서도 온 우주의 영광과 생명되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만나게 됨을 밎으시기 바랍니다. 마굿간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쫓아가는 사람들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믿으시고 경험하시기를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께 그 구체적인 하나님의 경험이 충만 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참고: 계명성은 새벽별(Morning Star)을 뜻하는 한자어이다.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새벽에 빛나는 별'이며, 순우리나라 말로는 '샛별'이 가장 적절하다. 금성이 새벽 하늘에 뜰 때 그것을 샛별, 또는 계명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계명성'이라는 표현은 실제로는 다른 문맥에서는 거의 씌이지 않고, 현대 한국어에서는 오직 그리스도교 성경에만 등장한다.
계명성은 성경 이외의 문맥에서는 사용되는 일이 없으므로 성경 용어로 보는 것이 합당하고, 성경 안에서 본래 예수를 뜻하므로 계명성은 '예수를 상징하는 새벽 동쪽 하늘의 밝은 별'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1/6/2016 • 18 minutes, 40 seconds
마태복음 1 : 18-25(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1 : 18-25(정인수 담임 목사님)
요즘 New Age 운동이라는것이 있는데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정합니다. 이유는 이 돈정녀를 통한 예수님의 탄생이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누가가 기록한 바와 같이 역사적 사실이며 이 사실이 우리의 구원의 조건과 직결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를 사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것은 흠없는 구원자입니다. 죄있는 자가 다른 죄인을 구원할 수 없고 오직 흠없고 죄없는 구원자라야 우리의 죄사함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없는자라야 우리의 죄를 사할 제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는 사람들과 같이 우리 주변에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제한을 두고 하나님을 이해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희안하게도 이들은 시험관아기와 같이 윤리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일들엔 환호하고 믿으면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에는 극도로 부정적인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과학의 시작도 하나님이 만든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것이고 많은 신학자들은 과학자이였기도 합니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백세때 이삭을 주셨고 태가 마른 한나에게 사무엘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 신비의 역사가 기독교에서는 일어납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하나님께 불가능한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은 불완전한 인간중에 순종하는 자들을 들어 쓰시길 즐겨 하십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경우에도 생각해 보면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때 얼마나 황망했겠습니까? 결혼도 하기전에 임신한 약혼녀 마리아와 마리아가 전했을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말이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그러나 요셉은 성경이 적고 있는대로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율법으로 마리아를 정죄하겠다고 난리를 부리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파혼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요셉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의 이야기를 전했을때 인간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신비임에도 요셉은 전해지는 말씀에 순종을 하고야 맙니다. 마리아의 남편이 되고 아기 예수의 양육을 책임지는 아버지의 역활을 순종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순종의 사람들을 통해 또 하나님의 신비를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이미 말씀하신 당신의 계획들 즉 하나님의 예언들을 하나하나 빠짐이 없이 성취해 가시는 것입니다. 결국 한나님의 모든 말씀은 성취되기 위한 계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지키면 좋은 윤리와도 다르고 아마 이렇게 될것이라는 예측과도 다른 실제로 이루어질 예정의 말씀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기 위한 말씀임을 믿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믿음이란 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것입니다.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가 하나님의 신비하신 역사와 계획하심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우리의 구원을 믿을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께서 자기의 머리로 믿는 이성의 한계를 넘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5/2016 • 13 minutes, 45 seconds
마태복음 1:1-17(조재욱 목사님)
마태복음1:1-1(조재욱 목사님)
사도 마태가 적는 예수님의 족보로 마태복음은 시작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을 중시하는 히브리 문화와도 통하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았다는 선민사상이 굉장히 강하였고 그런 선민의식이 혈통과 족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로 이어졌습니다.
마태 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씌여졌습니다. 그러니 유대인에게 익숙한 족보이야기로 복음을 시작하는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태의 복음은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 14대 아브라함에서 바벨론유수까지 14대 바벨론유수에서 예수그리스도까지 14대 이렇게 우리 주님의 족보를 나누고 있습니다.
사도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할때 몇몇의 이름을 누락 시키기도 했는데 이것은 마태의 실수라기보다는 이러므로 족보를 통해 저자가 전할 메세지를 강조하는 유대인 특유의 표현방법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족보를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보면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경륜을 보실 수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경우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을때 그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나실것이라는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계속 자식을 볼 기미도 보이지 않자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하나님을 의지하는것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깬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이 때부터 하나님꼐서 13년이나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침묵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99세일때 아브라함앞에 나타 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앞에서 행하여 온전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왜 나와의 언약을 깼느냐? 왜 나를 순종하지 않았느냐? 하고 말씀 하시는 질책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과의 언약을 깬 죄는 죽음으로 갚아야하는데 그 죽음을 할례로 대신해 주신것입니다. 말씀은 아브라함이 죽은것같이 되었을때 이삭을 얻었음을 적고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이 죽은것 같다, 곧 죽었다고 적고 있는것입니다. 할례로 죽은자 되었을때 하나님께서 할례를 통해 육을 죽이시고 영을 살리셨을때 이삭을 얻었다는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의 할례로 언약의 족보가 이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것입니다.
하나님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나님과의 언약도 깨버리는 연약한 인간인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해 온 민족의 구원을 이루시는 우리주 그리스도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어찌보면 아브라함보다도 더 주의해서 볼 만한 인물들이, 많은 여성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다말이고, 룻이고, 라합이고 밧세바입니다 이들은 창녀요 이방여인이요 간음한 여자들이었습니다. 연약하기 이를때 없고 불완전하기 이를데없는 사람들인것입니다.
왜 이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갔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 죄인임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죄인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죄인이었습니다. 그 죄인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메시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것이라는것의 예표인것입니다.
또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는 차별이 없고, 또 불가능이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창기 라합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셔야만 이 더러운 죄인인 나를 구원해 주실 하나님이시라는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이셔야만 더러운 이방 죄인인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사의 실수로 맹인이 된 유명한 시인이자 찬송가 작사가인 크로스비여사는 자신의 눈이 치유를 받을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기 싫다라고 적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사께서 천국에서 눈을 떴을 때 첫번째로 보길 원하는 것이 세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주님,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라는 사랑의 신앙 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구원의 경륜을 깊이 깨달은 사람들은 이렇게도 깊은 주님사랑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우리를 죄인된 우리를 더러운 우리의 인생을 구원할 이 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며 그 크신 사랑의 경륜은 오늘 한때 세리였던 마태의 복음의 시작에 적힌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며 오늘 이 크신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시는 모두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2016 • 15 minutes, 34 seconds
누가복음 2:7, 40, 52
1/2/2016 • 30 minutes, 56 seconds
고린도전서 14:13-15, 에베소서 6:18 (정인수 담임 목사님)
고린도전서 14:13-15, 에베소서 6:18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은 먼저 중보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설교를 하겠습니다. 우리 브라이언 민 수년간 전신 마비로 누워있던 이 아들이 이번에 해피버스데이 투유 맘이라고 입을 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직 분명한 언어는 아니지만 이 아들이 입을 띤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오늘 말씀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능력있는 기도를 하기 원합니다. 능력있는 기도는 오직 성령님과의 관계를 깨달을때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면 성령님께서는 놀라운 기도의 비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깊고 친밀하게 만들어 줍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인도하십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통로를 통해 성령님께서 내 뜻을 하늘로 전하는것뿐 아니라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 숨 쉬지 않고 살 수 있기를 기대하는것이 어리석은것과 같이 기도를 포기하고 영적으로 살기를 기대하는것이 얼마나 헛된 일이겠습니까? 기도하지 않는것은 살아있기를 포기하는것 입니다.
또 기도하지 않으면 죄된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기도하면 완벽한 기도의 선생님 되시는 성령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불완전하고 죄인된 존재인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앞에 닿을만 한 것이겠습니까? 가당치도 않은일입니다 오직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통역을 통해 전해 주시지 않으면 기도가 열납되는것은 불가능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령 하나님 안에서 하느것입니다. 표현조차 어려운 나의 감정과 사정을 성령하나님께서 직접 나의 대변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정확하게 전달해 주심을 깨달으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나도 모르는 나의 아픔과 고통을 성령께서 아시고 전하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때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합니다. 소리내어 부르짖어 기도할 때 나를 벗어버리고 해야 할 기도를 하게되는것을 경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적인 기도에서는 꼭 부르짖어 기도하는 습관이 들어야 합니다. 이 부르짖는 기도는 또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기도입니다. 소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악을 궤멸하는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성을 이스라엘 백성이 공격할 때 무엇으로 공격했습니까? 소리입니다 목소리 높여 고함을 치니 성이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이와같이 부르짖는 기도에 악한 영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방언으로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방언을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막힌것을 뚫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막힐때 방언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의 문이 뚫립니다. 영이 눌릴때 방언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가 터져 나옵니다. 기도 한다고 진땀을 흘리며 기도했는데 삼분을 넘지 못하십니까? 방언으로 그 한계를 넘을 수 있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과의 Direct Communication 입니다 다만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에게 덕을 세우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방언으로 교만한 성도가 있을 때 교회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예언을 더 강조하시기도 했씁니다.
예언은 미래의 일을 점치는것이 아닙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교회에 밝히는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게 하시는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예언으로 드러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을 통해 우리 영의 깊은 탄식을 해소하게 됩니다. 우리 양혼의 병을 치유 받게 됩니다 하지만 교회의 질서를 위해 방언을 절제할 줄 도 알아야겠습니다. 사도 바울같은 과격한 성령파 사도도 그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질서있게 하는 방언을 강조하시고 또 일만마디 방언보다 다섯마디 예언을 낫다고 하신것입니다.
방언에는 신비가 있습니다. 영적인 기도에는 신비가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새 해에는 더욱더 싶은 기도의 세계로 들어가 하나님의 진리를 살아내는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31/2015 • 34 minutes, 39 seconds
사도행전 2:38, 5:32, 19:1-7 (정인수 담임 목사님)
사도행전 2:38, 5:32, 19:1-7 (정인수 담임 목사님)
인생의 한계를 뛰어 넘는것도 교회의 영적 성장의 한계를 뛰어 넘는것도 다 성령의 은혜로 하는것입니다.
어제 우리교회의 성도인 잔-리 집사님의 집을 심방을 했습니다 이 분이 요근래 교통사고로 어려움을 겪으시고 회복이 됐는데 간증을 하셨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 왔는데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 꼭 치유 받을 영역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무엇보다 교회가 과연 무엇인가 깨닫게 하셨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 모든것이 다 하나님 은혜임을 고백하는 집사님을 보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비콕스라는 세계적인 신학자가 있는데 이분은 원래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나주 지적인 신학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분도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복음주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 분이 쓰신 책이 Fire from Heave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은 솨연 어떤 교회가 영적인 영향력을 현대 사회에 미치고 있는냐는 것이었고 이 책을 위해 본인이 직접 전세계의 많은 교회를 돌아다였습니다.
결론은 성령 충만한 교회만이 아직도 남아있고 능력을 발휘하는 교회더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성령의 엔진을 달아야 교회던 인생이던 아를 솎아매는 두려움과 한계를 뛰어넘게 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이후 교회가 실제적으로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이 때 교회의 성도들은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목숨을 걸고서 예수는 그리스도를 외치며 노방에서 시장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 입니다. 그 후의 하나님의 역사는 사도행전에 오롯이 적혀 있지 않습니까? 이 것이 성령 충만한 교회의 능력입니다.
반대로 제도적인 교회 율법적인 교회는 능력이 있을 수 가 없습니다. 신학교에서 말하는대로 말씀을 쪼개고 분석하고 그대로 성경을 공부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실지로 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이것은 지식적이고 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식이 아니라 성령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령은 인격이신 삼위중 한 분이신 하나님의 실체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매직파워가 아닙니다.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로 인해 우리에게 허락된 은혜의 산물입니다. 이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연합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 스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성령의 역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성령은 전적인 십자가 보혈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사모하는것은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사모하는것과 같은 것 입니다. 그러므로 성려은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사모하는 모든 자녀들이 받아야하는 필수불가결의 과정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성령하나님을 깔보고 경원시하는 나쁜 태도는 회개의 대상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성령의 내적 충만이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순간 분터 우리안에 내주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속사람을 바꾸기 시작 하십니다. 언어와 행동이 인격이 바뀌기 시작하는 성회의 과정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내적 충만입니다.
성령의 외적 충만은 위로부터 오는 충만이며 오순절 성령강림의 충만이며 불같은 능력의 은혜입니다. 이 성력의 외적 충만의 능력은 아라들까지도 바꾸어 버리는 어마어마한 능력의 충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사역자들이 받아야하는 성령의 충만인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겅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조건들이 만족되야 합니다.
먼저 남의 마음이 성령님께 열려야 합니다. 낮은 마음 파산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원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충만해져서 혈기를 부리는 사람에게 성령의 충만이 있겠습니까? 혈기는 악령을 부르고 성령을 소멸하는 행위인것입니다.
또 성령의 역사가 강력히 일어나는 회중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성령의 강림은 교회 성도의 합심기도가운데 일어난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성령은 말씀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임하십니다. 자아가 강해 생명의 말씀을 받아 드리잊 않는자들에게는 성령의 충만이 있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안수할 때 성령의 역사가 드러 났습니다.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의 역사가 늘 일어낭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러나 무엇보자도 회개의 분량이 차야 합니다. 회개는 나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 받는것은 성령충만의 지름길이며 필수의 조건입니다. 내 안의 죄를 씻을 때에만 성령 하나님의 충만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것에 임함에 있어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합니다. 자기 생각을 꺾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자기가 하나님 노릇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성령의 충만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치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이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순종하여 성령의 외적 내적 충만을 받으시는 귀한 역사에 동참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30/2015 • 39 minutes, 2 seconds
요한 1서 2:20,27, 스가랴 4:6 (정인수 담임 목사님)
요한 1서 2:20,27, 스가랴 4:6 (정인수 담임 목사님)
성도의 삶에는 확실히 진리가 체험되는 능력의 현장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다메섹 노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그 체험이 바울의 모든것, 정체성 까지도 결정짓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체험이 없을 때 능력이 없는 단순한 종교인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자기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구의 이성위주의 기독교는 점점 쇠퇴하고 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능력위주의 사역을 하는 교회들은 점점 성장하는것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는 오직 성령의 충만함이 문제해결의 열쇠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에 동반되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이 부어지는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성도의 사역과 문제가 해결되어진다는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신실해 보이는 성도조차도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하는데 자기 자신의 기름을 태우는 열매없는 삶을 삽니다. 인간적인 분투로는 하나님의 역사도 드러나지 않고 부흥은 더더욱 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스스로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다이나믹을 우리의 삶안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원어로 보면 기름 부은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꼐서 기름부으심을 받으셨다면 우리 믿는자에게 기름 부으심은 필수지 옵션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기름 부으심의 뜻을 잘 알아야겠습니다. 먼저 기름 부으심은 거룩하게되어 구별하는것을 말합니다. 또 신적인 위임을 받을때 기름이 부어 집니다 왕이나 제사장을 세울때 기름부으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신적사역위에 능력을 부어주는 능력을 부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직 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만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를 통해 왕노릇하는 자로써 거룩하게 구별되고 능력이 드러나게 되고 사역을 감당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성경을 보면 에수님 자신이 성령을 주시기도 하지만 또 직접 성령의 충만을 받아 사역하시는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성령충만하는일에 소흘히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도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셨습니다.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현대에는 너무나 눌린 영혼이 많고 이것이 중독으로 드러납니다.이 사회는 이미 중독의 사회입니다. 이렇게 중독의 기운이 넘쳐나는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중독은 분명히 악한 영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이 중독을 치유하려면 사람의 힘으로 되겠습니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할 것임을 깨달으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기름 부으심은 성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야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기름 부으심을 위해서는 적어도 두가지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데 하나는 거룩의 추구요 하나는 용서하는것과 용서받는것의 추구 입니다.
먼저 더러운것에서 내 생각과 몸이 떠나야 하고 나자신이 용서하는 사람 또 용서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늘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데 기름부음이 있을거란 기대는 애초에 버리십시오. 자신의 삶을 쪼개서 또 자기의 소유를 쪼개서 드리는 제사가 없을때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도 없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역사가 나타나길 축원합니다.
12/29/2015 • 28 minutes, 19 seconds
이사야 44:3-5, 요한복음 7:37-39 (정인수 담임 목사님)
이사야 44:3-5, 요한복음 7:37-39 (정인수 담임 목사님)
인생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좋은일도 나쁜일도 기쁘고 슬픈일도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할때 우리는 이 일들을 겪어가면서 어떻게 이 문제 사이에서 상처받지 않을까 그런 수준에서 전전 긍긍 하며 살았습니다.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나면 이런 약한 마음이 어떻게 나의 이 어려움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드러날까로 바뀌게 됩니다.
문제는 사탄이 우리가 겪는 고통을 통해 우리를 속여 우리의 마음을 뺏으려 한다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전쟁터 입니다 더러운 존재 사탄은 이 마음을 빼앗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혈안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왜 마음이 중요합니까? 이 마음안에 믿음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이 마음을 빼앗아 허수아비같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이 마음을 열어야 하겠습니다.그럴때에만 우리가 직면하고있는 수많은 문제들의 본질적인 해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오직 하나님께서만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7:37-39에서 나온것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열면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나옵니다. 이 배라는 말에는 원어에는 마음, 심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믿는자는 그 마음에서 하나님의 생수의 강 성령이 터져 나와야 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러지 않고 나의 힘으로 모든것을 감당하려고 몸부림을 치는것은 내 안의 생수의 강이 막혔다는 증거입니다.
이럴때 우리는 영혼의 기갈을 경험하는데 이 기갈은 성령 하나님을 사모하는것으로 이해 하셔야합니다. 내 심령이 답답하고 뭔가가 채워져야 할 것을 알게됩니다. 그럴때 성령 하나님으로 내 심령을 채워야 합니다. 성령은 물과 같이 부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위로부터 부어지는 은혜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부어질때 이 기갈은 물론 모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약속이며 우리가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모든 마음의 고통은 성령 하나님의 채워짐으로만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헛된 세상에서 위로함을 찾으려 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세상이 여러모에서 교회와 비슷하거나 교회 보다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든 맥도널드라는 영성학자의 지적은 이렇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좋은것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먹이고 또 집을 지어주는것 같은것들을 할 수는 있어도 은혜는 오직 교회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수의 강은 오직 교회에서만 하나님의 은혜로만 터져 나오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게 이런 영적 기갈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왜 유일한 해결이신 하나님을 그럼에도 멀리할까요? 그것은 생수의 강을 갈망하는 영적 기갈 속에 있으면서도 이것을 느낄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영적인 무감각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오직 은혜로만 받을 수 있는 이 생수의 강을 받을수 있는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수의 강이 터지는 은혜는 마음의 밭이 경작된 사람에게만 임하십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은혜는 엉겅퀴속에 떨어진 씨앗이고, 길가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의 밭은 오직 말씀과 기도와 묵상으로 매일매일을 채워갈 때에만 갈려질 수 있습니다. 그럴때에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은혜는 은혜를 사모하는 만큼만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 은혜를 사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은혜를 사모함이 이 은혜를 크게 받는 비결입니다.
진짜 문제는 이 모든것 은혜를 넘치게 주시겠다는것이 약속으로 주어졌음에도 현대인들이 은혜를 구하지 않는것이 문제입니다. 힘들게 살 때는 은혜를 구하더니 배가 차고 살 만해진 오늘이 되니 은혜를 옵션쯤으로 생각하고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이유는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은혜없이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만 되는 존재 들입니다.
오늘 이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께 은혜를 사모함과 그 은혜의 성령으로의 부어짐이 넘쳐나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28/2015 • 29 minutes, 34 seconds
야고보서 3:1-12(조근상 목사님)
12/26/2015 • 26 minutes, 56 seconds
누가복음 2 : 8-20 (정인수 담임 목사님)
누가복음 2 : 8-20 (정인수 담임 목사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하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엄청난 축복의 말씀입니다, 엄청난 능력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암송할 말씀입니다. 오빅 성령하나님께서만 듣는자들을 일깨워 주실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화와는 거리가 먼 세상입니다.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고작 300년이 될까 말까 입니다. 게다가 반란과 소요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평화를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은 늘어만 가는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절대적인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어떻게 이런 전쟁과 반란의 역사 속에서 가능 하겠습니까?
오로지 평화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이 전하는 평화의 소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게 향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대인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과 자신이 각각 분리된것으로 이해 합니다. 내가 괜찮다고 느끼면 하나님도 괜찮을것이다라는 자기 중심적이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내가 하나님과 싸운적이 없으니 나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중에 있다고 우기는 억지를 부리는 수준입니다.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고 들게 됩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에게 성탄절은 환락의 명절이요 쾌락의 명절입니다. 하나님을 철저히 무시하고 하나님을 박제된 호랑이 정도로 취급을 합니다. 자신의 삶과 전혀 상관이 없는 존재로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내재하심과 하나님이 만물을 운행하심을 도저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안이 뜨이고 보면 나의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문제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인것입니다. 이 관계의 문제가 해결 되지 않고는 인생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실마리조차 찾을 수 가 없습니다. 이 가장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되디 않고는 내 인생이 모든 문제에 묶여 매여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오늘 믿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로마서 3:23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적고 있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원수된 자였습니다. 이 원수의 관계를 ㅊ펑산하지 않고 어떻게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살아갈 기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오늘 아기 예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보혈의 죄씻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할 수 있다이렇게 선언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아직 우리가 원수 되었을때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바로 오늘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날에도 천사가 전한 바로 그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간 우리를 괴롭히던 시기와 질투와 초조와 불안의 문제들이 사라지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안의 악한 생각 분노 어울한 이런 악한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실때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안의 평화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이 성령 충만의 관계안에서 평화가 임합니다, 주님께 시선을 올릴때 평화와 평강이 임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크고 큰 축복의 시작이요 비밀이요 전체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으로부터 오는 크리스마스의 평강을 누리시길 바라며 이 메세지를 듣는 분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2/25/2015 • 15 minutes
누가복음 1 : 39-56(서석훈 목사님)
누가복음 1 : 39-56(서석훈 목사님)
현대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어느 조사에서 크리스마그의 의미인 예수님의 탄생을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연상하는 학생은 전혀 없었다는 결과를 보면 걱정이 되는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아직도 크리스마스에 선행을 하고 이웃에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좋은 일이지만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크리스마스는 참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기쁨으로 충만하였고 기쁨의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태중의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둘이 만나게되면서 성격은 기록하고 있기를 성령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 감화 감동하심에 사로 잡히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날 아이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결혼하기전의 임신하게 됨은 마리아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계획이 있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기가 배고 있는 아이가 과연 누군인지는 모르고 세상의 시선과 수근거림 핍박을 감당하는 비천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빛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된 순간, 성령 하나님의 감동에 사로 잡혔을때 어두움은 물러가고 기쁨만이 가득한 삶으로 바뀌게됨을 봅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삭개오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면서 삶이 바뀌게 됩니다. 진정한 찬양과 영광돌림이 그들의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의 두 여인 마리아와 엘리사벳도 그러했습니다.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에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강력한 기쁨과 충만의 역사를 맛보시는 하루를 사시기 축원합니다.
12/24/2015 • 13 minutes, 14 seconds
이사야 11 : 1-9(정인수 담임 목사님)
이사야 11 : 1-9(정인수 담임 목사님)
이사야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예언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탄생이 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게 될지 유념해 볼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사자와 살진 짐승이 같이 누워 어린아이와 노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동화와 같은 이 이미지는 예수님의 가져다주는 평화가 과연 어떠한 것일지 보여주는 말씀들입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주님께서는 참된 평화를 우리에게 주실 것 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다 도망가 꼭꼭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왜 위기의 순간에 힘과 능력을 말씀하시는 대신 평강을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평강이야말로 위기를 세상을 이기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평강이 있으면 어떤 두려움도 이길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에 평강이 있으면 어떤 고난도 이길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른 무엇보다도 제자들에게 평강을 약속하신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능력의 비밀이요 세상을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은 또 세상을 승리하는 능력임과 동시에 나자신을 또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을 접한후에 인생이 바뀐 간증이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는 외모까지도 바뀌는 간증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을 접하면 인생이 바뀝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평강은 성령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위에 임하시는 성령하나님을 적고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역을 감당하실 것 임을 적고 있다는것 중요한 일입니다.
이제 다음주 월요일부터 특새가 시작됩니다. 이 특새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강력의 역사를 체험하시고 이 세상을 승리하시는 모든 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것뿐 아니라 엄청난 고난도 이겨내는것을 봅니다, 저 어려운일을 감당하고 저 기가 막힌 고난을 돌파하고야 맙니다. 그것이 평강의 왕이신 우리 주님이 사역하신 능력의 든원이고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의 본체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성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임하시어 세상을 승리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2/23/2015 • 13 minutes, 16 seconds
야고보서 2 : 14-26 (정인수 담임 목사님)
야고보서 2 : 14-26 (정인수 담임 목사님)
말,즉 우리의 고백적 믿음과 우리의 행위가 일치해야 한다는 말씀을 야고보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칭의적 믿음의 강조를 많이 하고 있는데 하지만 이 모든것이 행위로 열매 맺지 못한다면 이 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라는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고 그 삶에서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열매는 행함이 없다면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행함은 좁은 의미로는 성한행위를 뜻합니다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생활에서 날마다 맺어가는 순종의의미를 갖습니다 즉 인격적 변화가 행위로 드러나는것을 뜻 합니다.
말로만 백날 선한일을 하는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번에 저희교회에서 스미스교도서 1600명 재소자에게 사랑의 패키지를 보냈습니다. 이 큰 계획을 감당 할 수 있을까 했지만 숨어있던 돕는 손길들이 나서서 1600명 한명도 빼지않고 다 전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고 기적이고 교회의 행함인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의 영이 포함이 된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결국 행위로 진짜인지 가짜인지 드러납니다. 하나님 사모하는 사람들은 예배에 나오고 새벽에 기도하고 말씀읽고 이웃을 돕습니다. 결국 열매로 판결이 납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 들의 믿음은 주님에 대한 자기고백도 없고 또 이웃사랑의 행위로 나타날 수 없는 거짓 믿음, 믿음도 아닌 그런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열매맺지 못하는 과일나무는 쓸모없는 나무일 뿐 입니다. 행함이 없는 열매맺지 못하는 믿음은 고로 죽은 믿음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쓸데없는 과일나무와 같은것입니다.
실천적인 믿음을 가진교회가 있다면 그 지역사회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유익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고와와 과부를 돌보는것이 하나님의 관심의 중심이었던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의 말씀과 관심에 부응하는 실천적 고백의 행위로 드러나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연합의 교우들에게는 행위가 드러나 열매를 맺는 진정한 믿음이 뿌리내리게 되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22/2015 • 15 minutes, 17 seconds
야고보서 2 : 1-13(정선기 목사님)
야고보서 2 : 1-13(정선기 목사님)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그리스도를 믿는다는것은 이웃과 함께 사는것이며 이웃을 사랑하는것입니다.
야고보서는 행함과 믿음의 균형을 말씀 하십니다. 저자인 야고보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보고 회심한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입니다. 야고보는 교회는 부와 권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앞에 평등한 곳임과 우리가 지켜야 할 최고의 법은 바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법임을 역설합니다.
야고보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을 향해 세상의 배금주의와 속물근성을 재격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주는 편지를 쓰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없수이 여기고 심한 경우에는 박해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가난한 사람들을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그럴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양은 전세계 인구의 세배가 먹고도 남을 양이랍니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기아에 시달리고 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입니까?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갖다 버리는 한 이 잇어도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박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돈있고 힘있는 사람이 우리를 괴롭힐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법정으로 끌어내고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교회안에서도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이 성도들을 법정으로 끌어내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이걸 잘 아시고 아무리 번지르해도 속사람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내가 진짜 누구인지 아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두려워 할 주 아는 지혜가 사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법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웃 사랑의 법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외모로 차별한다면 이것은 최고의 법을 어신 최고의 죄인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우리의 영성,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낮은곳으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시고 또 가장 낮은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까? 아직도 여전히 세상의 구원을 위해 주님의 낮아지는 삶의 모습을 담은 삶을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어늘 이 말씀을 받으시는 모든 연합의 성도들꼐서는 낮은가운데로 임하시는 우리 주님의 뜻을 따라가시기를 이웃과 나눔의 삶을 살기를 또 이웃을 사랑하시길 축원합니다.
12/21/2015 • 15 minutes, 46 seconds
루마니아 선교보고(김홍식 선교사님)
12/19/2015 • 45 minutes, 23 seconds
잠언 31 : 10-31(김재홍 목사님)
잠언 31 : 10-31(김재홍 목사님)
모든책의 첫장과 마지막장은 가장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첫장은 이 책이 무엇에 관한 책인가가 드러난다면 마지막 장에서는 결론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언은 현숙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로 끝내고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숙한 여인을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 현숙한 배필을 잘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창조역사의 완성도 아담의 배필인 하와를 창조하심으로 마감하게 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배필을 얻는가는 너무 중요한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어떤 배우자를 어떤 기준으로 성택하게 되는가가 정말 중요해지는데 오늘의 잠언은 고운것과 아름다운것에 끌리는 모습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같은면 미모 남성같으면 경제력과 지위를 말하는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조건을 맞춰주면 행복할 것 같은데도 왜 이런 사람일 수록 이혼율이 높아지고 불행한 결혼을 하는경우가 많을까요?
엘이자베스 테일러의 남편들도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두고 마람을 폈습니다. 외모로 만족이 안된다는 이야기고 이 외모면 다 될것 같아도 그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운것도 헛되고 거짓되다는 것입니다.
매력적으로 보이는것에 함정이 있을 수 있고 살아보면 아름다운것 고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더 중요한것이 잠언에서는 현숙한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믿음이 가는 배우자를 택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그 산업이 핍절하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것입니다. 또 성실한 사람이어야 한다는것을 이야기 하며 곤고하고 핍절한 사람들을 돌보는 마음과 눈이 있어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것은 전도하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고 교회로 인도하는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겠고 그런 사람이어야 현숙한 배우자이며 또 현숙한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이 바로 현숙한 배우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은 믿음이 가고 성실하며 곤고하고 궁핍한 자들을 돌봄으로 또 위기에 대처할 줄 앎으로 현숙한 배우자가 되시기를 그럼으로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18/2015 • 15 minutes, 51 seconds
잠언 30 : 15-33(김재홍 목사님)
잠언 30 : 15-33(김재홍 목사님)
잠언의 전체적인 주제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보잘것 없고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지 못한 인간의 삶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가운데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조리하다는 것이고 우리가 말씀으로 성찰 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이 부조리의 덫에 갇혀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어리 석으며 우리 자신을 높이기위한 헛된일에 온갖 힘을 낭비합니까? 이 것이 탐욕이 될때 모든 불행과 부조리가 시작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세계의 질서는 얼마나 안정되고 평안하며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반 즉 개미, 메뚜기 등의 미물들이 스스로 궁리하지 않아도 얼마나 조회롭게 서로서로 또 협력하며 잘 사는지 그렇게 살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신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물도 이럴찐대 결국 인간도 하나님께서 주신 품성대로 사는것이 정답인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탐욕을 따라 살아가는 실수를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탐욕의 모습은 오늘의 말씀에서 거머리의 두 딸들이 만족을 모르고 "다오 다오" 외치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탐욕의 삶의 비참함은 아무리 화려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것처럼 포장하여도 큰 어려움 앞에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잘 나가던 기업과 투자회사의 경영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보았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삶의 허상이 무너지는것을 견디지 못하는것이 얼마나 비참한 경과를 가져 왔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길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우리도 복받는 길이 있음을 아는 사람들인것입니다.
저는 시니어 사역을 하면서 그 증거들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십계명의 하나임과 동시에 지키는 우리에게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계명을 지킬때 하나님의 상급이 약속이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르신들을 섬기는 수 많은 손길들이 어떻게 복을 받았나 하는 간증은 넘쳐 납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 처음 어르신들과의 식사를 담임 목사님 댁에서 할 때 오십명 정도 오시던 어르신들이 지금은 삼뱍명이 넘게 오셔서 이제는 그 행사를 교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 입니까?
이러한 진리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삶의 복됨을 깨달으면 때달을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봄과 동시에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만약 이 지혜와 진리와 축복의 말씀들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올과 같은 만족을 모르는 존재로 우리의 후손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2/16/2015 • 17 minutes, 42 seconds
잠언 30 : 1-14(심우진 목사님)
잠언 30 : 1-14(심우진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아굴이 자기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내용의 잠언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경외하는것과 지혜로운것 인생의 조언자로 진심으로 의지할 만할 명망이 높은 삶을 살던 아굴은 자신의 잠언을 나는 짐승같은 자다라고 자심을 크게 낮추는것으로 시작합니다.
만약 아굴이 사람의 눈을 의식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있을 정도로 고귀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아굴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겸손한 삶을 살기 원했던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아굴은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함을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아굴은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겸손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결국엔 자신이 믿는 생각 즉 자기 생각을 따라 갑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생활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높임에서 시작됨을 알았던 아굴의 잠언은 그가 얼마나 세상기준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인지 잘 보여줍니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아굴의 기도는 보통의 기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의 기도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섬기는것이 목적인 기도입니다, 자신이 바라는것도 또 이래야 한다는 주장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깊고 높으심 앞에 자신의 모두를 비춰본 후에만 나올수 있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칼빈도 그러했지만 인생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 앞에서' 서있는 순간이라는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경지를 오늘 아굴이 보여주고 있는것입니다. 그런 말씀을 접할때 오늘 우리는 과연 하나님앞에서 얼마나 우리들의 삶을 비춰보면서 살고 있는가 질문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오늘 이 본문의 메세지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분들의 삶을 하나님앞에 비춰 보게 하시는 능력의 말씀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2/15/2015 • 9 minutes, 28 seconds
잠언 29 : 15-27(이성혜 목사님)
잠언 29 : 15-27(이성혜 목사님)
존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는 열한명의 자식들 모두를 훌륭하게 키운 비결로 아이들이 다섯살이 되기전부터 성경을 보데한 것이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역시 유대민족의 성공비결도 숱한 어려움가운데서도 신앙교육을 그치지 않은것이라는것도 많은점을 시사한다고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정은 신앙교욱의 현장이고 부모는 성경교사인것입니다.
그 위에 부모의 삶의 일관성이 더해질때 아이들이 부모의 가르침을 신뢰하고 따르게 되는것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럴때에만 때로는 강한 훈욱이 필요할 때에도 부작용없이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것입니다.
잠언은 인간은 하나님의 묵시가 없다면 방자히 행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묵시가 없을때 인간은 자기 살ㄴ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자신인것처럼 행동하고 동시에 도덕적 윤리적 성적타락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꿈을 통해 묵시를 통해 말씀을 통해 끝까지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씀가운데 아이들을 양육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가 말씀을 따라가는 훈련이 되어있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훈련이 되어있다면 이 인생의 미래가 얼마나 밝겠습니까?하나님께서 종국에 이끌어주실 인생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앞에서 겸손히 말씀에 청종할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또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겸손해야할 것입니다, 겸손이 어뵤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의 작정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것을 잊지 마시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시는 하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2/14/2015 • 20 minutes, 34 seconds
잠언 27 : 23-28:11(정인수 담임 목사님)
잠언 27 : 23-28:11(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두 종류의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의인과 악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원래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의인으로 창조되었던 인간이 범죄함으로 악인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됨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자는 의인이 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악인이 되는 결과가 생겼습니다.
의인은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을 찾는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즌 사람은 모든것을 깨달은 자 입니다. 하나님을 아는것외에 진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오직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음으로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사람들위에 악이 둥지를 틉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일 지라도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가 임하고 죄인이 하나님을 찾믄다면 그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고 악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는것입니다.
의인은 담대함으로 세상을 살아 갑니다.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인생에 갑자기 고속도로가 뚫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마음이 활짝 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는 어려움에 싸였어도 주님의 따뜻한 품을 느끼게되면 두려움도 없어지고 감당할 눙력도 생기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통은 하나님께 의인이 부르짖게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방아쇠입니다. 이 관저응ㄹ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되는 과정의 일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악이능ㄴ 공의과 진리를 거부하고 죄악에 사로잡혀 스스로 멸망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자는 불안하고 늘 공포에 떱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함으로 생겨난 불안과 공포가 있습니다.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두려움에 도망가는 삶이 악인이 살게되는 저주의 삶입니다. 이 근원적인 공포는 오직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때에만 사라지게 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와 말씀을 붙드셔서 구원과 용서의 역사를 늘 누리시는 모든분들이 되시기를 이 메세지를 통해 축원드립니다.
12/11/2015 • 18 minutes, 16 seconds
잠언 27 : 1-22(김재홍 목사님)
잠언 27 : 1-22(김재홍 목사님)
지난주에 니카라과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특별히 안경을 가지고 가 안경사역을 했는데 중남미 사람들이 평소에 안경을 거의 끼지 않아 눈이 좋은줄 알았는데 검사를 해보니 눈이 않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놀라고 안경을 끼고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경사역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력교정이 참 중요하듯이 인격의 교정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잠언은 한구절 한구절 인격의 교정을 위한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이나 주님이라는 말씀이 잘 안나오는 성경말씀인데도 성경에 포함되는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이격의 성숙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17절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사람이 사람을 빛나게 한다는 말은 사람의 인격 교정은 오직 사람사이에서 나의 부족한 모습, 피해 받는 모습, 공격하는 모습 이런것들이 반복되면서 그 가운데 나를 깨달아갈 때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깨 나의 미성숙함을 아파하면서 주님만을 잡을 때 나의 인격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무서운것은 사람이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가는 것입니다. 감추려고해도 아무리 잘 감춰도 나의 속 사람은 드러나고야 맙니다 다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난것을 자기 본인만 모르기가 쉽다는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진심으로 견책과 책망을 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나를 정말로 생각하는 귀한 충고가 숨은 사랑보다 훨씬 나은 것 이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사탕발림은 나를 옭아매는 덫이 됩니다.
그애서 오늘의 잠언은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칭찬을 들었을때 나타나는 나의 반응이 결국 나의 훈련이 된다는것입니다. 칭찬을 들은후에 그의 속사람이 금방 드러납니다. 친창 한마디에 교만이 드러나는 사람은 쓰디쓴 인생의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고 살아야겠습니까? 나에게 충성된 권고가 그렇데 귀한 것이라면 우리도 우리 이웃에게 그런 권고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충성된 권고가 무엇이겠습니까? 전도입니다, 선교입니다, 예배 입니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와 예배로의 초대가 그렇게나 우리 신앙의 핵심이 되는것입니다.
그런니 이 귀한것을 분노와 투기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기 욕심으로 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전도와 선교를 할 지라도 우리안의 분노와 투기를 내려놓지 않고 한다면 결국 상처만이 전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충성과 충직이 아니면 우리가 권고하지 않는게 오히려 낫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이것들을 잘 살펴서 숨어야 할 때, 말해야 할 때, 잠잠해야 할 때를 구별할 것입니다. 때를 그래서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부족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철이 철을 날카롭게하듯 우리의 인격을 다듬으시고 벼르시고 성숙하게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찬송하며 오늘 이 말씀을 받으시는 모든 연합의 성도들께 하나님의 비밀한 성숙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2/10/2015 • 16 minutes, 25 seconds
잠언 26 : 13-28(정인수 담임 목사님)
잠언 26 : 13-28(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잠언의 주제는 게으른자와 말을 만드는 말쟁이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게으름에 대해 단호히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게으름은 쉽게 범죄하도록 사람을 이끕니다. 게으른 사람은 거리에 사자가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핑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사람들은 핑계가 없습니다, 해야할 일이 있으면 그냥 해 버리면 되지 핑계를 만들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패배하는 사람들은 핑계가 많고 핑계에 묶여 자신이 처한 처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좀더자자 좀더 눕자 하는것은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피하려고하는 그 일에 동반되는 수고로움을 피하려고하는 그 것이 게을음입니다. 수고로움을 감당하지 않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가정도 이런자들은 망치고 맙니다, 교회에도 이런자들이 있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도는 절대로 부지런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맞서서 돌파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새벽기도고 그냥 나오면 될 것을 오늘좀 춥네, 비가오네하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 자세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교회에 나오면서 교회 뜰만 밟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 섬기지 않는 사람들, 사역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세상이 됬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약한 신앙으로 살게 됩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와 어리석은 자를 형제로 봅니다. 게으른 자는 자신의 잘못과 실패를 합리화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자입니다. 남을 깎아내려서라도 그렇습니다. 게으른 자들은 일이 없으니 시간이 많습니다 그 시간에 남을 험담하는 톤화만 합니다. 그런 인생이 얼마나 한심한 인생입니까?
오늘 말씀에 남의 싸움에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자와 같다고 했으니 남의 일에 주제 넘게 간섭하는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 또 자신에게 화를 불러오는 행동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살면서 가장 못할 일은 남을 해치는 일입니다. 남과 다투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얼마나 소모적인 일들인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사라집니다. 게으른 사람이 없어 지면 말쟁이가 사라집니다. 이 메세지를 듣는 모든 연합의 성도들은 절대로 게으르지말고 다투지 말고 서로 사랑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2/9/2015 • 17 minutes, 21 seconds
사도 행전 27:22-26 (박승로 목사님)
사도 행전 27:22-26 (박승로 목사님)
키에르 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표현한 절망, 이 절망과 죄를 그는 두가지로 연관시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이 절망하는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절망하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을때 죽음에 이르게 된다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절낭하지 않는것이 죄다라고 했습니다. 절망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에 죄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찾지 않는것이 죄다라는 것이고 하나님을 찾으면 인간은 살 수 있다라는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탄광 목회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탄광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믿음의 삶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사고가 나면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그정도 수준의 사건이 아닙니다. 절대로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거 돌아올 수 없는 사건이 바로 탄광의 사고입니다. 이 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는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것이 인생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유라굴라 광풍앞에서 사도 바울이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 믿음의 모습을 보이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세가지 믿음의 확신으로 두려움을 이겨냈음을 본문을 잘 보시면 나타납니다.
첫째로 바울은 하난미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절망가운데 있는듯해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도와 주신다는 임마누엘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사명이 있었고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사명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부르심이 있고 이에 맞는 사명이 다 있음을 믿으시기 자랍니다. 바울은 확고한 소명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세번째로 바울에겐 하나님의 말슴이 있엇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너한테 아직 할 일이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바울은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도 바울의 처지와 다를게 없습니다 이민생활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면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붇드시면 우리가 살 수 있는것입니다.
오늘 이말씀으로 하나님을 더욱더 붇드시는 여러분모두가 되시길 축워합니다, 하나님으로 승리 하시길 축원합니다.
12/8/2015 • 21 minutes, 20 seconds
잠언 25 : 14-28(조근상 목사님)
잠언 25 : 14-28(조근상 목사님)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지혜의 원칙들이 있습니다. 잠언은 이 원칙들을 한 시점에서가 아니라 다양한 시점에서 보여줌으로 저희가 살면서 겪는 다양한 모습의 사건 속에서도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조명해 주는 책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말씀의 15절을 보시면 "15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우리의 신체의 부분들인 뼈와 혀로 비유를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혀는 인체중에 가장 부드러운 부분이기도 하고 우리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이상이 생기는 곳이 바로 혀입니다. 백태가 끼고 이상을 보이면 우리는 병원을 가는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성 생활에 이상이 있을때 제일 먼저 반응하는곳도 혀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언어가 가장 먼저 이상을 보이게 되는것입니다. 그 런데 우리의 언어 즉 말은 우리의 가장 단단한 뼈를 꺽는것이라고 그렇게도 말의 문제가 중요한것이라고 말씀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떻게 이 혀를 다스리는가 어떻게 혀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는 많은 복과 동시에 또 마주하는 많은 문제의 뒤에 이 혀라는 뿌리가 있다는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삶속에도 억울한 일도 분한 일도 생깁니다. 그런데 그 때 중요한것이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가 하는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되받아 주거나 공격하고싶어지는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흥분해서 정말 하지 말아야할 말을 한다면 얼마나 후회가 되는 결과들을 불러들입니까? 분명히 절대로 해선 안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지 모릅니다 잘못한게 없는데도 심할때에는 적이 생기기도 하는것입니다.
그럴때는 사람에게 말해서 일이 해결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어떤말과 행동에도 나의 속을 정확히 아시는 성령하나님께 우리의 속을 쏟아 놓을때 문제가 해결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벽기도를 하시는 분들만큼 강력한 분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벽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말을 다스리는 지혜와 하나님께 나의 속을 토설하는 강력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께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2/7/2015 • 11 minutes, 41 seconds
전도축제
12/5/2015 • 38 minutes, 22 seconds
스바냐 3 : 1-8(정인수 담임 목사님)
스바냐 3 : 1-8(정인수 담임 목사님)
스바냐 선지자는 왕족 출신 선지자라는것을 기억하고 계시면 이 스바냐서를 이해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먼저 왕족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정치 문화적인 상황에 대해 정확한 지적을 할 수 있었고 그의 사역이 요시야왕의 개혁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스바냐 선지자의 예루살렘을 대표한 회개와 반성에 해당합니다. 인간은 어떤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외부의 영향으로 돌리기 좋아하는데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을 심지어 사회와 나라의 문제도 자신을 돌아보는데 부터 시작해서 찾아간다는것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스바냐 선지자 역시 예루살렘의 타락과 닥쳐올 멸망의 원인을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내부에서 찾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자기민족과 자기사회의 타락과 문제를 먼저 왕족으로써 철저히 반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지적하는 세가지 거민의 잘못은 패역하고, 더럽고, 포악하다는 것입니다. 패역하다는것은 예루 살렘이 하나님을 배반하였다는 것이고 포악하다는것은 예루살렘의 지배계층이 백성을 탄압하고 착취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북한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과 교회가 탄압 받는것이 포악의 한 예라 하겠습니다.
또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네가지 이유를 또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책망과 견책을 받지 않고 자기 듣기좋은 말들만 쫓아 가는것이 교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며 하나님대신에 이방나라를 의지하는것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않는것이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는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오늘도 공의로 세상을 비추시고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 이 우주가 지탱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정된 멸망일지라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개하면 살아날 길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가 살아날 길임을 믿으시고 우리의 인생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인생은 하나님의 종이 되는것임을 하나님의 뜻을 노예가 그 주인의 뜻을 받들듯 받는것임을 그래서 멸망을 피하고 생명의 길로 들어가는것임을 믿게되시길 축원합니다.
12/4/2015 • 20 minutes, 45 seconds
성경 파노라마 간증의 밤
12/3/2015 • 38 minutes, 42 seconds
스바냐 1 : 14-2:3(정인수 담임 목사님)
스바냐 1 : 14-2:3(정인수 담임 목사님)
스바냐서의 기본 주제는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입니다. 이 여호와의 날에는 두가지 종말론적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종말과 심판이고 두번째는 온 우주적인, 예수그리스도의 재림때 이루어질,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공의가 100% 드러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도 드러나는 날이며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가 심판으로 임하는 날인것입니다.
행전17:1을 보면 이 하나님의 날 천하를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할 날이 작정되었다 적고 계신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 심판에 대한 경고가 스바냐서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바냐 2:1-3은 이 책의 핵심구절입니다. 스바냐 선지자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예정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우리가 속히 행해야 할 세가지일을 적고 계십니다.
첫째는 여호와를 찾는일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과 같은 말이 됩니다.
둘째는, 공의를 찾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절대진리로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절대 진리임을 깨달으라는 말슴입니다.
마지막으로 겸손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교만은 하나님 없이도 내 힘으로 살 수 있다는 태도입니다. 겸손은 반대로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스바냐 선지자가 모이라 말씀하신것처럼 하나님 앞에 언제나 모여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구해야겠습니다. 나의 가족을 대표해서 연합교회를 우리나라를 대표해 모여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구원을 얻어야 겠습니다.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절대로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아와 언젠가 곧 단혀질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결국 인생의 끝은 하나님앞에 서서 결산을 받는것입니다. 그 간단한 진리를 절대 잊지 말고 우리 주님을 붇잡는 구원의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12/2/2015 • 18 minutes, 41 seconds
스바냐 1 : 1-13(정인수 담임 목사님)
스바냐 1 : 1-13(정인수 담임 목사님)
스바냐 선지자는 히스기야의 4대손으로 왕족출신의 요시아왕때 활약한 선지자입니다. 스바냐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숨겨놓은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스마냐 선지자는 왕족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지리와 왕족의 규율들에 아주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때의 료시아왕은 구약시대 칼빈과같은 종교 개혁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8세에 왕이 되서 39에 죽기까지 31년간 왕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가 성전을 수리하다 신명기를 발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발견후에 강력한 종교개혁을 했는데 이를 네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상을 타파했고 두째로 성전을 수리했으며 세째로 언약을 갱신하고 네째로 유다왕중 유일하게 제대로 유월절을 준수한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스바냐 선지자는 아직도 남아있는 우상숭재의 잔재를 고발하고 있는것입니다. 첫째는 바울숭배가 남아있었고 두째는 일월성신, 별들을 섬기는 자들이 있었고 세째는 솔로몬의 첩들이 암몬에서 들여온 말감의 숭배가 있었으며 그마림이라는 거짓되고 불법한 제사장들이 이를 섬겼습니다.네째로는 아세라숭배와 이신론, 즉 하나님께서 더이상 세상에 관여하지 않으신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언 연유로 스바냐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 곧 심판의 날을 선포하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유다가 철저하게 파괴되는것으로 마타났고 또 이제 온 우주의 종말로 요약되는 종말의 예정된 도래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말의 날을 준비해야합니다. 인간의 타락은 생태계의 타락도 불러 옵니다. 지금 온 세계의 기상이상과 변돈에 대비하기 위해서 온 세상의 지도자들이 파리에 모여서 대책을 지금 강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생태계의 타락의 심각성과 또 아울러 인간의 타락이 어느 정도로 이르렀는가 보여주는 한 예가 될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이 없으면 해결되지 않을것입니다. 유다인들은 날씀을 아는 지식이 뛰어났음에도 행함이 없어 멸망을 겪게 되지 않았습니까?
말씀이 없는 삶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고 나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지식들은 오히려 나의 삶의 방해물입니다.
오직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다가올 멸망을 피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라며 다시한번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경성하고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2/1/2015 • 17 minutes, 52 seconds
잠언 24 : 23-34(조근상 목사님)
잠언 24 : 23-34(조근상 목사님)
잠언의 유익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하는 원칙을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기준으로 살때 어려운 삶을 진정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의 정신은 신명기와 레위기의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적용이 가능하도록 풀어놓은것이 잠언이라고 하겠습니다.
첫번째 잠언의 특징은 어렵고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은 힘 없고 가난한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보호를 말씀해 주시고 있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성경적 정신이 법에 녹아있는 선진국들의 경우에는 부자들에게는 엄격한 법규를 적용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많은 혜택을 허락하는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두번째 특징은 잠언은 실천적이라는것입니다. 이것은 사색적인것만이 아니라 실천적인 히브리 문화의 특징이기도한데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실천을 강조하는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규모가 큰것에 집중하는 성향이 있는데 사실 디테일이 없이는 스케일도 없다는 진리를 잠언만큼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도의 삶이 무너지는것도 사소한것에서부터 시작되는것을 생각한다면 디테일에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게으름에 대한 강한 경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닌 께서는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숨겨 놨던 종을 가르켜 말씀하시기를 게으르고 악하다고 하셨습니다. 게으름은 그러므로 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게으름은 정신의 문제요 삶의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게으름은 아주사소한것에서부터 충성할때에만 사라지는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두번째 특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소한것부터 말씀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진정한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것이라는것 명심 할 일입니다.
오늘의 말씀이 들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하는 충성의 축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1/30/2015 • 17 minutes, 15 seconds
잠언 23 : 1-16(조근상 목사님)
잠언 23 : 1-16(조근상 목사님)
식탁에서 먹이심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신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도 식탁으로 초대하시고 같이 음식을 나누시면서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열납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누구와 식사를 한다는것은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것이고 관심을 보이는 것이고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뿐아니라 죄인들과도 같이 식사를 하시고 그들의 삶을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과의 깊은 교제로 변화시키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하신 주님의 사랑의 원칙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메노나이트에 크게 영향을 준 더크 윌리암스 목사님은 자신을 이단으로 몰고 박해하던 시절에 심지어는 탈옥을 하고 경비병에 쫓기기도 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쫓기던 중에 자기를 쫓아오던 경비병이 얼음이 언 호수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그를 구해주고 그에게 잡혀 결국엔 순교를 하시게 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윌리암스 목사님은 용서의 원칙을 세우셨고 그 원칙을 따라 자신을 쫓아오던 경비병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그리고 순교를 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가족을 납치해간 아말렉과 목숨을 걸고 싸워 가족들과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올때 전투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만 상을 주고 전리품을 나누지 않고 진지를 지키던 모든 사람과 전리품을 나누는 원칙을 가지고 모든것을 나눔으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분열을 막고 힘을 한 곳에 모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성경의 말슴은 특히 잠언의 말씀은 우리가 따라야 할 원칙에 대해 많은 지혜를 나눠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경이 나눠주시는 지혜의 말씀을 들으시고 살아가는 원칙을 세우심으로 크신 복을 받으시도록 축원합니다.
11/27/2015 • 15 minutes, 29 seconds
잠언 22 : 1-29(심우진 목사님)
잠언 22 : 1-29(심우진 목사님)
인생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이고 현재의 인생은 우리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미래도 당연히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집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선택의 기준을 가르치며 더 중요한 것 더 가치있는것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CNN의 주인이었던 터너회장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처음에 100불을 기부하려고 수표에 사인을 할 때 마음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 100불로 시작한 이 사람의 자선이 200불, 500불, 10000불씩 커지자 오히려 처음의 어려움이 사라졌다고 고백하는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돈에 묶인 사슬을 끊었을 때 터너처럼 오히려 더 자유롭고 크게 사는것을 잘 알 수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위험한 것을 피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거만한 자를 피하고 분내는 자 미움에 사로잡힌 자 그리고 음녀를 피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들을 피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으로 지혜를 원하고 또 위험을 피하고자 하여도 말씀을 멀리하면 지혜의 능력을 얻늘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위험들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부지런하라고 가르쳐 주시고 있는것을 봅니다. 거리에 나가 사자를 만나 찢길것 같은 실패가 두려운 마음이 들더라도 계속 꾸준히 성실로 부지런히 씨를 뿌릴때에만 거둘것이 있을것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결국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앞에 섰을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것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심고 거둘때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씨앗을 계속 뿌릴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좋은것으로 거두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주실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추수 감사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더욱 그러하기를 묵상하시는 귀한 날이 되시기를 이 말씀으로 축원합니다.
11/26/2015 • 12 minutes, 40 seconds
잠언 21 : 15-31(정연권 목사님)
잠언 21 : 15-31(정연권 목사님)
오늘은 한 절의 26절 말씀에 집중해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탐욕에 대해 살펴보길 원합니다.
탐욕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가지려는 욕구를 말합니다. 욕구는 원래는 우리의 생존과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탕욕은 이런 욕구가 지나칠때의 모습입니다.
26절에서는 탐욕을 종일토록 탄하는것으로 잘 묘사했습니다. 종일토록이라는 말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언제나라는 의미가 있습니가. 그러니까 언제나 욕구에 이끌려 사는 것을 탐욕이다라고 생가하시면 될 것입니다.
탐한다고 하는것은 두 영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보이는것을 탐하는것과 보이지 않는것을 탐하는 것입니다. 물질과 재산을 탐하는것은 보이는것을 탐하는것이라고 항 수 있겠고 또 지위와 명예들을 탐하는것은 보이지 않는것을 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말해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것을 탐하는것중에 하나는 을 새로운것을 탐하는것입니다. 가장 새로운 테크널러지로 자신을 치장하려는 욕구 가장 새로운 대열의 선두에 서려는 욕심이 그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들이 가진 은사를 부러워하고 그것으로 괴로워하는것도 있습니다. 또 지나친 기준으로 완벽을 추구하는것도 자신에게 작용하는것도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지만 이것을 남에게 적용하면 큰 욕심의 독을 뿜게 됩니다.
탐욕은 우리르 감사에서 멀어지게하는 만악의 뿌리입니다. 이것을 뿌리 뽑는 일은 오직 모든것을 필요에 따라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신롸로만 가능합니다. 그럴때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삶을 살 수 있는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탐욕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배우시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림으로 복된삶을 사시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25/2015 • 15 minutes, 5 seconds
잠언 21 : 1-14(김재홍 목사님)
잠언 21 : 1-14(김재홍 목사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성공하는 비결을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성공의 비결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잘하는것이 아니라 나 중심의 삶을 사는것이 아니라 남중심의 삶을 사는것인 경우를 실제로 거의 모든경우에 보게 됩니다.
지금은 종합그룹으로 대기업이 된 이랜드 그룹은 이화여대 앞에서 두평짜리 옷가게에서 시작한 그룹입니다.
그 이랜드의 창업자인 박성수 회장은 회사가 엄청난 성장을 기록하고 난후 이사를 갈때도 부자들이 모여산다는 부촌으로 간 곳이 아니라 이대 근처에 집을 지어 살면서 늘 출근때 이화여대 앞을 걸어서 지나가는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자기가 패션업을 하는데 사람들이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을 보고 옷가게들을 보면서 쉬지않고 파악하려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공의 비결은 내 중신이 아니라 남 중심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영성의 삶은 어떻겠습니까? 남중심의 삶이 성공의 비결인것처럼 하나님 중심의 삶이 나의 영성의 성공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삶을 살아야 나의 영성의 삶도 풍부해 진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은 결국 나와 하나님을 모두 기쁘게 하는 복된 삶이고 진정으로 성공하는 삶이라는것이 오늘의 잠언의 주제입니다. 인생에 많은 좋은 것이 있겠지만 그 중에는 정말 중요한것들이 있고 이것을 구별하는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는 진정한 가치가 있는것이 무엇들인지와 또 삶을 살아가는 지혜에 관한 말씀들로 차 있습니다. 오늘의 메세지를 들으시며 이 지혜에 대해 묵상하시는 시간을 가지시기 축원합니다.
11/24/2015 • 15 minutes, 37 seconds
잠언 20 : 15-30(조재욱 목사님)
잠언 20 : 15-30(조재욱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보장해주는 삶을 사는데 있는 방해들을 어떻게 물리치고 응답받으며 살수 있는가? 란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방해들을 물리치는 방법으로
첫째, 조급해 하지 말것
둘째,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감동을 주시는 말씀을 붇잡고 순종할 것,
세째 이 모든것이 다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있음을 믿고 또 그것을 아는 지식으로 거짓으로부터 멀어질것 이 세가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긴 설명은 생략 하겠습니다. 꼭 들어 보십시오 귀한 말씀 가운데 은혜가 있습니다. 특히 조지 뮬러와 남편을 잃은 한 목사님 사모님이 어떻게 이 비법을 살아냈는가의 간증들은 은혜위에 은혜를 더하여 줍니다.
인생의 많은 방해로 하나님의 은혜가 멀게 느껴지시는 분들께 특별히 강추해 드리는 오늘의 말씀입니다.
11/23/2015 • 17 minutes, 18 seconds
토요 새벽 기도
11/23/2015 • 25 minutes, 35 seconds
잠언 19 : 1-17(정인수 담임 목사님)
잠언 19 : 1-17(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잠언은 각종지혜와 성도들의 실천적인 삶의 규범으로 주어진 말씀들의 모음입니다. 전체를 묶는 구조는 없는 각각 독립된 지혜의 잠언들이지만 공통된 주제가 드러나고 있는데 그것은 미련한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련한자는
첫째로 하나님을 두려워 할 주 모르는 자입니다. 아무리 학식이 높아도 하나님에 대해 무지 합니다. 인간의 가장 지혜로움이 하나님의 미련함보다 못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고 또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미련한 자들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이 미련한 자들입니다. 사람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은 의식주의 문제입니다. 이중에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을때 원망이 옵니다. 또 우리 믿는자들도 악한자들이 잘되는것을 볼때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원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김정은같은 독재자가 아직도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는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긴 계획 속에서 이런 원망을 가지는 것을 성경은 미련한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는 저주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째로,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않는사람들을 미련한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가다가 하나님께 시련을 당하고야 돌아오는 어려움을 겪습니까? 자기자신의 힘으로 자기 인생을 컨트롤하려고 하는 과욕은 결국 자기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길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엄격하게 지금 내가 교만하지 않은지 점검하지 않는다면 그런 고통스런 훈련을 겪지 않는다면 경코 자기 고집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 훈련을 통해서만 미련한 삶을 벋어날 수 있는것입니다.
네째 미련한자는 거짓을 말하는 자입니다. 특별히 남을 해하는 거짓증언을 하는것을 말합니다. 남을 중상하는 거짓은 사람을 죽이는 칼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믿는 성도들은 절대로 거짓을 말하고 남을 중상하는 유언비어를 만들어서도 옮겨서도 안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믿는 성도들은 남의 허물을 들춰내도 안 되겠습니다. 노아의 아들인 함이 노아가 대취해 벌거벗고 자는것을 형제들에게 말하며 아버지의 허물을 들춰내 어떤 저주를 받았는지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의 입에 재갈을 물려주시고 성령의 거룩하신 말씀으로 지져주십사 기도해야 겠습니다.
오늘 이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무지함으로, 원망으로, 고집과 거짓으로 자기인생을 어렵게 만들고야마는 미련한 자들이 아니라 말로써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용기와 사랑의 언어만을 쓰시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20/2015 • 17 minutes, 18 seconds
잠언 18 : 1-24(조근상 목사님)
잠언 18 : 1-24(조근상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역시 명철하고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의 구분과 차이에 관한 말씀입니다. 잠언의 저자는 이 사람들의 구별은 바로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의사만 말하기 좋아하고 또 결국에 공동체에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며 결국 자기에게 매를 불러들이는 사람이 미련한 사람인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상태를 나타납니다.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고 보고 들은것이 결국 말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은 앋한 사람이고 음란한 말을 하는 사람은 음란한 사람이며 탐욕의 말을 하는 사람은 탐욕의 사람인것입니다. 말은 곧 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선한자는 선한것을 내고 악한 자는 그가 쌓은것에서 악을 낸다고 누가복음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야고보서는 혀를 다스리고 입에 재갈을 물리고 말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만큼 말은 위험할 수 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명철한 사람의 말은 듣는 사람을 시원하게 해 주는 말입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속의 갈등을 아주 시우너하게 만들어주는 그런것이 명철한 자가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성경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죽고 사는것조차도 많은경우 말에 달린것으로 묘사되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날에 힘이 잇다는것을 성경이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것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은 말하는대로 이루어지는것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에 우리가 놀랄것이 아닌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도 우리의 말에 권세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일이 말하는대로 되어지는것에 놀라지 마시고 말이 씨가 되는것이니 좋은 씨만 뿌리도록 하시길 축원합니다.
마릉ㄴ 축복이며 은사이며 도구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속에 오직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만 가득하시길 축원하며 오늘의 메세지로 말을 다스리는 모든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1/19/2015 • 14 minutes, 12 seconds
성경의 파노라마
11/19/2015 • 36 minutes, 21 seconds
잠언 17 : 1-12(정인수 담임 목사님)
잠언 17 : 1-12(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말씀중 잠언17:1절의 말씀은 대표적으로 화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사람이 살아갈때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10을 보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을정도로 화목은 성경의 큰 주제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화평을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쳐 이루셨는데 우리가 화목하게 살아야만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이 화목은 너무나 아름답고 귀중한 것입니다. 성경은 심지어 가난해도 빵 한쪽만 있어도 화목하는것이 재물을 쌓아놓고 분쟁하는것보다 훨씬 낳다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말로 다툼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으면 화목할 수가 없습니다. 말쟁이들이 있는 교회는 결코 화목할 수가 없습니다.
화목이 깨어진 최초의 예는 성경에서 가인과 아벨의 사건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얼나나 끔찍한 일입니까? 이런 죄악이 들어오지 않도록 화평하고 화목하는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평안이 가득차야 하는데 마음에 상처가 있으면 평안할 수 없기때문에 화목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성령님께서 우리안의 상처를 치유해 주셔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깨는 대표적인 악으로는 상처외에 거짓말을 볼 수 있습니다. 거짓으로 말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관계를 파괴합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거짓된 말을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또 사실이라 하더라도 자꾸 허물을 들춰내는것도 관계를 파괴하는 나쁜 일입니다. 허물을 자꾸 들춰내서 무얼 바꿀 수 있겠습니가? 비판과 비난은 관계도 어렵게 만들지만 결국 공동체를 파괴하는 힘이 있음을 아시고 불편과 불만으로부터 멀리하시길 바랍니다.
말은 습관입니다. 혹시라도 내가 가진 나쁜 습관이 나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치열하게 싸워야겠습니다. 또 이런 나쁜 습관으로 교회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모든 성도가 치열한 자기 극복의 노력을 해야 하겠고 또한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화목함을 이뤄야겠습니다.
11/17/2015 • 15 minutes, 8 seconds
예수 그리스도 새 언약의 중보자 (정인순 선교사님)
11/16/2015 • 41 minutes, 30 seconds
잠언 15 : 1-15(정선기 목사님)
잠언 15 : 1-15(정선기 목사님)
잠언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것을 감찰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심지어 스올 곧 음부도 누이가 알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세계도 하나님앞에 하나도 감추어지지 못하고 그 속을 다 드러내게 되는데 하물려 인간의 마음이겠습니까?
그런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하는것은 모두 다 기뻐하시고 악인의 행위는 모든것을 다 미워 하신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서는 살아날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는 의인은 유순한 대답을 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자신의 제어하지 못하는 분노에 가득차 상처를 주는 말을 합니다, 주변 사람도 결국엔 자신도 상처를 입게 되는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항상 비판적인 결론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 마음속에 기쁨이 또 생명이 없는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갈때 아무리 잘되는 사람도 마음이 불행하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보잘것 없고 힘들게 삶을 살고 있어도 그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가득하면 그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는것은 다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마음이 문제입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 집니다. 교통사고를 내 사람을 죽게 하고 그 죄책감에 싸여 괴로워 하다가 결국엔 자살을 하고만 불행한 청년의 뉴스를 읽었습니다. 반면에 이 청년과 똑같이 교통사고를 내 사람을 죽게했지만 그 비극을 이기고 일어나서 열심히 삶을 살다 조지 부쉬란 청년과 결혼해 결국엔 미국의 영부인이 된 로라부쉬의 인생은 이 청년과 얼마나 다릅니까?
어떤일이 내 삶에 일어났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냐가 내 인생을 좌우하는 핵심이라는것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정직한 사람의 기도를 좋아 하시겠습니까? 그들이 기가막힌 기도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앞에 모든것을 숨김없이 내어놓고 그렇게 기도하며 또 결국엔 자기생각을 따라가는것이 아니라 공의 즉 하나님의 뜻을 쫓아가기 때문인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 받는 비결은 그래서 정작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겨드리고 또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겨드리는것이 정직입니다. 오늘 니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나의 말과 생각과 삶의 모든것을 하나님께 고하고 맡겨드리는 정직한 삶을 사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13/2015 • 13 minutes, 21 seconds
잠언 14 : 17-35(서석훈 목사님)
잠언 14 : 17-35(서석훈 목사님)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하고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의를 보고 화를 내지 않는것을 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노하기를 속히하는것은 아주 부정적으로 말씀하고 계신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이 움직이는대로 화를 내서 이웃과 가족의 감정을 다치게 하는것에 경고를 해 주고 계시는것입니다.
감정을 다스리는것은 훈련이 필료한 일입니다. 화를 억제하고 화가 나는 상황을 피하고 또 운동을 통해 화를 풀어 버리는것은 다 훈련의 좋은 예 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화를 다스려야 합니까? 그것은 독설의 력하고 악한 영향력에는 생명을 죽이는 힘이 있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0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21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오늘의 분명한 세태는 간남한 자들 힘이 없는자들을 업수이 여기고 그들로부터 떠나가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세태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이웃을 업신여기는사람은 죄를 짖는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자들은 세상에서 사는법도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야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약한자와 낮은자를 위하는 심령이 준비되어 있어랴 한다는 말씀인것입니다.
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또 23절은 우리에게 이 모든것을 행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말은 한다 하여도 행함이 없다면 오히려 세상의 비웃음을 살 뿐이라는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세상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공격하는 구실이 되고 있음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바 입니다.
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원만큼 세상을 승리하며 살고 있지 못 하더라도, 우리가 완벽하게 살고 있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죄인의 삶속에 있을지라도,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것을 끝까지 붙든다면 하나님이 우리가 외뢰할 분이 되시는것입니다 우리가 기댈 언덕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곤한 우리 인생을 쉴수 있는 초장이 되시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구원의 복이 우리의 자손들에게까지 유전될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의 샘이 된다는 말씀의 뜻 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를 노리는 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시는 가이드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의 보장이 되시는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이 메세지를 받으시는 모든분들의 삶과 생명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하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12/2015 • 15 minutes, 45 seconds
잠언 14 : 1-16(정연권 목사님)
잠언 14 : 1-16(정연권 목사님)
잠언의 말씀은 하나하나가 집중해서 뜻을 새겨야하는 귀한 말씀들입니다. 오늘은 튿히 그중에 본문 일절을 주의해서 보시겠습니다.
14 : 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지혜로운 여인과 미련한 여인을 비유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집이라고 하는것은 이 여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인강관계 즉 가정, 집간, 교회등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인으로 먼저 기생라합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천한 신분의 라합은 지식과 재경이 결코 뛰어날 수 없는 평범 이하의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그 뒤의 하나님의 분명한 역사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분별력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스라엘의 첩자들을 도왔고 그 이후에 어떻게 구원의 역사가 그와 그의 가족에 임했는지는 또다른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또 자가왕국의 왕후였던 에스더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기로 왕앞에 당당히 나아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뤘던 또 다른 한명의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 결단 이전에 숨어있는 이 여인의 지혜를 우리는 놓치면 안되겠습니다. 에스더는 왕앞에 목숨을 걸고 나아가기 전에 금식으로 기도하며 또 똑같이 자신을 위해 중보기도를 해 줄것을 요청할 주 아는 중보와 금식의 위력을 아는 지혜의 여인이었습니다.
또 시르박과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의 지혜는 극한의 어려움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고 하나님의 졸 엘리야를 섬겨 먹을것과 안전을 얻은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순종은 지혜인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혜로운 여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역시 어리석은 여인들도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다윗의 아내 미갈입니다. 왕의 딸로 자란 고귀한 신분의 미갈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 춤추는 다윗을 도저히 받아드릴수없는 비판의 취향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비판하는 생각을 잎술에 옮겨 다윗을 비난하는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왕을 모욕하고야마는 지혜없는 행동을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들 지혜잇는 여인들과 그렇지 못한 여인들을 보면 우리가 살아갈 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알 수 가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끼고 깨닫는 성도, 중보기도의 능력을 아시는 성도, 말씀만 붇들고 순종하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오늘의 말씀으로 축언합니다.
11/11/2015 • 14 minutes, 53 seconds
잠언 13 : 12-25(김재홍 목사님)
잠언 13 : 12-25(김재홍 목사님)
잠언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집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인과 응보의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웡닝을 만들어라 그러면 좋은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심은대로 거둔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진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내 아들이 이쁘면 며느리도 이쁜법입니다, 내 아들이 잘난아들이면 역시 잘난 며느리가 오게 되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은 이 인과의 법칙을 뛰어 넘습니다, 우리의 공로가 없이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딴에서 살아가는한 이 인과의 법칙을 또 벋어날 수는 없는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여기서 말씀을 두려워 한다는것은 원인을 만드는 나의 선택이 하나님안에 올바로 서있기를 염려하고 조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원인을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내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16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거니와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슬기로운 사람은 무슨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즉흥적으로 내키는대로 하는것이 아니라 지식을 갖춘다는 이야기입니다. 애플의 신제품이 나오면 회장이 나와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게 요즘의 추세입니다. 그 때는 시나리오를 쓰고 콘티를 만들어서 무슨 말을 할때 무슨 화면과 음향이 또 조명이 나오는지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슬기로운자는 지식으로 행한다는 좋은 예가 될것입니다. 주도 면밀하게 나의 삶의 행위들을 준비하고 절데하는것입니다. 사실은 결혼전에 메리지 카운셀링을 받게 되 있습니다. 요즘은 다들 시간이 없다고 안하지만 하지만 이 과정을 오주나 팔주나 거치면 분명히 도움을 받습니다. 준비가 된다는 이야깁니다.
또한 우리는 실패에서 배울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런것은 많은 경험에서 배울것을 배우는것을 말합니다. 이랜드에서 지식경영대상을 삼겹살을 써는 직원에게 준 적이 있습니다. 이유인즉슨 이 직원이 고기를 썰면 아주 부드럽고 기름도 적당히 나오고 맛이있어서 사람들이 줄을서서 이 직원에게서 고기를 사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이 직원은 수 년간 어떻게 고기를 썰면 맛이 좋은가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었고 결국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훌륭한 고기 상품을 만들어서 회사에서 보내주는 MBA코스를 밟으러 유학을 가게됬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얼마나 크게 베풀어 주셨습니까? 그 엄청난 은혜를 값싸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뒷 받침되야합니다. 그러기 위해 삶속에 우리는 지식과 지혜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것이 야고보 사도가 말한 행함이 있는 믿음을 이야기하는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지식으로 행하는 지식으로 삶을 준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든 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11/10/2015 • 14 minutes, 6 seconds
토요새벽기도(심우진 목사님)
11/9/2015 • 25 minutes, 54 seconds
잠언 11 : 1-15(김재홍 목사님)
잠언 11 : 1-15(김재홍 목사님)
하나님의 원칙대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까지 복을 전해주는 통로가 된다는것이 오늘의 말씀의 핵심이라고 할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않고 자기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은 이와는 정 반대로 자신도 망하고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에도 해악을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9절과 10절 말씀을 보면
9)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10)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많은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을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보다 앞서는 것만이 능사인 교욱을 받았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풍요로운 세상에서 어느때보다도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지만 우리는 왜 더 큰 상처와 정신적인 혼란속에서 살고 있을까요? 현대인은 풍요가운데도 부족함과 마음의 상처와 추구하는 환상으로 인해 자신을 지키기 어려운 분열의 삶을 살고 있는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하게 또 순종하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자기희생의 삶을 살아야하는데 현대인에게는 이것이 얼마나 낯설고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우리가 쫓아가던 신기루같은 환상을 버리고 생명과 진리를 쫓아가게되고 자기희생의 구도의 길을 기쁘게 가게 됩니다.
하만은 자기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던 모르도개를 죽이려고 유대민족까지도 멸족하는 음모를 꾸미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멸망을 불러 왔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도개는 믿음안에서 죽음도 무릎쓰고 완께 직언하여 자신과 또 유재 온 민족에게 구원과 복을 불러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이런것입니다. 희생이 있는듯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계수하고 계십니다. 고난도 영광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풍요의 복을 받으시는 모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6/2015 • 16 minutes, 36 seconds
성경의 파노라마 신약1회 (김재홍 목사님)
11/5/2015 • 31 minutes, 18 seconds
잠언 10 : 1-16(심우진 목사님)
잠언 10 : 1-16(심우진 목사님)
오늘부터 다시 잠언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잠언은 특히 오늘의 잠언은 누가 지혜로운자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는것이 지혜로운 삶인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을 솔로몬이 자신의 깊은 경험과 관련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재물과 관련해서 지혜로운 삶을 얘기합니다. 불의한 재물을 축적하는것을 무익한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재물을 축적하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행복해 질 수 없고 오로지 공의를 추구 할 때 자신의 생명을 살리는 구원에 이르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거둔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의 추수철이 일년에 두번 있는데 그중에 여름철에 있는 추수철을 말씀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면 여름에 거둔다는 것은 때에 맞춰 일하는 근면한 사람을 이야기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근면함이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맞서 추수철에 자는자, 제 때에 주어진 일을 하지 많는 자들을 대비시키시고 있습니다. 기회의 때가 왔느데 일하지 않는자들에게는 부귀도 영광도 없을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부끄러운 사람일 뿐입니다.
또 솔로몬은 의인의 삶과 악인의 삶을 대비시켜 어떻게 사는것이 의를 추구하는 삶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은 자기입에 독을 품고있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그들의 입에 늘 폭력과 갈등 그리고 저주의 말, 독한 말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잘 되겠으며 복을 얻겠습니까?
또 잠언은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라고 잠언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렸을 때 순종하는 사람을 이야기 하는것입니다. 순간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원하는것과 다를지라도 복종하는 것이 바로 마음에 계명을 받는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함부로 말하고 어떤 결과를 이 말이 가져올 지 생각하지않는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모든 지혜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라는 믿음과 진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삶이 있고 이를 떠나 사는 악한 삶이 있다는 깨달음은 우리를 패악과 멸마의 길에서 지키고 또 우리로 영광과 생명의 삶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갚아주시고 붇들어 주실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믿고 살아가야하는것입니다.
늘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지 묵산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하며 오늘의 메세지로 지혜와 명철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11/4/2015 • 11 minutes, 36 seconds
데살로니가후서 3 : 1-18 (심우진 목사님)
데살로니가후서 3 : 1-18 (심우진 목사님)
우리들 그리스도인의 삶가운데는 영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그건 주님의 뜻을 따르려는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세력들이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특히 우리가 사는 사회안에서 예수 믿는자들을 대적하기도 하고 우리들의 내면과 우리들의 친밀한 관계가운데 일어나기도 합니다. 요즘도 어려운일을 당하는 크리스쳔들이 전세계에 널마나 많습니까?
사도바울의 시대에도 이러한 어려움들이 많았습니다. 밖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크리스쳔들을 죽이는 로마제국의 박해가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교회의 하나됨을 가로막는 거짓 가르침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데살로니카 교인들에게 기도해야된다 자신을 위해 또 기도해 달라 부탁하는것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잘 믿으려고 하는데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그러면 기도하셔야합니다. 기도하시면 오늘의 3절 말씀과 같이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실것이기" 때문입니다.
스리스도인글이 영적인 싸움에서 넘어질때는 삶의 분주함과 혹은 안락한에 쓸려 기도하지않고 말씀보지 않을때입니다. 그러면 사랑도 인내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내 안에 풍부하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속사람이 풍성하면 원망도 없어지고 힘든 일도 힘들지 않습니다. 뼈가 녹아나는 듯 해도 내 자식을 위한 일은 해내고야마는것과 같습니다.
이 모든것은 영적인 전투입니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영적인 전투인 것입니다. 반대로 기도하면 미뿌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굳건하여져서 어려움을 감당하고 승리하며 하나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형제와 자매들이 기도의 신비로 세상을 승리하고 하나님의 영광의 열매를 맺으시길 축원합니다.
11/3/2015 • 16 minutes, 2 seconds
데살로니가후서 2 : 1-17(정선기 목사님)
데살로니가후서 2 : 1-17(정선기 목사님)
누가 주님이 언제 다시오신다고해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것은 먼저 배교가 있고 그후에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 자신을 하나님이라 높이면 그때야 주님의 재림이 잇을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종말론과 말세에 대한 거짓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다 성경에 근거하기 보다는 자기가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신비체험에 근거를 두고 있는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거짓으로 많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는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카 교회가 굳은 믿음안에 있으면서도 그 안에 일부의 거짓된 종말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는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올바른 종말을 가르쳐 진장한 성도가 살아갈 바를 가르쳐주고 있는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따르기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뜻개로 해석이 편한 신비한것들을 쫓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권위에 기대 하나님 말씀을 깨닫길 데을리 하기도 합니다. 큰 교회 목사님의 말씀을 그저 맹목적으로 따라가는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악이 승한듯해도 우리가 걱정할것이 없음은 악이 극악으로 치닫을때 우리 주님의 승리가 드러날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미혹하는 세역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이 미혹의 역사로 불의를 사모하는 자들을 거르시고 마직 미약하여 하나님뜻에 온전히 서지 못하던 자들을 하나님편에 서게하는 구원의 기회로 삼으시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바로 이 선택의 때 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 전에 하나님의 길을 택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하며 오늘의 메세지로 도전받으시길 바랍니다.
11/2/2015 • 16 minutes, 35 seconds
데살로니가전서 5 : 1-11(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에 관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특별히 종말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길선주 목사님같으신 분은 일제시대 감옥에서 요한 계시록만 만번을 읽으셨다고 하니 그분의 영향을 샐각해 볼때 근대 한국교회에서의 종말론의 관심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한 종말론은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종말론의 위험은 많은 이단이 종말을 해석하다가 나오는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90년대 초의 다미 선교회는 얼마나 큰 악영향을 사회와 또 교회에 끼쳤습니까?
성경의 종말을 해석할때는 두가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종말이 이루어졌다는것을 믿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심으로 모든 예언들이 이루어지고 이미 그 때 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서도 교회로 복음으로 세워진것을 믿는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종말이 그럼에도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전해 진다는것을 믿는것입니다. 이 이미와 아직의 찬조적인 긴장속의 균형이 없는 종말론은 위험한 것입니다.
데살로니카 교회의 관심도 이 다시 오실 예수님의 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박해와 고통이 극심한 나머지 성도들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원하는것이 지나쳐져 예수님 오실 재림의 날짜에 지나친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은 재림의 날짜는 하나님의 비밀이며 우리가 알 바가 아니라는것을 분명히 말씀해 주시고 있는것입니다. 하지만 이 날은 도적같이 이를것을 다시금 강조하시는 군형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종말에 관한 태도는 무관심이 큽니다. 이 즐거운 세상에 재림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상의 변화나 자연의 재해 앞에 이런 풍요가 얼마나 빈약한 허상인지 알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LA에서 지진이 한 번 일어나면 그 다음주는 불안한 마음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로 교회가 꽉 차는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재난과 재해만 우리가 예비하지 못한 때에 오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도 그러하실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온정한 성도의 삶의 자세는 이미 이르렀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종말을 언제나 느끼면서 보이는 현실의 안락과 평안이 얼마나 신기루와 같은것인지 알고 오로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살아가는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종말의 은헤가 모든 분들에게 임하시기를 이 메세지를 통해 축원 합니다.
10/30/2015 • 17 minutes, 5 seconds
데살로니가전서 4 : 1-18 (조재욱 목사님)
데살로니가전서 4 : 1-18 (조재욱 목사님)
예수님께서는 가시 재림 하실것입니다, 죽은자들을 먼저 일르 키시고 살아있는 자들도 주님의 손에 끌려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시고 있는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예언은 성경에 400번 나오는데 재림에 대한 예언은 1000번이 넘게 나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을 깨우기 위한 경고요 하나님의 나팔소리입니다. 성도는 재림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과 복을 주십니다.
첫째: 그들에게는 슬픔을 이길 능력을 주십니다. 세상에 빠져살 때 생기는 죽음에 대한 슬픔, 그 슬픔을 이겨 나가게 하십니다. 영원한 것을 얻은 성도에게 슬퍼할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도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또 믿음으로 죽음의 두려움이 없이 살아갑니다. 순교자들의 삶에서 이것을 잘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옥고를 치르면서도 신사 참배를 끝끝내 거부했고 6.25 때 나병 환자들을 돌보다 공산당에게 순교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순교를 언제나 준비해 오셨고 그 삶에 눈꼽만큼의 두려움도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것을 사랑하시며 천국에 가는 성도의 특권을 늘 누려 오셨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하나님떼서는 환경을 이기는 능력을 주십니다. 17절에 우리가 주님의 손에 끌어올려짐을 말씀하시는 같은 표현은 성격이 에녹이 하늘에 올려질 때 또 엘리야가 하늘에 올라갈때 사용되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도는 세상의 힘을 뿌리치고 올라가게 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에게 아타나는 능력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하고 또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능력으로 드러나게 되는것입니다.
탈선 청소년들을 돕는 청소년 센터를 짓기 원하던 전 세계챔피언 조지포먼은 권투에 있어서는 환갑, 진갑도 지난 42살에 다시 타이틀에 도전하게 되었고 결국 당시 세계 챔피언이었던 최 전성기의 27세의 홀리필드와 싸워 12라운드를 다 싸우고 경기를 마치게 됩니다.
누구도 조지 포먼이 삼라운드를 넘게 버티리라 예측한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포먼에게 임한 하나님의 능력은 이 모든 경기를 마치게 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기립박수를 받게 하시므로 영광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들에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세상을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하며 오늘의 메세지로 도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10/29/2015 • 13 minutes, 43 seconds
성경의 파노라마 8회
10/29/2015 • 29 minutes, 44 seconds
데살로니가전서 2 : 1-20(정인수 담임 목사님)
데살로니카 전서는 데살로니카 교회를 잠시 목회했던 바울이 고난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살로인카 교인들에게 감사하는 편지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카 교회에서 강력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남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의 목회자와 동시에 복음 전도다로써의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곳에 머무르며 양육하는 목회자와 양육함이 아니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는 목회자는 다른 성격의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도자이며 동시에 목회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밝힙니다.그리고 이 특이한 정체성으로 인해 정도하고 목회하는 가운데 계속 핍박과 중상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불구하고 바울이 양욱한 교회와 그의 동역자들은 사도 바울의 고난을 통해 자라고 성숙해 졌습니다.
먼저 바울은 충성된 청지기로 목회했습니다. 복음은 인간에게서 받은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것이며 복음을 위탁받은 청지기로 자신이 해야할 일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이와 똑같이 청지기로의 사명이 있습니다. 충성으로 많은 사람이 복음을 접하게 하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바울의 시절의 어껀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돈버는데 쓰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역한것이 아님을 바울은 거듭 밝힙니다. 의도적으로 바울은 천막을 지으면서 교회에 재정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까지 목회를 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근거없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음을 생각하면 바울의 목회의 고난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인간의 비위를 맞추거나 세상의 지혜로 사람의 수단과방법을 통해 사람을 꼬이는 목회를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따라 탐심이 아니라 젖을 주는 유모와 같이 또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목회를 했음을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자녀를 키우는데는 시간과 희생과 재정의 희생이 동반됩니다. 이와 같이 목회자는 성도를 양육하는 유모요 어머니와 같음을 또 아버지와 같은 심정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머니나 유모와 같은 부드러움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업격한 아버지와도 같은 모습이 필요함을 말씀하십니다. 도저히 바른길로 나갈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궈면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이 넘치는 교회에도 분명히 목회자의 권면의 엄격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라는 13절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바울은 권위를 가지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교인들은 이 말슴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강력한 교회가 되었다는것 명심할 일입니다. 공부하고 말씀에 잠기는 교인들이 없이는 성도와 교회의 참된 성장이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교회가 통과해야하는 고난과 고통을 이겨 낼 수가 없는것입니다. 안일한 교회에서는 진정한 성장과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에 잠겨 하나님을 기다리는 교회만이 고난과 시험을 이겨내고 부흥을 이뤄낼 수 있음을 교회를 도약시키고 성도와 교회의 온전한 변화를 이뤄냄을 기억하시고 담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단이 바울의 데살로니카 교회의 방문을 계속 막았듯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의 성장과 변화를 가로막는 영적인 세력이 있음을 분명히 주지하고 데살로니카 교인들과 같이 선포되는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성장하시고 변화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10/27/2015 • 15 minutes, 27 seconds
데살로니가전서 1 : 1-10(조무제 목사님)
오늘부터 시작되는 데살로니카 전서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사역의 초기 젊은 시절에 처음으로 쓰신 서신입니다. 데살로니카 교회는 가장 칭찬받고 모범적인 교회로 알려져 있는데 놀랍게도 이 교회는 바울이 겨울철에 겨우 삼주간 머무르면서 세운교회라는것입니다.
하지만 모범적인 이 교회에도 문제는 있었고 사도 바울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서신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신학적인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논쟁이 있었던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서신에서 예수님의 재림의 확실함과 우리가 그 시기를 알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시고 오히려 우리가 집중해야할 일은 언제 어떻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어떤 태도를 크리스챤으로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는것임을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오장에 나오는 이 내용이 바로 주님의 재림이 언제일어나나 논쟁 하는것이아니라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일장은 바울이 삼주밖에 머무르지 못했음에도 사방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게한 데살로니카 교회에 대한 칭찬이 주 내용입니다. 그 데살로니카 교회가 어떻게 이런 좋은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먼저 이 교회네 복음을 전한 전도자들의 그들의 삶을 바친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역사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가운데서 예수님을 믿는 데살로니카 교회의 교인들안에 기쁨이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접하는 사람은 말씀도 듣지만 전하는 사람의 태도를 본다는것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사실입니다. 본인의 확신과 간증에 바탕을 해야 복음이 전파 되는것입니다. 또 미 모든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택하심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믿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 믿음의 확신과 복음의 전파에 관해서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복음의 전파에 대해 도전을 받기 원하시는 모든분들께 하나님의 주장하심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0/26/2015 • 22 minutes, 51 seconds
마태복음 28:18-20(제임스 린튼 선교사님)
10/26/2015 • 32 minutes, 20 seconds
에스겔 23:36-49(정인수 담임 목사님)
에스겔 23장은 두 음란한 여인의 비유를 통해서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죄악과 심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절로 10절까지 언니 오홀라의 음행 으로 비유되는 북 이스라엘의 죄악을 그리고 11절로부터 35절은 동생 오홀리바의 음행으로 비유되는 남유다의 범죄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인 36절로 부터 49절에는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심판을 반복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2절에서 보면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간 애굽에서 체류하였을때 거기서부터 각종 잡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약혼한 여인이 음행을 저지르는것 같은 이들의 우상숭배의 기원은 아주 뿌리가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니 오홀라는 이후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오홀라는 자색옷을 입고 용맹하고 준수한 남자같은 앗수르의 권세와 화려함에 미혹되었음을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세상의 영광과 쾌락을 쫓아 살아가는것을 이와 같이 비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영적인 음행이라고 하시며 결국 북 이스라엘은 BC722년에 멸망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역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면 반드시 망하게 되는것을 우리는 예언서를 깨달아야 합니다.
오홀리바의 음행으로 비유되는 남 유다의 범죄는 오홀라의 멸망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가기는 커녕 오히려 더 지독한 우상숭배에 빠져들어감을 이야기 합니다. 바벨론에 붙었다가 애굽과 앗수르에 추파를 던지는, 세상의 권력을 바라보며 집착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평초와 같이 떠나다니는 삶을 살아감을 이야기 합니다.
이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몰록의 우상앞에 불로 태워 인신공양을 하고 바로 그날 성전에 올라가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모욕하고 성전을 더렵혔다는 오늘의 말씀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세상권력을 초대해 들이는 음녀와도 같은것입니다 더럽고 추악한 것입니다. 자기 욕신을 위해서는 잡신들과 하나님을 겸해 섬기는것을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것이며 권력과 욕심이 자신들의 신이된 모습인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보다 다른것을 더 사랑하는것은 다 우상숭배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것은 하나님에대한 모독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성결함과 정결함으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음을 깨닫고 또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정결함과 순결의 각오로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원하시는 모든 분들께서 이 메세지로 도전과 은혜받으시길를 축원합니다.
10/23/2015 • 13 minutes, 35 seconds
에스겔 23 : 22-35(서석훈 목사님)
에스겔 23 : 22-35(서석훈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오홀리바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경고입니다. 오홀리바는 바로 예루살렘, 남 유다를 의인화시킨 말입니다. 에스겔은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을 오홀라와 오홀리바라는 자매로 의인화 시켜서 이야기하고 있고 특히 어제의 말씀에서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던 사마리아 곧 북이스라엘 곧 오홀라가 어떻게 심판을 받아 멸망했는지 말씀하겼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은 이 동생인 오홀리바의 심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심판의 정도가 동생과는 비교할 수고 없이 강력합니다. 즉 예루살렘과 남유다가 겪게될 심판은 북이스라엘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없이 강하다는 경고입니다.
22절에서는 사방에서 와서 너를 치겠다 하시고 남유다의 사람들을 이방의 법으로 심판한다고 하시고 25절에서는 그들의 귀와 코를 잘라버린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고대 중동에서 노예나 간음한 여인을 처벌하는 극형의 하나입니다. 29절에서는 벌거벗은 몸으로 두고 행음하던것을 드러앨 것이다 모든 수치를 드러낼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떼서는 남유다에대해 이렇게 더 심한 심판을 이야기 하셨을까요? 바로 이들이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심판을 다 보고 들었음에도 이들이 하나님께 메달리는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센자들 바벨론과 애굽을 의지하며 나아갔기때문입니다.
행음하는 아내에게 분노하지 않는 남편은 그 아내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남편입니다.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나는것이 너무도 당연한 인지상정인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분노의 크기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당신의 백성들에게 대한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는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한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신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는 무한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간다면 하나님의 분노도 이와같이 거대할 것입니다. 작금의 세상의 에스겔 23 : 22-35(서석훈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오홀리바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경고입니다. 오홀리바는 바로 예루살렘, 남 유다를 의인화시킨 말입니다. 에스겔은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을 오홀라와 오홀리바라는 자매로 의인화 시켜서 이야기하고 있고 특히 어제의 말씀에서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던 사마리아 곧 북이스라엘 곧 오홀라가 어떻게 심판을 받아 멸망했는지 말씀하겼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은 이 동생인 오홀리바의 심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심판의 정도가 동생과는 비교할 수고 없이 강력합니다. 즉 예루살렘과 남유다가 겪게될 심판은 북이스라엘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없이 강하다는 경고입니다.
22절에서는 사방에서 와서 너를 치겠다 하시고 남유다의 사람들을 이방의 법으로 심판한다고 하시고 25절에서는 그들의 귀와 코를 잘라버린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고대 중동에서 노예나 간음한 여인을 처벌하는 극형의 하나입니다. 29절에서는 벌거벗은 몸으로 두고 행음하던것을 드러앨 것이다 모든 수치를 드러낼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떼서는 남유다에대해 이렇게 더 심한 심판을 이야기 하셨을까요? 바로 이들이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심판을 다 보고 들었음에도 이들이 하나님께 메달리는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센자들 바벨론과 애굽을 의지하며 나아갔기때문입니다.
행음하는 아내에게 분노하지 않는 남편은 그 아내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남편입니다.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나는것이 너무도 당연한 인지상정인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분노의 크기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당신의 백성들에게 대한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는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한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신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는 무한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간다면 하나님의 분노도 이와같이 거대할 것입니다. 작금의 세상의 유혹은 강력하며 간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홀라와 노홀리바 자매의 멸망의 비유에서 교훈을 배웠다면 하나님을 슬프게하고 분노케하는 죄악으로부터 멀리하는 지혜를 발휘 할 것이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에 우리를 맡기는 도리를 다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사 주시는 경고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단련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축복이 무궁하시길 축원합니다.
유혹은 강력하며 간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홀라와 노홀리바 자매의 멸망의 비유에서 교훈을 배웠다면 하나님을 슬프게하고 분노케하는 죄악으로부터 멀리하는 지혜를 발휘 할 것이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에 우리를 맡기는 도리를 다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사 주시는 경고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단련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축복이 무궁하시길 축원합니다.
10/22/2015 • 12 minutes
에스겔 22:1-16(정연권 목사님)
에스겔 22:1-16
오늘 본문을 잘 정리해주는 한 단어는 '관영하다'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를 통해 세상을 심판 하실때 세상을 묘사하시면서 사용하신 단어입니다. 그때 세상에는 사람의 죄악이 괸영함과 사람의 생각이 악함을 보시고 심판하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이 단어는 컵에 더 이상 물을 부을 수 없을때까지 컴에 물이 찬 상태와 같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에 죄가 관영했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사람을 죽이고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지었음이요 고관들은 권력을 남용해 사람을 죽이고 사람들은 부모를 업신여기고 소외된 사람을 버려두고 제사장들도 타락해서 성물을 업신여기고 안식일을 더렵혔습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입에 올리기도 힘든 많은 죄들을 저지른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읍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공의도 율법도 사라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오직 인간의 탐욕만이 가득찬 세상이 괸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
하나님을 잊어버린 나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교회
이들로 가득찬 곳이 되었습니다.
죄가 관영한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심판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수단이 심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우리마음속에 나의 모습이 비추어 지는것 그래서 나의 죄가 깨달아 지는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 돌아오실 때 입니다.
10/19/2015 • 13 minutes
토요 새벽 기도(정인수 담임 목사님)
10/17/2015 • 29 minutes, 2 seconds
에스겔 20 : 40-49(정인수 담임 목사님)
에스겔 20 40-49
오늘 본문은 다시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고있습니다. 심판이 주된 내용인 에스겔에서 회복에 관한 내용은 참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먼저 본문은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임을 예언합니다. 또 그들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드리는 회복의 증거,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감동으로 예배를 드리고 인생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그 증거가 나타날것을 이야기 합니다.
회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자신의 그동안의 죄를 미워하고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말씀하신 모든것을 이루심을 말씀하십니다. 어느날 은혜를 경험하고 내가 회복 될깨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깨닫는 그것이 온 민족에게 드러나리라 말씀하시는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만약 하나님의 백성의 전적인 회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을 받을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이뤄딜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구원사역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한 백성은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45절부터는 다시 심판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것은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대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회개하면 산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만 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죄로 물들은 죄인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 우리의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려 일하시는 한 우리의 구원은 확증적입니다. 그 구원의 메세지를 사모하시는 분들은 오늘의 메세지에서 은혜 받으시기 축언합니다.
10/16/2015 • 14 minutes, 4 seconds
성경의 파노라마 6회
10/15/2015 • 27 minutes, 5 seconds
에스겔 20 : 30-39(김재홍 목사님)
선교지를 가보면 청결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하고 돌아와도 손을 씻을 줄도 모르고 이도 닦지않고 우물물도 그냥 마시고 아무렇게 담아놓은 물을 거듭해서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위생적인 삶을 살면서도 이 병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바로 이 무서운 병들이 손을 안 씻으면 이를 안 닦으면 세수를 하지 않으면 물을 끓여먹지 않으면 시작 될 수 있다는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교를 가면 이 사람들에게 청결을 제일 먼저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청결이 원주민들에게는 고통일 수 있습니다. 손을 씻고 이를 닦고 세수 하고 물을 끓여 먹는것이 이들에게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와 마찬가지 인것이 영적인 청결입니다. 영적인 청결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 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청결함이 없을 때 모든 문제가 이 곳에서 시작 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 뿐 아니라 우리사이의 관계의 문제도 건강의 문제도 그리고 재산의 문제도 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로부터 시작되는것을 볼 수 있고 언약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문제의 해결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함으로 시작되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의 외침도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자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하나님을 얼마나 대적하고 있는가 돌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믿어도 나라가 망하지 않았느냐는 적반하장의 태로로 차라리 바벨론의 우상을 강대국의 우상들을 섬겨보자는 자세로 나아가는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일제시대에 신사를 참배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런 우상 숭배 가운데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실 수 없고 또 응답하셔도 그 음성을 우리가 들을 수 없는것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경고하기를 이런 패악이 계속 될깨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공의와 하나님의 분노로 붙잡아 되 돌이신다는 경고를 주시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패역한 우리일 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심판의 모습으로도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동시에 이뤄 질 수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모습을 경외하심으로 은혜의 관계에 들어가시고자 하는 모든 분들은 오늘의 메세지에서 킁 도정과 은혜 받으시기 축언합니다.
10/15/2015 • 14 minutes, 14 seconds
에스겔 20 : 10-29(정인수 담임 목사님)
에스겔 20 : 10-29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본문에서 에스겔은 뛰어난 역사적 감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광야의 1세대는 시내산에서 언약을 받음과 동시에 율례와 규례의 선물을 받았다는 말슴하시며 이들은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라는고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안식일이고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의 표징으로 삼으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율례와 규례를 멸시하고 안식일을 더럽혔으며 이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였다는 이야기 입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것은 회개한다는 이야기이며 우리 주변의 가난한 자들을 돌아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것으로부터 떠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욕심을 숭배하는 죄악으로 물들었다는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의 정체성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삼십년전 미국의 영적인 정체성은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웠습니까? 지금의 미국의 모습은 이 나라가 자신의 영적 정체성을 얼마나 쉽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잃어버리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은 죄악을 방치하는것입니다. 죄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멸망하게 하는것입니다. 바로 이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방치에 들어가고 있었음을 에스겔이 경고하며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선포는 바로 오늘 우리에게, 미국에게, 한국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고 패역한 세태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더욱 더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시고 회개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시는 분은 오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큰 도전을 받으시길 축언합니다.
10/14/2015 • 16 minutes, 12 seconds
에스겔 20 : 1-9(정인수 담임 목사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들의 생활은 비참 했으며 언제나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 뿐이였습니다. 이때 거짓 선지들이 사람들의 바람에 비위를 맞추는 거짓된 예언을 남발할 때 였고 또 이런 거짓예언과 불안한 미래로 무척 혼란하였습니다.
이에 장로 둘이 에스겔에게 찾아와 유다백성의 미래를 묻습니다. 하지만 이미 패역한 유다 백성들에게 분노하실 대로 분노하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나아가야 할 바를 하나님의 뜻을 배워 선포해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백성에게 전해주어야하는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하나님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유다 족속을 질책 하십니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흘히 하여 가증한 것으로 부터 떠나지 않았고 또 우상을 숭배했다는것입니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 심판받아 멸절되 마땅할 이스라엘 족속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애굽으로부터 구원해 내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이렇게나 중요하며 능력이 있으며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죄인들도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고 죄와 저주를 끊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것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수많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하나님의 이적들을 보시면 이 말씀의 뜻을 아실 수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음으로 복된 삶을 누리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습니다. 오늘 이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언합니다.
10/13/2015 • 13 minutes, 20 seconds
에스겔 19:1-14(이성혜 목사님)
에스겔 19:1-14
예스겔에게 하나님은사람이 죽었을 때 부르는 장송곡인 애가를 부르게 하십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는 두마리의 사자의 비유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설명하여 주십니다.
애굽으로 끌려간 첫번째 젊은 사자는 백성을 압제하다가 애굽에 사로 잡혀간 여호아하스왕을 말합니다. 두번째 바젤론으로 끌려간 다른 사자는역시 자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여호야긴왕을 말씀하시는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포도나무의 비유을 말씀하시는데 가지에서 불이나와 열매를 태워 버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종국에 멸망할 것을 말씀 하시는것입니다. 이 모든 왕들이 권세와 능력이 뛰어 났고 또 거느리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누구의 희망도 되어주지 않음을 보여 주십니다.
유다의 왕들은 유다왕국을 멸망케하고 또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자신의 목숨을 건졌지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만국과 만민을 구원하신 한 왕이 계셨으니 그 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유일하고 진정한 왕 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찬송하고 찬송하는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심으로 은혜받고 싶으신 분들은 오늘의 메세지에 귀를 기울이시길 축언합니다.
10/12/2015 • 14 minutes, 43 seconds
에스겔 18:22~32(조근상 목사님)
10/12/2015 • 29 minutes, 34 seconds
에스겔 17 : 1-10(김재홍 목사님)
에스겔서는 남유다가 멸망되던 시기를 배경으로 쓰여 졌습니다. 이 당시 약소국이었던 남유다는 남으로는 애굽과 북으로는 바벨론 사이에 끼여 생존을 위해 강대국들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줄다리기를 하던 때 였습니다.
요시야가 애굽과 전쟁을 하다 전사한 이후 바벨론이 유다의 여러 왕을 세우고 또 바벨론으로 끌고가는 과정들을 보고 있자면 구한말 외세를 끌여들여 정권을 유지하려던 민비와 흥선 대원군의 모습이 겹칩니다.
하지만 결국 조선이 이런 고도의 외교 전략에도 망해서 일본의 속국이 되었듯이 강대국을 의지해 나라를 지키려던 남유다도 애굽을 끌어들여 바벨론에 저항하고자했던 시드기야의 저항의 실패로 끝으로 망하게 됩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던 이 시도를 마치 하늘을 나는 독수리에게 물을 받고자 뿌리를 뻗는 포도나무와 같다고 합니다. 나무가 독수리에게 물을 받아 살수 있겠습니까? 어불성설이고 어리석은 생각인것입니다.
시드기야는 애굽의 모습만 보고 실상은 망해가고있던 썩은 동아줄같던 애굽을 붙잡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이 살아나고 축복을 받을것입니다. 예언과 역사는 이 진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진리의 생명으로 자신을 채우고자 하시는 분들은 오늘의 말씀으로 은혜받으시길 축언합니다.
10/8/2015 • 13 minutes, 43 seconds
성경의 파노라마 5회
10/8/2015 • 33 minutes, 13 seconds
에스겔 16 : 53-63(정인수 담임 목사님)
에스겔서의 계속되는 심판의 메세지를 듣는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의 핵심은 언제나 이 심판이 변하여 회복으로 끝나는 은혜를 우리에게 전하시는데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복된소식 복음이 되는것 입니다.
결국 핵심은 우리를 회복의 은혜로 이끌어 줄 회개의 메세지인것입니다. 지은죄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며 죄인들이 모든 사람들이 회복되게 할 회개의 은혜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특권을 많이 받은 자들에게 그들의 죄의 대가가 남보다 크며 그에 걸맞는 큰 회개가 요구되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에스겔서에서는 이 회개를 전제로한 용서가 심판과 더불어 계속해서 선포가 되고있습니다.
자녀들을 징계하는 부모의 심정이 어찌 정죄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도 그 끝에는 언제나 회개와 용서와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종국에 회복하고 또 하나님께 돌아와 이들을 통해 만국열민에게 구원의 복음의 메세지가 전파되는것이었음은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와 교회의 역사로 이미 증명이 되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를 회개로 회복으로 용서로 또 하나님의 구원의 비전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축언합니다. 이 은혜를 경험하기 원하시는 분들은 오늘의 메세지에서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10/7/2015 • 16 minutes, 49 seconds
에스겔 16 : 35-52(정인수 담임목사님)
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이야기하는 에스겔은 쉽게 이해가 되는 책은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무도 돌보지 않던 벌거벗은 영아를 돌보고 아름답게 꾸며서 왕후로 키우는 왕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천한 아이를 귀한 왕후로 키웠더니 그 왕후가 외간 남자와 음행을 저지를 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비유안의 이 왕은 하나님이시고 이 음란한 여인이 바로 이스라엘이며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주변 강대국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의지하는것이 바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저지른 음란의 죄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것들에 더 관심을 가진다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저지른 죄를 똑같이 저지르는것이라는것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않음으로 가난한 나의 형제들을 돌보지 않고 그저 내가 먹을 음식만 썩어나도로 챙기던 것이 소돔이었고 그것이 그들의 우상숭배 였습니다. 그 소돔의 죄를 이 스라엘이 더 크게 범하였다고 에스겔은 선포합니다.
만약에 오늘 우리도 가난하고 궁핍한 그들에게 말씀과 빵을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앞에 교만하고 가증한 죄를 저지르는것 입니다. 오로지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며 우리의 형제들을 돕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기를 간구하시는 모든분은 오늘의 말씀에서 많은 도전을 받으시길 축언합니다.
10/6/2015 • 13 minutes, 26 seconds
에스겔 16 : 15-34(정선기 목사님)
세상은 복잡한 관계로 얽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잡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계약으로 맹세로 약속을 맺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벌거벗은것 같은 보잘것없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과 은혜의 약속을 맺어 주셨습니다. 신명기를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받게 되는 셀수도 없는 얼마나 많은 엄청난 복들이 있습니까?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신의 자녀를 바치면서까지 우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심지어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보고 부끄럽게 생각할 만큼 자기 민족과는 상관도 없는 이웃 강대국들의 우상을 수입해 열심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결초보은을 해도 부족할 이스라엘이 배은망덕으로 하나님을 배신하는것 입니다.
그 배신의 결과가 이스라엘 미족이 바벨론에게 잡혀가는 멸망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그 심판의 한 가운데서 에스겔 선지자가 회개의 메세지를 선포합니다. 이것이 과거의 한 사건일 뿐입니까? 아닙니다 세례 요한도 회개를 외쳤고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와왔느니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메세지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하나님의 때는 언제나 가까와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회개로 한 주를 열어 진정한 축복에 이르시고 싶으시는 분들은 오늘의 메세지에서 많은 은혜 받으시길 축언합니다.
10/5/2015 • 12 minutes, 5 seconds
에스겔 14 : 12-23(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다시 심판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내리는 것으로 시작 합니다. 이 심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것에 기인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총기의 문제입니다. 어제도 오레건에 있는 한 대학에서 수없이 많은 학생이 죽고 다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계속 있을수 있다는것은 놀랍고 끔찍한 일입니다. 이것은 총기 업자들의 탐심의 욕망에 의한 의회 로비의 결과이며 이런 죄와 욕망의 길을 계속 걷는 미국이 망하게 될것은 말씀을 비추어 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런 악한 세대에서는 노아와 다니엘과 욥일지라도 자신의 목숨만 건지게 될 것이라고 에스겔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이 세상의 죄가 너무나 악함을 말하는 것이고 둘째, 이들 조차도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중보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악한 시대가운데 누구를 찾아야겠습니까? 죽음의 병상에서 살아 돌아온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Life is not fair but God is Good.)
그렇습니다. 오직 우리가 기댈분은 하나님 되시는 주 예수 그리수도 뿐입니다. 시대는 악하고 나의 죄는 주홍같이 붉습니다. 이런 나를 구원 하실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뿐 입니다. 이 구원의 메세지가 갈급하신 분은 오늘의 설교에서 많은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시길 축언합니다.
10/2/2015 • 16 minutes, 16 seconds
에스겔 14 : 1-11(조근상 목사님)
바벨론에 끌려온 에스겔, 소망도 보이지 않는 답답함이 에스겔의 주된 분위기 입니다. 그러나 마른뼈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소망이 종국에 이 에스겔의 주제가 됩니다.
그러나 왜 이런 비극이 있게 되었습니까? 에스겔에서 하나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는 거짓 예언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싶은 이야기만 해주는 거짓된 메세지로 인해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다는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탐심을 따라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아날 수 있는 방법으로 주시는것은 우상을 떠나라 우리의 탐심을 따라 사는것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떠난다는것은 성경에서 크게 두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먼저 익숙한 옛것을 떠난다는것이고 둘째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데로 모르는곳에서 매가 모르는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라간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옛것, 옛 삶, 묵은 탐심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떠날 수 밖에 없도록 하셨습니까? 오늘의 메세지를 통해 고남과 고통속에서도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들으시고 어려움속에서도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축언합니다.
10/1/2015 • 12 minutes, 19 seconds
성경의 파노라마 4회
10/1/2015 • 35 minutes, 32 seconds
수단과 목적 (신명기 11:18-25, 노승환 목사)
우리는 복받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복주시기를 정말 좋아 하십니다. 그래서일까요 신명기에는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주시겠다는 약속까지 주셨을 정도입니다.
~~하면,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할것이다, 순종하면 복을 줄것이다라는 신명기의 패턴은 그안에 있는 하나님의 진의를 이해하고 보지않으면 마치 복받는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고 하나님께대한 순종이 복을 받기위한 수단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식에게 공부 열심히해서 대학가면 차사줄께 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차를 사주는게 목적이겠습니까? 자식이 훌륭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그 진의인것은 너무 당연할것입니다. 복이 수단이고 순종을 아는 자녀가 되는것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속에 들어가는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의는 우리가 종국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노릇할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 장성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함에도 불구하고 거친 훈련이 있을수도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훈련이 복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종국에 열국을 다스릴 왕이 되는 과정이 궁금하십니까? 그렇다면 순종을 강론하시는 오늘의 말씀을 들어보시고 복받으시길 축언합니다.
9/29/2015 • 18 minutes, 30 seconds
에스겔 12 : 17-28(정연권 목사님)
에스겔 선지자 시대의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한마디로 잘 설명하는 단어를 들자면 '포악'이라는 단어일 것입다.
이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도 하지 않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변형시키며 살았습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의 성취되는 시기를 왜곡하며 살았습니다,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서 유다의 바벨론에 의한 멸망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고 이들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때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시계를 읽는법을 배운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현재에도 유효합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실때에 칭찬을 듣는 귀한 자녀가 되고 싶으십니까? 오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고 내 안의 불순종의 흔적 조차 지우고 싶으신 분은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9/28/2015 • 18 minutes, 7 seconds
에스겔 11:16-25 (심우진 목사님)
9/27/2015 • 28 minutes, 7 seconds
에스겔 11 : 1-13(정인수 담임 목사님)
하나님의 영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환상을 본 에스겔은 심판에대한 경고를 예언하고 이 예언은 하나님의 심판이 유다의 지도자들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은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상숭배가 극심하게 행해졌던 예루살렘의 성전의 모습은 이 시대 정치, 종교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년적으로 둔감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언제나 중요한것은 현재 상황에 대한 해석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패역한 시대와 자신들의 우상숭배로 급박한 심판이 다가왔음에도 평안하다 평안하다 외칩니다. 지금의 이 시대, 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이 미국의 현실은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향하신 경고임을 증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와 상황이 패역했을지라도 그 가운데에서 남은자들을 들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내시고야 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기필코 이 남은자로의 삶을 살아야만 하겠습니다. 이런 남은자로의 삶의 각오가 필요하신분은 이 메세지로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9/25/2015 • 14 minutes, 39 seconds
성경의 파노라마 제3회
9/24/2015 • 38 minutes, 11 seconds
에스겔 9 : 1-11(정인수 담임목사님)
이스라엘이 멸망하기전 6년전에 에스겔이 본국에 남아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에스겔이 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전부를 위한 간절한 중보를 들어주시지 않고 대신 패역한 세대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자들에게만 이마의 표를 그려주시고 그들만 심판을 면하게 하십니다.
심판의 사자는 우상의 숭배가 극심했던 북문으로 들어와 성전에서부터 죽음의 심판을 시작합니다. 언제나 패역한 세대의 심판은 팬역한 세대와 같이 손잡은 교회로부터일것임을 이야기하는 본문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이 세대와 세상의 패역한 죄로 괴로우십니까? 이 세대를 위 하여 탄식하시고 계십니까?이 세대가운데 교회의 힘없음으로 가슴이 찣어지십니까?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남겨두시는 남은자가 당신이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함과 남은자를 통하여 남겨주시는 희망의 메세지가 궁금하신 분은 클릭~~~~!
9/23/2015 • 13 minutes, 18 seconds
나의 옥합을 깨어서 주님께 드리자 (LA 새사람교회 김동환 목사님)
베다니의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어드린 사건은 예수를 사랑한다면 주님을 위하여 나의 전부를 아낌없이 드리는 모범이 되고 이 일화는 우리에게 3가지 질문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묻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나는 내게 가장 소중한것으로 주님께 드릴수 있는가? 이고
두째, 나는 나의 소우를 드릴때 최고의것으로 최대로 드리는가? 입니다.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낭비한다고 힐난을 들을 정도로 주님께 드렸으니까요..
세째는 마지막으로 드리는것을 전부 다 즈릴 수 있는가 ? 하는것입니다.
주님을 사랑 하십니까? 그렇다면 과연 내가 주님께 무엇을 드리고 있는가? 나의 주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은 과연 충분한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드리는 나의 사랑의 표현이 어떠해야하는지 궁금하신 분은 클릭~~~!
9/22/2015 • 20 minutes, 21 seconds
에스겔 7 : 14-27(조재욱 목사님)
하나님의 심판과 심판의 메세지는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지고 타락할대로 타락한 영혼의 교만을꺾어 하나님앞에서 심령의 가난함을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간 타락한 이스라엘 민족들은 시편 137편에서 이렇게 노래 하게 변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그 곳에 앉아서, 우리가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70년의 포로생활이 없었다면 이스라엘민족이 과연 이런 가난한 영혼의 눈물 을 뿌릴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메세지는 파멸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진정한 회복을 말씀하시는 사랑의 메세지인것입니다.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원하십니까? 육신의 연약함을 뛰어넘어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으로 거듭나게 되길 원하십니까? 고난가운데에서도 빛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원하시는 분은 클릭~~~!
9/21/2015 • 13 minutes, 1 second
에스겔 6:1-14(서석훈 목사님)
9/20/2015 • 22 minutes, 14 seconds
에스겔 5 : 1-17(정인수 담임 목사님)
에스겔이 사역하던 남유다의 말기는 바빌론과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던 시기이고 유다의 리더들이 바벨론에 약 만명의 포로로 끌려간시기이고 그 중의 하나가 에스겔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사실만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에스겔은 멸망과 심판을 예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다시돌아와 말씀으로 살아가라는 회개의 촉구이며 또한 고난을 통해서도 구원을 약속해 주시는 희망의 말씀입니다.
혹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외에 하나님에 대해 아는것이 없으십니까? 말씀에 대해서 지식도 약하고 어떻게 말씀으로 살아가는지는 막막한 이야기 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부르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 궁금하신 분,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각오가 있으신 분은 클릭~~~~!
9/18/2015 • 16 minutes, 35 seconds
에스겔 4 : 1-17(김재홍 목사님)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기를 원합니다. 그 이유는 미래를 예측하는데는 큰 기회가 있기 때문이고 동시에 위험을 피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수년전에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전할것이라고 짐작이라도 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큰 기회를 얻었습니까? 또 911에 대해서 하루라도 먼저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에스겔서는 유다왕국의 미래에 대한 큰 경고의 예언서 입니다. 그 때 이 경고를 유대민족이 들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금도 성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래를 밝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패역한 시대가운데 과연 어디에 기준을 잡고 삶을 살아야 할지 알고 싶으신 분은 클릭~~~!
9/17/2015 • 15 minutes, 39 seconds
성경의 파노라마 2회(정인수 담임 목사님)
9/17/2015 • 37 minutes, 19 seconds
에스겔 3 : 16-27(정인수 담임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도의 파수꾼, 말씀의 파수꾼, 민족과 나라의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시는것을 아십니까?
이 감격스럽고 명예로운 사명뒤에 또 큰 책임이 있는것도 아시는지요?
성경은 악인이 우리 말씀의 파수꾼들이 그들을 깨우치지 않아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악인은 그의 죄악중에서 죽겠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핏값을 우리손에서 찾을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이 큰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될지 자신이 없으신가요? 말씀이 이해는 되지만 복음전파의 실천에 옮길만한 능력이 없다고 느끼시는 분, 그 능력의 비결을 알기 원하시는 분은 클릭~~~~!
9/16/2015 • 13 minutes, 42 seconds
에스겔 3 : 1-15(정인수 담임 목사님)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자녀로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분명한 콜링으로 또 아버지의 사역으로 초대 하셨습니까? 나의 인생이 아버지의 부르심임을 분명히 느끼십니까?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어려움이 넘치고 또 두렵고 감당해야할 일들이 나보다 훨씬 크게 보이는지 답답 하십니까?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완악하고 목이 곧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전하라는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의 부르심뒤에는 아버지의 크신 능력과 힘주심이 따라옵니다.
이 하나님의 힘과 능력의 역사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나는 어떻게 이 힘과 능력 주심을 따라갈 수 있을지 궁금하신 분은 클릭~~~!
9/15/2015 • 16 minutes, 21 seconds
에스겔 2 : 1-10(이성혜 목사님)
바벨론 2차 침공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바벨론의 식민지로 전락한 피폐해진 이스라엘에서
"우리에게 여전히 소망이 남아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인데 도데체 왜이런일이 일어났는가?" 이런 시대적 질문이 생기는것은 너무나 자연 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시대적인 의문과 개인적인 질문들이 있지 않습니까?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서 있던 에스겔에게 임하신 이에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에스겔로 책 한권을 쓰게 하셨습니다. 과연 이 대답이 어떠한 것인지 이 새벽기도의 여정가운데 알기 원하시는 분은 클릭~~!
9/14/2015 • 19 minutes, 8 seconds
빌립보서 4 : 14-23(김재홍 목사님)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군자금대주는 것 만큼이나 어렵고 믿음이 필요하다는것이 바로 로마제국 교도소에 갖힌 교회 지도자 도와주기!
바울이 옥에 갖혔을때 유일하게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고 바울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준 빌립보 교인의 믿음이 이와 같을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바울은 고맙습니다 하는것이 아니라 참 잘했어!하고 칭찬을 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않는 바울의 이 당당함의 비밀은 바로 이 후원을 바울 개인에 대한 후원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의 영적투자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 영적 투자가 얼마나 큰 이윤을 돌려 주길레 바울이 이렇게 당당 할 수 있을까요? 옥에 갖힌 바울이 과연 어떻게 이 투자를 이윤으로 돌려 놓을수 있다고 확신했는지 그가 걸었을 담보가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은 클릭~~~!
9/13/2015 • 26 minutes, 45 seconds
빌립보서 4 : 14-23(정인수 담임 목사님)
9/11/2015 • 17 minutes, 7 seconds
빌립보서 4 : 8-13(심우진 목사님)
세상을 살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어오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마음이 있습니다, 거칠고 음란한 이 세상이 우리 마음에 주는 생각들이 과연 참되고 경건하고 옳으며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하고 덕스러우며 기릴만 한 생각일까요?
보이지 않는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인격을 만들고 우리의 인생을 다듬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생각을 바라보고 음미하고 있는가는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보고 배운바를 가지고 이 많은 생각에 휘둘리는 마음을 다스려 평강의 하나님과 함께 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바울사도께서 말씀하시는 이 평강의 비밀을 알고 싶으신 분은 클릭~~~!
9/10/2015 • 8 minutes, 42 seconds
성경의 파노라마 1회 (정인수 담임목사님)
9/10/2015 • 35 minutes, 51 seconds
빌립보서 4 : 1-7(정인수 담임 목사님)
돈이 많은데도 평강이 없는 사람들이 있고 좋은 집에 살면서 좋은 차를 타는데도 평강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명예를 넘치게 얻었어도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출세에 출세를 더 했어도 평강과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 마음의 평강을 주관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과연 누가 나의 인생을 주관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 나의 인생을 주관하고 있습니까? 나의 직면한 상황이나 환경입니까? 내가 의지하는 어떤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 자신을 의지해서 나의 마음의 평강을 누리려고 합니까?
가장 큰 하나님의 복은 평강입니다, 빌립보서는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가능한 문제들을 다 합친것보다 크신 하나님의 평강, 그 초월적인 하나님의 평강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 알고 싶으신 분은 클릭~~~~!
9/9/2015 • 18 minutes, 42 seconds
빌립보서 3 : 12-21(정인수 담임 목사님)
목적이 없는 삶은 과거에 매여 살아가는 삶이고 늙어가는 삶입니다.
구약의 잠언에서 꿈이 없는 사람은 방자히 행한다고 했고 사도 바울은 오늘의 본문에서 그들의 신은 자기 배라고 일갈 합니다.
삶을 살아가실 때에 꿈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살아 가십니까? 목표가 있으시다면 그 목표가 과연 합당한 목표인가 생각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사도 바울은 (평균 수명이 25세인 로마시대에) 60세가 넘은 노년에 자신이 바라보고 달려가는 인생의 목표를 설파합니다. 과연 무엇이 바울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바울을 나이에 상광없이 그의 처지에 상관없이 달려가게 하였는지 알고 싶으신 분은 클릭~~~~!
9/8/2015 • 12 minutes, 42 seconds
빌립보서 2:19-30(조근상 목사님)
9/6/2015 • 30 minutes, 32 seconds
빌립보서 2:1-11(정인수 담임 목사님)
교회안에서 혹은 살면서 사람을 무시하고 싶거나 남들보다 좀 더 대접받고 인정 받고 싶으실 때가 있으십니까?
또 경쟁의 논리가 세상의 진리처럼 느껴지십니까? 남과의 경쟁을 승리함으로 나의 남보다 나음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으신지요?
하지만 성경은 낮아지고 비워짐으로 높아지는 십자가의 역설을 주장하십니다. 낮아지는것이 어떻게 높아지는것인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것이 어떤것인지 알고 싶으신분은 클릭~~~~!
9/4/2015 • 17 minutes, 5 seconds
빌립보서 1 : 22-30(조근상 목사님)
나는 이것을 위해 살아간다 할 만한것이 있으십니까?
나는 이것을 위해 죽어도 좋다고 할 만한 것이 있으십니까?
빌립보서는 생각하라, 기뻐하라 그리고 마음이라는 단어가 각각 17번씻이나 4장밖에 안되는 짧은 편지안에 적고 있습니다.
살면서 내가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용을 쓰면서 추구하는것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까?
사도 바울을 이것을 위해서라면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저 많이 전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바울의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으신 분은 클릭~~~~!
9/3/2015 • 17 minutes, 43 seconds
빌립보서 1 : 12-21(정인수 담임 목사님)
삶을 살아가면서 원치않는 고통과 배신으로 아파하고 괴로와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고통으로 인생의 퇴보를 겪어 보셨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고통이 축복으로 선물로 바뀌게 된 삶이 있다면 그 삶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바울이 고난을 받을때마다 옥에 갖힐 때마다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원치않는 고통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어가도록 이끄십니다.
이런 믿음과 신앙의 비밀이 궁금하시면 클릭~~~!
9/2/2015 • 17 minutes, 57 seconds
빌립보서 1 : 1-11(정인수 담임목사님)
바울의 유럽 선교의 첫열매인 빌립보교회를 아십니까?
자주 장사인 루디아를 만나 동역함으로 세워진 교회, 마게도냐의 형제들로 표현되는 언제나 바울의 선교 사역을 후원하던 사랑의 교회.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열매인 빌립보교회와 그 교회의 성도를 향한 바울의 사랑은 감옥에 갖혀서도 이 교회를 잊지않고 편지를 쓰게 합니다.
그 동역의 사랑의 고백의 여정이 이제 시작됩니다, 그 사랑의 고백이 궁금하신 분은 클릭~~~!
9/1/2015 • 13 minutes, 43 seconds
잠언 9 : 1-18 (정연권 목사님)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휘둘려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세상의 깜짝놀랄 뉴스를 접하면 어떻게 사나 걱정이 넘치는 사람, 주변의 환경의 변화에 따라 허중지둥하는 사람....
자신의 인생을 요약하면 오욕칠정 -재물욕, 명예욕,식욕, 수면욕, 색욕과 기쁨, 성냄, 근심, 두려움, 사랑, 미움, 욕심- 으로 요약이 간단히 끝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성경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몰래먹는 떡을 더 맛있다 부르는며 도둑질한 물을 더 달다 부르는 미련함을 혹시나 들을만한 이야기로 착각하시고 있는지는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모두를 초대하시는 지혜의 삶이 어떤것인지 궁금하신 분은 클릭~~~~!
8/31/2015 • 17 minutes, 28 seconds
잠언 7:1-27(정인수 담임 목사님)
8/30/2015 • 12 minutes, 36 seconds
잠언 6 : 20-35(서석훈 목사님)
축복을 누리는데에도 한계와 법도가 있는걸 아십니까? 축복이 변하여 모든걸 다 태우는 불을 품고 사는것같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대표적인 성 어떻게 누리고 계십니까?
세상은 개방이라 말하고 성경은 타락이라 정의하는 작금의 세태에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궁금 하십니까?
성경이 이 성을 어떻게 누리라 명하시는지 그리고 왜 이런 명령을 주시는지 알고고 싶으신 분은 클릭~~~~!
8/27/2015 • 12 minutes, 29 seconds
잠언 6 : 1-19(정인수 담임 목사님)
근대 자본주의와 청교도의 관계를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개미에게 배울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삶이 어떤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고 싶은데 세상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 하십니까? 어제 내가 내린 선택과 오늘을 사는 나의 삶의 관계를 알고 싶으십니까?
잠언이 이야기하는 성공의 비결을 알고 싶으신 분은 클릭!
8/26/2015 • 15 minutes, 26 seconds
잠언 5 : 1-23(정인수 담임 목사님)
8/25/2015 • 14 minutes, 37 seconds
잠언 3 : 13-26(정인수 담임 목사님)
살아가면서 평강을 누리고 싶습니까? 장수의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하십니까? 그런데 여기에다 부귀까지도 함께 누리는 사람들의 비결은 무엇인가 너무 알고 싶습니까?
믿거나 말거나 잠언은 이 모두를 얻는 비결을 말하고 있고 이 모든걸 다 합한것위에 이보다 귀하고 복된 비밀한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과 더불어 보너스로 장수와 부귀와 평강을 누리고 싶으신 분은 클릭~!
8/21/2015 • 24 minutes, 44 seconds
잠언 3 : 1-12(김재홍 목사님)
8/20/2015 • 13 minutes, 31 seconds
잠언 2 : 1-22(정인수 담임 목사님)
8/19/2015 • 18 minutes
잠언 1 : 20-33(정인수 목사님)
8/18/2015 • 17 minutes, 1 second
잠언 1 : 1-19(이성혜 목사님)
8/17/2015 • 15 minutes, 19 seconds
에베소서 6 : 10-17(정선기 목사님)
8/15/2015 • 32 minutes, 14 seconds
이사야 19:23-25(박바울 선교사님)
8/14/2015 • 37 minutes, 26 seconds
에베소서 5 : 22-33(심우진 목사님)
에베소서 5 : 22-33(심우진 목사님)
찬송: 88장
찬양: 내 평생 사는동안
8/13/2015 • 10 minutes, 36 seconds
에베소서 5 : 15-21(정연권 목사님)
세월을 아끼라의 의미, 종말론적인 사고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최선을 다하는 인생으로 바꾸어 주는지 알고 싶으신 분은 클릭.
8/12/2015 • 20 minutes, 7 seconds
에베소서 5 : 1-14(정연권 목사님)
에베소서 5 : 1-14(정연권 목사님)
찬양: 예수는 주
8/11/2015 • 19 minutes, 23 seconds
에베소서 4 : 25-32(조무제 목사님)
에베소서 4 : 25-32(조무제 목사님)
찬송: 405장
찬양: 성령이 오셨네
8/10/2015 • 12 minutes, 56 seconds
에베소서 4 : 7-16(서석훈 목사님)
에베소서 4 : 7-16(서석훈 목사님)
찬송: 310장
찬양: 주를 위한 이곳에
8/8/2015 • 28 minutes, 4 seconds
에베소서 3 : 14-21(조근상 목사님)
에베소서 3 : 14-21(조근상 목사님)
찬송: 304장
찬양: 그 사랑 얼마나
8/6/2015 • 17 minutes, 1 second
에베소서 3 : 1-13(심우진 목사님)
에베소서 3 : 1-13(심우진 목사님)
찬송: 315장
찬양: 약할때 강함 되시네
8/5/2015 • 12 minutes, 40 seconds
에베소서 2 : 11-22(심우진 목사님)
에베소서 2 : 11-22(심우진 목사님)
8/4/2015 • 12 minutes, 13 seconds
에베소서 2 : 1-10(정선기 목사님)
에베 소서 2 : 1-10(정선기 목사님)
찬송: 283장
찬양: 나는 찬양하리라
8/3/2015 • 10 minutes, 51 seconds
에베소서 1 : 1-14(심우진 목사님)
에베소서 1 : 1-14(심우진 목사님)
찬송:304장
찬양:내 평생 사는동안
8/1/2015 • 29 minutes, 20 seconds
열왕기하 25 : 18-30(정인수 담임 목사님)
열왕기하 25 : 18-30(정인수 담임 목사님)
찬손: 279장
찬양: 내눈 주의 영광을 보네